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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112화 (112/175)

112화 대규모 지분투자를 요청하다

늦은 밤.

이태강이 상지원에 나타났다.

우리는 응접실에 마련된 라운지에서 진토닉을 음미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이어나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태강의 입에서 내 귀를 솔깃하게 하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이번 납치 사건에 배후가 있을 가능성도 조사해 봐야 할거 같은데..."

그가 내 눈치를 살피며 재차 말을 이었다.

"김 회장이 사라지면 살판나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자세히 조사해 보라고."

그의 말대로 내가 죽으면 속으로 쾌재를 연발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영그룹의 허수아비 회장인 이성호와 본부장으로 재직 중인 이성철, 그리고 태산그룹에 여전히 미련이 많은 유미향 등등...

태강을 돌려보낸 뒤 그의 조언을 곰곰이 되새겼다.

팔라완섬의 유전지대 답사는 비밀리에 진행된 사안이었다.

그런 탓으로 김정수 팀장에게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허나, 그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에 대해서 말했을 일말의 가능성도 어느 정도 상존했다.

그런 의심이 들자 대영물산 자원개발팀의 CCTV 영상을 확인하고픈 욕구가 격하게 들끓었다.

대영그룹은 직원들의 나태한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사무실 곳곳에 폐쇄회로 TV를 설치했다. 대영물산도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김태구 경호팀장을 대동한 채 상암동 켄싱턴 빌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켄싱턴 빌딩에 도착하자마자 지하 15층에 위치한 보안실로 내려갔다.

보안실에 들어서자 담당자가 놀란 얼굴로 나를 향해 경례를 올려부쳤다.

그의 경례를 본체만체하며 지엄한 명을 하달했다.

"대영물산의 자원개발팀 사무실을 촬영한 CCTV 영상을 가져오세요."

그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촬영 기간을 말씀해 주십시오."

"10일전부터 이틀전까지 촬영된 자료를 모두 갖고 오세요."

"예. 부회장님."

20분 뒤, 보안요원이 USB 메모리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130층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펜트하우스 거실 책상에 좌정한 채 데스크탑에 USB를 연결했다.

모니터 화면에 대영물산 자원개발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광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동영상 플레이어의 볼륨을 높이자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생생히 들려왔다.

대영그룹이 운용하는 CCTV는 사람 음성까지 녹음하는 기능이 있었다.

모니터에 이목을 고정한 채 의심스러운 정황을 잡아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다.

그런 때문일까, 동영상을 시청한지 2시간 만에 나름 쓸만한 수확을 거두었다.

컴퓨터를 종료하자마자 박종태에게 전화를 돌렸다.

***

인천 항만의 컨테이너 창고에 도착하자 박종태가 나를 맞이했다.

그가 심각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대영물산의 주종현 전무가 이성호에게 부회장님의 팔라완섬 방문을 전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 이상은 파악하지 못한 건가요?"

"네.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지만 정황상 이성호가 부회장님의 납치를 사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인천 앞바다에 시선을 고정했다.

박종태가 슬며시 물었다.

"주종현을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놈에게 수면제를 투약한 후, 서해 앞바다에 깔끔하게 수장시키세요."

종태가 흠칫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곧바로 그에게 금일봉을 전달했다.

"10억입니다. 수고비로 생각하세요."

종태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씩씩하게 복명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롤스로이스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성호의 동정을 파악하셨나요?"

"어제 오후 비행기로,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쥐새끼 같은 놈이 눈치를 챈 건가요?"

"그런 것으로 사료됩니다."

"미국 어디로 간 거죠?"

"그게 전혀 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대영자동차의 미주 지사 직원들 말로는 LA 별장에도 이성호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놈의 별장이 LA에만 있는 겁니까?"

"서류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아담 상원의원의 도움을 받아야 할 거 같았다.

"이성호 건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실장님은 신경쓰지 마십시오."

"네. 부회장님."

***

샌프란시스코의 부촌으로 유명한 포트레로 힐 주택가에 이성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3층 단독 주택의 차고지에 벤틀리를 파킹한 뒤 2층으로 올라갔다.

그 후, 한잔의 커피를 음미하며 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성호는 아쉬운 심경이었다.

천재일우의 찬스를 아깝게 놓친 탓이다.

그는 원래 대영그룹의 경영권에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

그저 고액연봉을 챙기며 돈을 모으는데 주력할 계획이었다.

허나, 그런 원래 목표는 선물 옵션 투자 실패로 인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는 무늬만 회장직을 수행하는 한편 전 재산을 선물옵션에 때려박았다.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획득하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물 옵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성호는 무려 3천억에 달하는 돈을 단 1년 만에 모조리 탕진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것이다.

그 즈음, 평소 친분이 있던 대영물산의 주종현 전무가 귀가 혹할 만한 정보를 제공했다. 김한빈이 비밀리에 필리핀 팔라완섬의 유전지대를 답사할 예정이라는 말을 전한 것이다.

성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일생에 다시없을 기회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김한빈은 결혼도 안했으며, 가족조차 전무했다.

그말인즉슨 한빈이 사망할 경우, 그의 전 재산은 자연스럽게 국고로 귀속된다는 의미였다.

한빈이 보유한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대영물산의 지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될 경우, 이성호를 필두로 다섯남매가 자연스럽게 대영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았다.

