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강자독식의 시대
강남의 고급 주택가.
중부지법의 신우현 영장전담 판사는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그런 탓인지 자택의 서재를 당황한 신색으로 서성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돈이 그의 수중에 있었던 탓이다.
그는 처음에는 돈가방을 안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에서 이영박 당선자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조건반사적으로 돈가방을 받아들었다.
물론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을때는 이미 때늦은 상황이었다.
돈가방의 전달자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뒤였기 때문이다.
신우현은 돈가방에서 찾아낸 메모지에 시선을 모았다.
<차재성 낙원그룹 회장에게 반드시 구속영장을 발부해 주십시오!>
우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전히 돈의 출처가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돈을 전달한 사람은 차재성에게 원한이 있거나, 아니면 사업상의 라이벌일 확률이 높았다.
그는 돈가방의 처리 문제에 고심했다.
그때, 뜻 밖에도 이영박 당선자의 최측근 인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우현의 고등학교 선배였다.
-돈을 받게. 그게 신판사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선배님은 돈의 출처를 아시는 겁니까?"
-그건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돈을 건넨 사람이 원하는대로 영장을 발부해주게. 그렇게만 해준다면, 자네가 원하는대로 대양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자리를 약속하지.
그 말을 끝으로 고등학교 선배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거대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되고 싶어했다.
일에 치여죽는 지긋지긋한 판사생활에 신물이 난 까닭이다.
하지만 그를 파트너 변호사로 스카웃하려는 거대 로펌은 거의 전무했다.
인맥이 빈약한 탓이었다.
그런 때문일까. 그는 이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상대는 이영박 대통령 당선자의 최측근 인사였다.
거짓을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우현은 돈가방의 주인이 원하는대로, 차재성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
장동현 법무실장과 하동균 비서팀장을 대동한 채 호주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5시간의 비행끝에 시드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의 입국 게이트를 통과할 무렵, 리무진 기사가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샹그릴랴 호텔에서 나왔습니다. 회장님을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리무진 차량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달링하버 근처에 위치한 샹그릴라 호텔에 도착했다.
아멕스 신용카드사의 센트리온블랙 회원인 까닭에,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펜트하우스를 잡을 수 있었다.
그날 밤.
펜트하우스의 옥상 인피니트 풀장에서 수영을 즐기며 달링 하버의 아름다운 풍광을 오롯이 조망할 무렵, 유전개발 업자인 토마스 행크가 면전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계약서류가 들려있었다.
토마스가 건넨 계약서류를 장동현에게 전달했다.
계약서의 이상 유무를 검토하기 위함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장변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전했다.
"서류상으로 이상은 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테니 이만 돌아가 보십시오."
"예. 부회장님."
장변이 사라지자마자 하동균 비서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행크씨에게 돈을 전달하세요."
내 명령이 떨어지자 하팀장이 돈가방을 행크에게 건넸다.
녀석은 100달러 짜리 지폐가 빼곡히 채워진 돈가방을 자세히 살핀 뒤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올테니."
"그럽시다."
그리 화답하자 행크가 좋아죽는 얼굴로 작별인사를 건넸다.
***
다음날.
호텔에서 조식을 해결한 뒤 시드니 공항으로 직행했다.
태즈매니아 섬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그 곳에는 내가 대규모 지분 투자를 감행한 인공위성 발사업체가 있었다.
40분 정도의 비행 끝에 태즈매니아 공항에 도착했다.
그 후, 시 외곽에 위치한 인공위성 업체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인공위성 발사장에 도착하자 스캇 사장이 나를 맞이했다.
그는 오늘 싱가포르 국영 통신사가 의뢰한 통신위성을 발사할 예정이었다.
스캇은 우리 일행을 위성 발사대 인근에 조성한 관람대로 안내했다.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찰나, 요란한 굉음이 산지사방에 장엄하게 울려퍼짐과 동시에 통신위성을 실은 로켓이 대기권을 목표로, 폭발적인 스피드로 발사되는 광경이 시야에 포착됐다.
우르르르르르릉...!
일대 장관이었다.
붉은 화염을 동반한 로켓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통신위성 발사 장면을 한참 동안 감상한 뒤 인근의 사무실에서 스캇과 비지니스에 대해서 진솔한 담소를 이어나갔다.
그 후, 태즈매니아 공항으로 발걸음을 되돌렸다.
