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7세대 전투기 F22 랩터
대영백화점 강남 본점은 아침부터 총비상이 걸렸다.
대영그룹의 실질적인 오너인 김한빈 부회장의 현지 시찰이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조진수 점장은 지하 푸드코트를 시작으로 최상층에 위치한 VVIP 라운지까지 발바닥에 땀나도록 종횡무진하며 점원들을 쉴 새 없이 다그쳤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날에는, 자신의 모가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한빈은 매사에 철두철미한 사람으로 그룹 내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조진수는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한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다.
물론 그의 피땀 눈물나는 노력이 한빈에게 먹힐지는 두고볼 일이었다.
***
비서진과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대영백화점 강남 본점을 방문했다.
붉은 카페트를 힘차게 즈려 밟으며 백화점 로비에 들어서자, 카페트 양열에 도열한 임직원들이 나를 향해 허리를 90도 각도로 깍듯이 숙였다.
내 시선은 여점원들에게 모아졌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탓인지 하나같이 미모가 괜찮았다.
내심 그녀들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며 지하 푸두코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푸드코트로 들어가자 여러가지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내 발걸음은 시식대로 향했다.
군만두 시식코너였다.
군만두를 맛보자 역한 돼지 비린내와 두꺼운 밀가루맛이 느껴졌다.
공짜로 줘도 안먹을 맛이었다.
시식대 알바 아줌마가 손에 든 만두 포장지에 시선을 집중했다.
해명만두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앞으로 해명만두는 우리 백화점 납품이 전면중지될 운명이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예정이었다.
***
지하 푸드코트를 시작으로 백화점 매장을 두루 시찰한 뒤 탑층에 위치한 VVIP 라운지로 올라갔다.
VVIP 라운지는 연간 100억원 이상 백화점 물건을 구매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극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 탓인지 VVIP 라운지에는 오전 시간임에도 많은 고객들이 모여있었다.
할일 없고 돈 많은 사람이 그 정도로 많다는 방증이었다.
그들의 면면을 대충 훑은 뒤 기다란 라운지의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여직원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달달한 칵테일 한잔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공손히 응대했다.
"예. 부회장님."
그녀의 입에서 '부회장님'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장내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다.
내 신분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런 탓일까, 라운지 여기저기에서 쇼핑목록 선정에 여념이 없던 고객들이 내 일신에 뜨거운 눈길을 퍼부었다.
그들의 부담스런 시선을 회피하기 위해 칵테일을 통 크게 원샸했다.
그 후, VVIP 라운지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백화점 1층 정문으로 향하는 길에 나를 수행하는 조진수 점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영백화점에서 취급하는 시계중에서 가장 비싼 명품시계를 상지원으로 갖고 오세요."
그가 공손히 복명했다.
"예. 부회장님."
***
대영병원 VIP 병동.
얼굴에 두툼한 붕대를 칭칭 동여멘 김장우의 내면에, 격렬한 분노와 허망한 무력감이 동시다발적으로 빗발쳤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김한빈을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그럴 만한 힘도 능력도 없었다.
한빈의 손에 그의 추잡한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담긴 B급 동영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엄청난 배경을 갖고 있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검사장 타이틀 정도로는 한빈의 발끝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런 탓으로 연일 무기력한 패배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오늘도 풀길 없는 분노를 애꿎은 휴대폰을 대상으로 해소했다.
휴대폰을 병실 바닥에 내던진 김장우는 병상에 죽은 듯이 널브러졌다.
성형수술을 한지 얼마 안된 탓인지, 그는 조금만 움직여도 체력이 방전됐다.
바로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이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김장우를 향해 냉정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상지원에서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마라. 쓸데없이 입을 주절거려봤자, 당신에게 좋을 일이 없을테니까."
순간 병상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있던 김장우의 전신이 부르르 떨려왔다.
태강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김한빈은 너 따위가 어찌해볼 상대가 아니다. 쓸데없이 복수를 하겠답시고 애새끼처럼 나대지마라. 그때는 이 정도로 안끝날테니까."
장우는 끝내 입 밖으로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태강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
경기도 인근의 골프장에서 이태강과 라운딩을 즐긴 뒤 인근의 밥집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얼큰한 순두부찌개로 배를 채운 후 대영백화점에서 공수한 초고가 명품시계를 태강에게 내밀었다.
그의 입이 귓가에 내걸렸다.
다아이몬드가 촘촘하게 박혀 있는 명품시계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래서 녀석에서 시계의 시세를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이 시계는 스위스 장인이 직접 수작업으로 제조한 물건입니다. 게다가 다이아몬드도 순도 100%에 육박하는 수준이죠."
태강이 기대만발한 얼굴로 물었다.
"시세가 어느 정도지?"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전 세계에 단 3개 밖에 없는 시계라 그런지, 거의 70억대에 육박하는 시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순간 태강이 좋아죽는 얼굴로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역시 우리 동생이 최고다. 고맙다. 한빈아. 우하하하...!"
녀석의 입에서 우렁찬 광소가 흘러나왔다.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김장우가 마음에 걸리니까 사직서를 받아오세요."
"그놈을 검찰에서 내쫒을 생각이냐?"
"네. 검사장 타이틀이 마음에 걸려요. 나름 끗발있는 권력이라."
"동생이 원한다면 내가 책임지고 그놈에게 사직서를 받아줄게."
"그럼 형님만 믿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공항에 대영항공의 이정호 사장과 엔지니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락히드마틴의 공장으로 직행했다.
