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한국 땅에서 함부로 설치지마라
중국놈들이 나를 노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중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에서 내 목숨을 타겟팅하는 중이었다.
한편으로는 놈들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기대신 내공 고수를 동원한 탓이다.
물론 일반이었다면 그들이 동원한 내가고수에게 목숨을 잃었겠지만, 나는 과거를 무려 두번이나 회귀한 특이한 생명체였다.
그런 까닭에 일반인들과 매우 다른 신체구조를 갖게 되었다.
전신의 혈맥이 사통팔달처럼 뻥 뚫린 탓이다.
그리고 기를 느끼는 감각이 일반인보다 수천 수만배 이상 뛰어난 상태였다.
단학 서적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또한 내가고수들의 내공을 무의식적으로 강제탈취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마도, 내 위대한 신체구조 덕분인거 같았다.
그건 그렇고, 삿뽀로에서 휴가를 즐기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중국놈들이 총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주일 만에 서울로 급거 귀환하기로 마음먹었다.
***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중국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기로 작심했다.
내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CIA 한국 지부장인 크리스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의 도움을 받기위해서,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정하자마자 이수경 경리팀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오후 무렵.
이수경이 상지원 접견실에 나타났다.
그녀의 양손에는 돈가방 두개가 들려있었다.
"말씀하신대로, 미화로 200만불(24억)을 찾아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만 나가보세요."
"예. 부회장님."
그녀를 내보낸 뒤 크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밤.
상지원 접견실에 크리스가 나타났다.
거두절미하고 그에게 말했다.
"한국에서 암약 중인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특수요원들의 신상파일을 저에게 넘겨주십시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들은 주권국가인 한국 정부와 한국인을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내 말은 계속됐다.
"경고하는 차원에서 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크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부회장님의 사적인 복수에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거 아닙니까?"
"얼마전에도 황장청 지부장을 부회장님이 처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IA 요원이라 그런지, 크리스는 모르는 게 없었다.
"잘 아시는군요."
"부회장님이 황정청과 왕청애의 피살 사건에 연루된 정황을 이미 파악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마십시오."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 차례였다.
테이블 위에 돈가방 2개를 올려놓았다.
"2개의 가방에는 현찰로 2백만불이 들어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협조한다면 이 돈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크리스 역시 내 돈을 거부하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언제나 돈이 우선한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크리스는 한가지 단서조항을 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딱 한명만 처리하십시오. 그 이상은 불가합니다."
"그럼 할수 없군요. 국가안전부의 한국 지부장을 저에게 넘겨주십시오."
"좋습니다."
크리스는 그리 확답한 뒤 돈가방 두개를 들고 상지원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신강 우르무치 모처.
수천명의 소년소녀들이 거대한 지하 석실에서 내공 수련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먼 발치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중년 남자 초패천의 얼굴에는 불만이 그득했다.
'기를 감지하는 년놈들이 1%도 안된다니... 저런 둔재들을 데리고 내공 수련을 어떻게 시키라는 말이냐!'
그는 속으로 짙은 장탄식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림과 화산, 무당의 귀한 내공법문을 수년동안 가르쳤지만, 구결을 이해하는 년놈들이 손에 꼽을 지경이다. 게다가 저들은 내공에 좋다는 수많은 영약을 복용했음에도 여전히 소주천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있구나!'
초패천은 천살단의 총교두였다.
그는 수련생들의 내공 증진을 책임진 인물이었다.
내공 수련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기를 느낄 수 있는 인재가 극소수에 불과한 탓이다.
하지만 중국 국가안전부는 내공 고수를 육성하는데 혈안이었다.
중국과 해외 도처에서 활약하는 반체제 인사들과 중국의 국익에 위협이 되는 인사들을 소리소문 없이 암살하는데, 내공 고수를 적극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그들은 점혈법에 주목했다.
