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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45화 (45/175)

45화 거침없이 내달린다 4

테라스에서 강남의 휘황찬란한 빌딩 숲을 오롯이 관조할 찰나, 성모의 나직한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나와 동생은 죽음 목숨이야.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겠지?"

강남의 빌딩 숲에 시선을 고정한 채 넌지시 말했다.

"대신 일이 우리 뜻대로 처리될 경우, 형님은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인 대영그룹의 후계자가 될 겁니다."

그리 말하며 고개를 돌리자, 격렬한 욕망에 휩싸인 성모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형님은 놈의 동정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성모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나도 그 개자식에게 쌓인 게 아주 많으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가 삐뚫어지도록 술이나 마시자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형님. 하하..."

***

대검에서 풀려난 이성택은 도피성 외유를 떠났다.

얼마 후, 마카오 국제공항에 성택과 박영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만달래이 호텔로 직행했다.

호텔에 여장을 푼 성택과 영조는 곧바로 지하에 위치한 카지노장으로 내려갔다.

성택이 앉은 바카라 테이블 주변에 양복 차림의 동양인이 나타났다.

그는 성택을 매의 시선으로 살폈다.

그날 밤.

성택과 영조는 마카오의 고급 룸살롱을 찾았다.

그때, 룸살롱 주변에 양복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곧바로 한국에 있는 이성모에게 이성택 일행의 동정을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

의대 본과 교수님의 사무실을 찾았다.

교수님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그럴 듯한 핑계를 댔다.

"고아원 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상주 노릇을 해야할거 같습니다. 그 친구의 장례를 돌봐줄 가족이 아무도 없거든요."

교수님이 안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친구 장례식이나 신경써라."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장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 후, 학교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수석에 차동연을 앉힌 뒤, 참으로 간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곧바로 강변북로 쪽으로 부가티를 몰아갔다.

맞은편 차선에 대형 덤프트럭이 나타났다.

순간 나를 덮칠 것만 같은 본능적인 두려움이 전신에 팽배해졌다.

동시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두눈을 감은 채, 전방을 향해 엑셀을 힘차게 밟았다.

다행히 도로에 별로 차가 없었던 탓에, 내 부가티는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숨가쁜 위기를 돌파하자마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직후, 조수석의 차동연이 놀란 가슴을 남모르게 쓸어내리는 광경이 시야에 포착됐다.

나 때문에 십년감수한 얼굴이었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일산 자유로 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하루종일 부가티를 몰며, 운전공포증을 완벽히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

대영호텔 강남 본점에 들어서자, 로비 라운지 소파에 앉아있는 이성모가 보였다.

그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든 뒤, 내 곁으로 곧장 다가왔다.

그에게 목례를 취한 뒤, 펜트하우스와 직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성모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우리는 펜트하우스에 들어선 뒤 캔맥주로 목을 축였다.

그 후, 본격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성모가 은근한 얼굴로 말했다.

"마카오의 만달래이 카지노를 찾아가면 이성택을 만날수 있을거야."

"카지노 말고, 자주 가는 장소가 있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했다.

"매일 밤, 핑크로즈 룸살롱을 드나든다고 하더군."

머리속으로 이성택을 죽이는 광경을 상상했다.

교통사고를 가장해서 죽이는 방법과 칼을 이용하는 쪽.

내심 후자가 마음에 들었다.

교통사고를 가장해서 죽일 경우, 나 역시 다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깔끔하게 칼을 이용하는 게 나을거 같았다.

"마카오 시내에 CCTV가 많나요?"

"주택가에는 거의 없고, 호텔에도 드문드문 있는 정도지."

놈을 죽이기에 안성맞춤의 환경이었다.

성모를 내보낸 뒤 박은영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마카오로 떠날 생각이니까 편도 비행기 편을 준비해 주세요."

-예. 대표님.

***

다음날.

마카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 후, 쉐라톤 그랜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 거울에 시선을 모으자 구렛나루가 인상적인 20대 초반의 남자가 보였다.

나는 2주일 동안 수염을 기른 상태였다.

선글라스를 착용하자, 내 본래 얼굴과 많이 다른 이미지가 연출됐다.

