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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67화 (67/175)

67화 해외자원개발 펀드 1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제주도 서귀포에 위치한 대영호텔 리조트를 방문했다.

호텔 직원들은 연락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탓인지, 저마다 놀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내 앞에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는 강호상 점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루 정도 일박할 생각이니까 펜트하우스로 안내하세요."

강호상의 입에서 곤혹스러운 어조가 흘러나왔다.

"펜트하우스에 중국 고객님이 장기 체류 중이십니다."

"내보내세요."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제주도 지사님이 초청한 분이라..."

"그럼 한적한 리조트로 안내하십시오."

"네. 대표님."

점장은 호텔 본관 건물 앞에 조성된 리조트 타운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3층으로 구성된 단독주택 스타일의 리조트에 여장을 푼 뒤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점장에게 넌지시 물었다.

"제주 지사가 중국인을 초청한 이유가 뭐죠?"

"잘은 모르지만, 제주도 개발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소문이 돌더군요."

제주도는 중국과 무비자 사증 협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그런 탓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경치 좋은 제주도에 물밀듯이 몰려들고 있었다.

덩달아 대영호텔 제주도 지점의 영업이익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였다.

물론 그에 비례해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으키는 각종 사건사고가 연일 급증하고 있었다.

점장을 내보낸 뒤 수영복으로 환복했다.

그 후, 리조트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으로 마실을 나갔다.

***

다음날.

내가 체류 중인 리조트에 이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나를 여전히 이놈 저놈 따위로 인식하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녀석에게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알려주기로 작심했다.

"앞으로 당신은 나에게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깍듯이 사용하십시오. 만의 하나, 본인에 대한 예우에 소홀할 경우 댁을 처참하게 짓밟아 드리겠습니다."

내 뒤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경호원들에게 손짓을 보내자, 이태강을 내 발밑에 신속하게 무릎 끓렸다.

태강이 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감히 네놈이 나를 이런식으로 대하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올리며 입을 열었다.

"제 신분은 대영그룹의 총수나 마찬가집니다. 대영그룹의 막강한 인맥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말인즉슨,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신을 한국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건, 일도 아니라는 얘깁니다."

태강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절대갑의 신분이고, 댁은 절대을의 처지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리 말하며 놈의 눈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순간 그가 내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놈에게 단호한 어조로 못을 박았다.

"당신은 내가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무는 충성스러운 사냥개가 되십시오. 그게 내가 원하는 겁니다. 물론 내 뜻대로 움직이시면, 검찰 총장은 기본에 대권까지 당신 품에 안겨 드리죠."

그제야 태강이 고개를 들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정말이냐?"

"아직도 내 진심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각서라도 써드릴까요?"

그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면."

"좋습니다. 지금 당장 각서를 작성합시다."

"각서는 됐고, 나를 최단 시간 내에 검찰 총장으로 만들어 준다면 네놈에게 절대충성을 바치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으로 걸어갔다.

푹신한 가죽 의자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책상 서랍에서 서류가방을 꺼냈다.

서류가방 속에 들어있는 100억 상당의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 다발을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내년 정기 인사 시즌에 당신을 검찰총장으로 만들어 드리죠. 보시다시피 저는 있는 게 돈 밖에 없습니다."

CD(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뭉치를 그의 발밑에 내던졌다.

"내 사람이 된 기념으로 드리는 돈이니까 거부하지 말고 받으세요."

태강의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직후 발밑에 떨어진 CD 뭉치를 천천히 손에 잡았다.

그는 CD 뭉치를 서류가방에 수납한 뒤 장내에서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이태강이 내 종놈이 되는 순간이었다.

***

제주 고검장 사무실.

이태강은 모닝 커피를 음미하며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하는 한편, 김한빈의 잘 생긴 얼굴을 뇌리에 떠올렸다.

그는 이미 한빈과 같은 배를 타기로 결정했다.

대영그룹을 사실상 장악한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탓이다.

그런 이유로 100억 상당의 돈을 아무 거리낌없이 수수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빈에게 무작정 굴종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기회를 봐서 그에게 역공을 퍼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빈이 시키는대로 하는 게 상책이었다.

태강의 입가에 야비한 미소가 그려졌다.

***

장동현과 함께 유창선이 수감 중인 안양교도소를 방문했다.

교도소에 도착한 뒤 창선과 편히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장변 명의로 접견실 사용을 요구했다.

예상대로 교도소 측은 우리 요구를 순순히 수용했다.

교도소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한 탓이었다.

접견실에 나타난 유창선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태산그룹의 최종연 전무를 교도소로 보낼 계획입니다."

"지금 나랑 장난하세요?"

유창선이 뜨악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곧바로 이태강에게 전화를 돌렸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그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교도소에 있는 유창선이 말을 들어 쳐먹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검사장님이 알아듣게 따끔하게 충고를 해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핸드폰을 유창선에게 넘겼다.

녀석은 용케도 이태강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대검 특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태강에게 취조를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유창선은 통화를 하는 내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창선이 백팔십도 달라진 태도로 나를 대했다.

"무엇이든지 협조할테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그에게 내 요구를 밝혔다.

