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미래 역시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흘러가야한다
토마스 행크에게 유전과 가스전의 업계약을 일임한 뒤 한국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한편, 중국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2020년 경, 한국은 중국에 경제가 종속당한 채 온갖 설움과 핍박을 당했다.
중국을 상대로 달성한, 연간 수백억 불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포기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대중국 교역에서 벌어들이는 흑자의 상당 부분은 허수에 불과했다.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한국에서 수입해가는 중간자재 대다수가 흑자로 잡힌 탓이었다.
실제 한국이 중국과의 무역 거래에서 달성하는 흑자는 연간 수십억 불에 불과했다.
허나, 중국 공산당에 포섭된 한국의 정치인과 경제인들은 국민들을 호도한 채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중요하다고 연일 거짓말을 남발하고 있었다.
나는 중국 공산당에 질질 끌려다니는 한국의 미래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내 나름의 자존심이었다.
최고의 해법은 중국과의 국교 자체를 단절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내 말을 잘 듣는 이태강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비서진과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강남의 고급 클럽을 찾았다.
간만에 아가씨들과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다음 날 자정 무렵.
서교호텔을 방문했다.
이영박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스위트룸의 응접실에 들어서자 이영박이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 유력한 분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
“역시 우리 김 회장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넉살이 좋아서 마음에 들어요. 우하하하······.”
영박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파에 자리를 잡자마자 준비해온 서류를 그에게 전달했다.
동남아와 호주에 산재한 유전과 가스전을 총망라한 자료였다.
그는 내가 건넨 자료를 보지도 않고 보좌관에게 전달했다.
“이런 일은 내 보좌관들이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그러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후보자님에게 긴히 청할 일이 있습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중을 솔직히 밝혔다.
“차기 정부의 초대 총리로 대영그룹의 오종덕 회장을 낙점해 주십시오.”
“끄응······.”
그의 입에서 앓는 듯한 소음이 흘러나왔다.
내 요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재차 강하게 말했다.
“오종덕 회장을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후보자님.”
잠시 후, 영박의 굳게 닫혔던 입이 슬며시 열렸다.
“개인적으로 김 회장의 요청을 수락하고 싶지만,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현실적으로 힘들 거 같군요.”
그에게 툭 까놓고 말했다.
좀 더 강하게 나가기 위함이었다.
“후보자님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던 사람 중에, 저만한 인물이 있었습니까?”
그가 당황한 얼굴로 바쁘게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김 회장이 가장 많이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정치라는 게 단순한 게 아니라서······.”
“저는 신뢰를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그러니 오종덕 회장을 신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반드시 낙점해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스위트룸을 박차고 나왔다.
***
서교호텔 스위트룸.
이영박은 김한빈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당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면 한빈의 도움이 절실했다.
물론 한빈 외에도 주변에 여러 명의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단돈 몇 푼에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는 인물로 판단한 까닭이다.
반면 한빈은 최소 수십조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남자였다.
돈 몇 푼에 자신을 배신할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5천억 상당의 대선자금을 후원한 통 큰 사내였다.
결국 영박은 한빈의 요청을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국무총리직은 어차피 실권 없는 명예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상지원.
푹신한 소파에 자리한 채 접견실의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에 이목을 고정했다.
-이영박 후보가 총득표 67%에 달하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제 17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중략······.
이미 예상한 일이라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그즈음, 사적으로 애용하는 대포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이영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회장의 요구를 수용하겠소. 그리고 원하신다면 오종덕 회장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낙점할 용의가 있습니다.
“당선자님의 말씀을 오 회장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두 김 회장 덕분이지요. 언제 시간 되면 축하주나 같이 합시다.
“불러만 주신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겠습니다.”
-내일 저녁에 사람을 보낼 테니까 시간을 비워두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당선자님.”
통화를 끊은 뒤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는 대영그룹 오종덕 회장에게 슬며시 운을 뗐다.
“회장님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천거할 생각인데, 마음이 있으십니까?”
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룹 회장직에 취임한 지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저를 내치시려는 겁니까?”
오종덕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회장님을 이영박 정권의 초대 국무총리로 천거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타이틀을 달아드리려는 겁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인수위원회에서, 이영박 정부에서 일할 사람들과 안면을 익히시면 겸사겸사 좋은 거 아닙니까?”
그제야 종덕이 다소 안심한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그 말씀이 사실입니까?”
