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20화 (120/175)

120화 철통같은 기술 보안

공장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담이 진중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김 회장도 알다사피 미국 정부는 첨단 무기의 기술이전을 철저히 규제하고 있네. 그런 이유로 대영그룹과의 기술제휴는 절대적인 기밀 유지가 필수일세."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절차적으로 문제가 많아. 그럴바에는 비밀리에 기술을 제공하는 게 내 입장에서는 편하지."

"저 때문에 의원님이 곤란해 지는 게 아닐까, 심히 우려되는군요."

그가 손을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말게. 내 한몸 지킬 힘은 충분히 갖고 있으니까."

그는 나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주고 있었다.

에바의 목숨을 구명해준 대가일까?

내심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솔직히 물었다.

"저에게 이런 커다란 혜택을 제공하시는 진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쓴웃음을 지으며 차분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에바의 목숨을 살려준 대가일세."

"그래도 저에게 너무 커다란 선심을 베푸시는 것 같습니다."

"그냥 내 선의라고 생각하게."

그리 말하며 입가에 쿠바산 시가를 물었다.

그는 시가의 진한 연기를 훅 내뿜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비밀 기술이전 협정을 체결할 생각이니까, 김 회장도 준비를 철저히 해두게."

"제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락히드마틴의 엔지니어에게 기술을 이전받는 사람들의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걸세."

"믿을 만한 사람들로 기술진을 구축하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중국과 일본, 한국 정부의 끄나풀들이 대영그룹 기술진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통같은 경계를 펼쳐야 할 걸세."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락히드마틴의 최첨단 기술을 반드시 확보하고 싶었다.

"우리 회사의 경우 락히드마틴의 전용 타운으로 핵심 기술진과 가족들을 이주시켰네. 그리고 타운에 수백명의 무장 보안요원들을 배치했지."

"락히드마틴의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함인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락히드마틴의 사례를 대영항공에 적용하면 기술유출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걸세."

아담의 살이 되고 뼈가 되는 귀한 조언이었다.

이제 라이센스 비용이 남아있었다.

아담에게 그 문제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이센스료를 얼마나 원하십니까?"

그가 눈빛을 번뜩이며 즉답했다.

"락히드마틴에 20억불(2조4천억), 에바에게 정치헌금 방식으로 추가로 10억불(1조2천억)을 지불해주게."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미국 정부에서 기술이전을 차단할 경우에도, 약속된 대금을 지불하겠다는 단서 조항을 계약서에 특약 사항으로 삽입해주면 고맙겠군."

아담은 일종의 도박을 제의했다.

비밀 기술협정이 미국 정부에 포착될 경우, 내 입장에서는 30억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아담은 미국을 암중에서 컨트롤하는 군산복합체(그림자 정부의 일종)의 핵심 인물이었다.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었다.

이번 거래는 해볼만한 도박이었다.

나에게 득이되면 득이 됐지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의원님이 원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흡족한 얼굴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정중한 자세로 맞잡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이 은혜를 절대 잊지않겠습니다."

"말이라도 고맙구만. 허허..."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만면 가득 떠올리며 내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다.

언제봐도 정이 가는 양반이었다.

***

에바의 워싱턴 자택을 방문했다.

그녀는 최근 공화당의 원내총무로 출마한 상태였다.

그런 탓인지 녹초가 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원내총무 선거로 힘든 모양이구나."

"맞아. 의원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게 쉽지 않아. 그렇지만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 불만은 없어."

에바는 해맑게 웃으며 내 품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를 위무하는 차원에서, 나름 정성을 다해 온몸의 힘을 쏟아부었다.

그런 때문일까. 에바는 진정으로 나에게 감동했다.

그녀에게 필요한 사랑을 듬뿍 선사해준 탓이다.

다음날.

에바를 뒤로한 채 한국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회자정리였다.

16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상지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하동균 비서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영항공의 핵심 엔지니어들을 상지원으로 호출하세요."

"예. 부회장님."

나는 아담의 조언을 실천에 옮길 계획이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그날 밤.

상지원 접견실에 대영항공의 핵심 엔지니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합해 8명이었다.

그들은 전투기와 미사일에 관련된 핵심 기술진이었다.

3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최연장자인 이동익 차세대 전투기 개발팀장과 40대 중반의 전현수 미사일 개발팀장이 일행을 대표해 차례로 입을 열었다.

"저희 개발팀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락히드마틴에서 제공하기로 했던 엔진과 스텔스 기술이 미국 정부에 의해 불허되는 바람에, 많은 차질을 빚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 개발팀 역시 미국 정부의 미사일 500KM 사정거리 제한 정책 때문에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한계에 부딪힌 형국입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군사기술이 급성장하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결심은 확고부동했다.

미국에 맞먹는 최첨단 군사기술을 반드시 확보할 계획이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내 결심을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기와 대륙간탄도탄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젼현수 미사일 개발팀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미국 정부의 미사일 사정거리 제한 정책을 어떻게 돌파하실 생각입니까?"

"당연히 비밀리에 대륙간탄도탄을 개발할 생각입니다."

"그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을 이 곳으로 초빙한 겁니다. 믿고 일을 맡길 만한 분들인지 알고 싶어서."

