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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53화 (53/175)

53화 구조조정위원회

태산그룹의 비밀 지주회사인 윤광사의 지분 50.1%를 취득하자마자 태산의 공식계좌로 7천억을 곧바로 이체했다.

그 후, 최동명과 태산그룹의 본사 빌딩이 있는 종로구로 향했다.

종로구 인근의 태산빌딩 본사 빌딩에 들어서자 수백명의 임직원들이 양열로 도열한 채 최 회장과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우리는 그들을 본체만체하며 곧바로 탑층에 위치한 회장실로 직행했다.

회장실의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면전에 마주앉은 최동명에게 내 요구를 전했다.

"이번주 안으로 계열사 구조조정위원회를 발족할 계획입니다. 그러니 회장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그가 애절한 얼굴로 읍소했다.

"그룹 경영권에는 손을 대지 말아 주십시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구조조정위원회가 주로 할 일은 그룹이 보유한 불요불급한 부동산과 적자 계열사의 매각 작업으로 국한될 겁니다."

그제야 최 회장이 한숨 돌린 얼굴로 머리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내일 오전에 제가 추천하는 사이외사를 이 곳으로 보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카이저빌딩 사무실에 도착한 뒤 장동현을 면전에 호출했다.

눈 앞에 나타난 그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태산그룹의 사외이사직을 겸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불요불급한 부동산 자산과 적자 계열사를 매각하는 작업에 전념하십시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태산그룹에서 장변에게 사외이사 연봉으로 8억원 가량을 지급할 겁니다. 요긴하게 사용하십시오."

장변이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이자, 장변이 사무실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날밤.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강남의 아레나 클럽을 찾았다.

마음에 드는 그녀와 격렬한 춤사위를 만끽한 뒤 대영호텔 소공동 지점으로 향했다.

펜트하우스에서 오붓한 시간을 즐긴 뒤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

다음날.

대영호텔 소공동 지점의 한정식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음미할 무렵, 성모가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분한 표정을 지으며 신세한탄을 쏟아냈다.

"영감탱이가 성준이 놈을 후계자로 낙점했어! 하긴, 그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성택과 성준이 놈만 편애했지. 개같은 인간이!"

그의 입에서 적나라한 언사가 쏟아졌다.

"그 인간이 얼마나 개같은 인간이지 알아? 우리 엄마를 창녀취급하고, 나를 다른 놈의 씨라고 의심했었다고! 그 바람에 친자확인 검사만 무려 3번이나 했었다구!"

녀석은 쌓인 게 많은 눈치였다.

"자자, 흥분 좀 가라 앉히시고 저와 건설적인 대화를 나눠봅시다. 형님."

그제야 성모가 한결 침착해진 얼굴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영그룹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대영전자죠. 그러니까 형님은 대영전자만 집중하십시오. 나머지 떨거지 계열사는 돈 안되는 쭉정이나 마찬가지니까."

"그야 그렇지만, 성준이가 비밀 지주사인 대영물산의 지분을 물려받으면, 대영전자도 자연적으로 그놈 수중에 떨어지는 거라고."

그에게 살벌한 제스츄어를 취했다.

"이번 기회에 이철성 회장을..."

말 끝으로 흐리며 목덜미를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자 성모가 온몸을 움찔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살부(殺父) 행위에 거부감을 갖는거 같았다.

하지만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의 처지를 확실히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형님은 조만간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내 말이 사실임을 잘 아는 탓이다.

"형님에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회장을 제거하는 게 최선이죠."

그의 떨림이 점점 강해졌다.

"마음을 정하시면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이성모는 자택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한빈의 제안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한빈은 그에게 부친을 죽이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성모의 얼굴에 짙은 의혹이 스쳤다.

'설마...? 아버지에게 원한이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성택과 부친 모두에게 말못할 감정을 갖고 있는거 같았다.

결국 그는 한빈에게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작심했다.

***

장동현을 대동한 채 태산그룹의 종로동 사옥을 방문했다.

우리는 곧장 이사회가 열리는 35층으로 직행했다.

이사회장에 들어서자 30명에 달하는 이사진과 최동명 회장이 나와 동현을 반겼다.

우리는 그들에게 목례를 취한 뒤 최동명 양옆에 자리를 잡았다.

최 회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를 소개했다.

"앞으로 그룹의 자산과 적자 계열사의 매각 문제를 책임질 예정인, 크리스 킴 사이외사와 장동현 사외이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진심어린 박수를 요청합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가식적인 박수 갈채가 장내에 메아리쳤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내 주장을 펼쳤다.

"저는 태산그룹의 불요불급한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만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룹 계열사 역시, 신속하게 매각할 계획입니다. 당연히 이사진 여러분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순간 장내에 어색한 침묵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그런 탓인지 이사진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최 회장의 입에 모아졌다.

그때, 최 회장이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크리스 이사님의 말처럼 우리 태산그룹은 불요불급한 부동산 자산과 적자 경영을 지속 중인 계열사들을 속전속결로 매각할 방침입니다."

그의 확인사살이 떨어지자, 이사진들이 나와 최 회장을 연신 힐끔거리며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속닥거렸다.

태산그룹의 진정한 실세가 누구인지 금세 눈치챈 모양새였다.

***

타펠 펜트하우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장동현에게 지시를 내렸다.

"태산그룹의 부동산 자산을 최단 시일 내에 파악하세요. 특히 수도권에 소재한 부동산을 면밀히 조사하십시오."

"그리고 삼우회계법인에, 태산그룹의 적자 계열사를 중심으로 정밀 실사를 요청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대표님."

그 무렵, 타팰의 전경이 차창 밖에 드러났다.

