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살아있는 미이라를 눈 앞에서 목격하다
굴강한 체격의 중국인이 상암동 켄싱턴 빌딩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식당가에서 배를 채우는 한편 주변을 매의 시선으로 살폈다.
묵청기는 내공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인물이었다.
또한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특작요원이기도 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국가안전부의 비밀 훈련소에서 내공을 극한으로 연마했다.
묵청기는 단전에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점혈을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타인의 체내에 기를 흘려보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점혈은 단전의 내공을 손가락을 이용해 체외로 배출한 뒤, 타인의 혈맥에 주입하는 과정이었다.
내가고수(內家高手)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못하는 경지였다.
묵청기는 바로 그런 점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걸어다니는 살인병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손가락 하나로 타인을 절명시킬 수 있는 가공할 살상무학을 일신에 구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목표는 한빈이었다.
***
상지원 트레이닝 룸에서 헬스 3대 운동에 매진할 무렵, 한국 주재 CIA 요원이 나를 방문했다.
그는 자신을 크리스라고 소개한 뒤 뜻 밖의 말을 꺼냈다.
"중국 국가안전부의 암살 요원이 한국으로 잠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런 말을 나에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암살 요원이 노리는 인물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재밌는 말씀이군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 담배를 무는 동작을 하자, 김태구가 담배갑을 손에 든 채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진한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입 밖으로 훅 내뿜자, 크리스가 불만섞인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한동안 흡연에 열중한 뒤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신경 안써도 우리 경호원들이 다 알아서 합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중국 특수요원들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특히 이번에 한국으로 잠입한 놈은 요인 암살을 주로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말은 계속 됐다.
"부회장님이 원하신다면 CIA 요원들을 주변에 배치할 의향이 있습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저는 우리 경호원들을 믿습니다."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양놈이 상지원에서 사라지자마자 김태구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호 인력을 평소보다 두배 이상 증원하세요."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나타나는 중국인들을 각별히 유의하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부회장님."
***
묵청기는 먼 발치에서 김한빈의 행동 반경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한빈이 자주 드나드는 아레나 클럽에서 일을 벌이기로 작심했다.
늦은 밤.
아레나 클럽 인근의 편의점에 묵청기가 나타났다.
그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음미하는 한편 클럽의 정문을 유심히 살폈다.
그때, 클럽 안에서 40대 초반의 웨이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배가 출출했는지 묵청기가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그 후,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 즈음, 묵청기가 웨이터에게 5만원권 돈다발을 슬며시 내밀며 유창한 한국어를 내뱉었다.
"내 요구를 들어주면 그 돈을 당신에게 모두 드리겠습니다."
웨이터는 며칠 뒤면 클럽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웨이터 노릇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때문일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돈다발을 자신의 바지 주머니 속으로 재빨리 집어넣었다.
***
웨이터 옷차림으로 환복한 묵청기가 아레나 클럽에 나타났다.
그는 곧장 4층 VVIP 룸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 김한빈이 있었기 때문이다.
묵청기는 룸의 좌우 출입구에 버티고 서 있는 경호원들에게 굽신대며, 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우측에 서 있던 경호원이 그의 출입을 제지했다.
"부회장님 명령 없이는 아무도 못들어간다.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
묵청기가 슬며시 허리를 폈다.
동시에 그의 양손이 경호원들의 훈혈(暈穴)에 정확히 박혀들어갔다.
순간 그들이 제자리에서 짚단처럼 허물어졌다.
그는 경호원들을 처리하자마자 룸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어갔다.
묵청기는 전광석화같은 몸놈림을 과시하며 한빈과 아가씨의 훈혈(暈穴)을 벼락같이 짚었다.
청기는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몰아갔다.
사혈에 내력을 주입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한빈을 증거 없이 죽일 수 있었다.
그는 죽은 듯이 널브러진 김한빈의 양미간으로 검지 손가락을 가져갔다.
단전에서 솟기친 내기가 한빈의 양미간 속으로 빨리듯 스며들었다.
잠시 후, 청기의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이상하다. 이놈의 사혈이 왜 이리 넓은 거지?'
한빈의 사혈은 일반인들을 수십 수백배 이상 능가할 정도로 드넓었다.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런 탓인지 청기는 고개를 갸웃하며 더욱 강하게 내기를 한빈의 사혈로 주입했다.
하지만 그가 방출한 내력은 한빈의 양미간 사이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힘찬 숨을 내쉬는 한빈에게 분노했다.
자신의 점혈이 전혀 통하지 않은 탓이다.
결국 청기는 한빈의 양미간을 목표로 전신공력을 무자비하게 주입했다.
1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허나,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드디어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하지만 한빈은 여전히 힘찬 숨결을 내뱉고 있었다.
도리어 청기의 얼굴이 사색으로 짙게 물들었다.
그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단전의 내공이 한빈의 몸 속으로 무한정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한빈의 양미간에서 손을 떼기로 마음먹었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일평생 쌓아올린 모든 내공을 한빈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허나, 그의 손가락은 끝내 한빈의 양미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력한 흡입력이 청기의 손가락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꽁꽁 묶은 탓이다.
그의 입에서 경악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흡성대법!"
자신의 귀한 내공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한빈은 광세절학인 흡성신공을 수련한 남자였다.
청기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것 외에는 황당무계한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결국 그는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는 심경으로 탄지신통의 구결을 외우고 또 외웠다. 한빈의 몸속으로 무한정 빨려들어가는 자신의 내공을 조금이라도 되돌리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청기의 얼굴과 몸이 미이라처럼 바짝 말라갔다.
