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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111화 (111/175)

111화 필리핀 팔라완섬

한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달달한 칵테일을 음미하며 향후 계획을 면밀히 검토했다.

리맨브러더스는 내가 차명으로 설립한 글로벌 에너지 인베스트먼트(GEI)에 200억불을 신용 대출했다.

글로벌 에너지 인베스트먼트는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이 에너지 분야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였다.

대영물산에 내가 보유한 해외 유전과 가스전을 매각하는데, 주로 활용된 사모펀드였다.

나는 리맨브러더스에 유전과 가스전을 대규모로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200억불을 대출받았다. 그런 이유로 서류상 아무런 하자가 없도록 후속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유전과 가스전의 매입 가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전부 소진할 계획이었다.

그 후, 때가 되면 글로벌 에너지 인베스트먼트를 파산시킬 예정이었다.

리맨브러더스의 대출금을 적법하게 떼먹기 위함이었다.

더구나 그들 역시 1년 후에 파산할 운명이라, GEI의 정밀 내사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리맨브러더스의 약점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먼저 먹는 놈이 임자였기 때문이다.

***

한남동 상지원에 도착하자마자 대영물산의 해외자원 개발팀장인 김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밤.

상지원 접견실에 들어서자 김정수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부회장님."

육중한 책상에 좌정한 뒤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동남아와 호주에 산재한 싸구려 유전과 가스전의 목록을 만들어서 보고서로 제출하세요. 당연히 업계약이 가능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보고서가 완성되는 즉시 상지원으로 갖고 오세요. 당분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니까."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김팀장은 허리를 공손히 숙인 뒤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를 내보낸 뒤 클럽에서 만난 그녀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

상지원에 조성된 국제규격의 풀장에서 여유로이 수영을 즐길 무렵, 김태구 경호팀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대영물산의 김정수 팀장이 도착했습니다."

"접견실에서 대기하라고 전하세요."

"네. 부회장님."

수영을 끝마친 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환복했다.

그 뒤, 접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접견실에 들어서자 김정수가 공손히 인사를 해왔다.

그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김팀장이 제출한 보고서가 놓여있었다.

보고서를 살피자 대여섯개에 달하는 유전과 가스전의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내 시선은 필리핀 팔라완섬 대륙붕에 절로 모아졌다.

팔라완섬의 대륙붕은 방대한 양의 유전이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었다.

허나, 전 세계 유수의 석유시추 업체들이 20년 동안 개발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이렇다할 성과가 전무한 곳이었다.

그런 탓인지 유전 개발권이 한화로 천억 내외를 형성하고 있었다.

업계약을 이용해서 가격을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 입장애서는 안성맞춤인 유전이었다.

보고서를 서랍 안에 집어넣은 뒤 면전에 서 있는 김팀장에게 명을 내렸다.

"팔라완섬의 유전 지대를 답사할 계획이니까, 신속하게 준비를 하세요. 그리고 비밀리에 추진하는 사업이니까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마십시오."

"예. 부회장님."

***

회사로 돌아온 김정수는 최상우 과장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부회장님이 팔라온섬의 유전지대를 답사할 계획이니까, 최과장도 출장을 떠날 채비를 해둬."

"필리핀 팔라완 섬을 말하는 겁니까?"

"그래."

"그 지역은 치안이 나빠서 무장 경호원이 없으면 이동을 제대로 못하는 동네 아닙니까?"

최상우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자, 김팀장이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대꾸했다.

"잘 아는 현지 보안업체가 있으니까 그들에게 경호업무를 의뢰하면 된다고. 그러니까 쓸데없이 걱정하지마라."

그제야 최상우가 납득한 얼굴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현지 보안업체 섭외는 팀장님이 하십시오. 대신 저는 현지 업체와 사전 협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극비리에 하는 사업이니까, 이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마라."

"명심하겠습니다."

***

경기도 용인의 골프장에서 라운딩에 몰두할 즈음, 김정수 팀장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18홀을 돌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샐러리맨의 참다운 모습이었다.

라운딩을 끝마친 뒤 김팀장과 골프 카트에 나란히 몸을 실었다.