이정호 일행은 락히드마틴의 거대한 전투기 생산공장에, 첫눈에 압도당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최첨단 전투기들이 수만여대나 즐비하게 늘어선 탓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투기 생산라인에서는 1시간에 4대 가량의 최신예 전투기가 양산되고 있었다.
그들은 락히드마틴의 진면목을 목도하자 당최 입을 다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경이적인 규모였다.
락히드마틴의 전투기 공장을 하루종일 시찰한 그들은 베데스다의 다운타운에 위치한 호텔에서 1박한 후 락히드마틴의 본사 빌딩을 방문했다.
오후 무렵.
이정호 사장은 락히드마틴의 페레즈 회장과 심도깊은 협의를 진행했다.
페레즈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저희는 7세대 전투기인 F22 랩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총개발비만 1천억불(120조원)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대영항공이 10억불(1조2천억) 상당의 투자비를 조달해 주신다면, 한국에 도입될 6세대 전투기의 엔진과 스텔스 기술을 책임지고 이전해 드리겠습니다."
이정호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사안은 제가 처리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시다면 김한빈 부회장에게 제 얘기를 대신 전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
강남의 고급 룸살롱에서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무렵, 미국에 있는 이정호 사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가씨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폰에서 이정호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락히드마틴의 페레즈 회장이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게 뭐죠?"
-자신들이 개발하는 7세대 전투기의 일종인 F22 랩터의 개발 비용을 투자형식으로 일정부분 분담해 달라는 조건입니다.
"액수를 말씀해 보십시오."
-한화로 1조2천억입니다.
"1조2천억을 투자하면 7세대 전투기의 기술 도입도 가능한 건가요?"
-그건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F22 랩터의 엔진과 전투기, 레이더 기술 일체를 이전하는 조건으로 10억불을 투자하겠다고 전하세요."
-예. 부회장님.
***
뉴저지 대저택에 락히드마틴의 페레즈 회장이 나타났다.
그는 아담 상원의원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김한빈 부회장 측이 F22 랩터의 엔진과 스텔스, 레이더 기술을 이전해 주는 대가로 10억불(1조2천억)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담이 미간을 모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 생각을 말해보게."
페레즈가 반대의사를 분명히 표명했다.
"F22 랩터는 지구 최강의 전투기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 엄청난 전투기의 핵심 기술을 한국에 유출하는 건 말이 안됩니다. 의원님."
"흐으음..."
아담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페레즈의 말이 타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한국에서 김한빈과 최종 담판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
군부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대영항공이 당최 말을 들어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군부의 고위 장성들은 연일 청와대에 대영항공을 모든 군납에서 제외시키자는 청원을 넣고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대영항공의 뒤에 락히드마틴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직 대통령의 임기는 1년도 채 남지않은 시점이었다.
결국 청와대 참모들은 될대로 되라는 심경으로, 대영항공과 군부의 갈등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무렵, 락히드마틴의 오너인 아담 페런 상원의원이 한국을 극비리에 방문했다.
그는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단장인 장승철을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장승철은 전직 공군 총참모장 출신이었다.
그런 이유로 차세대 전투기의 기술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반면 아담은 한국 군부를 믿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 스파이들이 한국군 구석구석에 파고들었다고 확신한 탓이다.
아담은 그런 사실을 솔직히 말했다.
"한국군에서 암약 중인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자 장승철이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대꾸했다.
"처음 듣는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한국군에는 중국 스파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담이 고개를 저으며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한국의 최첨단 전차 기술이 중국에 넘어간 걸 어떤 식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 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도 군부에 중국 스파이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으으으음..."
장승철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담의 말대로 한국 군부에는 중국 스파이들이 대놓고 활동하고 있었다.
고위 장성 중의 태반이 중국 스파이들에게 포섭당한 것이다.
"한국의 영관급 이상 장교 중에서 중국 스파이에 포섭당한 비율이 무려 20%가 넘는다는 보고자료가 있습니다."
"어디서 입수하신 자료죠?"
"CIA에서 알려준 겁니다."
"끄응..."
승철의 입에서 앓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 더 이상 대영항공을 압박하지 마십시오. 한번만 더 대영항공을 압박하신다면 당신을 중국 스파이로 간주하겠습니다."
"정말 한국 군부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승철이 애절한 얼글로 읍소했음에도 아담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냉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찬바람을 풀풀 날리며 장내에서 사라졌다.
***
한남동 상지원으로 아담 페런 상원의원을 초청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끝마친 뒤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6세대 전투기의 엔진과 스텔스, 레이더 등의 기술 이전만 받아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전투기 기술 강국이 될 걸세."
아담은 그리 말하며 심유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F22 랩터의 기술 이전에 반대하시는 겁니까?"
"나야 찬성이지만, 경영진들이 어찌나 반대를 하는지..."
그는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뭔가 통큰 배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준비해온 돈봉투를 그의 손에 내밀었다.
"제가 준비한 조촐한 선물입니다. 받아주십시오."
아담의 얼굴에 끈적한 탐욕이 그려졌다.
그는 돈봉투를 살핀 뒤 극히 만족한 얼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맙네. 이렇게 큰 돈을 아무 조건 없이 선뜻 내놓다니!"
"제가 드린 10억불(1조2천억)을 좋은 곳에 사용해 주십시오."
아담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두눈을 빛내며 넌지시 물었다.
"F22 랩터의 기술을 정말 도입하고 싶은가?"
그는 이미 내 마음 속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의원님."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화답했다.
"자네가 이렇게 큰 선물을 줬으니, 마냥 모른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아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락히드마틴 경영진들을 내가 책임지고 설득해 보겠네."
그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