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국익과 사익의 절묘한 조화
대영호텔 강남 본점.
헬스 3대 운동에 매진하는 한편, TV에서 흘러나오는 경제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애플에서 출시한 MP3의 일종인 아이팟이 전 세계를 석권 중입니다. 국내업체에서 전 세계 최초로 MP3 파일 기술을 개발했지만, 정작 그 과실은 애플이 모두 독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애플의 유료음악 다운로드 서비스인 아이튠즈가 신의 한수가 된 것으로 평가하며, 한국의 MP3 업체들도 하루 빨리 유료음악 다운로드 서비스를 론칭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중략...
애플은 한국이 전 세계 최초로 개발한 MP3 기술을 공짜로 활용하며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었다.
한국이 미국처럼 초강대국이었다면 MP3기술 특허 사용료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한국은 아시다시피 약소국에 불과했다.
더구나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는 국가였다.
그런 이유로 애플이 MP3 기술을 무단절취했음에도 WTO에 제소조차 못하는 형국이었다.
한국의 기술을 무단으로 절취한 애플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기로 작심했다.
애플은 1-4% 내외의 지분을 보유한 다수의 대주주들이, 스티브 잡스에게 경영권을 일임한 상태였다.
애플의 시총은 한화로 210조 안팎이었다.
110조 가량의 자금을 동원한다면, 애플의 과반수 지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애플은 한국의 MP3 기술을 발판으로 전 세계 디지털 산업을 석권해가고 있었다.
당연히 한국인 출신인 내가, 애플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게 여러모로 순리라고 판단했다.
국익과 사익의 절묘한 조화였다.
문제는 가용현금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69개에 달하는 업무용 빌딩을 신속하게 매각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부족한 자금은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에서 조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옛 선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카이저 빌딩 사무실로 대영전자 김동재 대표와 대영자동차의 한동철 대표를 호출했다.
면전에 나타난 그들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서울 요지의 업무용 빌딩을 사내유보금으로 매입하는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하십시오."
김동재와 한동철이 놀란 얼굴로 나를 은근히 살폈다.
허나, 그들은 뼛속 깊이 예스맨의 본능을 타고난 존재였다.
그런 이유로 순순히 복명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계속 이었다.
"대영전자는 사내유보금 중에서 15조원 정도를 투입하시고, 대영자동차는 5조원 정도를 인출하세요."
"예. 대표님."
김동재와 한동철을 내보낸 뒤 여비서에게 콜을 넣었다.
"태산그룹의 진대현 본부장을 호출하세요."
-네. 대표님.
30분 후.
진대현이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공손히 시립했다.
대현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최 회장의 장례식장에 내 명의로 화환을 보내세요."
"예. 대표님."
"그리고 금융권에서 조단위의 대출을 받을 생각이니까 은행장들과 자리를 만들어 보세요."
"조단위의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그럴 듯한 사업계획서가 필요합니다."
그에게 즉답했다.
"파운드리 산업에 진출할 계획입니다."
대현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산업 아닙니까?"
"저는 파운드리 업계의 절대강자인 대만의 TMC를 인수할 생각입니다."
그가 감탄한 얼굴로 나를 우러러보았다.
내 탁월한 두뇌회전에 진정으로 감복한 눈치였다.
"저는 대만의 TMC를 인수한 후, TMC의 반도체 생산 설비를 모두 한국으로 이전할 계획입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본부장님은 은행장들에게 내 의중을 전달하십시오."
그가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
다음날.
나를 태운 롤스로이스 팬텀이 서울대학교에 도착했다.
경호원들을 뒤로한 채 인문학과 건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초겨울이라 그런지 학교는 무척 썰렁한 분위기였다.
그때, 의대 건물에서 나오는 조만석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내 곁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만석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 국사학과로 전과할 생각이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아쉬워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힘들게 의대에 들어왔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전과하려는 거야?"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런거니까, 남 일에 신경쓰지마라."
그리 말하며 인문학과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만석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내일 연락할테니까 술이나 같이하자."
녀석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인문학 건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국사학과 정교수님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50대 남자가 보였다.
그는 나를 향해 친절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의대에서 국사학과로 전과를 신청한 학생인가?"
"그렇습니다. 교수님."
그가 호기심 그득한 얼굴로 질문을 이어갔다.
"의대를 마다하고 국사학과로 전과하려는 이유가 뭐지?"
