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01화 (101/175)

101화 내 요구조건을 이영박에게 전달하다

상지원 접견실로 장동현 변호사를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부회장님."

"책상에 앉아서 내가 구술하는 내용을 A4 용지에 받아적으세요."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각서를 작성하라는 말씀입니까?"

"대충 맞습니다."

그리 말하며 책상을 손짓했다.

창가를 거닐며 책상에 앉은 장변에게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 이영박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대영중공업에 민간 원자력 발전소를 허용한다.>

내 목소리는 길게 이어졌다.

<나, 이영박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대영항공을 정부의 국책 항공우주산업 파트너로 선정한다.>

<나, 이영박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해외자원 개발사업 파트너로 대영물산을 선정한다.>

<나, 이영박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대영그룹의 김한빈 부회장을 국무총리 급으로 우대한다.>

<나, 이영박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이태강 중앙지검장을 신정부의 검찰 총장과 국무총리로 연달아 기용한다.>

<나, 이영박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이태강 중앙지검장을 차차기 정부의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전심전력을 다한다.>

구술(口述)을 끝마친 뒤 장동현을 슬며시 돌아보자, 그가 경악한 표정을 지은 채 A4 용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는 이영박에게, 내가 과도한 요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 요구를 할 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에게 지원한 선거자금만 해도 3천억이 넘는 수준이었다.

3천억이 애 이름도 아니고, 그 정도 받아쳐먹었으면 돈 값을 해야 한다.

장변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구술한 내용을 중심으로 비밀 각서를 작성하세요."

그가 우려하는 얼굴로 말했다.

"이영박 후보자에게 정말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실 생각입니까?"

장변에게 즉답했다.

"네. 뭐가 잘못됐습니까?"

"공연히 이 후보자의 심기를 건드려봤자 좋을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점이 걱정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장변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이영박은 내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위인이니까."

***

서교호텔 스위트룸을 방문했다.

이영박은 여전히 이 곳을 개인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장변을 대기실에 남겨둔 채 나 홀로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영박은 식후 커피타임을 즐기며 조간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에게 목례를 취한 뒤 맞은 편 소파에 착석했다.

그 후, 준비해온 비밀 각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내가 건넨 각서를 살핀 뒤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시는거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재밌군요. 왜 그리 생각하시는 거요?"

"후보자님에게 건넨 돈이 3천억이 넘습니다."

"그래서, 이런 과도한 요구를 해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후보자님."

"죄송하지만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이태강 지검장을 차기 정부의 검찰 총장과 국무총리로 연이어 기용하는 정도에요. 그 이상의 요구는 삼가해 주십시오."

"대영중공업과 대영항공, 그리고 나에게 득이 되는 일은 하기 싫다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그렇다고 해둡시다."

"벌써부터 마음이 변하신 겁니까? 대선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어차피 승부야 뻔한거 아니겠소? 여당에서 누가 나오든 내 상대가 아닌데."

이영박은 커피 한모금을 들이킨 뒤 시니컬한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이태강을 차차기 대권주자로 키워줄테니까, 다른 요구는 하지 마십시오."

"그 정도에서 만족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이제 내 패를 꺼내 보일 차례였다.

"우리 대영그룹은 조중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후보자님의 숨기고 싶은 오점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후보자님은 연성건설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정이 불안정한 이란 정부가 발주한 공사를 무차별적으로 저가 수주했습니다. 그 결과 공사미수대금만 한화로 2조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더군요. 내 말이 틀렸습니까?"

"끄응..."

그의 입에서 앓는 듯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후보자님이 자랑하는 경영 능력이, 실은 새빨간 거짓말이란 사실을 국민들이 알게되면 어찌될까요?"

"그리고 불법 선거 혐의로 의원직이 면직 되신 후, 재미교포 사기꾼과 협업하에 금융범죄에도 가담한 전력이 있던데... 이거 사실입니까? 조중동을 시켜서 한번 파보라거 할까요? 아님 이태강 지검장을 시켜서 공식적으로 수사에 돌입하라고 오더를 넣어볼까요?"

이영박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해왔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이 감히 나랑 한번 해보자는거나!"

"나이 타령은 집구석에서 하시고, 하여튼 내가 좋은 말로 할때 비밀각서에 열손가락의 지장과 자필서명을 날인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스위트룸을 박차고 나왔다.

***

늦은 밤, 서교호텔 스위트룸.

이영박은 장내에 배석한 최측근 인사들을 휘 둘러본뒤 그들에게 비밀각서의 복사본을 전달했다.

비밀각서를 확인한 측근 인사들이 격앙된 얼굴로 차례로 입을 열었다.

"그놈의 요구를 절대 수용하지 마십시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개자식이 후보자님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상왕 노릇을 하려는 겁니다!"

"저 또한 같은 의견입니다. 놈의 요구조건을 절대 수용하시면 안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아요. 김한빈은 조중동과 검찰의 핵심인 중앙지검을 수족처럼 부리는 인간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한빈과 정면으로 출동하면 후보자님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측근들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자, 이영박이 고심이 역력한 얼굴로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는 측근들을 내보낸 뒤 밤이 새도록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종국애는 한빈과 타협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길이 최선이었다.