이동익 개발팀장이 짙은 의혹에 깃든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 미국 정부 모르게 첨단 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실 계획입니까?"

"네. 그래서 여러분들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뒷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뿔테 안경을 착용한 엔지니어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이런 일은 극도의 보안이 필요한 사안인데, 어떤 방식으로 정보 유출을 차단할 생각이십니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그가 새롭게 보였다.

"성함을 알려주십시오."

그가 즉답했다.

"미사일 개발 부팀장인 성지철입니다."

"성지철씨군요. 아주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 복안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여러분들에게 50억에 달하는 고액 연봉과 상암 켄싱턴 빌딩에 거주할 집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한가지 전제 조건을 여러분들이 수용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 말하자, 뒷줄에 도열한 금테안경이 질문을 해왔다.

"전제조건이 뭐죠?"

좌중을 휘 둘러본 뒤 나직한 목소리로 전제 조건을 말했다.

"저의 제안을 수용할 경우, 여러분들에 전담 경호원을 배치할 계획입니다. 혹시 모르는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죠."

그러자 전현수 미사일 개발팀장이 시니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희를 감시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 방법 외에는 보안을 유지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저의 제안을 자택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접견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상암동 켄싱턴 빌딩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진대현 본부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눈 앞에 나타난 진대현에게 물었다.

"켄싱턴 필드의 미입주 물량이 어느 정도죠?"

그가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총 11가구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11가구 모두 분양 계획을 철회하세요. 따로 쓸 데가 있으니까."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대현은 그리 복명한 뒤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태산 CGV에 관심을 보이는 국내외 자본과 연쇄적인 접촉을 가질 예정입니다."

"그 문제는 진본이 책임지고 처리하십시오."

"예. 부회장님."

그를 내보낸 뒤 박종태 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사무실에 나타난 종태에게 명령을 내렸다.

"경호팀에서 요인 경호 경력이 있는 친구들을 24명 정도 차출하세요."

"갑자기 그런 명을 내리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종태가 체념한 얼굴로 복명했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

태산 CGV는 전국 20개 지점에서 멀티플렉스 복합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영화산업 전반에도 적극적으로 사세를 확대하는 중이었다.

허나, 그룹의 오너인 김한빈은 태산 CGV를 매각할 방침이었다.

그런 탓일까, 태산 CGV의 윤영철 사장은 전대현 본부장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오후 무렵.

태산그룹 본사 빌딩에 윤영철 사장이 나타났다.

그는 곧장 본부장실로 직행했다.

전대현은 면전에 나타난 윤영철에게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윤영철의 입에서 격한 언성이 쏟아져 나왔다.

"태산 CGV는 작년에 1,080억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경영실적을 달성한 우리 태산 CGV를 무슨 근거로 매각하려는 겁니까?"

"그러니까 매각을 추진하는 겁니다. 영업이익이 그만큼이나 나왔으니 사려고 줄을 서지 않겠습니까?"

순간적으로 윤영철은 할 말을 잃었다.

대현이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태산 CGV 매각은 김한빈 부회장님의 뜻이니까, 나에게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정 그렇게 회사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김 부회장님을 직접 만나보시던가."

대현은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윤영철을 쳐다보며 재차 말을 이었다.

"저는 부회장님의 명을 충실히 이행할 뿐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저를 귀찮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 말하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빈 사무실에 덩그라니 홀로 남은 윤영철은 태산 CGV 매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수십년 동안 몸바쳐 일해온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김한빈과 담판을 짓기로 굳게 다짐했다.

***

상지원의 개인서재에서 국내외 경제 잡지를 두루 탐독할 무렵, 김태구 경호팀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태산 CGV의 윤영철 사장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상지원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부회장님."

"윤 사장을 접견실로 안내하세요."

"알겠습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접견실로 들어서자 장년의 남자가 보였다.

윤영철은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를 지나쳐 고풍스런 책상에 좌정했다.

눈 앞에 공손히 시립한 윤 사장을 유심히 살핀 뒤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찾아오신 용건이 뭐죠?"

그의 입에서 조심스러운 어조가 흘러나왔다.

"태산 CGV의 매각을 재고해 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저희 태산 CGV는 작년에 1천억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해가 지날수록 영입이익이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저는 태산 CGV를 매각한 자금으로 신수종 사업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그러자 윤 사장이 접견실 바닥에 털썩 무릎을 끓은 채 애절한 얼굴로 읍소했다.

"제발 태산 CGV 매각을 재고해 주십시오. 부회장님!"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양반이었다.

그런 탓인지 그를 매정하게 내치는 게 왠지 꺼림직하게 느껴졌다.

그때, 윤 사장의 읍소가 장내에 재차 울려퍼졌다.

"저희 태산 CGV는 멀티플렉스 시장 점유율이 56%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추세를 이어간다면 금년에도 1천억대의 영업이익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입니다. 부회장님!"

그의 읍소는 계속 이어졌다.

"더구나 저희 태산 CGV는 전국에 산재한 복합 상영관을 무기로, 대한민국의 영화시장을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무궁무진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 태산 CGV를 지금 이 시점에서 매각하는 건, 부회장님 입장에서도 커다란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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