머리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채 호텔을 나섰다.

그 후, 만달래이 호텔 지하 카지노장을 찾았다.

성모의 말대로 이성택은 바카라 테이블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리고 박영조는 슬롯머신 테이블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두놈 모두 죽어 마땅한 극악무도한 범죄자였다.

그들을 뒤로한 채 카지노장을 빠져나왔다.

카지노장 인근에는 만물상이 있었다.

만물상 답게 도검류도 판매하고 있었다.

내 시선은 큼지막한 군용 대검에 모아졌다.

검집을 이용해 발목에 부착하는 방식이었다.

만물상에서 대검을 50달러에 구입한 뒤, 다시 카지노 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카지노장에 들어서자 바카라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는 성택의 모습이 보였다.

놈은 박영조를 대동한 채 카지노장을 벗어났다.

나 역시 그들과 일심동체였다.

***

이성택과 박영조는 만달래이 호텔 주변에 위치한 핑크로즈 룸살롱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핀 뒤, 근처에 있는 좌판으로 걸어갔다.

좌판에서는 고기 국수 종류를 판매하고 있었다.

고기 국수로 배를 채우는 한편, 핑크로즈 룸살롱의 출입구에 시선을 고정했다.

금방 나오지는 않을거 같았다.

최소 3시간 이상의 잠복이 필요했다.

쇠고기 국수로 배를 채운 뒤, 다시 카지노장으로 들어갔다.

3시간 후.

핑크로즈 근처의 노점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돼지고기 국수로 배를 채우는 한편, 룸살롱의 출입구에 시선을 모았다.

그때, 성택과 영조가 룸살롱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담과 아가씨들의 배웅을 받으며 만달래이 호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곧바로 녀석들을 은밀히 뒤따랐다.

새벽 시간대라 그런지 길에는 사람이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게다가 CCTV마저 없었다.

놈들을 처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다.

발목에서 대검을 꺼냈다.

그 후, 녀석들을 재빨리 따라잡았다.

바로 그때, 내 인기척을 느낀 박영조가 고개를 휙 돌렸다.

순간 젖먹던 힘을 다해, 놈의 목덜미 대동맥에 대검을 힘차게 박아넣었다.

서걱!

촤아악!

놈의 목덜미에서 선홍빛 핏물이 폭포수처럼 솟구쳤다.

동시에 내 살기넘치는 대검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택의 목덜미에 섬전처럼 틀어박혔다.

푸욱!

촤아아악!

성택 역시 더러운 핏물을 뿜어내며 제자리에서 짚단처럼 허물어졌다.

일격필살이었다.

강력범죄로 위장할 생각이었다.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밝혀질 경우, 일이 복잡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놈들이 걸친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지갑을 회수한 후 장내를 전속력으로 벗어났다.

30분 후.

후미진 뒷골목에 도착한 뒤 녀석들의 핏물로 얼룩진 티셔츠와 청바지를 재빨리 벗었다.

그 후, 라이터로 청바지와 티셔츠를 소각처리했다.

성택과 영조의 지갑을 살피자 신용카드와 미화 백달러 뭉치가 보였다.

놈들의 지갑과 내 지갑을 구두 안에 집어넣은 뒤, 지근 거리에서 박스를 깔고 누워있는 노숙자 곁으로 다가갔다.

녀석은 지저분한 티와 다 헐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갑에서 백달러 지폐 10장을 꺼낸 후, 그에게 영어로 말했다.

대충 내 말을 알아들은 노숙자가 '땡큐'를 연발하며 냄새나는 티와 청바지를 벗어주었다.

그의 옷으로 환복하자마자 인근의 강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상태로 호텔에 돌아가면 의심받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아침까지 강가에서 기다렸다가 새 옷을 사입고 호텔로 귀가하는 게 최선이었다.

강가 구석에 자리를 잡자마자 구두에서 성택과 영조의 지갑을 꺼내들었다.

강물 속으로 놈들의 지갑과 대검을 힘차게 내던졌다.

잠이 비오듯 쏟아졌다.

동시에 두눈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지며, 무저갱같은 깊은 잠 속으로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눈을 뜨자 찬란한 아침 햇살이 두눈을 아리도록 파고들었다.

