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전략적인 기술제휴
상지원의 잘 조성된 정원을 거닐며 나를 뒤따르는 오종덕 회장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저는 이영박 당선자와 여러가지 밀약을 맺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원자력 발전소의 민영화죠."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할 계획이십니까?"
"네. 저는 최소 10개 이상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립한 후 대영그룹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복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영박에게 5천억에 육박하는 대선자금을 지원한 겁니다."
오종덕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부회장님!"
"그렇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그래서 회장님의 역할이 중요한거죠. 국무총리실 산하에, 원자력 발전소의 설립과 운영을 전담하는 신설 기구를 만드셔야 합니다."
"제가 국무총리에 취임하면, 부회장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전력투구하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상지원의 본관 건물로 발길을 돌렸다.
***
상암동 켄싱턴 빌딩.
130층 펜트하우스의 인피니티 풀장에서 여유로이 수영을 즐길 무렵, 하동균 비서팀장이 눈 앞에 나타났다.
"아멕스 신용카드의 한국 지사장인 오윤겸씨가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나를 만나려는 이유가 뭐죠?"
"부회장님을 센트리온 블랙 카드의 신규 고객으로 유치하려는 모양입니다."
센트리온 블랙카드는 최소 조단위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재력가에게 발급하는 카드였다. 당연히 그 대단한 명성을 익히 들어왔던 터였다.
"응접실로 안내하세요."
"네. 부회장님."
편한 옷차림으로 환복한 뒤 응접실로 들어갔다.
응접실에는 중년의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멕스 신용카드의 한국 지사장인 오윤겸이라고 합니다. 부회장님을 만나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육중한 책상에 좌정한 채 그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오윤겸이 머리를 완강히 저으며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는 서 있는 게 편합니다. 부회장님."
"좋을 대로 하십시오. 그건 그렇고, 나를 찾아오신 이유가 뭐죠?"
오윤겸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손에 든 컬러 팜플렛을 나에게 내밀었다.
"우리 회사의 최고급 라인업인 센트리온 블랙카드를 소개하려고 찾아뵈었습니다."
그가 건넨 팜플렛을 살피자 전 세계 유수의 호텔고 항공사, 백화점에서 받을 수 있는 럭셔리 혜택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재차 입을 열었다.
"팜플렛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 센트리온 블랙카드의 고객으로 등재되시면 전 세계 최고의 럭셔리 서비스를 연중 무휴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저희에게 전화 한통화만 주시면, 방 3개와 접견실, 비서룸, 전용 식당, 야외 풀장이 딸려있는 고급호텔 펜트하우스를 예약해 드리는 것은 물론 4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겠습니다."
오윤겸의 말은 길게 이어졌다.
"또한 전 세계 최고급 백화점에서 항시 VIP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극진한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더불어 말씀만 주시면, 미모의 개인 여비서 서비스 또한 전 세계에서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럭셔리 서비스였다.
소문대로 센트리온 블랙카드의 고객 서비스 정신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내심 그들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며 오윤겸에게 넌지시 물었다.
"연간 회비가 얼마죠?"
그가 반색하는 얼굴로 즉답했다.
"한화로 12억4천만원입니다."
나처럼 전 세계 각지를 종횡무진하는 비지니스맨에게는 생각외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카드의 한도를 알려주십시오."
오윤겸이 즉답했다.
"당연히 한도 무제한입니다."
"오 사장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그가 감격한 얼굴로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오윤겸을 내보낸 뒤 하동균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아멕스 신용카드사의 최고급 라인업인 센트리온 블랙카드를 발급 받을 생각이니까 서류 작업을 부탁드립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정장 수트로 환복한 뒤 하동균 팀장과 129층 부회장실로 내려갔다.
비서진과 경호원들의 정중한 인사를 뒤로한 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런 책상에 좌정한 채 수북이 쌓인 결재서류에 부회장 직인을 차분히 날인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박종태 감사실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이성철의 재판이 다음달 중순에 열릴 예정입니다."
그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최소 7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 연기를 자욱이 말아올리며 종태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성철에게 회수할 자금이 얼마죠?"
"그가 전용한 회사 공금 중에서 300억 정도만 회수한 상황입니다."
"800억 안팎을 더 회수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이성철은 천억대의 회사 공금에 손을 댔다.
"그에게 딜을 넣어보세요. 형량을 경감하는 조건으로."
"예. 부회장님."
***
서울 동부 구치소 접견실에 박종태가 나타났다.