증거가 전무한 완벽한 살행을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혈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최소 1갑자(60년) 이상의 내가공력이 필수였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내기를 체외로 발출 할 수 있었다.
허나, 국가안전부는 수십년 동안 천문학적인 자금과 인력을 투입했음에도 제대로 된 내공 고수를 육성하는데 거의 실패한 상태였다.
묵청기와 요도강 두명 외에는 이렇다할 고수를 배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 모두 낯선 타향에서 비명횡사를 당하자 국가안전부와 천살단은 총비상이 걸렸다.
초패천은 살얼음판을 거니는 듯한 불안한 심경이었다.
천살단 자체가 폐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돈은 돈대로 들이면서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 탓이다.
초패천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그에게 있어 천살단이라는 존재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대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공 기재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안전부에서 내려보낸 막대한 예산을, 지난 수십년 동안 중간에서 횡령해오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천살단의 존속을 꿈속에서조차 염원할 정도였다.
결코 놓칠 수 없는 그만의 꿀단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만사는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천살단 수련장에 갑자기 나타난 국가안전부 고위 간부의 입에서 스산한 언사가 흘러나온 탓이다.
"앞으로 이 곳은 생화학무기 연구소로 재활용할 예정이니까 이번 달 안으로 기지를 비우시오."
초패천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고위 간부의 말이 장내에 재차 울려퍼졌다.
"상부에서는 돈은 돈대로 먹으면서 성과가 극히 미약한 천살단을 헤체하기로 결정하였소."
그러자 초패천의 입에서 반박조의 언사가 흘러나왔다.
"우리 천살단은 그동안, 중국에 반하는 년놈들을 수백명 이상 격살한 전적이 있습니다."
"그거야 이미 옛날 얘기지 않소? 요도강과 묵청기가 죽은 마당에 이런 얘기를 왜, 꺼내는 거요?"
초패천은 간부의 말을 재차 반박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인지 초라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
박종태 실장을 대동한 채 인천 항만의 컨테이너 창고로 들어서자 크리스와 서너명의 CIA 요원이 우리 일행을 반겼다.
크리스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국가안전부의 한국 지부장을 잡아왔습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CIA 요원들을 눈짓하며 입을 열었다.
"저 진구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부회장님이 준 돈을 저들과 나눈 상황이니, 믿어도 좋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테니 이만 가보십시오."
"나중에 뵙겠습니다."
크리스는 그말을 끝으로 일행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박종태를 컨테이너 밖에 대기시킨 뒤 나 홀로 안으로 들어갔다.
컨테이너 안에는 철제의자에 온몸이 결박당한 중년 남자가 있었다.
황장청의 후임인 주홍치 한국 지부장이었다.
아쉽게도 그는 내 손에 죽을 운명이었다.
주홍치는 이미 인사불성이었다.
크리스가 수면제를 투약한 탓이다.
그의 앞으로 다가서자마자 강력한 주먹을 안면에 쑤셔넣었다.
순간 그의 머리통이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가며 시뻘건 핏물과 허연 뇌수가 장내를 뒤덮었다.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내공 때문이었다.
내가 휘두르는 주먹에 자연스럽게 막강한 내력이 실린 탓이다.
암튼 그 덕분에, 내가 걸친 양복과 얼굴이 주홍치의 더러운 핏물로 얼룩졌다.
양복을 벗어던진 뒤 컨테이너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 후, 박종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준비된 드럼통에 놈을 넣으세요."
종태가 경악한 얼굴로 주홍치의 시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머리가 산산이 박살난 탓이었다.
잠시 뒤, 제정신을 차린 그가 놈의 시신을 드럼통에 신속하게 집어넣었다.
그 후, 서해 앞바다에서 주홍치의 시체를 처리했다.
***
중국 외교부가 청와대에 비공식적인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그런 까닭에 청와대는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보기관의 한국 지부장이 연달아 두명이나 행방불명된 탓이다.
결국 청와대는 이번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김한빈을 조사하기 위해 국정원장을 상지원으로 급파했다.
