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93화 (93/175)

93화 아이폰 위탁생산

대영전자의 평택 휴대폰 공장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기존의 피쳐폰과 애플에서 발주받은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고 있었다.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는 제 3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나를 수행하는 공장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생산 완료된 아이폰을 가져오세요."

"네. 부회장님."

잠시후, 생산 라인에서 갓 뽑은 아이폰이 내 손에 들어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통알류미늄 바디와 일체형 배터리 스타일이었다.

이제 몇달 뒤면, 전 세계는 아이폰에 열광하게 될 것이다.

내가 경험한 미래가 그랬다.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폰을 공장장에게 되돌려준 뒤 인근의 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

서울에 도착한 뒤 한남동 상지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지원의 고풍스런 접견실에서 흡연에 열중할 무렵, 대영전자의 김동재 사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부회장님."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언제 생산할 계획입니까?"

"다음달부터 평택 4공장에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을 양산할 예정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중을 밝혔다.

"아이폰보다 배터리 용량이 최소 50% 이상 많아야 합니다."

내 지시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램과 플래쉬 메모리의 저장 용량 역시 아이폰보다 2배 이상 많은 규모로 계획하십시오."

"그럴 경우, 원가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겁니다. 부회장님."

김동재의 어리석은 편견을 박살내기로 작심했다.

단호한 어조로 내 의중을 재차 밝혔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최적화가 아이폰의 운영체제보다 뒤쳐지는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그걸 하드웨어 스펙으로 상쇄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엄한 목소리로 꾸짖듯 말하자, 동재의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금세 번져갔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구글은 우리 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의 핸드폰 업체에게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판매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주자로 나서기 위해서는, 우월한 하드웨어 스펙을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해야 합니다."

그제야 녀석이 납득한 얼굴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부회장님의 고견을 현장 기술진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내 의견을 엔지니어들에게 전하세요."

"예. 부회장님."

***

드디어 2007년의 희망찬 새 해가 밝았다.

그런 탓일까, 정치권의 모든 관심사는 한국당의 당내 경선에 모아졌다.

한국당의 대통령 후보가 연말에 펼쳐질 대선에서 승리할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그 즈음, 박구내의 측근 인사가 상암동에 모습을 드러냈다.

129층 내 사무실에 중년 여성이 나타났다.

채서연은 자신을 박구내의 비선 보좌관이라고 밝혔다.

그런 탓일까, 태도와 말투가 오만하기 그지 없었다.

"아시다시피 한국당의 당내 경선에는 많은 돈이 필요해요. 그런 이유로 여러 회장님들이 우리 후보님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하고 계세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부회장님을 찾아온 이유는 선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에요."

나는 채서연을 잘 알고 있었다.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박구내는 결코 차차기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계획이었다.

채서연을 향해 냉랭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절대 나를 찾아오지 마십시오."

딱 부러지게 말하자, 그녀가 표독스런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직후, 채서연의 입에서 독살스런 언사가 흘러나왔다.

"오늘의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죠."

"지금 나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좋을대로 생각하세요."

그녀는 찬바람을 풀풀 날리며 사무실에서 몸을 감췄다.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운명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심한 여성이었다.

***

서교호텔 스위트룸에 이영박과 이태강이 차례로 나타났다.

영박이 의심하는 눈초리로 물었다.

"박구내의 최측근인 채서연이 김한빈씨를 만났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태강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친구는 양다리를 걸치는 성격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한빈씨가 박구내 측에 정치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이...?"

영박이 의뭉스런 태도로 말끝을 흐리자, 태강이 고개를 완강히 저으며 말했다.

"김한빈은 후보자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으로 국제적인 거물입니다. 그리고 매사에 언행이 신중한 인물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그 친구를 의심하는 발언은 삼가해 주십시오."

영박의 얼굴에 다소 안심한 표정이 떠올랐다.

잠시 후, 그가 은근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박구내 라인의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박태호 의원을 작업해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노란 봉투를 태강의 손에 전달했다.

"그 안에 박태호의 비밀스런 파일이 들어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박태호를 요리하십시오."

태강은 진지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인 후, 스위트룸을 재빨리 빠져나왔다.

***

늦은 밤.

상지원의 응접실에서 재벌가 로열패밀리들과 홀덤 포커를 즐길 무렵, 이태강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포커를 중단한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후, 2층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태강이 입을 열었다.

"이영박이 한국당의 박태호 의원을 담궈달라고 요구하더군."

"박태호가 누구죠?"

"박구내 계파의 좌장역할을 맡고 있는 중진 의원이지."

"박구내의 손발을 잘라달라고 요구하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이영박은 손 안대고 코를 풀 속셈이었다.

이런 일에 태강이 노골적으로 개입하면 뒷 말이 나올 공산이 컸다.

"형님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어요."

내 말은 계속 됐다.

"조중동을 이용해서 언플을 하세요. 그러면 박구내가 알아서 꼬리를 자를 겁니다."

그러자 태강이 한시름 덜은 얼굴로 내 손을 친근하게 마주잡았다.

"역시 내 생각 해주는 건 동생 밖에 없구나. 하하..."

녀석의 입에서 바보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를 돌려보낸 뒤 다시 포커판에 참가했다.

