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지옥행 특급열차
나를 대하는 이성모의 눈빛과 태도가 석연치 않았다.
반란을 획책하는 모양새였다.
놈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런 탓으로 대를 이어 충성을 바치는 노집사 이영택을 포섭하기로 결심했다.
***
경호원들과 한강변을 산책할 무렵, 박종태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노란 봉투가 들려있었다.
종태가 건넨 서류는 노집사 이영택의 신상파일이었다.
그는 한남동에서 집사로 일하며 연간 2억1천만원 수준의 연봉을 지급받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름 고액연봉을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영택에겐 두명의 아들이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모두 유학비용이 비싸기로 소문난 영국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두명의 아들을 영국 대학에 유학보내기 위해서는, 연간 최소 2억이 넘는 돈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됐다.
서류를 종태에게 돌려준 뒤 슬며시 물었다.
"이영택의 개인 자산도 확인해 보셨나요?"
그가 즉답했다.
"확인한 결과 은행 통장에 예금된 2천만원 상당의 돈이 전부였습니다."
"자기 명의의 부동산도 없는 겁니까?"
종태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영택은 한남동 별관에서 거처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쓸만한 그림이 그려졌다.
"이영택과 만나고 싶으니까 은밀히 자리를 만들어 보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
다음날.
5억원 상당의 현찰을 준비한 뒤 약속장소인 한강공원 주차장으로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경호원들을 뒤로한 채 흰색 소나타 차량의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
돈가방을 운전석의 이영택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성모의 동정을 살펴주십시오. 그리고 이 돈은 아드님들의 유학비에 사용하십시오."
그는 고심이 역력한 얼굴로 전방을 한참 동안 주시했다.
몇분 뒤, 이영택이 못이기는 척 돈가방을 받아들었다.
"쓸만한 정보를 저에게 제공해 주신다면 5억원을 추가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결정적인 제보를 할 경우, 저에게 얼마나 주실 겁니까?"
"10억을 약속하겠습니다."
그리 확언하자, 이영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
대영호텔 강남 본점.
점장실에 정종현 관리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종현이 불만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의 경호원들이 피트니스 센터를 거의 점거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일반 고객들의 불만이 극에 달할 지경입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요. 점장님!"
이종익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한빈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법인카드를 남발한 호텔 간부들을, 묵사발을 내는 현장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익은 감히 한빈에게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는 날에는, 그의 매서운 주먹이 자신의 노쇠한 육신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정종현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이며 엄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대표님에게 함부로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골로 갈 수 있으니까 항상 입을 조심해!"
그러자 종현이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무실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
회사 인근의 밥집에서 박종태와 점심을 함께할 무렵, 그의 입에서 은근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이종익 점장이 지난 수년 동안 호텔의 이권 사업에 관여하면서, 부당하게 취득한 자금이 10억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증거가 있나요?"
"그에게 금품을 상납한 인테리어 업자와 식자재 유통업자들의 증언과 금품수수 정황이 상세히 기입된 비자금 장부를 확보했습니다."
이종익은 내 눈에 들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한 양반이었다.
그런 탓으로 나름 살길을 열어주기로 결정했다.
"이종익을 만나서 불법적으로 수수한 금품을 대영호텔 공식 계좌로 반환하라고 알아듣게 말하세요."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생각입니까?"
"직위해제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 계획입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부장급 이상의 간부사원들 중에서 신임 점장을 선발할 예정이니까, 그들의 신상파일을 신속하게 보고서로 제출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
카이저 빌딩에 도착한 뒤 탑층으로 올라갔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박종태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잠시 후, 종태가 내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대영호텔 강남 본점의 부장급 이상, 간부 사원들의 파일이 들려있었다.
내 시선은 호텔의 부대 시설을 관리하는 정종현 부장의 신상파일에 모아졌다.
그는 부장으로 승진한 이후, 나름 열심히 일을 하는 인물로 평가됐다.
또한 이렇다할 비위와 잡음도 전무했다.
간부 사원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이었다.
내심 그를 신임 점장으로 낙점한 뒤 종태에게 넌지시 말했다.
"정종현이란 인물이 마음에 드는군요. 그와 면담 일정을 잡으세요."
종태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는 점장을 맡기에는 직급이 너무 낮습니다."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대영호텔은 내 개인 기업이니까."
그제야 종태가 납득한 얼굴로 순순히 복명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
그날밤, 대영호텔 강남 본점.
펜트하우스에 정종현 관리 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그는 나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면전에 공손히 시립했다.
정종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피트니스 센터에, 호텔 고객들이 거의 안보이는 이유가 뭡니까?"
종현이 기다렸다는 듯 답변했다.
"대표님의 경호원 분들이 피트니스 센터를 낮밤을 가리지않고 점유하는 바람에, 지레 겁을 먹은 고객들이 이용을 회피하는거 같습니다."
나름 솔직한 대답이었다.
녀석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이종익 점장이 직위해제된 사실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
"그가 직위해제된 이유도 아시나요?"
종현이 곤혹스런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내가 원하는 대영호텔 강남 점장은 일도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나름 청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종현 씨가 마음에 듭니다. 제가 원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이거든요."
그에게 재차 말했다.
"내일부터 당신이 호텔 점장을 맡으세요."
