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사냥개 육성
해장국집에서 육개장으로 배를 채우는 한편, 칼야이칸 사모펀드의 제퍼슨 회장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내 용건을 밝혔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만남을 주선해 주십시오."
폰에서 제퍼슨의 의아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페이스북이 뭔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회삽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인터넷 상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걸, 지원하는 업체라고 할 수 있죠."
-당최 모를 소리만 하는군.
제퍼슨은 60대의 연배였다.
그런 탓으로 내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하여튼 페이스북의 창업주인 주커버그와 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내가 한번 알아보지.
"감사합니다. 회장님."
통화를 끊은 뒤 식당 벽면에 내걸린 달력으로 시선을 모았다.
오늘은 2004년 8월이었다.
페이스북이 한창 자금난에 시달릴 무렵이었다.
그런 탓으로 페이스북의 창업주인 주커버그는, 월가의 거물인 제퍼슨 회장의 연락을 무시할 수 없었다.
***
카이저빌딩 사무실.
장동현이 두툼한 서류철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가 건넨 보고서를 살피자 태산그룹 적자 계열사의 총매출과 영업이익, 흑자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보고서 하단에는 태산푸드에 관해서 신중히 접근할 것을 요구하는 당부사항이 적혀있었다.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장동현에게 물었다.
"태산푸드의 흑자반전 가능성이 있는 건가요?"
"삼우법인의 회계 감사 결과 태산푸드의 흑자반전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됐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해 보십시오."
장동현이 즉답했다.
"태산푸드는 최근에 대기업과 학교, 관공서 등지와 총 2천억 규모의 구내식당 사업권을 계약했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중저가 밥집 브랜드인 본가식당이 직장인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추셉니다."
본가식당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순두부찌개, 삼계탕을 중심으로 하는 중저가 밥집 프랜차이즈였다.
삼우회계법인과 장동현의 조언을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름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태산푸드를 제외한 적자 계열사 5곳을 매각하는 절차에 돌입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태산그룹이 보유한 수도권 인근의 부동산에 대해서도 말씀해 보십시오."
그가 즉답했다.
"태산그룹은 수원과 용인, 이천 등지에 총 70만평에 달하는 공장부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시세로 환산할 경우 7,000억에 육박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평당 100만원 수준인가요?"
"예. 대표님."
수원과 용인, 이천은 2021년경, 평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지역이었다.
반드시 내 수중에 넣어야 하는 귀한 토지였다.
결심을 굳힌 뒤 장동현에게 지시를 내렸다.
"태산의 최동명 회장에게 오늘 저녁에 만나자는 연락을 넣으세요."
"장소는 어디로 할까요?"
"대영호텔 강남 본점, 2층 한정식 레스토랑으로 오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
사무실을 나서려는 동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궁금하게 있어서 그러는데, 좀 알려주실래요?"
그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검찰 보직에 관해서 궁금하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실하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곧바로 장변에게 물었다.
"직급은 엄청 높은데, 실권은 없는 그런 보직을 아십니까?"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지방 검찰청 고검장 직급이 그런 케이스죠. 직급은 검사장 급이지만, 실권은 거의 없습니다. 퇴임 전에 잠시 거쳐가는 명예직이라고 할 수 있죠."
장변의 입에서 내가 원하는 답변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이유로 검사장 승진을 눈앞에 둔 차장 검사들 사이에, 말못한 이전투구가 자주 펼쳐지고 있습니다. 무늬만 검사장인 고검장이 될까봐 안달복달 하는거죠."
그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내걸렸다.
***
대영호텔 강남 본점.
2층 한정식 레스토랑으로 들어서자 창가에 앉은 최동명이 보였다.
그쪽으로 다가가자 최 회장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그에게 목례로 화답한 뒤 나를 수행하는 이종익 점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백세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내오세요."
"예. 대표님."
이종익이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최 회장에게 용건을 밝혔다.
"수원과 용인, 이천에 70만평에 달하는 공장부지가 있더군요. 이번 기회에 그 부지를 매각합시다."
