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월드 베스트 스트롱맨
상암동 켄싱턴 빌딩 129층 부회장실.
대영전자의 김동재 사장이 구두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애플의 아이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의 보고는 계속 됐다.
"북미와 유렵, 아시아, 중남미 전역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중장년 층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이폰은 출시하자마자 전 세계인들을 열광시켰다.
손 안의 컴퓨터를 완벽하게 구현한 탓이다.
자유로운 인터넷과 고음질의 사운드, 수준 높은 카메라 성능을 일신에 완비한 까닭이다. 물론 이미 예상한 일이라 별로 놀랍지 않았다.
이제 대영전자에서도 스마트폰을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시점이었다.
김동재에게 나직한 어조로 물었다.
"토네이도 스마트폰의 양산을 언제부터 시작할 예정입니까?"
"3분기에 초도 물량이 시장에 풀릴 겁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최적화와 카메라, 음질을 향상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이만 나가보세요."
"네. 부회장님."
동재는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사무실에서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비서실에 콜을 넣었다.
"중화요리를 시키세요."
여비서가 고운 목소리로 응대했다.
-뭘로 주문할까요?
"쟁반짜장과 짬봉, 군만두를 주문하세요."
-예. 부회장님.
***
중화요리로 배를 채운 후 흡연과 커피를 즐기며 나른한 휴식을 취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하동균 비서팀장이 다급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놀란 얼굴이죠?"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즉답했다.
"대검 공안부 검사들이 압수수색 영장을 갖고 왔습니다."
"그래서요?"
"부회장님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대검 공안부고 나발이고 내 알 바 아니었다.
곧바로 김태구 경호팀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대검 수사관과 검사들이 사무실에 진입 못하도록 철통같이 막으세요."
그러자 김태구가 걱정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권력에 대항하실 생각이십니까? 더구나 대검찰청입니다."
"대검이고 나발이고 당신은 내 명령대로 움직이십시오."
그리 말하며 강렬한 안광을 내비치자, 김태구의 얼굴에 두려운 표정이 번져갔다.
내 살인적인 눈빛에 지레 겁을 먹은 눈치였다.
그런 탓인지 내 명령에 순순히 복명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김태구가 사무실에서 사라지자마자 이태강에게 전화를 돌렸다.
"대검 공안부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왔는데, 이유가 뭡니까?"
수화기에서 태강의 놀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말이 정말인가?
"그럼 내가 형님한테 없는 말이라도 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퉁명스레 대꾸한 뒤 재차 입을 열었다.
"긴말 안하겠습니다. 대검 친구들을 지금 당장 불러들이세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대검은 내 권한 밖이라...
"그럼 총장이라도 구워삶으세요. 그 정도 요령도 없으면서 차차기 대권을 노리시는 겁니까?"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머지는 태강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그의 능력이라면 이 정도 사안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
이태강은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상전이나 마찬가지인 김한빈 때문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빈의 사무실에 몰려간 대검 공안부 검사와 수사관들을 원대복귀 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태강의 입장에서는 지상최강의 사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탓일까, 그는 무작정 대검찰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검찰 총장과 담판을 짓기 위함이었다.
대검에 도착한 태강은 검찰 총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잠시 뒤, 그는 총장과 단 둘이 독대를 가졌다.
태강의 입에서 단도직입적인 언사가 흘러나왔다.
"김한빈 부회장의 사무실에 몰려간 공안부 친구들에게, 원대복귀하라는 명령을 하명해 주십시오."
그러자 총장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는 할 수 없네. 법원에서 정식으로 영장을 발부받은 사안이라."
"김한빈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차기 대통령이 확실시되는 이영박 후보가 있습니다. 그뿐인지 아십니까? 미국 정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담 페런 상원의원과 월가의 거물들이 그 친구를 후원하고 있단 말입니다!"
태강은 언성을 높이며 한빈의 어마어마한 뒷배경에 대해서 나름 소상하게 피력했다.
그런 때문일까, 총장의 얼굴에 고심이 역력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총장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안보실에서 동시에 특명이 내려왔네."