그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뭘 그리 놀라세요? 어차피 대영호텔은 내 개인 기업이니까 아무도 뭐라 안할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일개 관리부장에 불과합니다. 대표님."
"당신은 내가 씌워주는 감투를 못 이기는 척, 넙죽 받아먹으면 그만이라고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제야 녀석의 얼굴에 감격한 표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서 대표님을 보필하겠습니다."
종현은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
다음날.
카이저 빌딩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운전석의 김태구 경호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일부터 경호원들의 호텔 피트니스 센터 이용을 금지시키세요. 대신 인근에 위치한 체육관에서, 분산해서 운동을 하라고 권유하십시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대표님."
***
정종현은 감개가 무량했다.
큰 마음먹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하루아침에 벼락출세한 탓이다.
강남 본점의 점장 자리는 대영호텔에서 거의 2인자에 해당하는 직급이었다.
오너인 김한빈을 보필하며, 호텔 전체의 경영을 두루 관장하는 보직이었다.
그런 이유로 5억원에 육박하는 고액 연봉을 지급받았다.
당연히 정종현은 한빈에게 지극히 감사한 심경이었다.
더불어 그를 향한 충섬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졌다.
반면 하루아침에 호텔에서 해고조치된 이종익은 자신의 후안무치한 처신을 미치도록 후회했다.
허나, 이미 버스는 저 멀리 떠난 뒤였다.
***
저녁 무렵.
대영호텔 강남 본점 피트니스 센터로 들어서자 일반인 고객들이 체력단련과 수영을 즐기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흐뭇한 순간이었다.
나를 수행하는 신임 점장 정종현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사시사철 풀파티를 개최 할 수 있는 시설을 호텔 내부에 설치하세요."
종현이 난색을 표명했다.
"호텔에는 추가로 풀장을 조성할 부지가 거의 없습니다. 대표님."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호텔 정원에 풀장을 조성하면 될거 같은데요?"
종현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눈을 반짝이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텔 정원부지에 풀 파티장을 조성하는 방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검토가 끝나는대로 필요 예산을 작성해서 나에게 보고서로 올리세요."
"예. 대표님."
***
타팰 펜트하우스로 이성모를 불러들였다.
우리는 곧바로 긴급 현안에 돌입했다.
"대영그룹이 보유한 수도권 요지의 부동산을 형님과 내가 사이좋게 저가에 매입합시다."
성모가 미온적인 태도로 입을 열었다.
"거의 모두 공장 증설 예정부지라, 매매하는 게 쉽지 않을거다."
"공장 증설을 뒤로 미루면 될 일 아닙니까?"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장 증설은 신속을 요구하는 사안이라..."
녀석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럼 대영그룹이 수도권에 보유한 업무용 빌딩을 저가(低價)에 매각하시죠?"
"동생은 잘 모르나본데, 우리 대영그룹이 보유한 부동산은 거의 모두 공장 부지야. 업무용 빌딩이 거의 없다고."
"한남동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이라도 매각해 주십시오. 형님."
오르세 미술관은 한남동 요지에 들어선 대영그룹 소유의 미술관이었다.
부지 면적만 해도 1만평이 넘었다.
시가로 4천억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성모가 곤혹스런 얼굴로 말했다.
"오르세는 이서연이 관장으로 있는 곳이라고. 내가 손대기가 좀 그래."
녀석은 갖은 핑계를 대며 내 요구를 거절하고 있었다.
그래서 따금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보유한 대영그룹의 총지주회사 지분이 40%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마십시오. 형님."
성모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은근히 살폈다.
직후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오르세 미술관 부지를 얼마에 매입할 생각이지?"
"1천억 정도에 매입할 계획입니다."
순간 녀석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시세보다 너무 낮은 가격이잖아?"
"그건 내 알 바 아니니까, 그룹 이사회에 오르세 미술관 부지 매각 안건을 상정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녀석이 간사한 얼굴로 딜을 넣었다.
"대영물산이 해외 유전과 가스전, 광물 자원 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거든. 당연히 수십조원에 육박하는 재원이 필요한 사업이지."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사회에서도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까 미술관 부지는 놔두고 거기에 집중하는게 어때?"
"폐유전과 폐가스전, 폐광을 헐값에 매입해서 대영물산에 수십배의 가격으로 되팔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역시 우리 동생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우하하하...!"
쓸만한 제안이었다.
"좋습니다. 미술관 부지를 포기하는 대신,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집중합시다."
"잘 생각했어. 그럼 이번 여름에 나랑 해외로 나가서 밑작업을 같이 하자고."
성모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기자, 저 멀리 사라져가는 녀석의 세단차량이 시야에 들어왔다.
놈은 갖은 핑계를 대며 내 요구를 번번이 거부했다.
해외자원개발도 시간을 질질 끌며 나를 골탕 먹일 가능성이 높았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그는 나를 모해(模楷)하려고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다.
물론 놈의 얕은 수에 호락호락 당할 내가 아니었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똥 싸고 밑을 안 닦은 기분이랄까?
성모는 내 몸종이 되기를 끝내 거부하는 건가?
스스로 자문자답해 보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없었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내 짐작이 맞을 경우 놈을 무자비하게 처단하기로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