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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76화 (76/175)

76화 최면술의 대가

"이영박은 돈보다는 정보를 원할 겁니다."

"정보?"

"네. 박근해를 옴짝달싹 못하게 할 수 있는 첩보를 원할 거에요."

태강이 슬며시 물었다.

"박근해의 비밀에 대해서 뭐, 아는 거라도 있는 거야?"

그에게 즉답했다.

"조금 아는 편이죠."

"그게 뭔데?"

그가 눈을 번뜩이며 내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같았다.

"박근해는 아주 비밀이 많아요. 특히 최태명 목사와의 관계가 아킬레스건이죠."

"최태명 목사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 아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박근해가 최태명의 아이를 출산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나도 그런 소문은 들었지만..."

태강이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에게 재차 말했다.

"박근해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최순임을 눈여겨보세요."

"최순임?"

"네. 최태명의 막내딸인 최순임을 눈여겨 보셔야 할 겁니다."

"최순임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 여자란 말인가?"

태강에게 솔직히 답변했다.

"박근해는 최순임의 꼭두각시에 불과해요."

그가 경악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말이 정말인가?"

"조사해 보시면,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형님은 최순임의 정보를 이영박 측에 전달하세요."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정도 첩보라면, 이영박이 형님을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겁니다."

하지만, 태강은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그는 말끝을 흐리며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태강이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말아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이영박의 최측근인 이재호 의원과 내가 조금 악연이 있거든."

"그게 무슨 말이죠?"

"예전에 이재호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한 적이 있는데, 구형을 쎄게 때리는 바람에 이재호가 의원직을 박탈당했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 역시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잠시 동안 흡연에 열중한 뒤 태강에게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가 이영박과 다리를 놔줄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계세요."

그러자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듯, 활짝 펴진 얼굴로 내 손을 두손으로 덥석 마주잡았다.

"역시 김대표 밖에 없구나. 정말 고맙다. 우하하하하하...!"

태강은 그리 화답하며 호탕한 웃음 소리를 길게 토해냈다.

***

태산그룹 본사 부회장실.

사무실에서 커피와 흡연을 오롯이 만끽할 무렵, 장내에 대영그룹 오종덕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영박을 사적으로 만나고 싶은데, 부회장님이 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영박을 만나시려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친목도모 정도로 생각해 주십시오."

오종덕은 감히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 탓인지 환한 얼굴로 복명했다.

"제가 한번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럼 당신만 믿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오종덕이 눈 앞에서 사라지자마자 하동균 비서팀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부회장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사 빌딩에서 근무 중인 임직원들과 상견례를 나눌 생각이니까 준비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나는 그날, 본사 빌딩에서 근무하는 임직원들과 두루두루 상견례를 가졌다.

내가 태산그룹의 실질적인 총수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

서교호텔 스위트룸에 오종덕이 나타났다.

잠시 후, 그는 응접실에서 이영박과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종덕이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굴리는 젊은 사업가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영박이 호기심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친구가 누구죠?"

"김한빈이라는 인물입니다. 수십조 단위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숨은 거물이죠."

영박이 놀란 얼굴로 재차 물었다.

"그 말씀이 사실입니까?"

"궁금하시면 직접 만나보시죠."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영박은 오종덕의 제안을 흔쾌히 수용했다.

"좋습니다. 부회장님이 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시장님."

***

서류가방에 100억 상당의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를 수납한 뒤 서교호텔로 향했다.

경호원들을 호텔 로비에 남겨둔 채 엘리베이터 몸을 실었다.

스위트룸 문앞에 도착하자 이영박의 경호원과 보좌관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들에게 내 소개를 하자, 보좌관이 친절한 얼굴로 화답했다.

"저를 따라오시죠."

그를 따라서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갔다.

보좌관은 응접실로 나를 안내했다.

나를 발견한 이영박이 환한 얼굴로 악수를 청해왔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이영박이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운용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십조 단위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주전공은 적대적인 인수합병과 해외자원개발입니다."

그리 답하자 영박의 얼굴에 노골적인 탐욕이 짙게 드리워졌다.

그에게 재차 말했다.

"제가 시장님을 만난 이유는,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그가 누구죠?"

솔직하게 답했다.

"이태강 중부지검장입니다."

그러자 영박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이태강은 현정부에서 신임받는 검사 중의 한명 아닙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현정권 사람을 신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이태강 검사는 박근해와 관련된 비밀스런 정보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시장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순간 그가, 언제 그랬냐는듯 반색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이태강 검사는 박근해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첩보를 다수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100억 상당의 CD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정치자금으로 사용해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스위트룸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서교호텔.

이영박은 스위트룸의 창가를 서성이며 김한빈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한빈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인을 압도하는 패도적인 기세가 있었다.

영박은 그런 사실을 한눈에 꿰뚫어봤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된 혜안이었다.

더구나 한빈은 돈 씀씀이 마저 범상치 않았다.

백억에 달하는 거액을 아무런 조건없이 자신에게 건넨 것이다.

