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락히드마틴 차세대 전투기 첨단 기술을 대영항공에 이전하다
에바 페런이 동아시아 태평양 하원 소위원회 위원장 타이틀을 달고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예방한 후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방문했다.
그 곳에서 여야 의원들과 두루 만남을 가진 뒤 한남동 상지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상지원의 아름다운 풀장에서 수영을 즐기는 한편, 그동안 못다한 얘기를 길게 이어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에바의 입에서 뜻 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내가 한국을 방문한 진짜 이유는 락히드마틴의 차세대 전투기 기술이전과 한국 측 파트너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서야."
"차세대 전투기의 기술을 정말 한국 정부에 이전할 생각이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촉촉한 입술을 내 입술로 가져왔다.
에바는 진한 키스를 선사한 뒤 내가 듣고 싶어하는 내용을 말했다.
"한국 정부에 이전하는 게 아니라 대영항공에 기술을 이전할 계획이라고."
대영항공은 전투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 군수업체였다.
내 입장에서는 뜻 밖의 커다란 선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최첨단 전투기의 기술이전을 확약받은 탓이다.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물론 두가지 조건이 있어. 자기가 그걸 수용하면 차세대 전투기의 스텔스 기능과 최침단 엔진 기술을 이전해 줄게."
"그 조건이 뭔데?"
에바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답했다.
"락히드마틴의 기술을 제 3국에 이전하면 안돼. 그리고 한국 정부에도 전투기 기술을 절대 공개하지마. 그게 우리 조건이야."
"제 3국은 이해하겠는데, 한국 정부에도 기술 이전을 불허하는 거냐?"
"우리는 한국 정부와 군대를 믿을 수 없어. 중국 스파이들이 너무 많거든."
그녀의 말은 계속 됐다.
"한국 정부에 전투기 기술이 오픈되면 틀림없이 중국 쪽으로 우리 기술이 넘어갈 거야. 그래서 한국 정부대신, 대영항공에 스텔스와 엔진 기술을 이전하려는 거야."
에바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내비치며 재차 말했다.
"당연히 자기가 대영항공의 오너라는 점도 이유 중의 하나지."
그리 말하며 내 품에 뜨겁게 안겨왔다.
그날 이후, 우리는 상지원에서 거의 살다시피하며 일주일 동안 황홀한 시간을 함께 했다.
***
에바는 모든 일정을 끝마친 뒤 미국으로 출국했다.
공항에서 그녀를 배웅하자마자 대영항공의 오산 공장으로 직행했다.
대영항공 오산공장에 도착하자 이정호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이정호 사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 구석구석을 매의 시선으로 두루 살폈다.
오산 공장은 전투기와 미사일 개발을 주업으로 삼고 있었다.
미사일 부문은 어느 정도 성과를 냈지만, 전투기 부문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차세대 전투기의 핵심 기술인 최첨단 엔진과 스텔스 기술을 이전받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런 이유로 대영항공은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공장을 시찰한 뒤 이정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영항공의 누적적자가 얼마죠?"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7900억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거의 8천억 수준이군요."
이정호가 다시 한번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 후, 대략적인 사업성과를 보고했다.
"금년에 개발한 사정거리 600km에 달하는 현궁 미사일을 정부에 일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계획대로 납품이 완료되면 대영항공의 자금난이 많이 해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현궁 미사일을 구매할거라고 확신하는 건 성급한 오판 아닌가요? 제가 듣기로는 한국다이너마트에서 개발한 천마 미사일의 사정거리와 정확도가 현궁보다 더 좋다고 하던데...?"
날카로운 추궁에 그는 일순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영항공에서 개발한 현궁 미사일보다는 천마 미사일에 기울어진 상태였다.
현정권과 친분이 두터운 오종덕 총괄 부회장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었다.
이정호에게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성급한 판단을 하지 마십시오. 비지니스의 독으로 작용하니까."
그가 송구한 얼굴로 즉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부회장님."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이 사장님은 저를 따라오십시오. 할 말이 있으니까."
그리 말하며 공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공장 인근의 밥집에서 육개장으로 배를 채운 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정호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투기 엔지니어들과 변호사로 팀을 꾸려서 락히드마틴의 미국 본사를 방문하세요."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그가 의아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락히드마틴 측과 차세대 전투기의 최첨단 엔진과 스텔스 기술을 우리 대영항공에 이전하기로 구두로 합의를 봤습니다."
순간 이정호가 경악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네. 그러니까 내 말대로 팀을 만드세요. 방문은 이번달 말에 하시면 될 겁니다."
그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지 재차 입을 열었다.