불가사의한 광경이었다.
***
눈을 뜨자 온몸을 성난 야생마처럼 질주하는 상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 몸에 맞는 양주를 먹어서 그런거 같았다.
그때, 거식증 환자처럼 삐쩍 마른 웨이터가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뼈만 앙상한 놈이었다.
흔히 말하는 미이라 스타일이었다.
시체처럼 생긴 작자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깊은 잠에 취한 아가씨가 보였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룸 밖으로 나갔다.
희안하게도 경호원들 역시 깊은 수면 상태에 빠져든 상태였다.
결국 김태구 경호팀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30분 후.
김태구가 룸에 나타났다.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일단 저 시체처럼 생긴 웨이터의 상태를 확인해 보세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웨이터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직후 안도하는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거 같습니다."
"지금 당장 웨이터랑 아가씨, 경호원들을 대영병원 VIP 병동으로 이송하세요."
"네. 부회장님."
다음날.
상지원에 CIA 요원인 크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두장의 사진이 들려있었다.
한장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고, 다른 한장에는 미이라 스타일의 웨이터가 드러나 있었다.
두장의 사진을 자세히 살피자 같은 인물의 사진이었다.
얼굴이 똑같았다.
크리스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부회장님이 병원에 입원시킨 웨이터가 누군지 아십니까?"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중국 국가안전부의 묵청기라는 놈입니다."
"이상하네요. 그런 놈이 왜 내 옆에서 시체같은 몰골로 발견된 거죠?"
"저희도 그 점이 이상해서 본격적으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묵청기의 신병을 우리에게 양도해 주십시오."
"원하신다면 묵청기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별말씀을. 서로 돕고 살아야죠. 하하..."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크리스가 나가자마자 대영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원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양놈들이 병원으로 갈겁니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시체처럼 생긴 개자식을 내어주세요."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부회장님.
전화를 끊은 뒤 풀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풀장에 뛰어들자마자 자유형 방식으로 힘차게 전진했다.
평소보다 배 이상 빠른 속도로 백미터를 통과했다.
말이 안되는 현상이었다.
거의 현역 수영선수에 버금가는 속도였다.
수영을 끝마치지마자 헬스 3대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강력한 기운이 대뇌피질을 성난 야생마처럼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런 탓일까, 절로 기분이 좋아졌자.
내 체력과 파워가 날이 갈수록 좋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헬스 3대 총합 중량 1000KG을 가뿐히 들어올렸다.
믿기 힘든 일대 쾌거였다.
그렇지만 이건 명백한 현실이었다.
하늘에 오를 듯 기분이 좋아졌다.
강한 남자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
대영병원 VIP 병동에 일단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병원장의 양해하에 비밀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묵청기를 모처로 이송했다.
CIA의 서울 안가.
지하 취조실에 묵청기가 나타났다.
크리스는 그의 손목 정맥에 자백 유도제를 투입했다.
잠시 뒤, 청기의 입에서 이해못할 언사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중국계 CIA 요원이 묵청기의 자백을 영어로 통역했다.
"내가 일평생 축적한 귀한 내공을 김한빈이 모두 훔쳐 갖다! 놈을 반드시 죽여버릴테다! 내가 일평생 축적한 귀한 내공을 김한빈이 모두 훔쳐 갖다! 놈을 반드시 죽여버릴테다...!"
크리스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그려졌다.
"저 말 밖에 안하는 건가?"
"네. 저 말만 앵무새처럼 무한반복하고 있습니다.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거 같습니다."
요원의 그같은 보고에 크리스 역시 동의했다.
묵청기는 이성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놈을 용산에 있는 미군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네. 지부장님."
***
아레나 클럽에서 괴랄한 현장을 목격한 이후 내 육체는 어마무시할 정도로 강해졌다.
헬스 선수들을 능가할 정도의 괴력과 수영 선수에 버금가는 스피드를 과시한 탓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심경으로 상지원 육상트랙을 돌기로 마음먹었다.
내 육상 스피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김태구 경호팀장이 보는 앞에서 1백미터 주로를 쏜살같이 내달렸다.
전속력으로 내달렸지만 별로 숨이 차지 않았다.
기분 좋은 현상이었다.
그때, 김태구가 놀란 얼굴로 외쳤다.
"무려 10.74초를 기록했습니다. 이 정도면 한국 100미터 육상선수 레벨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부회장님."
그의 찬사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곧바로 400미터와 1천미터 기록 도전에 나섰다.
나는 그날, 한국 육상 선수에 버금가는 기록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
CIA 서울 안가.
크리스는 홍차를 음미하며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가 미국과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경제, 정치 뉴스를 두루 살필 찰나, CIA 요원이 눈 앞에 나타났다.
"용산 미군 병원으로 이송한 묵청기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크리스가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병명은?"
"영양실조라고 하더군요."
그의 얼굴에 황당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날 오후.
용산 미군 병원 영안실에 크리스가 나타났다.
그는 영양실조로 사망한 묵청기의 시신을 물끄러미 관찰한 뒤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주치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영양실조로 사망한 겁니까?"
"급성 영양실조로 사망한게 확실합니다. 저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 많이 놀랐습니다."
크리스는 묵청기의 사망 원인이 한빈과 관련있다고 직감했다.
그런 탓일까, 그의 뇌리에 한빈의 해맑은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다.
크리스는 병원을 벗어나자마자 상지원으로 직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