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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87화 (87/175)

87화 스티브 잡스와 담판을 짓다

월가의 거물인 스탠리 회장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전략은 매우 유효적절했다.

그 덕분에 애플 대주주들의 지분을 신속하게 인수하는데 성공한 탓이다,

내가 뉴욕을 극비리에 방문한 이유였다.

장동현과 박은영을 대동한 채 월가 인근의 빌딩을 찾았다.

빌딩 45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스탠리 회장을 필두로 애플의 대주주와 그들이 데리고 온 변호사 60명 정도가 우리 일행을 반겼다.

그들과 상견례를 교환한 뒤 기다란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장변과 은영 사이에 자리를 잡은 뒤 상석에 앉아있는 스탠리를 힐끔 쳐다봤다.

내 눈짓을 받은 스탠리가 곧바로 모두발언을 내뱉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애플의 지분을 인수인계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애플의 대주주이신 여러분들에게 시세의 20%에 달하는 프리미엄을 보장할 계획입니다."

"여러분들 앞에 놓여있는 계약서를 검토하신 뒤, 하단에 자필서명을 기입해 주십시오."

그의 발언이 끝나자 애플의 대주주와 변호사들은 계약서를 자세히 살피며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장변 역시 계약서를 매의 시선으로 살폈다.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장변이 귓속말을 전해왔다.

"계약서에 별다른 하자는 없습니다. 서명을 기입하셔도 될거 같습니다."

곧바로 계약서 하단에 자필서명을 기입했다.

애플의 대주주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계약서에 차례로 자필서명을 기입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날, 애플의 과반수 지분을 획득하는 대가로 1,100억불(132조원)을 애플 대주주에게 전달했다.

나름 속전속결이었다.

***

애플의 과반수 지분을 취득하자마자 뉴욕 국제공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애플 본사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다음날.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다운타운 인근의 고급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스위트룸으로 들어서며 은영에게 지시를 내렸다.

"룸서비스를 시키세요."

"예. 부회장님."

얼마 후, 3인분용 저녁식사가 호텔방에 배달됐다.

우리는 스테이크와 포도주로 배를 채운 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채 애플의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담은 자서전을 펼쳤다.

스티브 잡스는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후 농부에게 입양됐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찬인 양부모에게 친부모를 능가하는 사랑을 받았다.

그런 탓일까, 자신을 버린 친부모를 지금까지도 많이 원망하는 것으로 책에 쓰여져 있었다.

잡스는 범상치 않은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편집증적인 성격이 심하다고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영민한 두뇌와 미래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타고난 남자였다.

당연히 애플의 과반수 지분을 획득한 내 요구를 그는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도 내 지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필생의 숙원인 손안의 컴퓨터를 실현시키는 단계였다.

그러자면 최소 5년 이상 애플 회장직을 수행해야 한다.

나는 그 점을 파고들 계획이었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

우리 일행을 태운 리무진 차량이 쿠퍼티노시에 위치한 애플 캠퍼스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애플 본사의 거대한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탓인지 은영과 장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번져갔다.

애플 본사는 빌딩 건물만 있는게 아니라, 거대한 정원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대학교 캠퍼스와 흡사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애플 본사에 캠퍼스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와! 정말 너무 대단해요.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대학교랑 똑같아요. 부회장님."

그녀의 입에서 감탄사가 쏟아져나왔다.

장변도 마찬가지였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애플 빌딩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로비에 들어서자 양복 차림의 남자가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잡스 회장님의 수행비서인 마셜입니다. 제가 회장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뒤, 장변과 은영에게 지시를 내렸다.

"로비에서 대기하고 계세요."

그 말을 끝으로 마셜과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회장실에서 스티브 잡스와 독대를 가졌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대만 TMC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AP 칩셋을 발주할 계획입니까?"

순간 그가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런 소식을 누구에게 들으신 겁니까?"

"실리콘벨리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개발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더군요."

"흐으음..."

그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생산을 팍스콘에 의뢰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잡스의 놀라움이 더욱 커져갔다.

자신의 계획을, 내가 속속들이 아는 탓이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아이폰, 아이패드의 AP 칩셋과 생산 일체를 대영전자에 몰아주십시오. 그게 내가 원하는 겁니다."

"죄송하지만, 경영은 제 소관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대주주라 해도 경영에는 간섭할 수 없습니다."

"말은 똑바로 하십시오. 나는 그저그런 대주주가 아니라, 애플의 과반수 지분을 확보한 절대지배주주라는 사실을!"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당신은 하루아침에 회장직에서 해고조치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좋으십니까?"

잡스의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그에게 재차 말했다.

"내 요구를 수용해 주신다면, 당신의 연봉을 1억불(1,200억)로 인상해 드리겠습니다."

통 큰 언사를 내뱉자 잡스의 만면 가득 경악한 표정이 그러졌다.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당신의 뛰어난 경영능력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 요구를 수용해 주십시오."