시간을 허투루 낭비할 여유따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우리 일행을 태운 전용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상암동 켄싱턴 빌딩으로 직행했다.
129층 사무실에 들어선 뒤 컴퓨터를 켰다.
그 후, 글로벌 에너지 인베스트먼트(GEI) 계좌에 남아있는 잔고를 확인했다.
계좌에는 한화로 180억불(21조) 가량이 남아있었다.
물론 서류상으로는 호주와 동남아의 유전과 가스전을 200억불에 매입한 것으로 조작된 상태였다.
실제로 소요된 자금은 20억불 남짓이었다.
10배 남짓 가격을 부풀려서 계약한 탓이었다.
이제 180억불을 이용해서 대영전자 주식을 매집하면 게임끝이었다.
원래부터 그런 용도로 리맨브러더스에서 대출받은 돈이었다.
GEI의 계좌에 있는 180억불을 키나발루와 안나푸르나 사모펀드 계좌로 각각 60억불을 이체했다.
그 뒤, 키나발루와 GEI, 안나푸르나 명의로 대영전자의 주식을 각각 2천억, 총합 6천억 안팎 매집했다.
앞으로 3주일 동안 매일 6천억씩 3개 사모펀드 명의로 대영전자 주식을 매입할 계획이었다.
첫날 작업을 끝마친 뒤 사무실을 나섰다.
***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그런 탓으로 상지원에서 소일하며 국내외 증시에 이목을 집중했다.
내가 대규모 지분을 보유한 아마존과 페이스북, 애플의 주식은 연일 신고가 행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네이바 역시 신고가 행진을 펼치며 잘나가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내 재산은 한화로 150조원에 달하는 상태였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급증하는 재산에 내심 쾌재를 연발할 즈음, 이태강이 상지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태강이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차재성을 뇌물제공 혐의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인데, 영장전담 판사가 영 마음에 걸리는군."
"영장전담 판사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 돈을 받아먹은지 이미 오래니까."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건 그렇고, 내 목적은 낙원그룹의 핵심 계열사와 보유 부동산을 헐값에 인수하는 겁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차재성에게 최소 10년 이상의 중형이 떨어져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군."
"그래서 형님 역할이 중요합니다..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로 차재성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 분야는 내 전문이니까 김 회장은 더 이상 마음쓰지마라."
"그럼 저야 좋죠. 하하하하...!"
내 입에서 졸로 흡족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 웃음 소리가 가라앉자마자 태강이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차재성을 조사한 결과, 여배우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놈이 있더군. 망나니로 소문난 너석인데, 그 자식을 이용하면 어떨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 말하자, 태강이 노란 봉투를 나에게 건넸다.
"이게 뭐죠?"
그가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차재성의 망나니 둘째아들인, 차경수의 신상파일."
차경수의 신상내력에 시선을 집중했다.
녀석은 어린시절부터 폭행과 약물 복용 등의 혐의로 경찰서를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그때마다 차재성이 돈질로 사건을 무마했다.
나름 망나니 둘째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녀석의 신상파일을 책상 서랍에 집어넣은 뒤, 태강에게 넌지시 물었다.
"차 회장의 아들이 몇명이죠?"
"사생아를 포함해서 모두 4명."
"후계자로 거론되는 녀석은 누굽니까?"
"큰아들인 차명수로 알고있네."
"차명수는 어떤 인물이죠?"
"엄마가 일본여자라 그런지, 거의 일본에서 살다시피하는 모양이야."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가능성이 엿보였다.
그룹의 후계자로 알려진 차명수는 한국에 별다른 인맥이 없는 것 같았다.
"차경수를 상지원으로 데리고 오십시오."
"공권력을 남용하라는 말인가?"
"그건 형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다음날.
자정 무렵, 이태강과 30대 초반의 남자가 상지원 접견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태강이 남자를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이쪽은 차재성 회장의 둘째 아들인 차경수 상무."
차경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 말만 잘들으면, 당신을 낙원그룹의 차기 총수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경수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초면에 누구신데,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그는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태강의 눈치를 살피며 나를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그때, 태강이 나 대신 입을 열었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의 정재계를 암중에서 이끄는 초거물이지. 그러니까 김 회장이 호의를 보일때 알아서 잘하라고.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그리 말하며 차경수의 뒷머리를 오른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상전이 종놈을 대하는 듯한 자세였다.
하지만 경수는 감히 태강에게 싫은 티를 일체 내색하지 않았다..