“네. 이영박과 이미 사전에 합의를 봤습니다. 회장님을 초대 국무총리로 기용하기로. 그러니까 주변 정리를 확실히 해두세요. 야당과 언론에 책잡히지 않을 정도로.”
그가 감격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이영박 당선자가 저를 국무총리로 낙점할 거라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니까요. 내가 설마하니, 우리 오 회장님에게 거짓을 말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러자 종덕이 양팔을 맹렬히 저으며 사과의 변을 흘려보냈다.
“절대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찌 부회장님의 하늘 같은 말씀을 거짓으로 치부하겠습니까. 오해십니다. 부회장님.”
“됐습니다. 밤이 깊었으니까 이만 가보세요.”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부회장님.”
종덕은 나를 향해 깍듯이 허리를 숙인 뒤 접견실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
이태강을 한강변으로 불러냈다.
고즈넉한 강변을 거닐며 그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형님은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지?”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 테니 형님의 생각을 먼저 말씀해 보십시오.”
태강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은 미국을 능가하는 무역상대국이라, 정치적으로 반목하는 점이 있더라도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양보할 건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말꼬리를 흐리며 나를 슬쩍 쳐다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할 경우, 중국과 척을 져봤자 우리 한국 입장에서 좋을 일이 없지 않나?”
그에게 저으기 실망했다.
태강은 언제든지 친중 정책을 펼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탓일까. 내 입에서 절로 단호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형님이 제 도움을 받고 싶으시다면 친중적인 행태를 지양하셔야 할 겁니다.”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말했다.
“저는 중국과의 국교단절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형님도 저의 목표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치셔야 합니다.”
태강이 경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중국과 국교단절을 할 경우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텐데, 그걸 대체 무슨 수로 감당할 생각이지?”
“한국은 여태껏 중국과의 무역에서 별다른 이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말만 하는군. 한국이 매년 중국에서 취득하는 무역흑자가 수백억 불 규모 아닌가?”
“숫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 무역흑자 대다수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이, 한국에서 수입해가는 중간재에 불과할 뿐이니까.”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중국과 국교단절을 하더라도 한국이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재차 물었다.
“그 말이 정말인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중국과의 국교단절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겁니다.”
“흐으음······.”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태강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지론은 길게 이어졌다.
“중국과의 국교단절을 하루속히 실행하지 않을 경우, 한국은 중국 경제에 종속될 것이 불을 보듯 명약관화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언론 전 부문을 중국 공산당에 잠식당하게 될 겁니다. 한마디로 중국의 조선성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해요.”
그제야 태강이 다소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 회장 말을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군. 그렇지만 중국과의 국교단절이 말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닐 텐데······.”
그는 여전히 내 주장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았다.
“형님은 이영박의 뒤를 이어서, 18대 대통령에 취임할 운명입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태강이 욕망에 그득한 눈빛을 내비치며 내 다음 말을 재촉했다.
“한국과 중국의 국교단절을 임기 1년 이내에 완수한다는 각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그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결국 그 얘기를 하려고 나를 이곳으로 불러낸 건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자택에서 내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 말하며 주차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
이태강은 자택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한빈의 제안을 신중하게 검토했다.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가 염원하는 청와대로 입주하기 위해서는 한빈의 뜻을 수용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사안이 범상치 않은 만큼 태강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졌다.
한빈은 중국과의 국교단절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다.
그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청와대 입성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전락할 운명이었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국교단절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한국은 중국과의 무역 거래를 통해 연간 수백억 불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빈의 주장처럼 중간재 수출이 만들어낸 허수가 다소 존재한다고 치더라도, 한국이 누리는 경제적인 혜택은 연간 최소 1백억 불 이상이었다.
태강의 미간에 깊은 내천자가 그려졌다.
허나, 그는 청와대의 권좌를 차지하고픈 욕망이 더욱 강했다.
결국 태강은 한빈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기로 작심했다.
그날 밤.
태강은 자택의 서재에서 자필로 각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 이태강은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중국과의 국교단절을 임기 1년 내에 반드시 완수할 계획임을 김한빈 회장에게 약속하는 바이다!>
그는 각서를 작성한 뒤 자필 서명을 기입했다.
그 후, 자필 서명이 기재된 곳에 열 손가락의 지장을 차례로 날인했다.
일사천리였다.
***
켄싱턴 빌딩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대한민국의 제 17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영박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에 대영그룹의 오종덕 회장을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략······.
내 뜻대로 일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내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