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파운드리 산업 육성
이종성 전 대법관의 영향력은 소문대로 막강했다.
폭행치사 혐의가 뚜렷한 이용민이 구속 적부심에서 증거불충분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난 탓이다.
그런 때문일까, 이종성에 대한 적개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활화산처럼 분출했다.
법 위에 군림하는 법조계 범죄자를 무자비하게 때려잡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의 발로였다.
늦은 밤.
이태강을 올림픽공원 몽촌 토성 인근의 벤치로 호출했다.
눈 앞에 나타난 그에게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이종성과 이용민 조손을 모조리 때려잡을 방안을 연구해 보십시오."
그가 곧바로 난색을 표명했다.
"이종성은 사법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라고. 우리 검찰이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판사들을 손아귀에 틀어쥔 그 영감을 이길 수가 없다니까."
"그래도 뭐라도 해보세요. 이종성의 개인비리라도 조사해 보라고요!"
목소리를 높이자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종성을 손봐주는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자고."
"저도 그러고 싶은데, 속에서 울화통이 치미는 통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 말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잠시 흡연에 열중한 뒤 태강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종성의 해외 스케쥴을 알아보세요."
그가 흠칫한 얼굴로 반문했다.
"갑자기 그건 왜?"
목덜미를 긋는 시늉을 해보이자, 태강이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완강히 저었다.
"제발 선을 넘지마라. 동생은 다 좋은데, 너무 과격해서 탈이라니까."
"형님에게 피해 안가도록 할테니끼, 영감탱이의 해외 스케쥴이나 확인해 보세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태산그룹 종로 사옥 부회장실.
사무실에 대영전자의 김동재 대표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구두로 보고를 올렸다.
"상암동 초고층 빌딩을 1조3천억에 매입하기로 서울시와 합의를 봤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암동 초고층 빌딩의 1층부터 80층까지, 명품 상가와 고급 주거시설로 조성할 계획이니까 준비에 착수하세요."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81층부터 128층까지 전자와 자동차, 물산의 사무실로 조성하십시오."
내 지시는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129층에는 비서동, 130층에는 내 개인 주택을 조성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김동재를 내보낸 뒤 장동현 법무실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고려호텔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까?"
"네. 이미 8조원에 대영호텔을 매각하기로 장택수 사장과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럼 하루 빨리 매각 계약을 체결하세요."
"예. 부회장님."
장변은 그리 복명한 뒤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나는 이번 기회에 대영호텔을 고려호텔에 매각할 계획이었다.
현금 자산을 축적하기 위함이었다.
돈 들어갈 곳이 천지였다.
애플의 과반수 지분도 취득해야 했으며, 대영전자의 파운드리 사업부문도 본궤도에 올려놔야 했다. 그러자면 막대한 현금 자산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고려호텔이 적절한 인수가를 제시하자마자, 대영호텔의 매각 작업을 서둘렀다. 속전속결로 일을 마무리짓기 위함이었다.
***
부회장 사무실에서 중화요리로 늦은 점심을 해곃한 뒤 뉴욕에 있는 스탠리 회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폰에서 그의 선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애플 지분을 넘기려는 대주주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시한 20%에 육박하는 프리미엄 때문이죠.
"총알은 충분히 준비된 상태니까 하루 속히 과반수 지분을 확보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과반수 지분을 확보하는 즉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스탠리는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
대영전자와 대영자동차, 대영물산 3사의 대표들이 서울시청 대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서울시장과 악수를 교환한 뒤, 상암동 초고층 빌딩을 1조3천억에 매입하는 계약 체결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비슷한 시각.
대영호텔 강남 본점 컨퍼런스홀에 고려호텔 장택수 사장 일행이 나타났다.
장동현 법무실장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한 뒤 대영호텔을 8조원에 매각하는 계약 절차에 돌입했다.
이같은 소식은 한빈의 귀에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
태산그룹 종로 사옥 부회장실.
사무실에 장동현 법무실장과 박종태 감사실장, 박은영, 하동균 비서팀장을 불러들였다.
면전에 나란히 서 있는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제 개인 사무실을 상암동 초고층 빌딩 129층으로 이전할 계획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모두 저를 따라오십시오."
내 지시가 떨어지자 좌중이 일사불란하게 복명했다.
"예. 회장님."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내비치며 그들에게 재차 말했다.
"사무실은 충분하니까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 곳에서도 지금처럼 저를 보좌하는 업무에 매진하시면 될 겁니다."
그들이 환한 얼굴로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
장동현 법무실장과 나를 보좌하는 비서진, 경호원 등을 대동한 채 상암동 초고층 빌딩을 방문했다.
그들은 600미터에 육박하는 높이와 130층에 달하는 엄청난 층수를 과시하는 초고층 빌딩의 전경에, 하나같이 압도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빌딩의 전경을 한참 동안 둘러본 뒤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를 뒤따르는 장동현에게 넌지시 말했다.
"앞으로 이곳은 대영전자와 자동차, 물산의 오피스 빌딩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1층부터 80층까지 명품 매장과 고급 주거지가 조성될 계획이죠."
장변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뉴욕의 트럼프 타워랑 비슷한 건가요?"
"맞습니다. 저는 트럼프 타워와 흡사한 초고급 주상복합 빌딩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장변과 비서진, 경호팀을 129층에 남겨둔 채 나 홀로 130층 탑층으로 올라갔다.
130층은 대략 320평 정도의 사이즈였다.
