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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95화 (95/175)

95화 제가 조금 화가 많은 편입니다

용인 CC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길 무렵, 대영항공의 이정호 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면전에 나타난 그가 공손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정부에서 락히드마틴의 차세대 전투기 기술을 공개하라고 연일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들의 말을 무시하세요."

이정호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재차 보고를 올렸다.

"정부의 압박 강도가 점차 강해지는 추셉니다. 대영항공이 기술 공유를 거부하면, 군에서 발주하는 전투기와 미사일의 입찰을 배제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현 정권의 임기는 1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1년 후에는 나와 수평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이영박이 대통령으로 등극할 예정이었다.

그 말인즉슨 정부의 압박을 1년 정도만 견뎌내면 그만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재차 단호한 목소리로 엄명을 내렸다.

"1년만 참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하여튼 이번달 말에 락히드마틴의 본사를 방문해서 기술이전 계약을 마무리 지으세요."

그제야 이정호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부회장님."

그를 돌려보낸 뒤 골프채를 힘차게 휘둘렀다.

딱!

내가 날려보낸 골프공이 푸른 하늘 속으로 빨리듯 사라져갔다.

나름 호쾌한 장타였다.

***

한국당은 신년 벽두부터 소란스러웠다.

당내 대선 경선의 룰 때문이었다.

박구내보다 당내 세력이 미약한 이영박 측이 국민여론조사 반영비율을 50% 이상 확대하는 안건을 경선위원회에 상정한 탓이다.

반면 당내에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박구내 측은 국민여론조사 반영비율을 20% 수준으로 정하는 안건을 위원회에 상정했다.

당내 대의원의 경선 비율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이영박은 여론조사에서 박구내보다 최소 7%에서 최대 15% 내외까지 지지도가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대의원의 경선참여 비율이 높아질 경우 ,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더구나 경선위원회에 포진한 당내 지도부는 태반이 박구내를 지지하는 세력이었다.

상황이 이에 달하자, 이영박은 조중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김한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

늦은 밤.

한남동 상지원의 고즈넉한 정원을 거닐 즈음 이영박이 면전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앓는 듯한 얼굴로 읍소했다.

영박은 자신이 처한 당내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

그 후, 은근한 어조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50% 이상 확대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움직여 주십시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흔쾌히 화답했다.

"조중동 관계자들을 만나보겠습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내뱉자, 그의 얼굴에 반색하는 미소가 그려졌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영박은 나를 회장님으로 호칭했다.

소문대로 처신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를 돌려보낸 뒤 상지원으로 오종덕 총괄 부회장을 호출했다.

1시간 후.

오종덕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에게 저간의 사정을 소상히 전한 뒤 나직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이영박이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움직여 달라고 그들에게 요구하십시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오종덕이 상지원을 떠나자마자 김태구 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장동현 법무실장을 상지원으로 불러들이세요."

"예. 부회장님."

30분 뒤.

장동현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현모의 근황을 말해보세요."

장변이 즉답했다.

"대영병원에서 성형수술을 무사히 끝마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놈에게 단단히 말해두세요. 나를 고소할 경우 쌍방 폭행 혐의로 맞고소를 할거라고."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

대영병원 VIP 병동에 장동현 법무실장이 나타났다.

그는 김형모의 얼굴을 칭칭 동여멘 붕대를 주시하며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 부회장님을 폭행 혐의로 고소할 경우, 부회장님 역시 김형모씨를 쌍방 폭행혐의로 고소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매사를 신중하게 생각하십시오."

형모는 속에서 천불이 솟구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근본없는 아우성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일방적으로 폭행당했음을 알려주는 CCTV 자료가 전무한 탓이었다.

"치료비 일체는 부회장님이 지불하실 겁니다. 그럼 이만."

동현은 그리 말하며 병실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직후, 형모의 입에서 성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으아악!"

허나, 그의 비명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삼성동.

박구내는 조중동의 정치사회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국당의 당내 경선은 국민여론이 50% 이상 대폭 반영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한국당의 대선 경선은 국민여론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다!>

<한국당의 대선 경선은 국민여론 반영비율을 50% 이상 확대하는 게 최선이다!>

조중동은 이영박이 원하는 내용을 정치 사회면 1면에 머릿기사로 내보냈다.

박구내는 분노했다.

조중동과 이영박이 원팀으로 뭉친 탓이다.

하지만 승부의 추는 그날 이후, 이영박 쪽으로 급속도로 기울었다.

조중동의 눈치를 보는 당내 의원들이 국민여론을 50% 이상 확대하는 안에, 찬성하는 쪽으로 급격하게 돌아섰기 때문이다.

서교호텔 스위트룸.

이영박은 김한빈의 막강한 파워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자존심 강한 조중동의 논조를 하루아침에 이영박이 유리한 쪽으로 움직인 탓이다.

그런 때문일까, 한빈에게 고마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가 만약 자신의 적으로 돌아선다면, 대선에서 승리할 가망성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운좋게도 한빈과 같은 배를 탄 처지였다.

그런 이유에선지, 절로 신에게 감사한 심경이었다.

한빈같은 막강한 실력자와 연을 맺게 해준 까닭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웬간해서는 그와 척을 지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한빈을 적으로 돌릴 경우, 어떤 후폭풍이 불어닥칠지 감히 예측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상암동 켄신턴 빌딩에 도착하자마자 81층으로 직행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임직원들을 시찰하기 위함이었다.