교수님에게 솔직히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의대 수업에 시간을 할애할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를 드러냈다.
"내년 봄부터 국사학과 4학년으로 편입하게."
"감사합니다. 교수님."
***
대영호텔 소공동 점에 들어서자 점장과 호텔 직원들이 공손한 자세로 나를 맞이했다.
허리를 절반으로 접은 그들을 뒤로한 채 3층에 위치한 일식당으로 올라갔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은 뒤 점장에게 신신당부했다.
"일식당에 손님들을 받지마세요."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은행장이 올 예정이니까 그분을 이 곳으로 안내하세요. 그리고 고급 정종과 싱싱한 활어회를 세팅해 주세요."
"예. 대표님."
1시간 후.
상업은행의 이기종 행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내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일순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저는 태산그룹의 총지주회사인 윤광사의 지분을 과반수 이상 보유하고 있습니다. 태산의 실질적인 오너라고 할 수 있죠."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저는 쿠웨이트에서 발주한 LNG 선박을 주도적으로 수주하는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그제야 이기종이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단지 대표님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미국에는 저보다 어린 대기업 오너들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습니다. 비지니스에 나이 따위는 불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 말하며 빈잔에 정종을 따라서 이기종에게 내밀었다.
그는 내가 건넨 술잔을 냉큼 받아들며, 시원하게 원샷했다.
그렇게 우리는 권커니 자커니 하며 술자리를 이어갔다.
술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그에게 준비해온 서류를 내밀었다.
"우리 태산그룹이 은밀히 추진 중인 차세대 신수종 업종입니다."
이기종이 머리를 끄덕이며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잠시 후,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대만의 TMC를 정말 인수하실 생각입니까?"
"한화로 10조원 정도의 자금이면 TMC를 충분히 인수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TMC는 위탁 반도체 생산업체로 알고 있습니다. 과연 투자 수익성이 있을까요?"
이기종은 위탁 반도체 생산업이 얼마나 전도유망한지 거의 모르는 눈치였다.
반도체에 문외한인 탓이었다.
그에게 조곤조곤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반도체 생산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런 이유로 전 세계의 반도체 업체들은 생산을 대신해주는 업체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취지에 딱 맞는 회사가 바로 대만의 TMC라고 할 수 있죠."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애플, 엔비디아, AMD, 라데온, 퀄컴 등의 IT 회사들은 반도체 생산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위탁 반도체 생산업체에 주문을 넣습니다. 그 대상이 바로 대만의 TMC죠."
"흐으음..."
이기종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의 입에서 조심스런 어조가 흘러나왔다.
"10조원대의 대출은 저 혼자 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청와대의 재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상업은행은 국책은행이었다.
"그러니 청와대를 대표님이 먼저 설득해 보십시오. 청와대에서 긍정적인 시그널이 떨어지면, 그때 대출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 봅시다."
"좋습니다. 행장님."
***
타팰 펜트하우스로 오종덕 부회장을 호출했다.
그는 노우현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런 이유로 현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면전에 나타난 오종덕을 홈바로 이끌었다.
우리는 칵테일을 즐긴 뒤 본론에 접어들었다.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대만의 위탁 반도체 생산업체인 TMC를 인수할 계획입니다. 그런 탓으로 시중 은행에서 10조원대의 대출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오종덕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파운드리 산업에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네. 저는 파운드리 산업이 매우 유망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영전자에도 파운드리 생산라인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대영전자의 파운드리 생산라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TMC의 생산라인과 전문인력을 한국으로 이전하는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애플과 엔비디아, AMD, 라데온, 퀄컴 등은 대영전자를 라이벌 업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 때문에 대영전자는 파운드리 산업에서 대만의 TMC를 뛰어넘는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내 말은 계속 됐다.
"그들 업체들이 의도적으로 TMC에게 일감을 몰아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그리고 TMC는 위탁 반도체 생산 노하우도 대단히 뛰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TMC 자체를 인수해서 한국으로 공장과 고급인력을 모두 이전하려는 겁니다."
그제야 오종덕이 납득한 얼굴로 은근히 물었다.
"이런 속 깊은 말씀을 저에게 하시는 이유가 뭔지요?"
"청와대를 설득해 주십시오. 10조원 대의 대출을 받으려면 청와대의 재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종덕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부회장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우리 사이에. 하하..."