그는 미리와서 대기 중인 이성철에게 한빈의 말을 대신 전했다.
"회사 공금 800억을 원위치 해주시면, 형량을 대폭적으로 감형해 드리겠습니다."
이성철이 혹시나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네. 부회장님의 전언이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좀 더 정확한 형량을 말씀해 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종태는 그리 말한 뒤 한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분 뒤, 그의 입에서 성철을 흡족케하는 언사가 흘러나왔다.
***
태산조선을 매각한 자금을 대영전자 주식을 매집하는데 투입하기로 결심했다.
그런 이유로 내 수족인 진태현을 상지원으로 호출했다.
눈 앞에 나타난 그에게 지엄한 명을 하달했다.
"대영전자 주식을 6조원 안팎 매입하는 안건을 태산그룹 이사회에 상정하십시오."
"말씀대로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태산그룹 이사진의 대다수는 내가 임명한 사람이었다.
외국계 대주주들을 대리하는 사외 이사들도 여럿있었지만, 수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시장에 내놓을 경우, 제 가격에 팔릴 만한 계열사가 있습니까?"
그가 즉답했다.
"태산 CGV에 관심을 보이는 경쟁사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과 접촉을 해보세요."
그리 말하며 준비해온 금일봉을 그에게 전달했다.
"50억입니다. 태산조선을 순조롭게 매각한 보너스라고 생각하십시오."
대현이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며 금일봉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의 연봉보다 세배 이상 많은 보너스였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가 감격한 얼굴로 복명했다.
"성심을 다해 부회장님을 보필하겠습니다."
대현을 내보낸 뒤, 김태구 경호팀장을 호출했다.
눈 앞에 나타난 김태구에게 지시를 내렸다.
"클럽으로 갈 생각이니까 경호원들을 준비하세요."
"네. 부회장님."
그날 밤.
클럽 룸에서 아가씨들과 오붓한 시간을 즐길 무렵, 갑자기 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김태구를 호출하자 긴장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밖에 무슨 일이죠?"
그가 즉답했다.
"옆방에 있는 남자가 웨이터와 아가씨의 머리를 술병으로 가격한 모양입니다."
"그럼 경찰에 신고하면 될 일 아닙니까?"
"그게 실은, 옆방 남자가 현직 부장판사라 아무도 손을 못대는거 같습니다."
내가 나설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이 곳에서 미친놈처럼 날뛰는 부장판사를 제압할 만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원래 이런 일은 내가 전문이다.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옆에 위치한 룸에 들어서자, 온몸에 피칠갑을 둘러쓴 두명의 남녀와 날카로운 술병으로 종업원을 위협하는 미친 야수가 시야에 포착됐다.
그는 술에 떡이 된 채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주사가 고약한 쓰레기였다.
종업원을 물린 후 놈의 앞으로 태연히 다가갔다.
그러자 나를 향해 술병을 내리칠 듯한 자세를 취하며 온갖 악다구니를 쏟아냈다.
"씨발! 모조리 죽여주마! 덤벼! 씹쌔기야...!"
그의 입에서는 부장판사라고 믿기 힘든 저열한 욕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주딩이 좀 제발 닥쳐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 말과 동시에 녀석의 안면에 벼락같은 일권을 박아넣었다.
퍼억!
"으헉!"
녀석은 짤막한 비명을 내지름과 동시에 룸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내 일격에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곧바로 놈이 걸친 양복을 모조리 벗겼다.
두발과 양팔을 넥타이와 양복 상의로 꽁꽁 동여맨 뒤, 놈이 신었던 발꼬랑내가 물씬 풍기는 양말을 입안으로 격하게 쑤셔넣었다.
김태구에게 지시를 내렸다.
"고화질 캠코더로 놈을 촬영하세요."
잠시 후, 캠코더를 구해온 김태구가 부장 판사 나부랭이의 적나라한 민낯을 쉼 없이 촬영했다.
30분 정도 놈을 촬영한 뒤 김팀장에게 명을 내렸다.
"이 양반을 상지원으로 데리고 가세요."
"예. 부회장님."
그날 새벽.
상지원의 지하실로 내려가자, 두팔과 양다리가 결박된 판사 나부랭이가 나를 맞이했다.
그는 빤스 한장만 달랑 걸친 상태였다.
김태구가 그를 내 앞에 무릎 끓렸다.
허나, 녀석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김팀장에게 명령했다.
"양말을 제거하세요."
"네. 부회장님."