***
국정원장이 상지원을 방문했다.
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접견실에서 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를 갑자기 찾은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국정원장이 냉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황장청과 주홍치라는 중국인들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전혀 모르는 인물인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으시는 거죠?"
그는 내 물음에 이렇다할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역공을 가했다.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저를 대상으로 수차례 암살시도를 해왔습니다."
그가 해연히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말씀이 정말 입니까?"
"사실입니다. CIA의 서울 지부장인 크리스에게 물어보시면 내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경고 차원에서, 경호원들이 중국인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황장청과 주홍치의 실종에 부회장님의 경호원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중국 놈들이 한국 경제계 인사를 암살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처사 아닙니까?"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한국은 엄연히 주권국가로서 외국 정부의 자국민 위협에 대해서, 분연히 맞서 싸워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국정원장은 꿀먹은 벙어리 신세로 전락한 채 머리를 푹 숙였다.
한심한 작자였다.
중국놈들한테 꼼짝 못하는 전형적인 친중 사대 주의자였다.
***
상암 켄싱턴 빌딩.
129층 사무실에서 하라는 일은 안하고, 단학서적 탐독에 열을 올렸다.
이 책은 내공의 각 단계별로 일어나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내공이 4갑자에 이르면 환골탈태가 가능해지며, 5갑자에 도달하면 전신이 은강불괴지체로 진화하고 도검류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진다.>
<내공이 6갑자에 도달하면 금강불괴지체로 진일보하며 총기류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진다.>
<내공이 7갑자를 돌파하면 연신합허의 경지에 도달한다.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며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
<내공이 8갑자를 돌파하면 연신합도에 경지에 든 것이다. 축지성촌의 공능이 발현된다.>
<내공이 9갑자에 도달하면 축지성촌을 능가하는 축지법의 길이 열리며, 신체 내부에서 원영체(분신)가 생성된다.>
<내공이 10갑자에 도달하면 원영체를 완성할 수 있으며 체외로 배출이 가능해진다. 원영체는 육과 영이 공존하는 거룩한 신체로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시전자가 원하는 곳으로 원영체를 투사하면 그 즉시 그곳으로 이동하게 되며, 원영체가 경험하는 모든 내용을 시전자는 즉각적으로 알게된다.>
<내공이 12갑자를 돌파하면 원영체를 2개 이상 만들 수 있으며 과거 혹은 미래로 보낼 수 있다.>
<내공이 17갑자를 돌파하면 천년내공을 완성한 것이다. 그럴 경우 원영체를 최소 100개 이상 완성할 수 있으며 시공간조차 초월한다.>
<번외: 70억분의 1의 확률로 천무성골지체(天武聖骨之體)가 출현한다. 천무성골지체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해처럼 드넓은 경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신체 조건을 타고난 덕분에 일반인보다 수십 수백배 이상의 속도로 내공을 축기 할 수 있다.>
<그들은 단 1년만 폐관수련을 하여도 100년 이상의 내공을 축기할 수 있으며 10년 동안 폐관수련을 한다면, 수천년에 달하는 경이적인 내공 또한 완성할 수 있다.>
믿기지 않는 내용들이 길게 나열된 책자였다.
당연히 내 관심은 원영체에 집중됐다.
원영체는 쉽게 말해서 분신이었다.
게다가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였다.
물론 백프로 믿지는 않았지만, 솔깃한 내용이었다.
책은 내려놓고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자 황금빛으로 물든 단단한 구체가 심상에 포착됐다. 3갑자가 넘는 내공이라는 느낌이 왔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단전에 의식을 집중해서 그런지, 온몸의 경맥을 영활하게 헤엄치는 기운이 저절로 감지됐다.
녀석은 하루종일 임독과 독맥, 백회혈을 비롯한 대맥과 미세한 혈맥을 쉼없이 무한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때문일까, 온몸이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쾌적해지는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안락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