바닥과 벽면은 이태리산 명품 대리석으로 조성된 상태였고, 욕조는 순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침실과 거실, 응접실, 개인 영화관, 헬스장 등이 완비되어 있었다.
나 혼자 살기에는 차고 넘치는 장소였다.
테라스로 나가자 푸른 하늘과 짙은 운무, 세찬 바람이 온몸을 상쾌하게 만들어주었다.
흡사 바벨탑에 오른 듯한 느낌이었다.
이 세상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들여마셨다가 입 밖으로 힘차게 내뿜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강하게 불어닥치는 바람에 의해 삽시간에 존재가 희미해졌다.
테라스에서 상암동의 아름다운 전경을 만끽한 뒤 응접실로 발길을 돌렸다.
응접실의 고풍스러운 소파에 착석한 뒤 장동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장변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에게 맞은 편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보내자, 재빨리 자리에 착석했다.
장변에게 물었다.
"오피스 빌딩의 매각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됐습니까?"
"거의 95% 가까이 매각 작업을 끝마쳤습니다. 매각 대금은 모두 스위스 은행의 계좌로 이체시켰습니다."
"한화로 어느 정도죠?"
"48조원 가량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부회장님."
장변은 그리 화답한 뒤 장내에서 재빨리 물러났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 중앙에 마련된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향후 계획을 면밀히 검토했다.
애플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PC와 노트북, 아이팟 뿐만 아니라, 2007년 경에 출현하는 아이폰과 태블릿의 생산 물량을 대영전자의 파운드리 사업부에 전량 몰아줄 계획이었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반발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어차피 그는 고용 사장에 불과했다.
절대 지배주주인 내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대영의 파운드리 사업부문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TMC를 고사시킬 생각이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애플의 천문학적인 물량을 수주받지 못할 경우, TMC는 저절로 자멸할 운명이었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하루 빨리 애플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래야 내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내 수중에는 거의 120조원에 육박하는 가용자금이 있었다.
블랙스톤에서 대출받은 60조원과 서울 오피스 빌딩 매각자금 48조원, 그리고 한국 주식과 대영호텔을 처분한 자금 등이 고스란히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상황이었다.
총알은 충분했지만 애플의 대주주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생각외로 길어지고 있었다.
자잘한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약이었다.
지분 양도 계약이 성사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는 게 상책이었다.
***
다음날.
참으로 오랜만에 서울대학을 방문했다.
내 신분은 국사학과 졸업반 학생이었다.
하지만 나는 국사학과로 전과한 이후, 학교에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어차피 졸업반 신분이라 학교 측에서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사학과 강의실로 들어서자 교수님의 강의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비어있는 자리에 착석한 뒤 교수님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의 국사 검정 교과서에 기재된 조선시대 역사는 거의 모두 판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조선시대는 한민족의 5천년 역사 중에서 문명과 경제가 가장 퇴보한 시기였습니다. 잔인하고 사악한 유교 탈레반들이 조선의 지배계급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죠."
나 역시 교수님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 탓인지 교수님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조선시대 역사를 가감없이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수님의 열변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조선시대는 노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입니다. 전 국민의 80%가 양반가의 노예였습니다. 말도 안되는 인류문명의 퇴보가 현실화된 시절이죠."
"당연히 조선의 임금에게는 양반가의 노비와 중인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소와 돼지, 개, 닭. 양 등의 가축에 불과했죠."
"임금이 말하는 백성은 양반을 지칭하는 단어였습니다. 그외의 존재는 모두 짐승에 불과했죠. "
교수님은 열변을 토한 후유증 탓인지 생수로 연거푸 목을 축이셨다.
그 후, 다시 강의를 이어갔다.
"조선시대의 문명 수준은 아프리카 토인국 수준이었습니다. 옷이 없어서 전국민의 70%가 누더기를 걸치고 생활했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로 연명하거나 자신들의 아이와 가족 등을 식인하는 행위가 빈번했습니다."
"필설로 형용이 불가한 경제수준이었죠. 반면 그당시 일본과 청나라는 사상 유래없는 경제발전과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조선과 전혀 딴판이었죠."
교수님의 충격적인 진실폭로가 연이어 이어지자 학생들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전혀 상반되는 내용의 강의였기 때문이다.
허나, 교수님의 진실 폭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조선시대 양반은 악의 화신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노비와 중인을 죽일 권리가 있었으며, 당연히 면책특권마저 부여받았습니다."
교수님은 조선시대 양반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조선 개국공신의 일등공신인 정도전은 양반의 특권을 영원히 향유할 수 있는 악의 국가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조선을 창업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맡게되죠."
"그 후, 정도전은 허울 좋은 경국대전을 만들었습니다. 양반이 군림하는 조선을 명문화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양반들은 일반 양민들을 자신의 노비로 거둘수 있는 권리와 그들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망한 겁니다. 이슬람 탈레반을 능가하는 악마같은 양반놈들 때문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귀한 강의였다.
***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상암동 초고층 빌딩으로 직행했다.
경호원들을 129층에 대기시킨 뒤 나 홀로 130층에 올라갔다.
그 후, 이태강에게 전화를 걸었다.
1시간 뒤.
이태강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가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종성이 동경 별장에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이 있더군."
"그 곳에 세컨드라도 있는 겁니까?"
그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주소를 적어주십시오."
그리 요구하자, 태강이 메모지 한장을 내 손에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