태구는 놈의 입안에 쑤셔박힌 양말을 재빨리 제거했다.
직후, 녀석의 입에서 살벌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누군지 알아! 현직 부장 판사다! 네놈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테다. 최소 20년 이상의 형을 선고할 거라고!"
녀석은 여전히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손에 든 캠코터의 디스플레이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부장 판사는 디스플레이에 드러난 자신의 민망한 자태에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에게 쐐기를 박았다.
"당신이 근무하는 법원과 자택, 친구, 지인, 와이프, 일가친척들에게 이 동영상과 사진을 전달할 생각입니다. 그들이 당신의 난잡한 사생활을 알게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몹시 궁금하군요. 후후..."
비릿한 조소를 내뱉자,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듯 금세 비굴한 자세로 표변했다.
"제발 저를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는 절대 이런 물의를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제발...!"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맹세는 됐고, 야구 빠따로 딱 10대만 맞읍시다. 그러면 판사님을 고이 자택으로 보내드리는 것은 물론, 캠코더에 녹화된 동영상도 영원히 삭제해 드리죠."
그의 얼굴에 극심한 갈등이 떠올랐다.
허나, 그의 갈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전자를 선택한 까닭이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빠따 열대로 지은 죄를 속죄하십시오."
그가 어금니를 피가 날 정도로 앙다물며 고개를 미친듯이 끄덕거렸다.
"두주먹을 깍지 낀 채 엎드려 뻗쳐 자세를 취하십시오."
녀석은 울분에 그득한 얼굴로 내 명령에 고분고분 순종했다.
그때, 김팀장이 내 손에 야구배트를 내밀었다.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부장판사님의 여물은 엉덩이를 목표로 야구배트를 힘차게 내려쳤다.
빡빡빡빡빡빡빡...!
"크악! 제발! 으악! 나 죽는다! 끄아악! 그만...! 으아악...!"
녀석의 빤스가 금세 선홍빛 핏물로 홍건해졌다.
엉덩이 살이 산산이 터져나간 모양이었다.
극한의 고통을 오롯이 만끽한 남자는 의식을 잃은지 이미 오래였다.
김태구가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현직 부장판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후환이 없을 까요?"
"동영상이 있으니까 별다른 반발을 못할 겁니다."
그러자 김팀장이 감탄한 얼굴로 나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높이 들어올렸다.
"역시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부회장님!"
"뭐 이 정도는 기본이죠. 이 양반을 대영병원 VIP 병동에 입원시키세요."
"예. 부회장님."
***
대영병원 VIP 병실.
얼굴과 엉덩이 부위를 붕대로 칭칭 동여멘 중년 남자의 입에서 한맺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흑! 이 원한을 절대 잊지 않을테다!"
그때, 병실에 중앙지검 검사와 수사관이 홀연히 등장했다.
그들은 병상에서 치졸한 복수를 다짐하는 부장 판사를 서늘한 시선으로 주시한 뒤, 본격적인 심문에 돌입했다.
***
휴스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담 페런 상원의원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공항 출구로 나가자 아담이 보낸 리무진 기사와 보안 요원들이 나를 맞이했다.
"의원님께서 공장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운전기사는 그리 말하며 나를 리무진의 뒷좌석으로 안내했다.
30분 후.
나를 태운 리무진이 거대한 군수 공장 앞에 멈춰섰다.
차에서 내리자 아담이 친근한 얼굴로 나를 포옹했다.
그와 정겨운 환담을 나누며 공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락히드마틴은 전투기 뿐만 아니라 대륙간탄도탄과 각양각색의 최첨단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들의 압도적인 기술력에 내심 혀를 길게 내두를 찰나, 아담이 뜻 밖의 말을 꺼냈다.
"대영그룹 산하에 군수업체가 여럿 있다는 소식을 들었네."
"맞습니다. 의원님. 그렇지만 워낙 변변찮은 회사라 입 밖에 꺼내기도 민망한 수준이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락히드마틴과 전략적인 기술제휴 협정을 체결하는 게 어떤가?"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물론 그에 합당한 라이센스를 지불해야겠지."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락히드마틴의 전투기와 미사일은 전 세계 최고였다.
그들과 기술 제휴를 맺을수만 있다면 천만금이 아깝지 않았다.
"의원님이 원하시는대로 라이센스료를 지불할 의향이 있습니다."
"역시 시원시원하구만. 하하하하...!"
그의 입에서 흡족한 웃음이 길게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