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죽일 놈은 죽여야 속이 시원해진다
서울 모처에 중국 공산당의 고위 간부인 번증창과 한국 정치권의 실력자인 김재원 의원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번증창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중국 정부는 대영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책임지고 일을 처리해 주십시오."
김재원이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김의원에게 부탁을 드리는거 아닙니까?"
"죄송하지만 저로서는 역부족인 일입니다. 번사장님."
그러자 번증창이 007가방 두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 합해서 60억이 들어있습니다. 이 돈을 공작금으로 사용하십시오."
김재원이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007 가방을 재빨리 챙겨들었다.
"좋습니다. 제가 한번 힘을 써보겠습니다."
그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
상암동 켄싱턴 빌딩 129층 부회장실.
면전에 나타난 진대현 본부장이 긴급 보고를 올렸다.
"현도중공업이 6조3천9백억에 태산조선을 인수하겠다는 의향서를 제출했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매각 목표가보다 1천1백억 정도가 낮은 가격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신속하게 매각 절차를 밟으세요."
"말씀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대현을 내보낸 뒤 창 밖에 드리워진 푸른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태산그룹에서 손을 뗄 생각이었다.
그런 이유로 태산조선을 시작으로 전 계열사를 적당한 가격에 매각할 방침이었다.
이익의 극대화를 노리기 위함이었다.
태산조선은 거의 매각이 확정적인 상황이었다.
이제 다른 계열사들을 순차적으로 매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뇌리를 장악할 무렵, 하동균 비서팀장이 눈 앞에 나타났다.
"김재원 의원이 면담을 신청하셨습니다."
"들여보내세요."
"예. 부회장님."
잠시 뒤, 김재원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만면 가득 가식적인 표정을 내비치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의 악수 제의를 외면한 채 소파를 손짓했다.
"용건만 간단히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김재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쁘신 모양이니까, 용건만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입이 재차 열렸다.
"한국과 중국 정부의 경제협력과 우호증진 차원에서, 대영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중국에 설립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에게 냉랭한 어조로 대꾸했다.
"중국 공산당 놈들에게 반도체 기술을 공짜로 헌납하라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김재원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결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저는 다만 한중 양국의 경제협력과 우호증진차원에서 이런 조언을 드렸을 뿐입니다."
그의 변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고 해도, 기술이 유출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놈에게 단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건 의원님의 친중적인 견해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여튼 저는 중국 공산당 놈들한테 반도체 기술을 갖다바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이만 돌아가십시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오실 겁니까?"
그가 스산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당신이 친중인사라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듣던대로 중국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군요. 후후..."
비릿한 조소를 내뱉자 김재원이 분한 얼굴로 온몸을 가늘게 떨었다.
"오늘의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거요!"
놈의 입에서 발작적인 외침이 울려퍼졌다.
그러기를 얼마 후,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무실에서 도망치듯 모습을 감췄다.
***
상지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재원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자는 평범한 국회의원 나부랭이가 결코 아니었다.
김재원은 거대 계파를 지휘통솔하는 정치 지도자 중의 한명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0년 뒤에 한국의 대통령으로 등극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꼬라지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스파이였다.
중국 공산당의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정치권에 세를 구축한 매국노였다.
한국의 정관계와 재계의 유력인사들 태반이 중국 공산당에 포섭된 상태였다.
김재원은 그들을 관리하는 한국내 중국 스파이 총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북한은 한국인들을 포섭할 능력이 없었다.
수중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막대한 달러를 이용해서 한국의 유력인사들을 중국 스파이로 만들었다.
한국을 중국 정부의 조선성으로 식민화하기 위함이었다.
김재원은 한국을 중국 정부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완용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개자식을 내 손으로 죽이는 게 상책이었다.
주제 모르고 나에게 기어오른 대가였다.
역사의 순리 따위는 내 알 바 아니었다.
미래 또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한다.
나는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었다.
***
다음날.
오늘은 토요일인 관계로 상지원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다.
허나, 그런 내 바램은 불청객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상지원에 이영박이 나타난 탓이었다.
그는 바쁜 대선 유세 중에서도 나를 꼭 만나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영박은 나를 보자마자 은근한 어조로 용견을 꺼냈다.
"해외 자원개발을 명목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축적하는 방법에 대해서, 김회장에게 조언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에게 진토닉을 건네며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결심이 서신 겁니까?"
그가 머리를 끄덕이며 내 다음말을 재촉했다.
영박이 원하는대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안에 대해 나름의 지론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산업자원부 산하에 있는 여러개의 공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셔야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들 공기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자회사를 설립한 뒤 해외자원개발 예산을 자회사에 몽땅 몰아주는 거죠."
"그런 복잡한 방식으로 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에게 즉답했다.
"야당과 언론, 시민사회단체의 눈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그제야 영박이 납득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거렸다.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설립한 자회사를 이용해서, 해외 유전과 가스전을 업계약(실제보다 높은 가격으로 계약하는 행위)으로 사들이시면 됩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업계약으로 계약한 후 차액을 비자금으로 전용하면 게임 끝이죠."
영박이 은근한 어조로 재차 물었다.
"쓸만한 해외 유전과 가스전을 많이 아십니까?"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중개를 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그가 반색하는 얼굴로 내 손을 두손으로 정성스럽게 마주잡았다.