정부 관계자들을 구워삶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다섯남매는 그 정도의 힘은 충분히 갖고 있었다.

부친이 구축한 인맥이 국가 요직에 두루 포진한 까닭이다.

그날 이후, 성호는 대영물산과 자주 거래한 팔라완섬의 보안업체를 수소문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팔라완 섬에서 그들과 접촉했다.

당연히 거액의 현금을 그들에게 전달했음은 불문가지였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 되는 건 결코 아니었다.

한빈이 기적적으로 납치범들의 마수에서 빠져나온 탓이다.

그는 한빈이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미국으로 도주했다.

그의 무서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성호의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앞으로 한국 땅에 결코 발을 들이지 못할 운명이었다.

한빈이 두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

***

극비리에 뉴욕을 방문했다.

아담 페런 상원의원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었다.

아담 의원의 맨해튼 사무실로 들어서자 그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그에게 목례를 취한 뒤 푹신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아담에게 노란 봉투를 내밀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남자를 제거해 주십시오."

그는 봉투 안에서 꺼낸 이성호의 사진에 시선을 모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자가 누구지?"

그에게 솔직히 답변했다.

"저를 죽이려한 놈입니다."

"간뎅이가 부은 친구로군. 천하의 김 회장을 노리다니."

그가 과장된 제스츄어를 취하며 내 얼굴에 금칠을 했다.

아담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좋아한다.

내 든든한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준비해온 돈봉투를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미화 1천만불(120억) 상당의 CD입니다. 수고비 조로 받아주십시오."

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내걸렸다.

"역시 우리 김 회장은 공과 사의 구별이 확실하군. 하하하..."

***

아담 의원의 사무실을 빠져나온 뒤 직장인들로 붐비는 맨해튼의 길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나를 졸졸 뒤따르는 하동균 비서팀장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질텐데, 아직 호텔에 체크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일행은 호텔방을 예약하지 않은 채 뉴욕에 왔다.

만사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아무 호텔이나 체크인 합시다."

"그래도 부회장님의 품격에 맞는 호텔에 여장을 푸는 게..."

그가 말꼬리를 흐리며 나를 쳐다봤다.

"됐습니다. 일반룸도 상관 없으니까 호텔 체크인은 더 이상 신경쓰지 맙시다. 어차피 널린게 호텔인데."

그리 말하며 주변에 위치한 스타벅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음미할 찰나, 스펜서 회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에게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는 연락이었다.

다음날.

내 호텔방에 중년의 백인 남자가 나타났다.

"스펜서 회장님의 소개로 왔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 회장님."

그는 나를 향해 정중한 자세로 악수를 청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응접실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남자의 이름은 스캇 롤렌이고, 호주에서 인공위성 발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스캇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저희는 클라이언트 측이 제공한 인공위성을 대기권으로 발사해주는 사업을 주로 히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에 합당한 최첨단 로켓 기술을 보유하고 있죠."

그의 말을 묵묵히 경청했다.

"그렇지만 워낙 자본금이 많이 필요한 비지니스라, 심각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회장님을 찾아뵙게 된 겁니다."

조금 구미가 동했다.

내가 원하는 최첨단 로켓 발사 기술을 보유한 탓이다.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비상장 업체인가요?"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의 투자금을 원하십니까?"

그가 반색하는 얼굴로 즉답했다.

"8억불(9,600억) 정도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분 투자도 가능한 건가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회장님."

"8억불을 투자한다면 나에게 어느 정도의 지분을 양도하실 생각입니까?"

그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40% 내외의 지분을 회장님에게 양도할 의형이 있습니다."

"그러지말고, 당신과 내가 반반씩 지분을 나눠 갖는 건 어떨까요?"

스캇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렇게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대신, 경영권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지분투자 계약서에 특약사항으로 삽입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당신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리 화답하며 스캇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내 손을 정중히 마주잡은 뒤 호텔 방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

그날 밤.

호텔 방의 창가를 서성이며 내 소유의 복잡다단한 사모펀드를 직관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그 결과, 조세회피처에서 킹오브코퍼레이션(KOC)을 차명으로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애플과 아마존, 페이스북의 지분을 보유한 사모펀드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지주회사로 육성하기 위함이었다.

다음날.

대영전자의 전용기가 카리브해에 위치한 케이맨 제도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시내에 위치한 투자청으로 직행했다.

그 후,투자청에 회사설립 신고 서류를 제출한 뒤 인근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나 홀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영국계 은행을 방문했다.

은행직원이 친절한 얼굴로 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가 설립한 회사의 전용계좌를 만들고 싶습니다."

"서류를 준비해 오셨나요?"

고개를 끄덕이며 투자청에서 발급해준 KOC의 설립 인허가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은행원은 서류를 검토한 뒤 친근한 얼굴로 화답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고객님."

"네."

은행에서 전용계좌를 개설한 뒤 공항으로 직행했다.

전용기 계류장에 들어서자 하동균 비서팀장과 여승무원이 나를 반겼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을 태운 전용기가 활주로를 힘차게 이륙했다.

***

한국에 도착한 뒤 포털 사이트 네이바의 이창진 사장과 시내 모처에서 만남을 가졌다.

예상대로, 그는 대규모 지분투자를 요청했다.

내 소문을 많이 접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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