그의 입에서 흡족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응접실에 놓여진 책상 서랍에서 100억 상당의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를 꺼내들었다.
종덕에게 100억 상당의 CD를 건네자, 사양하지 않고 냉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번 일만 제대로 성사시켜 주시면, 백억을 더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종덕의 입이 귓가에 내걸렸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위인이었다.
***
나는 애플과 TMC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애플의 모든 물량을 TMC에 몰아넣을 계획이었다. 그 후, 뉴욕 증시에 TMC를 상장할 생각이었다.
님도 보고 뽕도 먹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수중에 막대한 가용현금이 필요했다.
당연히 서울의 업무용 빌딩을 신속하게 매각하는 게 급선무였다.
늦은밤.
장동현과 함께 논현동 인근의 밥집을 찾았다.
우리는 얼큰한 육개장으로 배를 채우는 한편, 오피스 빌딩의 매각 문제를 논의했다.
장변에게 넌지시 말했다.
"업무용 빌딩을 전량 매각할 계획입니다."
그가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평균 매각 단가를 말씀해 주십시오."
장변에게 즉답했다.
"7천억 정도로 매각작업을 추진하십시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복명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조만간 대영전자와 대영자동차 측에서 20조원 상당의 자금으로 빌딩을 인수할 예정이니까, 그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
수도권 근교의 사찰을 방문했다.
조용한 곳에서 향후 계획을 면밀히 구상하기 위함이었다.
사찰의 선방에 좌정한 채 앞으로의 계획을 뇌리에 떠올렸다.
애플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게 제 1안이었다.
그리고 TMC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게 제 2안이었다.
또한 대영전자와 대영자동차, 대영물산, 태산그룹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게 제 3안이었다.
나는 저 세가지에 집중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가장 시급한 현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복잡한 머리 속이 한결 편해진 느낌이었다.
다음날.
오늘도 고즈넉한 산사에서 심신의 피로를 푸는데 전심전력했다.
그 무렵, 박은정 비서팀장이 선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조신하게 허리를 숙인 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영그룹의 오종덕 부회장이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분을 이 곳으로 안내하세요."
"네. 대표님."
잠시 뒤, 오종덕이 선방에 나타났다.
종덕이 긴급 보고를 올렸다.
"청와대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회장님."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가 기대만발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돈 달라는 눈치였다.
그에 화답하듯 서류가방에서 100억 상당의 CD를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종덕은 내가 건넨 CD를 007가방에 수납한 뒤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
대영전자 이사회장.
김동재 대표가 상정한 서울 시내 업무용 빌딩 매입 안건이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이사회를 통과했다.
국내 이사진의 압도적인 찬성 덕분이었다.
그들은 외국계 이사진의 반대를 숫적 우위로 짓밟으며 자신들의 뜻을 끝까지 관철하는데 집중했다.
그런 탓일까, 외국계 이사진들은 김동재 대표와 현 경영진을 격렬히 성토하며 이사회장을 시끄럽게 했다.
허나, 그들의 격한 비난은 마이동풍에 불과했다.
같은 시각, 대영자동차 역시 국내 이사진들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서울 시내 오피스 빌딩 매입 안건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다음날부터 대영전자와 대영자동차는 한빈이 보유한 업무용 빌딩을 매입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
이기종 상업은행장과 경기도 인근의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겼다.
우리는 골프를 만끽한 뒤 인근의 밥집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반주를 곁들인 늦은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그에게 본론을 내뱉었다.
"12조원 상당의 대출금을 집행해 주십시오."
그러자 이기종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희 상업은행 혼자서 부담하기에는 위험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다른 시중은행들과 컨소시엄을 형성해서 공동 대출을 추진하는 게 어떨까요?"
"그 문제는 행장님이 알아서 해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준비해온 100억 상당의 CD를 그에게 건넸다.
당연히 이기종 역시 내 돈을 거부하지 않았다.
***
나 홀로 뉴욕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월가의 대형투자은행과 접촉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한화로 최소 60조원 이상을 대출할 계획이었다.
그런 탓으로 월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담 페런 상원의원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맨해튼에 위치한 아담 상원의원의 사무실로 직행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아담이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그와 악수를 교환하자마자 내 의중을 밝혔다.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에서 미화로 500억불(60조)을 대출할 계획입니다."
아담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투자할 생각인가?"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애플의 경영권을 인수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