그가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 땅은 제가 먼 미래를 보고 매입한 곳입니다. 가만 놔둬도 저절로 가치가 오를 지역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매각하자는 겁니다. 회장님."
강한 어조로 반박하자, 최 회장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나를 의심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토지에 욕심이 나십니까?"
그에게 대놓고 말했다.
"네. 그 부지를 제가 매입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딱잘라 말하자 그가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가 용납할 수 없어요!"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
그때, 이종익과 웨이터가 장내에 나타났다.
그들은 테이블에 술과 파전을 세팅한 뒤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빈잔에 백세주를 따라서 최 회장에게 내밀자, 그가 불만그득한 얼굴로 술잔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직후, 뜨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체 나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회장님과 제가 그 토지를 반반씩 매입하는 게 어떻습니까? 어차피 회장님도 수천억대의 사재를 회사에 투입하는 바람에 현금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최 회장이 두눈을 번뜩이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회사가 보유한 토지를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절반씩 해먹자는 말입니까?"
"네. 그래서 이렇게 회장님을 청한 겁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회장님과 제가 편을 먹으면 이사회에서도 토지 매각 작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그의 만면가득 노골적인 탐욕이 짙게 드리워졌다.
최 회장이 머리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대표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하..."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려보내며 달달한 백세주를 연거푸 원샷했다.
술자리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우리는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세부논의를 진행했다.
그에게 내 요구를 전달했다.
"평당 20만원에 토지를 매입합시다."
최 회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시세의 5분의 1 수준으로 매입하자는 말씀입니까?"
"어차피 이사진들 모두 우리 사람인데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그래도 너무 회사에 부담을 주는게 아닌지...?"
"회장님 개인 자금 사정이 빠듯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르는 척 잠자코 계십시오."
그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부실 계열사를 신속하게 정리하면, 그룹의 자금 문제도 저절로 해결될 겁니다."
그제야 최 회장이 다소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못을 박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번달 안으로 속전속결로 작업을 끝마칩시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업체인, 페이스북을 창업한 주커버그는 초기 운영자금이 태부족했다. 그런 이유로 월가의 투자자들과 연일 접촉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칼야이칸의 제퍼슨 회장과 운좋게 면담 일정이 잡혔다.
며칠 후, 그들은 월가 인근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함께하며 심도깊은 논의를 이어갔다.
주커버그가 열변을 토했다.
"페이스북은 반드시 성공하는 사업 아이템입니다. 모바일 컴퓨팅이 대중화 될 경우, 어마어마한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사업 초기라, 홍보와 서버 증설 작업에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합니다."
제퍼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투자금이 얼마나 필요한거요?"
주커버그가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10억 불 정도를 투자해 주신다면, 그 대가로 페이스북의 지분을 25% 가량 양도할 의향이 있습니다."
제퍼슨이 신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당신이 말하는 소셜 네트워트 서비스의 개념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이 문제는 나보다 젊은 사람과 논의를 하는 게 나을거 같소."
그리 말한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제퍼슨은 통화를 끊은 뒤 주커버그에게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한국에 쓸만한 친구가 있어요. 당신처럼 20대 초반의 나이라 말이 잘 통할거요. 내가 중간에서 다리를 놔드릴테니 그 친구와 비지니스에 대해서 논의를 해보시오."
그리 말하며 명함 한장을 주커버그에게 전달했다.
***
최동명 회장과 미팅을 끝마친 뒤 타팰 펜트하우스로 직행했다.
오늘은 포커 멤버들의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수십억대의 판돈을 걸고 홀덤 포커를 즐길 예정이었다.
펜트하우스로 들어서자 이성모를 필두로 다섯명의 포커 멤버들이 나를 반겼다.
잠시 뒤, 우리는 각자의 판돈을 걸고 홀덤포커에 돌입했다.
2시간 후.
포커판을 종료한 뒤 이성모를 제외한 나머지 녀석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 후, 성모와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가 넌지시 말했다.