'보통 놈이 아니야. 엄청난 거물의 냄새를 풍기고 있어. 조사해볼 가치가 있겠어.'

그는 마음을 정한 뒤 이필성 비서실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김한빈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해봐. 그리고 이태강을 만날 생각이니까, 그 쪽에 내가 보잔다고 말을 전해."

"예. 시장님."

***

중앙지검장실에 검사들이 연달아 드나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두툼한 보고서가 들려있었다.

모두 최순임과 연관된 파일이었다.

이태강은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최순임 관련 파일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퇴근도 미룬 채, 밤늦도록 최순임에게 몰두했다.

다음날.

오늘도 태강은 최순임 바로알기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런 탓일까, 저간의 사정을 거의 모두 파악하자마자 간추린 보고서를 자신이 직접 작성하기 시작했다.

***

그날 밤.

서교호텔 스위트룸에 이태강이 나타났다.

잠시 뒤, 그는 이영박에게 준비해온 보고서를 제출했다.

영박은 태강이 제출한 보고서에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특히 박근해가 최순임에게 세뇌당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항목을 발견하자, 두눈이 저절로 번쩍 뜨였다.

박근해를 한방에 보낼 수 있는 비장의 한수를 발견한 탓이었다.

영박은 태강에게 감사인사를 전달한 뒤 나직한 어조로 재차 말을 이었다.

"이 서류가 정말 사실입니까?"

태강이 즉답했다.

"중앙지검의 검사들을 총동원해서 알아낸 결론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너무 엄청나서 쉽게 믿기지가 않는군요. 특히 최순임이 박근해를 세뇌했다는 내용이..."

태강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녀의 부친인 최태명 목사는 최면술의 대가였습니다. 그는 최면술을 이용해 박근해를 자신의 노예로 만들었고, 그 최면술을 고스란히 최순임에게 물려줬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최순임 역시 부친에게 물려받은 최면술을 이용해 박근해를 자신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영박이 입을 떠억 벌렸다.

일반인들의 상상을 한참이나 초월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해가 대통령이 된다면 사실상의 국가원수는 최순임이 될 겁니다. 저는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장님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박은 태강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자신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귀한 자료를 아무런 대가 없이 전달해준 탓이다.

그는 태강의 손을 정성스럽게 부여잡으며 친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서로 힘을 합해봅시다."

그러자 태강이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앞으로 시장님에게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말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지검장님. 하하하하..."

영박의 입에서 흡족한 웃음소리가 길게 흘러나왔다.

***

태강은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한빈에 대해 생각했다.

한빈은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존재였다.

미래를 꿰뚫어보는 탁월한 식견과 천문학적인 재력, 뛰어난 친화력을 일신에 두루 겸비한 탓이다.

한빈은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이영박을 하루아침에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런 때문일까, 태강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놈이라니까."

그는 앞으로도 한빈과 한배를 타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그 편이 자신에게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

대만 가오슝에 제퍼슨 회장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후, 그들은 TMC의 본사 빌딩에서 본격적인 인수협상에 돌입했다.

이 같은 사실은 서울에 있는 한빈의 귀에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비슷한 시각.

뉴욕 맨해튼 모처에 그랜데일 회장과 애플의 대주주 20명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랜데일은 장내에 배석한 애플의 대주주들을 상대로 모두발언을 내뱉었다.

"20%에 달하는 프리미엄을 제공해 드릴테니, 여러분들이 보유 중이신 애플의 지분을 모두 저에게 매각해 주십시오.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습니다. 주주님들."

그의 모두발언이 끝나자마자, 애플 대주주들의 얼굴에 끈적한 탐욕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이같은 사실 역시 한국에 있는 한빈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

근 한달 만에 대영그룹 서초동 본사 빌딩을 방문했다.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보안요원들이 나를 맞이했다.

반면 로비를 거니는 임직원들은 거의 모두 나를 본체만체했다.

내 정체를 모르는 눈치였다.

애석한 순간이었다.

보안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탑층에 위치한 회장실로 올라갔다.

회장실에 들어서자 수북이 쌓인 결재서류에 직인을 날인하는 이성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를 지나쳐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담배 연기를 자욱이 말아올리며 창 밖의 전경에 시선을 모았다.

주변을 분주히 오가는 샐러리맨과 오피스걸에 집중할 찰나, 성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전을 강타했다.

"연락도 없이 내 사무실에 나타난 이유가 뭡니까?"

"그냥 겸사겸사 찾아왔습니다."

그리 말하며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성준은 그런 내 모습을 불만 그득한 시선으로 쳐다본 뒤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일에 방해가 되니까 할 말 없으시면, 내 사무실에서 나가주십시오!"

담배 꽁초를 바닥에 던지며 나직한 어조로 경고했다.

"쓸데없이 일을 벌리면 당신에게 좋을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러자 녀석이 분한 얼굴로 나를 매섭게 쏘아봤다.

성준의 분노한 시선을 등 뒤로 만끽하며 사무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 후, 13층에 위치한 미래전략실로 자리를 이동했다.

이성호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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