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다
중국의 이창요 총리가 상지원을 방문했다.
접견실에 나타난 이창요는 나를 보자마자, 대영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중국에 설립해 줄 것을 요구했다.
개자식이 초장부터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그래서 내 심경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솔직히 말해서 귀국을 믿을 수 없습니다.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면 당신들이 기술을 탈취할 것이 뻔한거 아닙니까?"
노골적인 언사를 내뱉자 이창요가 벌개진 얼굴로 나를 쏘아봤다.
직후 목소리를 높이며 나에게 삿대질을 해왔다.
"그 말씀은 우리 대중국을 폄하하는 발언이오!"
"대중국이고 나발이고, 중국 투자에 눈곱만큼도 관심없으니까 지금 당장 상지원을 떠나십시오."
"오늘의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오!"
"그 전에, 중국 정부가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나를 암살하려한 행위에 대해서 해명을 해보십시오."
역공을 취하자 이창요가 찔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알면서 모르는 척 하실 겁니까?"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소."
"빌어먹을 공산당 개자식 아니랄까봐, 시치미를 뚝 떼는구만. 후후..."
순간 이창요가 전신을 부들거리며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그와 더 이상 나눌 말이 없었다.
중국 공상단 개놈들과는 말 자체를 섞지 말아야 한다.
그런 때문일까, 내 입에서 절로 격한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어여 내 집에서 나가라고. 빌어먹을 개자식아!"
이창요의 부들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화가 많이 난 눈치였다.
물론 내 알 바 아니었다.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김태구에게 눈짓을 했다.
그는 내 눈짓을 받자마자 이창요를 접견실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속이 후련해지는 순간이었다.
***
서교호텔 스위트룸.
이영박은 참모들에게 국내외 정세에 대해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참모진의 입에서 김한빈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한국을 방문한 중국의 이창요 총리가 상지원에서 김한빈 부회장과 만남을 가진 모양입니다."
참모의 보고에 이영박의 두눈에 진한 호기심이 떠올랐다.
"좀 더 자세히 보고해 봐."
참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말을 이었다.
"김한빈 부회장이 이창요 총리를 냉대했다는 후문이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영박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네. 이창요가 대영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중국에 설립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는데, 김한빈이 단칼에 거절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창요가 상지원에서 거의 쫒겨나다시피 했다는 목격담마저 전해지고 있습니다."
"허허...!"
영박은 한빈의 무지막지한 배포에 진정으로 감탄했다.
중국 관료들에게 납작 엎드리는 한국의 경제인들과 전혀 다른 면모를 과시한 탓이다. 그런 때문일까, 한빈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큰 일을 함께할 만한 상남자라고 확신한 까닭이다.
하지만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한빈은 오늘도 무쏘의 뿔처럼 젊음의 열기를 오롯이 만끽하는데 전심전력했다.
***
강남 아레나 클럽.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클럽에 들어서자 김창모 사장이 나를 반겼다.
그는 국내 5대 엔터회사 중의 하나인 파운데이션의 대표이사였다.
그런 탓인지, 날이면 날마다 내 앞에서 온갖 알랑바뀌를 뀌었다.
오늘도 그는 간사한 미소를 만면 가득 떠올린 채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희 회사에 투자를 해주시면 1년 안에 50% 이상의 투자이익을 약속하겠습니다."
파운데이션은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돈 들어갈 곳이 지천이었다.
하지만 나는 엔터회사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투자 얘기는 그만하고 룸에서 술이나 마십시다."
그리 말하며 4층 VVIP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은 말 잘듣는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레졸레 따라왔다.
창모가 따라준 양주를 시원하게 원셧한 뒤 1층 스테이지로 시선을 모았다.
현란한 춤사위를 과시하는 그녀들을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녀석의 간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이 좋아할 만한 여배우를 섭외해 놨습니다."
녀석은 나를 회장님이라고 호칭했다.
나름 처세술이 쓸만한 놈이었다.
"박제니란 신인 여배우가 있는데 얼굴과 몸매가 정말 대단합니다."
조금 호기심이 동했다.
"사진이 있습니까?"
그가 기다렸다는 듯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여러장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창모가 건넨 사진을 살피자 늘씬한 몸매의 미녀가 보였다.