"너를 사외이사로 추천할 생각인데..."
그는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 문제는 나중에 의논하죠. 지금 급한 건, 그런게 아니라 이태강의 거취니까."
녀석의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이태강한테 왜 그렇게 집착하는거야?"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그자는 사사건건 우리 일을 방해한 놈입니다. 그리고 나름 쓸모도 많고."
"어차피 이미 지난 일이잖아. 그러니까 당분간 속편하게 살자."
"형님은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내 말대로 해서 언제 손해본 적 있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특수부 총괄부장을 잘못 건드리면..."
성모가 자신없는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검찰과 법원, 언론, 정치권에 널린 대영그룹 장학생들을 활용하면, 이태강을 작살내는건 문제도 아니라고요."
그제야 녀석이 말귀를 알아먹은 얼굴로 은근히 물었다.
"이태강을 어떻게 요리할 생각인데?"
"다음달로 예정된 검찰 정기 인사에서, 그 인간을 제대로 물먹일 생각입니다. 대영그룹의 인맥을 활용해서, 청와대와 검찰 고위층에 이태강 비토 분위기를 조성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그놈을 검찰 조직에서 밀어내자는 말이냐?"
"직급은 검사장 급이지만 실권은 하나도 없는 지방 고검장으로 발령낼 계획입니다."
성모가 감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와! 검찰에 대해서 왜 그렇게 잘 아는거냐?"
"조금 공부를 했습니다. 하여튼 그놈에게 자기 분수를 파악할 시간을 줍시다."
녀석이 호기심 그득한 눈빛을 내비치며 물었다.
"이태강에게 원하는 게, 대체 뭐야?"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자는 검찰 핵심 포스트에 자기 라인이 많아요. 사냥개로 이용하기에 금상첨화죠."
"우리 말만 듣는 사냥개로 키우자고?"
"일단 그놈을 지방 한직으로 보낸 뒤에, 검찰 총장직을 미끼로 우리에게 절대충성하게 만드는 거죠."
순간 녀석이 경탄한 얼굴로 나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곧추 세웠다.
"와! 너는 왜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냐! 정말 인정이다!"
"칭찬은 됐고, 우리는 앞으로 이태강을 말 잘듣는 사냥개로 길들이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당연하지. 우하하하하하...!"
녀석의 입에서 호탕한 광소가 길게 울려퍼졌다.
***
서울 모처에 여당 대표인 이신명과 대영그룹의 총괄 부회장인 오종덕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종덕의 입에서 단도직입적인 언사가 흘러나왔다.
"이태강 검사의 월권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대영은 물론이고 다른 그룹에도 떡값 명목으로 거액의 뒷돈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요."
"정말 그 정도라는 말씀입니까?"
이신명이 놀란 얼굴로 묻자, 오종덕이 힙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말했다.
"그룹의 비위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노골적인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대검 특수부 검사라는 막강한 권한을 악용하는 거죠."
"흐으음..."
이신명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런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오종덕이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검찰 조직에세 쫒아내라는 건 물론 아닙니다. 다만 실권없는 한직으로 이태강을 보내주십시오. 그 사람 때문에 겁나서 회사 경영을 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대통령님에게 부회장님의 발언을 가감없이 전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
정부 소유 안가에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 검찰 총장 3인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민정수석이 모두발언을 내뱉었다.
"대검 특수부 총괄 부장인 이태강에 대해서 여론이 너무 안좋아요. 강압적인 방식으로 대기업을 수사하는 행태가 기업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습니다."
법무부장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도 그런 소문을 여러차례 접했습니다. 대검 특수부 검사라는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서 월권을 행사한다고 하더군요."
민정수석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렇다고 이태강을 검찰 조직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검찰 분위기도 있으니까 실권없는 보직으로 영전시키자는 말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곧바로 호응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검찰 총장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 직계 라인이었다.
그런 탓일까, 그들의 말을 조용히 경청한 뒤 예스맨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원하시는대로 이태강을 실권없는 보직으로 영전시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