"그들이 원하는 게 뭐랍니까?"
"공안부 수사팀을 동원해서 김한빈이 함부로 설치지 못하도록 경고조치를 취하라고 그러더군."
태강은 저간의 사정을 단박에 파악했다.
"중국 정보요원이 행방불명된 사건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자네도 뭔가를 아는 건가?"
"그 문제라면 총장님은 관여하지 마십시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질수도 있으니까."
"흐으음..."
총장의 입에서 깊숙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임기를 무사히 마무리 지은 뒤 대형로펌의 고문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런 탓인지 평지풍파를 유난히 경계했다.
"지금 당장 공안부 식구들을 대검으로 불러들이세요. 김한빈 그 친구를 건드리시면 총장님한테 좋을 일이 없습니다."
태강은 그리 말하며 쏘는 듯한 눈빛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개자식이 이영박과 친하다고 나를 우습게 아는구만.'
총장은 속으로 태강을 욕하면서도 차기 정권의 실세로 등극할 것이 확실시되는 그의 조언을, 못 이기는 척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네의 말대로 하겠네. 대신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말게."
"잘 생각하셨습니다. 선배님. 하하하하...!"
태강의 입에서 흡족한 웃음이 길게 울려퍼졌다.
***
상암 켄싱턴 빌딩.
129층 사무실에서 결재서류에 부회장 직인을 차례로 날인할 무렵, 하동균 비서팀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공안부 검사와 수사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썰물처럼 사라졌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박은영 비서팀장은 어딜 간 겁니까? 오늘 하루 종일 안보이던데?"
그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웨딩 사진을 촬영하려고 월차를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웨딩 사진이라면, 박팀장이 조만간 결혼할 거라는 말씀인가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내 여비서 노릇을 수년동안 해왔던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생각하자 조금 서운한 심경이었다.
그런 내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하동균에게 재차 물었다.
"신랑될 남자는 뭐하는 사람이죠?"
"재경직 사무관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름 엘리트와 결혼하려는 모양이었다.
물론 더 이상의 관심은 불필요했다.
하동균을 내보낸 뒤 창가로 걸어갔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선남선녀 직장인들이 빌딩 앞에 조성된 공원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광경이 시야에 포착됐다.
저들 가운데는 미혼의 사내커플은 물론, 가정이 있는 유부남 유부녀 커플도 다수 있을 터였다. 안봐도 비디오였다.
대영전자와 대영자동차는 대한민국 최고의 직장이었다.
고액 연봉은 물론이고, 수준 높은 사내복지를 임직원에게 두루 제공하는 탓이다.
그건 그렇고, 선남선녀 동료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광경을 목도하자, 나 역시 저들 중의 한명이 되고픈 욕망이 내면에서 활화산처럼 분출됐다.
하동균을 다시 면전에 불러들였다.
눈 앞에 나타난 동균에게 창 밖을 손짓하며 내 의중을 솔직히 밝혔다.
"젊은 직원들과 오붓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데, 쓸만한 방법이 없을까요?"
그는 내 말의 요지를 단박에 이해했다.
그런 탓인지 내가 원하는 내용을 금세 입 밖으로 내뱉었다.
"대영전자와 자동차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내 동아리는 산악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당연히 20대와 30대를 주축으로 하는 산악회도 있습니다. 부회장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여직원들의 참가비율을 말씀해 보십시오."
"젊은 세대라서 참가 비율이 의외로 높습니다. 거의 40%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내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마음에 드는군요. 이번 주말에 지리산 천왕봉을 같이 등반하는 것으로 일정을 짜보세요."
"예. 부회장님."
이번 기회에 젊은 직원들과 돈독한 친교를 맺기로 굳게 다짐했다.
일요일 오전.
나를 태운 롤스로이스 팬텀이 지리산 입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대영자동차와 대영전자의 20대 30대 직원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그들을 휘 둘러보자 하동균의 말처럼 40프로 정도는 여직원이었다.
그런 탓일까, 내 입가에 절로 흡족한 미소가 번져갔다.
