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65화 (65/175)

65화 얼굴마담 2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회장은 사업규모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프리미엄을 붙여서 매각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그는 차등의결 권리를 가진 주식(1주당 복수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주식)을 포함해서, 거의 40%가 넘는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10% 가량을 매각한다해도, 차등의결권 덕분에 과반수 지분 행사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월가의 유력 사모펀드와 거대 자산운용사에 자신의 뜻을 은연 중에 전달했다. 하지만, 베이조스 회장에게 지분 매입 의사를 밝히는 큰손들이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시세보다 20%이상 높은 프리미엄 때문이었다.

그런 소식은 칼야이칸의 제퍼슨 회장에게도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다.

***

이성모를 가족묘지에 안장한 성준은 그날 곧바로 한남동으로 이사했다.

당연히 그의 동생들 모두 한남동에 터를 잡았다.

한남동의 주인이 대영그룹의 회장이라는 인식이 일반인들과 임직원들 뇌리에 깊숙이 박힌 탓이었다.

그들 다섯명의 형제자매들은 한남동의 각방에 터를 잡은 채, 연일 한빈에게 연락을 취했다. 허나, 그들의 기다림은 의미 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늦은 밤.

성준은 한남동의 고즈넉한 정원을 거닐며 한빈의 제안을 심사숙고했다.

그는 동생들이 자기를 회장으로 추대해 주기를 원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동생들 모두 자기들이 회장이 되고 싶어한 탓이다.

성준은 동생들의 지독한 욕심에 내심 질릴대로 질렸다.

그런 때문일까, 한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이 급격히 기울었다.

비록 핵심 계열사의 경영권은 가질 수 없었지만, 나머지 60개 계열사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외적으로 대영그룹의 회장님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그의 일평생 소원은 대영그룹의 회장이었다.

결국 그는 동생들과의 지리멸렬한 경영권 다툼을 중단하는 대신, 한빈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작심했다.

그는 마음의 결정을 하자마자 한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

대영호텔 강남 본점.

펜트하우스 응접실에 장동현 법무실장이 나타났다.

그에게 내 요구사항을 말했다.

"책상에 앉아서 내가 구술(口述)하는 내용대로 계약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장변이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필기구를 손에 쥔 채 공백 상태의 백지에 시선을 집중했다.

장변에게 나직한 어조로 구술했다.

"나, 이성준 대영그룹 회장은 대영전자와 대영자동차, 대영물산의 경영권 일체를 타지마할 사모펀드의 한국 지사장인 김한빈에게 일임한다."

"나, 이성준은 대영물산의 지분 12%에 대해서, 타지마할 사모펀드의 한국 지사장인 김한빈과 공동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

"나, 이성준은 그 대가로 타지마할 사모펀드의 한국 지사장인 김한빈이 제공한 1조원을, 계약체결 즉시, 내가 지정한 계좌로 이체 받는다."

내 구술을 백지에 빼곡히 써내려간 장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 이성준씨가 이런 계약에 합의를 한 겁니까?"

"대영그룹의 회장이 되고 싶어하는 열망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더군요."

장변이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약서 2부를 작성하세요. 내일 오전 9시에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니까."

"예. 대표님."

이성준은 무늬만 회장이 될 운명이었다.

***

한남동.

성준은 밤잠을 설치며 대영전자와 자동차를 수중에 넣을 방법을 남몰래 고심했다.

그의 수중에는 4조원에 달하는 비자금과 수천억 상당의 유가증권, 부동산 등이 있었다.

김한빈에게 추가로 1조원을 받는다 해도 대영물산과, 전자, 자동차의 경영권을 되찾아오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는 허탈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가라읹히며, 장인어른이 운영하는 동창일보를 이용해 한빈을 도모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그의 설익은 계책이 한빈에게 통할지는 미지수였지만.

***

카이저빌딩.

사무실에 이성준과 그의 고문 변호사인 이동직이 나타났다.

곧바로 장동현을 호출했다.

잠시 후.

이동직 변호사는 장변이 작성한 계약서를 두루 살핀 뒤 이성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준이 계약서 2장에 자필서명과 인감도장을 차례로 날인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약 체결을 끝마친 뒤 스위스 UPS 은행에 한통의 팩스를 전송했다.

성준의 해외비밀 계좌 내역이었다.

잠시 뒤, UPS 은행의 후베르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팩스에 적힌 은행 계좌로 미화 8억5천만불(1조원)을 이체해 주십시오."

-예. 고객님.

통화를 끊은 뒤 성준에게 넌지시 말했다.

"10분 정도만 기다리시면 이체작업이 끝날 겁니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사이좋게 흡연을 즐기며 10분이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원했다.

드디어 10분이 지나자마자 성준이 해외 은행에 전화를 돌렸다.

녀석은 자신의 계좌에 미화 8억5천만불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한 뒤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영그룹의 임시주총을 이번주 금요일 오후 2시에 개최합시다."

녀석이 감개무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우리 사이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우하하하..."

내 입에서 절로 우렁찬 광소가 쏟아져 나왔다.

***

타팰 펜트하우스에서 나홀로 승리의 축배를 들 무렵, 칼야이칸의 제퍼슨 회장에게서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폰에서 제퍼슨의 선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존의 베이조스 회장이 10%에 육박하는 지분을 매각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관심이 있나?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내가 자네에게 헛소리나 할 사람으로 보이는가?