우리를 태운 카트가 방대한 면적의 골프장을 천천히 맴돌았다.

옆에 동승한 그에게 물었다.

"준비는 잘 되가고 있습니까?"

"네. 현지 보안업체와 가이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인가요?"

"믿으셔도 좋습니다."

"출국 날짜를 이번주 안으로 정합시다."

"목요일에 출국하는 것으로 일정을 계획하겠습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내 개인적으로 억대의 보너스를 지급할 생각이니까 입단속에 특히 신경을 써 주십시오."

그러자 김팀장이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

목요일 오전.

우리 일행을 태운 전용기가 필리핀 팔라완섬의 주도인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 게이트를 통과하자 현지에서 고용한 보안업체 요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들은 우지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일행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해왔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오늘부터 48시간 동안 회장님을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그 역시 나를 회장으로 호칭했다.

흐뭇한 순간이었다.

그의 뒤에 우두커니 서 있는 3명의 남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모두 눈빛이 강렬했다.

그런 탓인지 내심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사람 좋은 미소를 내비치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성함을 알려주십시오."

그가 공손하게 답했다.

"편하게 마틴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럼 앞으로 마틴이라고 부를테니까 우리 일행을 안전하게 에스코트해 주십시오."

"염려마십시오. 회장님."

***

나를 태운 세단 차량이 인적 뜸한 도로에서 갑자기 앞바퀴가 펑크가 났다.

그런 탓인지 수행원을 태운 픽업트럭도 차를 멈춰세웠다.

트럭에서 김팀장과 최과장, 경호원들이 차례로 내려섰다.

운전석의 마틴이 송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픽업 트럭으로 갈아타셔야 할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차를 제대로 정비 안한 모양이었다.

싫은 티를 내고 싶었지만, 참을 인자를 아로새기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할수 없죠."

차에서 내린 뒤 픽업트럭으로 다가가자 김정수 팀장과 최상우 과장이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바로 그때, 마틴과 경호원들이 김팀장과 최과장을 목표로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했다.

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

그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르지 못한 채 온몸이 벌집처럼 꿰뚫렸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마틴과 그의 부하들은 나를 향해 일제히 총구를 겨눈 채 스산한 언사를 내뱉었다.

"얌전히 있어! 죽고 싶지 않으면."

그들의 목표는 나였다.

내 몸값을 노리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4갑자에 육박하는 막강한 내공을 단전에 갈무리한 상태였지만, 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아무리 내공이 강해도 총알 한방이면 게임 끝이다.

결국 놈들이 시키는대로 두 손을 뒷머리에 모은 채 천천히 무릎을 끓었다.

그들은 내 양손에 수갑을 채우자마자 얼굴에 검은 두건을 재빨리 씌웠다.

그 후, 픽업트럭 뒷좌석으로 내 몸을 강하게 떠밀었다.

그들은 내 양옆에 자리를 잡으며 총구를 옆구리에 들이밀었다.

"목표지역에 갈때까지 얌전히 있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총알을 네놈의 입 속에 박아주마."

놈들은 필리핀 억양이 섞인 영어로 나를 겁박했다.

직후 나를 태운 픽업트럭이 어딘가를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단전의 내기를 주변으로 은밀히 방사하자 놈들의 기척이 심상에 생생히 드러났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포함해서 총 4명이 트럭 안에 있었다.

그들을 일순간에 제압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놈들은 나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여긴 탓인지, 내 몸값을 주제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었다.

대략 30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본격적으로 움직이기로 결단했다.

양옆에 포진한 두놈의 안면과,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는 녀석들의 머리통을 번개처럼 들이치면 게임 끝이었다.

단전에서 뽑아낸 내공을 수갑이 채워진 양손에 강하게 주입하자,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만한 가공할 기운이 물밀듯이 유입됐다.

순간 손목을 장악한 수갑이 종잇장처럼 찢겨져나감과 동시에, 내 양옆에 포진한 놈들의 관자놀이에 두주먹이 벼락처럼 틀어박혔다.

퍽퍽!