그의 말대로 내 취향이었다.
"제가 자리를 만들어 볼까요?"
"말이 나온 김에 오늘 만나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녀석은 그리 확답한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1시간 후.
박제니가 룸에 나타났다.
그녀는 섹시한 미니 드레스 차림이었다.
제니는 나와 창모에게 조신하게 인사한 뒤 내 곁에 자리를 잡았다.
녀석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보내자, 룸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그녀는 내가 따라준 술을 거부하지 않고 단숨에 들이켰다.
호구조사를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나이는?"
그녀가 즉답했다.
"20살이요."
"학교는?"
"이하여대에 다니고 있어요."
"나름 공부를 잘했나보네."
"조금 하는 편이죠."
"남친은 있고?"
"있어도 없어야죠. 호호..."
"출연한 작품이 뭐지?"
"아침 드라마랑 영화에 단역이랑 조연으로 출연하게 전부죠. 새파란 신인배우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배우 생활은 할만해?"
"당연히 할만하지 않죠. 그렇지만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저도 인기 여배우가 될수도 있겠죠."
그녀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마음에 들었다.
얼마 후, 우리는 인근의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
이영택 집사가 한강변에 나타났다.
얼마후 그는 강변 벤치로 발걸음을 이동했다.
그 곳에는 장동현이 있었다.
이영택이 보고를 올렸다.
"이성호 회장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골프만 치고 있습니다. 회사 출근도 거의 안하는 눈칩니다."
"다른 특이 사항은 없습니까?"
"별다른 건 없고, 여자 연예인을 스폰하는거 같았습니다. 한남동에 여러번 데리고 오더라구요."
"와이프가 아무말 안하던가요?"
"별거한지가 벌써 1년이 넘은 관계라... 사실상 이혼상태죠."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이성호를 유심히 지켜봐 주십시오."
장동현은 두툼한 돈봉투를 이영택에게 전달했다.
동현은 상암동 빌딩에 도착하자마자 129층 부회장실로 올라갔다.
그는 한빈에게 이영택을 만난 일을 자세히 보고했다.
***
대영유통의 백화점 부문을 이성준에게 단돈 6천억에 넘겼다.
그 반대급부로 그룹의 지주회사인 대영물산 지분 12%를 추가로 획득했다.
안정적인 과반수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허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 시점이었다.
대영물산이 직간접으로 보유한 대영전자 지분이 겨우 31%에 불과한 탓이었다.
물론 국민연기금과 굵직굵직한 기관 투자자 그룹을 우호세력으로 확보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그들이 하루아침에 표변할 가능성이 상존한 까닭이다.
가장 확실한 경영권 방어수단은 대영전자의 지분을 50% +1주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 자금이 필요했다.
늦은 밤.
상지원 접견실로 이성철 미래전략 본부장을 호출했다.
면전에 나타난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영전자가 보유한 사내유보금이 어느 정도죠?"
"47조원 수준입니다. 그 중에서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은 31조원 내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31조원 정도를 대영전자 자사주 매입에 투입하십시오."
성철이 난색을 표명했다.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공장을 대대적으로 증설할 계획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사주 매입에 31조원을 쏟아붓는다면, 공장 증설이 물거품이 될 겁니다."
골치 아픈 순간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사재를 투입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애플과 ARM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아마존과 페이스북에 대규모 지분 투자를 감행한 덕분에 스위스 은행의 비밀 계좌가 거의 바닥난 상황이었다.
물론 국내 증시에 투자한 5조원 대의 사모펀드가 있었지만 아직 차익실현을 못한 상태였다.
그때, 성철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사주 매입을 뒤로 미루시는 게 어떨런지요?"
"생각을 좀 해봅시다. 이만 가보세요."
"예. 부회장님."
그를 돌려보낸 뒤 돈 나올 구멍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대영전자를 제외한, 대영그룹 총 계열사의 사내유보금에 절로 관심이 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영그룹 총 계열사의 유보금은 수조원 내외에 불과했다.
대영전자 외에는 이렇다할 흑자를 기록한 기업이 없었던 탓이다.