***

이태강은 서초동 밥집에서 조신일보의 법조 출입기자와 만남을 가졌다.

그 후, 박태호의 비밀스런 사생활이 가득 담긴 파일을 그에게 넘겼다.

다음날.

경기도 시내에 위치한 국회의원 사무실에 박태호가 나타났다.

그는 책상 위에 놓여진 조신일보에 시선을 고정했다.

<한국당의 다선 중진의원인 박태호! 내연녀에게 고가의 아파트와 고급 외제차 선물!>

태호의 얼굴이 금세 잿빛으로 물들었다.

한국 언론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막강한 조신일보가 그의 지저분한 사생활을 1면에 대서특필한 탓이다.

태호는 양머리를 두손으로 움켜잡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위기에서 헤쳐나올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조신일보의 기사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가 사적으로 이용하는 대포폰에 박구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결국 태호는 울며겨자먹는 심경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전화 통화를 끝마치자마자 곧바로 박구내의 사저가 있는 삼성동으로 직행했다.

며칠 후, 서교호텔 스위트룸.

이영박의 책사가 보고를 올렸다.

"박태호 의원의 내연녀 사건 때문에, 박구내의 지지율이 5% 남짓 하락했습니다. 후보님."

영박의 만면 가득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

대영그룹 회장직에서 강제 해임된 이성준은 한남동 자택에서 두문불출한 채 사업구상에 골몰했다.

그의 수중에는 1조원대의 자산이 있었다.

성준이 재기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줄 돈이었다.

그는 전기차와 모바일 배터리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큰 돈을 벌어다줄 사업 분야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배터리 사업은 초기에 거액의 투자금이 필요했다.

최소 조단위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분야였다.

그렇다고, 자신의 사재를 전부 투입하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기차와 모바일 배터리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대영자동차 측과 전략적인 파트너쉽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돈과 기술, 인력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영그룹의 오너인 김한빈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의 양해를 구해야 사업추진이 가능한 탓이다.

성준은 이보전진을 위해 일보후퇴를 감행하기로 작심했다.

한빈에게 고개를 숙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비지니스의 세계는 적도 없고 아군도 없는 곳이었다.

성준은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상암 켄싱턴 빌딩.

129층 사무실에서 대영그룹과 태산그룹 계열사들이 올린 결재서류에 부회장 직인을 정신없이 날인할 무렵, 박은영 비서 팀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이성준 전 대영그룹 회장이 오셨습니다."

뜬금없는 소식이었다.

"그 사람이 왜 온거죠?"

"부회장님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더군요."

"들어오라고 하세요."

잠시 후, 이성준이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가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지난 날의 과오를 부회장님에게 정중히 사죄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납작 엎드렸다.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평소 시건방진 태도로 일관하던 이성준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탓이다.

"성준씨에게 이런 일면이 있었다니 정말 놀랄 일이군요."

놀리듯 말했음에도 그는 표정 변화 없이 허리를 굽힌 자세로 재차 입을 열었다.

"대영자동차와 전기차, 모바일 배터리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녀석은 여전히 허리를 굽힌 자세였다.

그래서 조금 짜증이 났다.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허리를 펴시고 말씀하십시오."

그제야 성준이 허리를 펴며 두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의 공손한 태도를 유심히 주시하며 심드렁한 어조로 물었다.

"내가 왜, 당신과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같이 해야 하는거죠?"

그가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전기차와 모바일 배터리 사업을 시작하려면 최소 조단위 이상의 투자금이 필요합니다. 물론 대영그룹 입장에서는 그리 큰 돈이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 하려면 저와 공동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5천억을 투자금으로 출연할 의향이 있습니다."

"당신 5천, 대영전자 5천 이렇게 해서 만든 1조원으로, 전기차와 모바일 배터리 사업체를 만들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조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성준은 오래전부터 전기차와 모바일 배터리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나름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를 향해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자 성준이 감격한 얼굴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아직 결정한 건 아니니까, 너무 앞서나가지 마십시오."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성준은 정중히 허리를 조아린 후 사무실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허리를 굽힐 자세가 되어 있는 놈이었다.

확실히 이성모보다 그릇이 컸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찰나, 박은영 비서팀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대영전자 휴대폰 사업부의 디자인 팀장이 도착했습니다."

"들여보내세요."

"네. 부회장님."

김영민 디자인 팀장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가 긴장한 자세로 디자인 도면을 내밀었다.

도면에는 투박한 피쳐폰 스타일의 스마트폰 디자인이 그려져있었다.

첫눈에 불합격이었다.

빈 도면에 만년필로 내가 생각하는 스마트폰 디자인을 그려나갔다.

통알류미늄 바디와 곡선 스타일의 유려한 디자인을 완성한 뒤 김영민에게 건넸다.

그는 내가 그린 디자인을 살핀 뒤 감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만한 감각적인 디자인 같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부회장님."

"칭찬은 됐으니까 그만하십시오. 그것보다는 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황금색 통알류미늄 스타일의 스마트폰 디자인을 완성하세요."

내 지시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사각 모서리의 원형 디자인을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특허청에 신속하게 특허 신청을 완료하십시오."

김영민이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복명했다.

"네. 부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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