"크악! 으악!"

녀석들의 비명소리가 차안에 울려퍼지자,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있던 개자식들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향해 기관단총을 발사하려고 했다.

허나, 그들의 시도는 불발에 그치고야 말았다.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내 성난 맨주먹이 놈들의 안면에 정확히 파고든 탓이다.

퍽! 퍼억!

"아악! 크헉!"

직후 나를 태운 픽업 트럭이 중심을 잃은 채, 전방 좌측에 위치한 야자수 나무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쿵!

차 안은 녀석들이 쏟아낸 선홍빛 핏물과 허연 뇌수로 가득했다.

그런 탓인지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했다.

내 얼굴과 옷 역시 마찬가지였다.

놈들은 모두 즉사했다.

자업자득이었다.

차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인근의 민가로 비호처럼 숨어들었다.

피로 얼룩진 옷을 깨끗한 의류로 환복하기 위함이었다.

빨래줄에 널려있는 셔츠와 청바지를 재빨리 챙긴 뒤 옷을 환복했다.

그리고 얼굴도 물로 대충 씼었다.

그때, 집앞 공터에 우두커니 서 있는 오토바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키도 꽂혀있는 상태였다.

이 지역은 치안 부재지역이었다.

경찰과 동네주민, 택시 기사 모두 납치범과 한통속일 확률이 높았다.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채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으로 무작정 내달렸다.

신속하게 이 곳을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언제 어디서 총기로 무장한 범죄자들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5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상암동 켄싱턴 빌딩으로 직행했다.

129층 사무실에 들어선 뒤 하동균 비서팀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눈 앞에 나타난 그에게 강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이태강을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지금 당장!"

그가 주눅든 얼굴로 복명했다.

"네. 부회장님!"

1시간 후.

사무실에 나타난 이태강에게 팔라완 섬에서 겪은 일을 소상히 밝혔다.

내 얘기를 들은 태강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부하직원이 2명이나 죽는 바람에, 조용히 처리하기는 힘들겠는데."

"그러니까 형님이 뒷말이 나오지 않게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하세요."

"이번 일은 외교적인 파장이 만만치 않을거야. 한국 재계의 거물급 인사를 무장 괴한들이 납치하려고 시도한 사건이라..."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 생각에는 대영물산 해외자원개발 직원들이 현지 유전을 답사하려다가 변을 당한 거로, 사건을 매듭짓는게 좋아 보이거든. 당연히 김회장은 그 곳에 없었던 거로 입을 맞춰야지."

태강이 넌지시 물었다.

"필리핀에 입국할 때 위조 여권을 사용했겠지?"

그의 예상대로 나는 필리핀에 입국할 때 영국 국적의 위조여권을 이용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태강이 반색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불행 중 다행이구만."

내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 탓이다.

"필리핀 현지에서 김팀장과 최과장의 유해를 신속하게 한국으로 운구해 주십시오."

"내가 알아볼게."

"그럼 형님만 믿겠습니다."

***

그날 밤.

켄싱턴 빌딩 펜트하우스에서 TV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대영물산의 김정수 자원개발팀장과 최상우 과장이 필리핀 팔라완 섬에서 무장 괴한들이 쏜 총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지 경찰은 금품을 노린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주재 한국 대사관과 외교부는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영물산 측은 현지 사정에 밝은 직원을 팔라완 섬에 급파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략...

대영물산 자체적으로 사건 경위를 파악하려는 모양이었다.

곧바로 대영물산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단호한 어조로 내 의중을 밝혔다.

"팔라완 섬은 위험한 지역이니까, 지금 당장 파견 계획을 취소하세요."

수화기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회장님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내 의중을 강하게 피력했다.

"이번 사건은 외교부와 현지 겅찰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쓸데없이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김팀장과 최과장의 유해 운송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사장님은 신경쓰지 미세요."

딱 부러지게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더 이상 그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 내 목숨을 구한 건 신비한 내공의 힘이었다.

나를 납치한 개놈들의 머리통을 강력한 내공이 집약된 맨주먹으로, 산산조각으로 박살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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