"솔직히 부회장님의 말씀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락히드마틴은 전투기 기술 이전을 거의 안하는 걸로 유명한 업체라..."
이정호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사장님의 심경을 십분 이해합니다. 저도 여전히 긴가민가 하거든요. 그렇지만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최첨단 전투기 기술을 고스란히 이전받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찬스니까."
그리 말하자 이정호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복명했다.
"부회장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
한국의 정관계에는 스폰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였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판검사와 간부급 경찰, 고위 공무원들을 물밑에서 서포트 해주는 후원자들이 지천으로 널린 것이다.
이런 지저분한 스폰 문화가 한국 정관계에 널리 퍼지게 된 계기는 군사독재 정권이 막을 내린 88년 이후부터였다.
민주화란 그럴 듯한 탈을 쓰고 나타난 부패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판사와 검사, 간부급 경찰, 고위 공무원들을 두루 이용했다.
그들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자신의 치부를 가린 것이다.
그 결과 정치인들과 판검사, 간부 경찰, 고위급 공무원을 연결해주는 후원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후원자들은 후일 스폰이란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회자되었다.
그들은 돈과 정치권 인맥을 연결해주는 대가로 막후에서 커다란 이권을 챙겼다.
장송현도 그런 부류 중의 한명이었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관급 공사를 주로 하는 하청건설회사를 세웠다.
그 후, 소소한 관급 공사를 저가로 수주하며 미친 듯이 일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운좋게 지역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걸 인연으로 조금씩 규모가 큰 관급공사를 수주하게 되었으며 여러 공무원들과 자연스럽게 끈끈한 인맥을 구축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지역 국회의원의 소개로 김장우 부장 검사를 소개받았다.
그날 이후, 장송현은 김장우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며 나름 정성을 다했다.
수십억대의 금품을 전달했음은 물론, 갖가지 향응을 주기적으로 접대한 것이다.
그런 탓이었을까, 김장우는 검찰의 요직을 꿰차자마자 여러 지자체장의 약점을 잡았다.
특히 재개발 사업을 목전에 둔 지자체의 수장을 집요하게 노렸다.
재개발 이권을 스폰인 장송현에게 몰아주기 위함이었다.
김장우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장송현은 지자체의 재개발 사업권을 연거푸 따냈다.
그 후, 수만여 채의 아파트를 성공적으로 분양하는 일대쾌거를 달성했다.
당연히 장송현의 건설회사는 하루아침에 1군 건설사로 우뚝 올라섰다.
더불어 김장우에게도 수백억대의 금품을 대가로 제공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부정부패의 적나라한 민낯이었다.
***
장송현의 무성건설은 경기도 당산시의 재개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었다.
최소 수천억 이상의 차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개발 인허가권을 가진 최준욱 시장은 무성건설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이미 그는 태산건설에 재개발 사업권을 주기로 마음을 정한 뒤였다.
태산건설은 20대 재벌그룹에 속한 태산그룹의 계열사였다.
반면 무성건설은 최근에 갑자기 급부상한 1군 건설업체였다.
근본을 중히 여기는 최준욱 시장은 태산건설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런 이유로 무성건설이 건네는 거액의 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최준욱은 정치적인 야망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태산그룹의 힘을 이용해서 국회에 진출할 속셈이었다.
그런 이유로 무성건설을 대놓고 무시했다.
늦은 밤.
경기도 교외의 호화주택에 김장우 검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밤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함께한 뒤 그녀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 후, 스폰인 장송현과 밀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장송현이 작정하고 말했다.
"최준욱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십시오."
"그 정도로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겁니까?"
"네. 검사장님이 힘을 좀 써주셔야 할거 같습니다."
"개자식이 태산그룹 덕을 보려고 환장한 모양이군요."
"그런거 같습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태산조선의 거점 도시인 마산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김장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놈을 먹음직스럽게 상에 올려 드릴테니 회장님은 요리값이나 제대로 쳐주십시오."
그러자 장송현의 입에서 파안대소가 쏟아져 나왔다.
"우하하하하하...!"
***
당산시 인근의 밥집에 김장우 검사장이 나타났다.
그가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지 얼마 안되서, 당산지검의 강형철 부장 검사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국밥을 안주 삼아 소주를 물처럼 들이킨 뒤 본격적인 담론에 돌입했다.
"최준욱 시장과 직계 가족들을 모두 탈탈 털어봐."
김장우의 지시는 계속 이어졌다.
"특히 돈과 여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보라고. 뭔가 니올 가능성이 높으니까."
"내가 선배님을 도와드리면 저에게 뭘 주실 겁니까?"
"김프로가 원하는 게 뭔데?"