"특수부 검사에게 최종연이 주가조작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증언을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내가 책임지고 당신의 형량을 감형해 드리겠습니다."

그의 입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주 안으로 대검 특수부 검사를 교도소에 보내드릴테니까 알아서 처신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장동현과 접견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제주도에 있는 이태강에게 전화를 돌렸다.

"대검 특수부에 여전히 직계 라인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의 말투는 여전히 삐딱했다.

물론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특수부 검사를 안양 교도소로 보내주십시오. 그 곳에서 유창선의 자백을 추가로 받아내내야 하니까."

-누굴 엮으려는 거지?

역시 이태강은 눈치가 빨랐다.

"태산그룹의 최종연입니다."

-최종연이라면, 태산의 후계자 아닌가?

"더 이상 묻지 마시고, 내가 시킨대로 하십시오."

그리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머지 일은 그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

고즈넉한 공원을 산책하며 대영전자와 자동차의 사내유보금을 전용하는 방안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나는 대영전자와 자동차의 사내유보금을 합법적인 방법으로 횡령할 계획이었다.

나에게는 해외자원개발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었다.

해외 폐유전과 폐가스전, 폐광을 헐값에 인수한 뒤, 대영전자와 자동차에 최소 열배 이상의 이문을 붙여 재매각할 계획이었다.

나름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한국과 같은 자원빈국은 해외자원개발에 목을 멜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 탓으로 해외자원개발을 명분으로 재벌과 정치가들은 오래전부터 천문학적인 뒷돈을 빼돌렸다.

나 역시 그들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었다.

사내유보금은 눈 먼 돈이었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였다.

***

다음날.

타팰 펜트하우스로 대영물산의 박우성 상무보를 호출했다.

그는 내가 대영물산의 신임 대표로 점찍은 인물이었다.

면전에 나타난 박우성에게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무역상사의 원조인 일본은 해외자원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무역상사는 푼돈에 불과한 중개무역 거래에 여전히 사활을 거는 추세더군요."

우성이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저는 일본의 무역상사와 마찬가지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전사적인 역량을 기울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변변한 자원이 전무한 한국 입장에서 해외자원개발은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국책사업이나 마찬가집니다. 나름의 애국이라고 할 수 있죠."

우성이 감복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이며 내가 원하는 말을 내뱉었다.

"대표님 말씀대로 한국이 살길은 해외자원개발이라고 저 역시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 화답하며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대영물산이 주관하는 해외자원개발펀드를 공식적으로 론칭한 후, 대영전자와 자동차의 사내유보금을 투자금 형식으로 해외자원펀드에 납입시킬 예정입니다. "

그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박우성씨를 대영물산의 신임 대표이사로 낙점했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우성이 감격한 얼굴로 또 다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앞으로 대표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이며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마음 변치 마십시오."

***

오랜만에 서울대학교를 방문했다.

나는 여름방학이 끝났음에도 병가를 핑계삼아 한달 이상 의대 수업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학사경고가 목전에 당도한 형국이었다.

의대 건물에 들어선 뒤 지도 교수님의 사무실을 찾았다.

교수님에게 정중히 인사한 후 내 사정을 솔직히 밝혔다.

"제가 개인적으로 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대 수업에 당최 따라갈 수 없는 지경입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저는 고아 출신이라 그런지 예전부터 개인 비지니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상황입니다."

"흐으음..."

지도 교수님의 입에서 깊숙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내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의대를 포기할 생각인가?"

"어차피 학사경고를 먹을 처집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커트라인이 낮은 학과로 전과를 가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머리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염두에 둔 학과가 있나?"

"국사학과로 전과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교수님에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그는 내 요청을 흔쾌히 수용했다.

"자네 결심이 그렇다면 할수 없군. 국사학과로 전과하는 문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보자고."

"감사합니다. 교수님."

***

대영전자와 대영자동차, 대영물산의 신임 이사진을 타팰 펜트하우스로 호출했다.

면전에 나란히 서 있는 그들에게 단호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이번주 금요일에 임시주총을 개최할 생각입니다."

그리 말한 뒤 맨 앞줄에 서 있는 세명의 남자들을 호명했다.

"김동재 이사님과 한동철 이사님, 그리고 박우성 이사님을 전자와 자동차, 물산의 대표이사로 선출할 계획입니다."

순간 김동재와 한동철, 박우성의 얼굴에 찬란한 환희가 격하게 번져갔다.

반면 나머지 이사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의중을 재차 피력했다.

"박우성 이사님은 대영물산의 대표이사로 선출되자마자 20조원 규모의 해외자원개발 펀드를 이사회에 정식 안건으로 제출하십시오."

"그리고 김동재 이사님과 한동철 이사님도 대표이사로 선출됨과 동시에 대영물산의 해외자원개발펀드에 대규모 투자를 허용하는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해 주십시오."

그들은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일사불란한 목소리로 복명했다.

"넵. 대표님!"

"앞으로 여러분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내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목소리를 높이자 장내에 운집한 이사진들이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이사들을 모두 내보낸 뒤, 대영물산의 해외자원개발팀을 이끌고 있는 민수현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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