81층부터 86층까지 대영물산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상사맨 특유의 다국어가 사무실에 쉴 새 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독일어, 스페인어, 인도네시아어, 아랍어 등이 사무실 구석구석에 울려퍼진 것이다.

그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조용히 관찰한 뒤 87층으로 올라갔다.

대영자동차는 87층부터 96층까지 사무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자동차 회사라 그런지 대영물산보다 나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임직원들이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들을 두루 살핀 뒤 97층으로 올라갔다.

대영전자는 97층부터 128층까지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나름 조용한 환경 속에서 근면성실하게 일하는 중이었다.

내심 그들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한 뒤 129층으로 올라갔다.

129층은 비서동과 경호동, 부회장실 등으로 구분된 상태였다.

비서동은 부회장실 앞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경호동은 비서동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서동의 총 책임자는 박은영과 하동균 비서팀장이었고, 경호동의 총책임자는 감사실장인 박종태였다.

박은영과 하동균, 박종태를 필두로 비서진과 경호원들이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거의 200명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저 중에서 비서업무를 보는 사람들은 40명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내 경호원들이었다.

그 정도로 나는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나처럼 귀한 남자는 언제나 안전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비서진과 경호원들을 뒤로한 채 부회장실로 들어갔다.

부회장실의 통유리창 쪽으로 걸어갔다.

서울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창 밖으로 시선을 모으자 상암동과 인천 앞바다, 그리고 중국의 산동 반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고층 빌딩의 순기능이었다.

더구나 오늘은 구름 한점 없이 쾌적한 날씨였다.

그런 탓인지 중국의 산동 반도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내심 감사한 심경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동시에 박은영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가 조신한 태도로 하루 스케쥴을 길게 나열했다.

은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의중을 밝혔다.

"주한 미대사관이 개최하는 신년 파티에 참가할 생각이니까 다른 스케쥴은 모두 취소하세요."

"청와대 행사에는 참가하지 않으실 건가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청와대에 못간다고 전하세요."

"네. 부회장님."

청와대에 가봤자 나를 귀찮게 할게 뻔했다.

그런 탓으로 청와대 행사에 참가 안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럴 바에는, 같은 시각에 열리는 주한 미대사관의 신년 파티에 가는 게 백배 나은 선택이었다.

***

야심한 시각.

경기도 교외 지역에서 별장 성접대가 열리고 있었다.

김장우 검사장과 장송현 무성건설 회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태강의 심복인 박현철 검찰 수사관은 성접대가 펼쳐지는 별장에 묘령의 아가씨를 들여보냈다. 그녀의 몸에 설치된 몰카 장비를 이용해 현장 증거를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올라탄 봉고차에는 별장의 내부 전경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었다.

더불어 김장우와 장송현의 더러운 행각이 모니터 화면을 적나라하게 수놓았다.

박현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현장 상황을 이태강 지검장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다음날.

중앙지검장실에 김장우 검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태강은 거두절미하고 테이블 위에 고화질 스틸 사진 여러장을 펼쳐놓았다.

사진 속 장면을 확인한 김장우의 만면 가득 대경실색한 표정이 급속도로 번져갔다.

그런 모습을 유심히 살핀 태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장송현의 일에서 손을 떼! 그리고 지금 당장 나를 따라와!"

그들은 사시 동기였다.

그런 탓으로 평소 흉허물 없이 지내는 관계였다.

하지만 태강은 한빈의 오더를 받은 상태였다.

사시 동기라고 해도 봐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당신이 원하는 게 뭐지?"

김장우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태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나를 따라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거다."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한남동 상지원의 지하 피트니스룸에서 펀치볼을 대상으로 강력한 원투 스트레트와 양훅, 어퍼컷 등을 속사포처럼 박아넣을 찰나, 이태강과 중년의 남자가 면전에 나타났다.

손에서 글러브를 탈착한 뒤 태강을 손짓하자 그가 내 앞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저 사람이 누구죠?"

그가 즉답했다.

"김장우 검사장."

고개를 끄덕이며 태강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자리를 비워주세요."

그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뭘 하려고 그러는거야?"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죠."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태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트니스룸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태강을 위층으로 올려보낸 뒤 김장우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잔뜩 위축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나를 보자고 한거요?"

"네. 댁에게 조금 용건이 있거든요."

그 말과 동시에 라이트와 레프트 어퍼컷을 놈의 안면에 벼락같이 퍼부었다.

퍼억! 퍼어억!"

"아아아악...!"

녀석의 안면은 주먹질 두방에 피투성이로 물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매트 위를 나뒹구는 놈을 목표로 강력한 사커킥을 우박처럼 박아넣었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김장우의 입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구슬픈 비명이 길게 토해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잠시 후.

태강은 피투성이로 얼룩진 김장우의 몰골을 발견하자 만면 가득 경악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차분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대영병원 VIP 병동으로 이송하세요. 그리고 놈에게 확실히 말해두세요.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함부로 나불거리면 별장 성접대 동영상이 대한민국 전체에 퍼질거'라는 사실을."

태강이 황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말로 하면 되는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만드는거야?"

"제가 조금 화가 많은 편입니다. 그러니 형님이 이해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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