"당연히 서울 쪽 차장검사로 영전하는 걸 원합니다. 그리고 겸사겸사 수고비도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힘을 써 볼테니까 그 문제는 걱정하지마라."
"그럼 저야 좋죠. 후후..."
그날 이후, 강형철은 최준욱 시장과 그의 가족을 전방위적으로 내사했다.
***
태산그룹 본사 빌딩.
미래전략본부장실에 태산건설의 주현욱 부사장이 나타났다.
주현욱이 잔뜩 주눅 든 얼굴로 진대현에게 보고를 올렸다.
"당산시 재개발 프로젝트가 무성건설에 넘어갔습니다."
진대현은 태산건설 사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그가 성난 어조로 외쳤다.
"무슨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하는 겁니까? 며칠전까지만 해도 최준욱 시장이 우리한테 재개발 사업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주현욱이 조심스런 어조로 답변했다.
"무성건설이 더러운 수작을 피운거 같습니다."
"더러운 수작이라뇨?"
"무성건설의 장송현 회장이 검찰 뒷배를 움직여서 최 시장을 겁박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시장 비서실에 근무하는 우리 쪽 사람한테 전해들은 말입니다. 믿으셔도 좋을 겁니다."
대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는 태산그룹의 오너인 김한빈에게 당산시 재개발 프로젝트 수주를 호언장담한 상태였다.
하지만 현실은 무성건설에 재개발 사업권이 넘어가 버렸다.
허나, 대현은 여기에서 포기할 수 없었다.
한빈에게 꾸지람을 받는 한이 있어도, 사실 관계를 낱낱이 파헤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장송현이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 건설사 직원들을 총동원해서 자세히 파악하세요."
"예. 본부장님."
***
상암 켄싱턴 빌딩.
130층 펜트하우스의 피티니스룸에서 헬스 3대 운동에 열중할 무렵, 진대현 본부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힌 뒤 구두로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당산시 재개발 사업권을 무성건설에 뺐겼습니다.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당산시장이 우리 태산그룹에 우호적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듣도보도 못한 무성건설에 사업권을 뺐긴 거죠?"
"송구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속 사정이 있었습니다."
"말해보세요."
대현이 진지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무성건설의 뒤를 봐주는 김장우 검사장이 최준욱 시장 일가를 겁박한 모양입니다."
"그 말이 사실인가요?"
"틀림없는 진실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부회장님."
그가 이 정도로 나올 정도면, 거의 사실이라는 말이었다.
이 문제는 내가 처리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검사장 정도의 지위를 가진 인물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태강의 도움이 절실했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 이만 나가보세요."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대현이 실내에서 사라지자마자 이태강에게 전화를 돌렸다.
1시간 후.
태강이 펜트하우스에 나타났다.
그에게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김장우 검사장을 아십니까?"
태강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김장우가 태산건설의 일에 훼방을 놓고 있습니다."
저간의 사정을 말하자, 태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김장우다운 일처리구만. 뒤가 구리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만 이런 식으로 뒷돈을 챙겼나보네. 후후..."
그의 입에서 비릿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김장우를 개잡듯이 잡은 후에 내 앞으로 끌고 오십시오. 형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태강은 내 요구를 흔쾌히 수락한 뒤 펜트하우스에 재빨리 사라졌다.
***
서울 모처에서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단장인 장승철과 대영항공의 이정호 사장이 만남을 가졌다.
장승철 단장의 입에서 단도직입적인 언사가 흘러나왔다.
"락히드마틴이 제공한 차세대 전투기 기술을 한국 정부에 오픈해 주십시오."
이정호가 곧바로 난색을 표명했다.
"죄송하지만 락히드마틴은 한국 정부에 기술을 개방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는 입장입니다. 단장님."
"그러니까 락히드마틴 몰래 기술을 전해달라는 말씀 아닙니까?"
"거듭 송구하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어허...! 당신은 한국 사람 아닙니까? 왜 그렇게 락히드마틴의 눈치를 보시는 겁니까?"
이정호도 지지 않았다.
"락히드마틴이 한국 군수업체에 기술을 이전하는 대가로, 한국 정부는 그들의 차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야 그렇지만, 세부 계약 내용은 어느 정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단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락히드마틴은 그리 생각지 않을 겁니다."
그가 딱 부러지게 말하자, 장승철은 입맛을 다시며 두눈을 영활하게 굴렸다.
그런 모습을 유심히 살핀 이정호가 자리에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선약이 있어서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러자 장승철이 못마땅한 눈길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정부에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대영항공에 좋을 일이 없을 겁니다."
"단장님의 고견을 마음 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정호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