"죄송합니다. 워낙 갑작스런 소식이라..."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네.

그의 말은 계속 됐다.

-베이조스가 시세보다 20% 높은 프리미엄을 원하는 모양일세.

아마존은 2020년경에 시총 2천조원에 육박하는 전세계 최고 기업이 될 예정이었다.

프리미엄이 과도하게 붙어있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될거 같았다.

"회장님이 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일이 잘 되면 섭섭치 않게 사례를 하겠습니다."

-아마존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구만.

"조금 관심이 있습니다. 하하..."

-자리가 만들어 지는대로 연락을 할테니 기다리고 있게.

"감사합니다. 회장님."

전화를 끊은 뒤 테라스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이미 아마존의 주식을 20개 사모펀드 명의로 10%가량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매집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대주주들이 주식을 손에 틀어쥔 채 시장에 내놓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고, 소액주주들에게 주식을 거둬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당연히 애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마음같아서는 애플과 아마존의 경영권마저 수중에 넣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강타하자 '못할 것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과 아마존의 2004년 현재 시가총액은 대략 200조원 내외였다.

나는 아마존과 애플의 지분을 각각 10% 11% 가량 확보한 상태였다.

아마존의 경우 제프 베이조스라는 확실한 지배주주가 있는 탓에 경영권 장악이 불가능했지만, 애플은 사정이 달랐다.

애플의 경우 2,3% 내외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들이 잡스 회장에게 경영권을 일임한 상태였다.

만약 그들이 보유한 지분을 40% 가량 매입한다면, 나는 명실상부한 애플의 절대지배주주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머리속을 성난 파도처럼 거칠게 헤집었다.

한화로 80조원 정도만 동원해도 애플의 지배주주가 될 수 있었다.

그런 탓일까, 서울의 업무용 빌딩을 처분해서 애플의 주식을 미친듯이 매집하는 내 모습이 심중에 짙게 드리워졌다.

***

비지니스에 너무 몰입한 탓일까?

갑자기 골이 지끈지끈 쑤셨다.

이럴 때는 모든 걸 잊고 클럽에서 온몸을 격하게 흔드는 게 최고였다.

곧바로 박영록 경호팀장에게 콜을 넣었다.

면전에 나타난 박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옥타곤 클럽으러 갈거니까 경호원들을 준비하세요."

"예. 대표님."

1시간 후.

옥타곤에 들어서자 자극적인 EDM(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 우리 일행을 뜨겁게 환영했다.

스테이지로 시선을 돌리자 타이트한 미니 드레스 차림의 그녀들이 유혹하는 눈길로 나를 애타게 갈구하고 있었다.

박팀장을 뒤로한 채 스테이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후, 아리따운 그녀들과 격정적인 춤사위를 함께하며 짜릿한 EDM에 온몸을 내맡겼다.

***

서울 시내 모처에 태산그룹의 재무실장인 김연성과 장동현 법무실장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성이 보고를 올렸다.

"회사가 소유한 광명 인근의 토지를 최종연 전무가 시세의 3분의 1 가격으로 매입했습니다."

"차명으로 매입한 건가요?"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매입한거 같습니다."

동현이 두눈을 번뜩이며 재차 물었다.

"최 회장도 개입한 겁니까?"

"그런거 같습니다. 실장님."

"앞으로도 최 회장과 최종연의 움직임을 빠짐없이 보고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내년 인사 시즌에 태산그룹의 등기임원으로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김연성이 감격한 얼굴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앞으로도 실장님에게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동현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대영그룹 서초동 본사 컨퍼런스홀에서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회자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투표결과를 발표했다.

"이성준을 대영그룹의 대표이사로 선출하는 안건이 압도적인 찬성 속에 통과되었음을 주주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바입니다."

사회자의 발표가 끝나자 연단에 착석한 성준의 얼굴에 감개무량한 표정이 들끓었다.

반면 그의 동생들은 하나같이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날 밤.

성준은 그룹의 임원진을 상지원으로 모두 호출했다.

그 후, 그들과 승리의 축배를 나누며 나름 돈독한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한빈의 귀에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

대영호텔 강남 본점.

지하 피트니스 센터에서 헬스 3대 운동에 매진할 무렵, 대포폰에 한남동 노집사의 전화가 걸려왔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노집사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성준이 그룹의 임원들을 상지원으로 호출했습니다.

"그 중에 대영물산과 전자, 자동차의 임원들도 포함되었습니까?"

-네. 대영전자와 대영물산, 대영자동차의 경영진들이 거의 모두 참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명단을 작성해서 저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

통화를 끊은 뒤 장동현 법무실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통화가 연결된 후 내 의중을 장변에게 전달했다.

"대영전자와 대영물산, 대영자동차의 경영진을 모조리 교체할 생각이니까 준비를 해주십시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저 대신 수고를 해주세요."

그리 말하며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장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에게 긴급하게 보고할 사안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태산그룹의 최종연 전무가 회사 토지에 손을 댄거 같습니다.

"그 문제는 내일 회사에서 다시 얘기 하기로 합시다."

-예.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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