"으으음..."

잡스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대만 TMC와 팍스콘에 아이폰, 아이패드의 칩셋과 생산을 발주하려는 이유는 대영전자를 견제하기 위함입니다."

잡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아시다시피 대영전자는 수준 높은 휴대폰 생산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AP 칩셋과 생산 일체를 발주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내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닙니다. 당신은 내 요구를 수용하든지, 아니면 회장직에서 물러나든지 양자택일 하십시오."

단호한 어조를 내뱉은 뒤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할 찰나, 등 뒤에서 잡스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48시간 동안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이틀 후에 이곳에서 다시 봅시다."

***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위치한 호텔로 되돌아왔다.

그 후, 호텔 지하의 라운지바에서 은영과 달달한 칵테일을 즐기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이어나갔다.

그녀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내비치며 칵테일 한모금을 입안으로 들이켰다.

나를 유혹하는 듯한 자태였다.

하지만 나는, 비서 신분인 그녀와 깊은 관계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탓일까, 내 입에서 절로 냉정한 언사가 흘러나왔다.

"밤이 깊었으니까 은영씨는 이만 호텔방으로 올라가 보세요."

그녀가 진한 아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마지못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은영을 호텔방으로 올려보낸 뒤 워싱턴에 있는 에바에게 전화를 걸었다.

***

샌프란시스코의 부촌인 소살리토 인근에 스티브 잡스가 나타났다.

그는 언덕에 위치한 대저택에 들어선 뒤, 자택의 거실을 서성이며 한빈의 제안을 심사숙고했다.

잡스는 필생의 염원인 손안의 컴퓨터를 현실화하는 단계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2007년 5월 경에 아이폰을 세상에 드러내고 2008년 2월 경에 아이패드를 내놓을 계획이었다.

그런 이유로 대만의 TMC와 팍스콘 측에 대규모 물량을 발주할 예정이었다.

허나, 그의 야심찬 계획은 절대지배주주인 한빈의 허락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했다.

한빈은 대만 TMC와 팍스콘 대신, 라이벌이나 마찬가지인 대영전자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AP 칩셋은 물론이고, 생산 일체를 발주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의 처지는 고용 사장에 지나지 않았다.

절대지배주주인 한빈의 비위를 거스를 경우, 하루아침에 애플 회장직에서 쫒겨날 위기에 처한 탓이다.

잡스는 필생의 숙원인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한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었다.

***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상암동 초고층 빌딩으로 직행했다.

129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김동재 대영전자 대표가 나를 맞이했다.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애플이 개발 중인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AP 칩셋과 생산 일체를 대영전자에서 책임지기로 했으니까, 지금 당장 태스크포스 팀을 구축하십시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초도물량으로 대략 100억불(12조원) 가량을 수주할 예정이니까 실무진이 준비되는 즉시 애플 본사로 출장을 보내세요."

그가 경악한 얼굴로 입을 떠억 벌렸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 알 바 아니었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어서 실무진을 꾸릴 차비를 하라고요!"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김동재가 제정신을 차린 얼굴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부회장님."

***

인천국제공항에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해외로 출국을 시도하던 영진그룹의 명세웅 본부장을 긴급 체포한 후, 중앙지검으로 신속하게 압송했다.

그날 밤.

중앙지검 취조실에 금융조세부의 박혁기 검사가 나타났다.

그는 증거자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명세웅에게 냉랭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당신이 태양 어패럴을 이용해서 회사의 자금을 횡령하고 비자금으로 축적한 증거야. 그리고 조세포탈과 외회밀반출 혐의도 추가될 예정이고."

세웅의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증거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부친에게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전화 한통화만 합시다."

그러자 박검이 비웃듯 대꾸했다.

"당신 부친인 명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나 본데, 나같으면 그러지 않을거야. 명 회장도 위험해 지거든."

순간 세웅이 흠칫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이죠?"

"당신 부친이 지검장님한테 함부로 들이댔다가, 개박살이 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네. 후후..."

새웅은 박검의 말이 사실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 때문일까, 그의 전신이 거센 태풍에 휘말린 듯 부들부들 떨려왔다.

박검은 두려움에 휩싸인 세웅의 모습을 유심히 살핀 뒤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놈이 끝내 죄를 시인하지 않는다면, 명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 배임, 조세 탈루 쪽으로 수사 방향이 전환될거다. 그러니까 이 곳에서 잘 생각해봐. 진정한 효도가 뭔지."

박검은 그리 말하며 취조실에서 모습을 감췄다.

세웅은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그는 자신의 양쪽 머리카락을 두손으로 억세게 말아쥔 채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바로 그때, 영진그룹의 법무실장이 취조실에 나타났다.

법무실장의 입에서 냉정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이번 사건은 도련님 선에서 끝나야 합니다. 회장님에게 불똥이 튀는 걸 사전에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웅의 얼굴이 참담하게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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