4열 종대로 늘어선 그들을 향해 중저음의 바리톤을 묵직하게 내뱉었다.
"모두 즐겁게 산행하는 자리니까,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천왕봉까지 등반합시다."
내 발언이 끝나자마자 좌중의 입에서 일사불란한 복명이 흘러나왔다.
"네! 부회장님!"
잠시 후, 우리는 천왕봉을 목표로 힘차게 출발했다.
***
나는 단 20분 만에 천왕봉 정상에 도착했다.
반면 비서진과 경호원, 직원들은 여전히 산 중턱을 힘겹게 오르는 중이었다.
확실히 내 체력과 스피드는 전 세계 최강이었다.
천왕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참으로 운치가 있었다.
짙은 운무와 푸른 하늘이 눈 앞에서 춤을 추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그렇게 내가 천왕봉 정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온몸으로 만끽할 찰나. 직원들과 경호원, 비서진들이 속속 정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김밥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하며 정겨운 한 때를 오롯이 즐겼다.
물론 내 시선은 음주가무에 여념이 없는 이쁘장한 여직원들에게 모아졌다.
생각 외로 대영전자와 대영자동차에는 미녀들이 많았다.
훌륭한 사내복지와 높은 연봉 때문인거 같았다.
당연히 그녀들은 내 주변에 몰려든 채 나를 황제처럼 떠받들었다.
"부회장님을 실물로 뵈니까, 소문보다 더 잘생기신거 같아요. 호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부회장님은 얼굴도 미남이시고 체격도 정말 근사해요. 꺌꺌꺌..."
"부회장님같은 남친이 있으면 정말 좋을거 같아요."
"나도 부회장님같은 남자친구가 있으면 소원이 없을거에요."
"저도 부회장님처럼 근사한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다른 무엇보다 부회장님의 우수에 찬 눈빛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부회장님의 고독한 눈빛이 너무 좋아요."
그녀들은 꿈꾸는 듯한 눈망울을 과시하며 나를 홀린 듯 올려다봤다.
나에게 홀딱 반한 눈치였다.
반면 젊은 남직원들은 여직원들이 온통 내 주변에만 모여있자, 부러움 반 시샘 반의 표정을 지으며 우리 쪽을 노골적으로 훔쳐보았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들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데 전심전력했다.
***
등산을 끝마치고 서울로 복귀하자마자 아레나 클럽으로 직행했다.
내 체력은 전 세계 최고였다.
그까짓 등산 한번 했다고 축날 몸이 아니었다.
아레나에 들어서자마자 스테이지로 향했다.
감각적인 EDM 뮤직에 온몸을 내맡긴 채, 격렬한 춤사위를 쉴 새 없이 과시했다.
그런 탓일까, 내 주변에 잘노는 아가씨들이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나와 안면이 있는 그녀도 있었다.
우리는 부비부비를 만끽한 뒤 인근의 호텔로 자리를 이동했다.
다음날.
지갑에서 백만원 짜리 수표 3장을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내 돈을 냉큼 받아챙겼다.
"고마워. 오빠. 학비에 보태쓸게."
그녀는 명문대에 재학 중이었다.
놀기도 잘 놀고 공부도 잘하는 케이스였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그녀를 내보낸 뒤 나 역시 회사로 출근할 준비를 했다.
***
상암 켄싱턴 빌딩에 도착한 후 129층 부회장실로 직행했다.
사무실의 육중한 책상에 좌정한 채 모닝 커피를 차분히 음미할 무렵, 하동균 비서팀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하루 스케쥴을 구두로 보고한 뒤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오늘 제일 중요한 일과는 한국을 비공식적으로 방문한 에바 페런을 접견하는 일이었다. 기대가 되는 날이었다.
그녀에게 내 변모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계획이었다.
늦은 밤, 상지원 침실.
에바는 연신 '오마이갓'을 연발하며, 내 위대한 힘에 진심으로 열광했다.
3갑자를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내공 덕분이었다.
나는 그날, 에바에게 '월드 베스트 스트롱맨'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