결국 국내 증시에 투자한 5조원 대의 사모펀드 자금을 대영전자 주식을 매집하는데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
상암 켄싱턴 빌딩.
나는 점심도 거른 채 129층 사무실에서 열일 중이었다.
차명으로 설립한 사모펀드 명의로 대영전자 주식을 5조원 가량 매입하기 위함이었다.
전체 주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2.5% 수준이었다.
이로써 내가 직간접으로 확보한 대영전자 지분은 33.7%에 육박했다.
하지만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과반수 지분에 여전히 많이 부족한 탓이다.
내가 즉시 사용가능한 현금은 3조원 안팎이었다.
반면 돈 쓸 곳은 지천으로 널린 형국이었다.
하루빨리 현금을 대거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것보다는 대영투자신탁의 수탁잔고를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면전에 나타난 하동균 비서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영투자신탁의 유정복 사장을 호출하세요."
"예. 부회장님."
40분 후.
유정복 사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대영투자신탁의 수탁잔고가 어느 정도죠?"
그가 즉답했다.
"13조원 가량입니다."
"어느 종목에 투자를 하신 겁니까?"
"대다수 중국을 필두로 한 브릭스 종목에 투자했습니다."
"브릭스 종목에 투자한 자금을 모두 회수하세요."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브릭스 종목에서 회수한 13조원 전액을 대영전자에 투자하십시오."
유정복이 난색을 표명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13조원을 대영전자에 몰빵한다면 금감원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금감원이고 나발이고 내 말대로 하십시오. 유정복 사장님."
"이번 결정을 한번만 재고해 주십시오. 부회장님."
"그러지 않겠다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가 결연한 얼굴로 답했다.
"대영투자신탁의 자산운용 권한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자산운용에 관해서 더 이상 관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유정복은 나를 우습게 아는 눈치였다.
그래서 따끔하게 일갈했다.
"유 사장님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나을거 같군요. 좋습니다. 당신이 원하는대로 해드리죠. 이만 나가보세요."
그의 만면 가득 망연자실한 표정이 번져갔다.
내 말의 진의를 금세 파악한 눈치였다.
그런 탓일까, 언제 그랬냐는듯 갑자기 사무실 바닥에 털썩 무릎을 끓었다.
직후, 그의 입에서 구슬픈 목소리가 줄기차게 흘러나왔다.
"제가 잠시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부회장님.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제발...!"
재밌는 양반이었다.
하지만 그를 용서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일벌백계 차원이었다.
내 앞에서 함부로 처신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못을 박을 생각이었다.
결국 유정복은 경호원들에게 짐짝처럼 끌려나갔다.
자업자득이었다.
주제파악을 못한 탓이다.
***
상지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대영투자신탁의 신임 사장을 선임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그렇지만 이렇다하게 마음에 드는 작자들이 없었다.
그때, 이서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미술관으로 나를 초대했다.
결국 오르세 미술관 쪽으로 차를 돌렸다.
오르세 미술관에 들어서자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구입한 피카소와 반고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모두 내 돈으로 구입한 작품이었다.
반고흐의 자화상에 시선을 고정할 찰나, 정장룩 차림의 이서연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내비치며 고운 목소리로 인사를 해왔다.
"미술관에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부회장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연의 고혹적인 미모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런 탓일까, 그녀가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오늘 시간이 되시면 제가 저녁을 사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래주시면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하하하하..."
내 입에서 절로 흐뭇한 웃음 소리가 길게 흘러나왔다.
***
이서연과 저녁식사를 함께한 뒤 상지원으로 들어갔다.
상지원의 잘 조성된 너른 정원을 거닐며 향후 계획을 면밀히 강구했다.
나는 이영박 정부가 시작되자마자 원자력 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 후, 대영중공업이 원자력 발전소를 자체적으로 운영할 방침이었다.
이영박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분야였다.
물론 그는 내 돈을 5천억이나 받아먹은 인간이라, 대영중공업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원자력 발전소는 차세대 신수종 사업이었다.
발전소 1개당 매년 수천억대의 순이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미국과 유럽, 일본은 원자력 발전소를 대다수 민간기업이 운영하고 있었다.
허나, 한국은 국영기업인 한전의 이익에 반하는 처사라며, 원전 분야에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걸,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