아침 9시가 넘은거 같았다.

강가를 벗어난 뒤 상점가 쪽으로 걸어갔다.

매장에 들어서자 여점원이 눈쌀을 찌푸리며 광동어로 뭐라뭐라 지껄였다.

그녀에게 영국식 엑센트가 섞인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옷을 사러 왔습니다."

그리 말하며 지갑 속에 가득 들어찬 백달러 지폐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제야 여점원이 친절한 얼굴로 나를 대했다.

매장에서 셔츠와 청바지를 구입한 후 쉐라톤 그랜드 호텔로 돌아갔다.

스위트룸에 들어서자마자 TV를 켰다.

현지 뉴스를 시청하기 위함이었다.

현지 뉴스는 이성택과 박영조의 사진을 쉴 새 없이 내보내고 있었다.

광동어 뉴스라 자세한 내용은 알수 없었지만, 목격자의 제보를 원하는거 같았다.

TV를 끈 뒤,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마카오의 야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이성택과 박영조의 그림자로 얼룩졌다.

살인은 생각외로 너무 쉬웠다.

그들은 내 칼을 피하지 못했다.

변변한 저항조차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런 탓일까, 시원섭섭한 심경에 사로잡혔다.

이토록 쉬운 복수를 왜, 그리 힘들게 생각했을까?

법이고 나발이고, 칼침 한방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일을.

나는 그날, 절절히 깨달았다.

거물을 상대할 경우, 법보다 주먹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

다음날.

마카오 현지의 클럽을 찾았다.

젊음의 열기를 온몸으로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스테이지로 시선을 돌리자 늘씬한 현지 미녀가 광란의 추사위를 펼치는 광경이 시야에 포착됐다.

곧바로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등뒤에 바짝 붙은 채, 영국식 영어로 넌지시 말했다.

"너에게 첫눈에 반했다. 오늘밤 너의 남자가 되고 싶은데, 가능할까?"

그녀가 영어로 화답했다.

"오브 코어스(of course)."

우리는 격정적인 댄스를 밤늦도록 즐긴 뒤 인근의 호텔로 나란히 들어갔다.

***

이성모는 자택에서 긴급 속보에 이목을 집중했다.

-대영그룹의 이성택 부회장과 수행원이 마카오 현지에서 괴한에게 피습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지 경찰은 이성택 부회장 일행이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그들을 습격한 괴한을 뒤쫒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지 경찰은 이성택 부회장 일행의 지갑이 없어진 점으로 볼때, 금품을 노린 범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략...

성모의 얼굴에 기쁨과 두려움의 감정이 번갈아 교차했다.

그는 눈엣가시같은 이성택이 죽었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기뻐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한빈에 대한 두려움이 무겁게 자리잡았다.

바로 그때, 성모의 핸드폰이 요란한 울음을 토했다.

폰에서 이철성 회장의 침통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이 회장과의 통화를 끝마치자마자, 한남동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이성모를 대영호텔로 호출했다.

녀석은 펜트하우스에 나타나자마자 감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맙다. 동생.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그는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건 그렇고, 회장님의 반응이 궁금하군요."

성모가 즉답했다.

"당연히 죽을 상을 하고 있지. 집안의 장손이 해외에서 비명횡사를 당했으니까. 낄낄..."

그의 입에서 비릿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이제 형님이 대영그룹 후계잡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세요."

나름 덕담을 내뱉자, 그가 반색하는 얼굴로 내 오른손을 자신의 두손으로 정겹게 마주잡았다.

"내가 나중에 회장이 되면 동생이 원하는대로 다해줄게. 정말이라고."

"후계자 노릇이나 제대로 하십시오."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녀석이 나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펜트하우스에서 조심스럽게 사라졌다.

***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뒤 주가 시황에 이목을 집중했다.

나는 한국의 IT와 바이오 업종에, 다수의 사모펀드 명의로 2조7천억 가량을 투입한 상황이었다.

내가 투자한 종목들은 큰폭의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 덕분에 주식 평가액이 3조4천억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6개월 만에 7천억에 육박하는 차익을 봤다.

하지만, 별로 만족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그리 큰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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