"김 회장이 유전과 가스전을 소개해 주십시오. 사례는 섭섭치않게 해드리겠소."
"좋습니다. 하하..."
내 입에서 절로 흡족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
국정원의 조웅래 1차장은 중국의 산업 스파이가 대영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핵심 설계기술을 탈취하기 위해 한국에 비밀리에 입국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조웅래는 그런 사실을 대영그룹의 실질적인 오너인 김한빈 부회장에게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쏠쏠한 보너스를 챙기기 위함이었다.
***
상암동 켄싱턴 빌딩.
조웅래 1차장이 나를 찾아왔다.
뭔가 긴급한 용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서류철을 전달했다.
그가 건넨 서류를 살핀 뒤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정보가 확실한 겁니까?"
조웅래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확언했다.
"100% 신뢰하셔도 좋습니다."
그의 믿음직한 호언장담이었다.
조웅래는 내 눈치를 잠시 살핀 후 재차 말을 이었다.
"대영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개발 팀장인 지상훈을 요주의 감시해야 합니다. 부회장님이 원하신다면 국정원 요원들을 주변에 배치하겠습니다."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하하하..."
조웅래는 내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주는 존재였다.
책상 서랍에서 금으로 도금된 봉투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조웅래가 기대만발한 얼굴로 나를 은근히 쳐다봤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지갑에서 꺼낸 1억원짜리 수표 5장을 봉투 속에 집어넣었다. 그 후, 조웅래에게 금일봉을 내밀었다.
그는 내 돈을 외면하지 않았다.
나를 향해 넙죽 허리를 숙이며 공손한 자세로 금일봉을 수령했다.
"부회장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조웅래가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남자였다.
"오늘 저녁에 식사라도 같이 합시다."
그러자 조웅래가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그래주시면 저야 영광이죠.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 7시에 상지원으로 오십시오."
"예. 부회장님."
***
그날 저녁.
상지원 본관 식당에서 조웅래와 저녁을 함께한 뒤 접견실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 후, 칵테일을 음미하며 본론을 꺼냈다.
"김재원에 대해서 사적으로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그가 흠칫한 얼굴로 되물었다.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시는 의도가 뭔지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한국 내에 암약하는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 총책이, 김재원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조웅래의 얼굴이 금세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런 정보를 누구에게서 입수하신 겁니까?"
"자연스럽게 알게된 사실입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가 궁금하실 겁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다음말을 차분히 기다렸다.
"솔직하게 말하죠. 국정원이 갖고 있는 김재원의 일일동향 문건을 저에게 건네주십시오."
조웅래가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감탄사를 토해냈다.
"와! 정말 모르시는 게 없군요."
"뭐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습니까?"
준비해온 금일봉을 그에게 내밀었다.
"10억이 들어있습니다. 김재원의 일일동향 문건을 건네주시는 대가로 생각하십시오."
그는 이번에도 내 돈을 거부하지 않았다.
"원하시는대로 김재원의 일일동향 문건을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 화답한 뒤 G메일 임시 계정이 적힌 메모지를 그에게 건넸다.
***
상지원의 푸른 잔디밭을 거닐며 김재원을 죽일 계획을 심사숙고했다.
그는 만고의 역적이었다.
그런 개같은 작자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일 만큼은 반드시 막아야한다.
내 나름의 신념을 위해 그자를 죽이기로 작심했다.
결심이 섰으니, 이제 실행만 남은 상태였다.
나는 이번 일을 나 스스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박종태와 경호원들이 알아서 좋을 일이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김재원을 암살할 계획이었다.
국정원 역시 김재원이 중국 스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 간첩을 처벌할 능력이 전무했다.
한국은 이미 중국 공산당의 반식민지 상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음날.
켄싱턴 빌딩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G메일 임시 계정에 접속했다.
조웅래가 발송한 김재원의 일일 동향 문건에 시선을 고정했다.
김재원은 주기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공산당 간부들과 미팅을 갖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아가씨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다.
중국 현지에서 김재원을 척살하기로 결심했다.
놈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묘자리였다.
한국을 중국에 팔아넘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김재원에게 자비 따위는 불필요했다.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뒤 하동균 비서팀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내 영국 여권을 이용해서 상해행 편도 항공권을 예매하십시오. 내일 오후에 출발하는 비행기 편으로."
"중국으로 출장을 떠나실 생각입니까?"
"개인적인으로 볼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
나를 태운 여객기가 상해 푸동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주변을 배회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 기사에게 영어로 말했다.
"상해 중심지에 위치한 호텔로 갑시다."
기사는 'OK'를 연발하며 상해 도심을 향해 차를 몰아갔다.
3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호텔 앞에 택시가 정차했다.
택시비를 지불한 후 샹그릴라 호텔로 들어갔다.
샹그릴라 호텔에 여장을 푼 뒤 창 밖에 펼쳐진 상해의 야경에 시선을 모았다.
상해는 서울을 능가할 정도의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늘어선 지역이었다.
그런 탓인지 겉으로 보기에는 뉴욕 맨해튼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중국 공산당의 미개함이 어디 가는 건 결코 아니었다.
김재원은 며칠 후에 상해로 올 예정이었다.
그때, 놈을 죽이면 게임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