녀석은 태강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에게 뭔가 약점을 잡힌 눈치였다.
그러했으니 소문난 망나니가 내 앞에서 얌전한 것이다.
경수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나름 두뇌회전을 열심히 하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회장님이 저를 도와주실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죠. 일본피가 섞인 인간이 낙원그룹의 후계자가 되는 꼴을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 말하자, 경수가 물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속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였다.
"역시 회장님은 애국자이시군요. 회장님 말씀처럼 저 또한 평소에 쪽빠리 피가 섞인 차명수가 낙원그룹의 후계자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간사한 미소를 만면 가득 떠올린 채 내 눈에 들기 위해 나름 열심이었다.
태강을 슬쩍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조만간 차 상무의 부친인 차재성 회장은 뇌물공여죄로 교도소에 수감될거다. 그리고 조세포탈과 불법 비자금 조성, 배임횡령 혐의도 추가될 예정이지. 아무리 못해도 최소 10년형 이상을 구형받을거야."
그러자 경수가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태강에게 물었다.
"그 말씀이 정말인가요?"
"이미 조세포탈과 불법 비자금 조성, 횡령 배임, 노조 탄압 등의 모든 증거를 확보한 상태라고. 그러니까 우리 차 상무가 책임지고 회장님의 빈자리를 메꿔야 하는거 아닐까?"
태강이 그리 반문하자, 녀석의 얼국 가득 숨길 수 없는 환희가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아버지의 안위 따위는 관심 밖의 태도였다.
경수는 소문난 망나니답게 낙원그룹의 후계자가 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할 뿐이었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려가고 있었다.
이제 본론에 접어들 차례였다.
"낙원그룹의 영업이익금 태반이 낙원재팬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인가요?"
그러자 경수가 분한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사실입니다. 낙원재팬의 사장직을 맡고있는 쪽바리 차명수의 계좌에 그 돈이 적립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루빨리 낙원그룹에서, 낙원재팬을 계열분리 하는 게 시급하겠군요."
"말은 쉽지만 그게 생각처럼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이유가 뭐죠?"
"낙원재팬의 뒤에는 비밀 지주사인 경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원사의 지분은 아버님이 70%, 차명수가 30% 비율로 나눠갖고 있죠."
태강에게 질문을 던졌다.
"비밀 지주사는 현행법상 불법 아닌가요?"
그가 힘차게 대답했다.
"한국의 법률체계는 비밀 지주사의 존재자체를 불허하고 있지. 그 말인즉슨 경원사 나부랭이는 무시해도 좋다는 뜻이지."
그를 슬쩍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 지검장님의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차경수씨."
그러자 녀석이 희색이 만면해진 얼굴로 머리를 미친 듯이 끄덕거렸다.
"우리가 책임지고 당신을 낙원그룹의 후계자로 만들어 드릴테니까, 자택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계십시오. 조만간 연락이 갈 겁니다."
경수가 감격한 얼굴로 나와 태강을 향해 허리를 넙죽 숙였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두분에게 죽을 때까지 은혜를 갚겠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망나니치곤 나름 예의가 바른 녀석이었다.
그래서 조금 마음에 들었다.
***
락히드마틴의 차세대 전투기 개발 총 책임자인 슈마허 박사와 미사일 신기술 개발팀장인 브레드 기술이사가 한국을 극비리에 방문했다. 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오후 무렵.
슈마허 박사와 브레드 기술 이사를 충남 당진에 위치한 대영항공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대영항공의 공장을 두루 시찰한 뒤 진솔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지하 핵벙커 시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 곳에서 연구를 진행해야 보안 측면에서 안전합니다."
슈마허가 그리 말하자, 브레드 역시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지하 300미터 지점에 대규모 핵벙커를 조성한 후 그곳에서 연구 개발을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 모두 지하 핵벙커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피력했다.
브레드가 재차 입을 열었다.
"최소 5미터 이상의 두께를 지닌 초고강도 강판으로 사면을 둘러쳐야 하고, 최첨단 환기시설과 각종 편의시설도 핵벙커 안에 완비하셔야 합니다."
그의 말은 길게 이어졌다.
"또한 대영항공 주변에 최소 100명 이상의 보안요원들이 물셀틈 없는 경계를 펼쳐야 하고, 슈마허 박사와 저의 신변 안전을 회장님이 반드시 보장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 제반 조건이 충분히 갖춰져야 저희가 마음 놓고 기술 자문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