차에서 내리며 운전석의 김태구에게 지시를 내렸다.

"장변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세요."

그러자 장동현이 송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우리 사이에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하하..."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타팰 건물로 들어갔다.

그날 밤.

타팰 펜트하우스에서 멤버들과 홀덤 포커를 즐길 무렵, 성모가 장내에 나타났다.

녀석은 심각한 얼굴로 홈바로 향했다.

그 후, 포커판이 끝날 때까지 나홀로 자음자작을 즐겼다.

포커가 끝나자 멤버들이 모두 돌아갔다.

직후 성모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녀석이 질문을 퍼부었다.

"우리 아버지한테 원한이 있나?"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조금 있습니다."

성모가 그럴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중요한 건 대영그룹의 경영권이죠. 형님은 거기에 집중하시면 그만입니다."

그가 내 눈을 뚫어져라 직시하며 물었다.

"어떤 방법으로 나를 도와줄 생각이지?"

"저번과 마찬가지로 외국계 대주주들을 설득할 생각입니다."

"그 방법이 다시 통한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야 그렇지만, 주주 배당액을 높여준다면, 충분히 우리 쪽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자 성모가 완강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말고, 아버지를 신속하게 처리한 뒤에 대영그룹의 대권을 장악하는 게 어떨까?"

그는 이미 단단히 작심한 눈치였다.

그런 탓인지 자기가 먼저, 살부(殺父) 계획을 주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직 대영물산의 지분을 성준이 놈에게 넘기지 않았어. 그 작업을 완료하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거야."

그의 말은 계속 됐다.

"그러니까 일주일 안에 아버지를 처리하자고. 그 후에, 집안의 실질적인 장남으로서 그룹의 대권을 물려받으면 게임 끝이라구."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였습니다. 우하하하...!"

내 입에서 절로 우렁찬 광소가 쏟아져 나왔다.

간만에 성모가 마음에 드는 언사를 내뱉은 탓이다.

내 웃음소리가 가라앉자 성모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가 예전에 미국 지사 시찰 중에 땅콩을 잘못 먹는 바람에 심정지가 온 적이 있었거든."

"그 말이 정말인가요?"

"그래. 아버지는 지독한 땅콩 알러지가 있어. 땅콩을 섭취하면 호흡곤란이 오는 증상이지. 하여튼 그때는 주변에 의료진이 있어서 위기를 넘길수 있었지."

그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땅콩에서 추출한 엑기스를 아버지가 드시는 북극산 생수에 몰래 집어 넣으면..."

녀석은 말끝을 흐리며 살벌한 안광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성모는 이 회장을 죽일 작정이었다.

내가 원하는 바였다.

"계획은 좋아보이는데, 만반의 준비가 필요할거 같군요."

"그게 뭐지?"

"이 회장의 유언장을 관리하는 고문 변호사를 회유하면, 형님의 경영권 승계에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유언장을 조작하라는 말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담배 연기를 성모를 향해 훅 내뿜으며 다시 말했다.

"이 회장의 고문 변호사를 제가 회유할테니 형님은 이 회장만 신경 쓰십시오."

그러자 녀석이 감격한 얼굴로 내 손을 정성스럽게 마주잡았다.

"이번 일만 도와주면, 동생이 원하는 대로 사내유보금을 무제한으로 지원해줄게."

"그것 보다는 대영물산의 지분을 저에게 40% 정도 양도해 주십시오. 그 정도 지분을 양도해도 형님의 경영권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겁니다."

녀석이 흠칫한 얼굴로 나를 살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우하하하..."

성모의 입에서 특유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곧바로 책상 서랍에서 A4 용지를 꺼내서 각서 두장을 만들었다.

이성모를 죽인 뒤 대영물산의 지분 40%를 나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이었다.

각서를 완성한 뒤 내 열손가락의 지장을 본문 하단에 날인했다.

그 후, 성모에게 각서 두장을 내밀며 말했다.

"열손가락의 지장을 각서 하단에 날인해 주십시오."

녀석이 머리를 끄덕이며 각서 두장에 열손가락의 지장을 힘차게 날인했다.

***

평창동 서재.

최동명 회장과 그룹의 후계자인 최종연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종연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놈이 우리 태산그룹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생각을 갖고 있는거 아닐까요?"

그러자 최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윤광사 지분양도 계약서에, 나와 최씨 일가의 경영권을 보장한다는 특약 조항을 삽입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라."

"그놈 멋대로 회사 자산과 계열사를 처분하겠다고 날뛰고 있잖아요?"

"그건 우리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니 너무 민감하게 생각지 말거라."

"개자식이 회사의 재산을 빼먹으려는 수작이 안보이세요?"

최 회장의 얼굴에 침통한 표정이 그려졌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만사가 귀찮은 얼굴로 종연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혼자 있고 싶구나. 그러니 이만 집에 가거라."

부친의 초라한 모습에, 종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서재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

김연성은 태산그룹의 재무회계실장인 탓에 누구보다 태산의 자산 현황에 밝았다.

그런 연성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통화를 끝마치자마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그룹의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찬스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저녁 무렵.

시내 일식당에 장동현과 연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인사를 교환한 뒤 싱싱한 회를 안주삼아 정종을 물처럼 들이켰다.

동현은 술자리가 무르익자 은근한 어조로 운을 뗐다.

"태산그룹이 보유한 수도권 부동산의 현황 자료가 필요한데, 저 대신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연성이 눈을 빛내며 화답했다.

"이사님이 원하시는데 당연히 그래야지요. 헤헤..."

그는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동현의 빈잔에 정종을 넘치도록 따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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