***

상지원에 조성된 미니 골프장에서 여유로이 라운딩을 즐길 무렵, 이영박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비밀각서를 내밀었다.

그가 건넨 각서를 살피자 하단에 열손가락의 지장과 지필 서명이 날인된 상태였다.

내 요구에 굴복한 것이다.

내 입에서 절로 흡족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우하하하하...!"

영박은 내 웃음소리가 가라앉자 조곤조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선거자금을 거의 모두 소진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추가로 1천억 정도를 지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탐욕에 절은 얼굴로 내 눈을 집요하게 직시했다.

내 요구 조건을 수용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결연한 눈빛이었다.

"좋습니다. 조만간 1천억을 추가로 건네드리지요."

그리 화답하며 골프공을 힘차게 강타했다.

딱!

***

상암 켄싱턴 빌딩.

대영전자의 대회의실이 위치한 128층으로 향했다.

장내에 들어서자 경영진들이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그들을 지나쳐 상석에 좌정했다.

경영진에게 제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하며, 테이블에 놓여진 생수로 목을 축였다.

경영진들이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옆에 앉은 김동재 사장을 눈짓했다.

내 눈짓을 받은 김동재가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킨 뒤 전면에 위치한 회이트 스크린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대영전자의 2005년 경영 성과를 낭랑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저희 대영전자는 2005년에 37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습니다. 전년도보다 무려 200% 이상 급증한 액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이 2004년보다 폭증한 이유는 120조원에 달하는 애플사의 신제품을 위탁생산한 덕분입니다. 고로 우리 대영전자는 금년도에도 애플사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보고가 끝나자 장내에 우레와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나 역시 그 중의 한명이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가라앉은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좌중을 휘 둘러보며 묵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애플은 금년 6월경에 아이폰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당연히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폰에 대항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비밀리에 양산 중에 있습니다."

경영진들은 이미 대다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탓인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다음말을 기다렸다.

"아이폰의 대항마인 토네이도 스마트폰을 금년 7월에 출시할 계획입니디. 그러니 여러분들은 토네이도 출시에 만전을 기해주십시오."

그리 말하자 좌중이 일사불란한 태도로 복명헸다.

"네. 부회장님."

회의를 종료한 뒤 지하에 조성된 푸드코트로 내려갔다.

켄싱턴 빌딩의 지하 푸드코트에는 내가 좋아하는 육개장과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전문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완전히 내 취향이었다.

오늘은 얼큰한 육개장이 땡겼다.

그래서 육개장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육개장으로 점심 식사를 해결할 즈음, 진대현 본부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켄싱턴 빌딩의 분양 책임자였다.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헤롯 백화점의 리처드 회장이 오전 10시 비행기로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헤롯은 전 세계 최고의 럭셔리 백화점이었다.

초명품 브랜드만 취급하는 곳이었다.

상암 켄싱턴 빌딩에 어울리는 품격 높은 백화점이었다.

그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오늘 오후 3시경에 리처드 회장 일행이 이 곳으로 오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헤롯 백화점을 우리 빌딩에 입점시켜야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부회장님."

"그럼 알아서 잘하세요."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진대현이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박은영 비서팀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뉴욕 양키스의 채드맨 단장이 사무실에 도착하셨습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납시다."

곧바로 129층 사무실로 직행했다.

***

사무실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는 채드맨 단장이 보였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 환한 얼굴로 악수를 청해왔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양키스 측이 가져온 계약서에 시선을 고정했다.

계약서에는 마이너리그 거부권 조항과 6년 계약, 연평균 연봉 500만불 이상이라는 단서조항이 삽입되어 있었다.

내 요구 조건를 대다수 수용한 계약서였다.

나는 한국의 국보급 투수인 한태민이 마이너리그로 강등되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계약서에 마이너리그 거부권 조항을 삽입했다.

나름 태민을 위한 것이다.

계약서 검토를 끝마친 뒤 대영드래곤즈 단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

한태민을 상암 켄싱턴 빌딩의 고급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팀의 오너로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그에게 나름 조언을 해주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잘익은 스테이크와 포도주를 즐긴 뒤 본격적인 담소를 이어나갔다.

"태민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보급 투수에요. 그러니 언제나 국가를 대표패서 공을 던진다는 마음가짐을 가져 주십시오."

그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부회장님의 말씀을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별거 아닙니다. 태민씨 정도의 기량이라먄 사이영상 수상은 누워서 식은죽 먹기니까 언제나 자신감을 갖고 투구하십시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태민이 감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내 진솔한 조언이 큰 힘이 된 모양이었다.

하긴, 나처럼 잘나가는 거물에게 과분한 칭찬을 들었으니 그가 좋아할만도 했다.

준비해온 선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시가로 20억에 달하는 명품시계였다.

그런 탓일까, 태민의 입이 귓가에 내걸리며 연신 '고맙다'라는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

상지원으로 들어서자 이성철이 나를 맞이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대영물산이 서울지하철 10호선 수주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자그마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게 뭐죠?"

"태산건설이 컨소시엄을 형성하는 바람에 강력한 라이벌로 급부상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나더러 교통정리를 해달라는 말씀입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별 것도 아닌 문제로 나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대영물산과 태산건설이 컨소시움을 결성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태산건설의 함명구 사장이 어찌나 강경한 자세로 나오는지..."

그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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