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24화 (124/175)

124화 원자력발전소

상암동 켄싱턴 빌딩.

129층 사무실에 하동균 비서팀장이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긴급 보고를 올렸다.

"낙원그룹의 차재성 회장이 방금 전에 동부구치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건가요?"

"예. 부회장님."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찰나, 하동균의 보고가 재차 들려왔다.

"그리고 내일 개최될 예정인 이영박 정부의 첫번째 국무회의에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운영 부문을 민간에 개방하는 안건이 상정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오종덕 국무총리와 만남이 예정된 강남 모처의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

청와대 국무회의실.

1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영박은 새로 조각된 내각의 국무위원들을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모두발언을 내뱉었다.

"저는 한국의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실현하고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절감하는 차원에서, 원자력발전소의 설립과 운영을 민간에 대대적으로 개방할 계획입니다."

그의 모두발언은 길게 이어졌다.

"그런 이유로 국무총리실 산하에 원자력 건설과 운영을 민간 기업에 개방하는 위원회를 신설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여러 국무위원들은 신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해서 전폭적인 협조를 보내주십시오."

그의 모두발언이 끝나자마자 오종덕 신임 국무총리가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그는 자신의 의중을 장내에 나직한 목소리로 전달했다.

"대통령님의 말씀대로 국무총리실 산하에 원자력발전소 설립과 운영을 민간에 개방하는 위원회를 설립한 뒤,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운영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의 민간 업체들을 대상으로 공개입찰을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오종덕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이영박을 필두로 장내의 국무위원들이 일제히 박수 갈채를 쏟아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

삼송중공업 본사 빌딩 회장실.

정윤수 회장은 TV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이영박 신정부는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운영을 민간에 대규모로 개방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이제 한국도 미국과 유럽,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과 운영에 민간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또한 국무총리실 산하에 원자력발전소 민간 사업자 선정 위원회를 설립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략...

정 회장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그 역시 오래전부터 원자력발전소 운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큰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일까. 정 회장은 TV 뉴스를 끄자마자 김연호 미래전략 본부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립될 예정인 원자력발전소 민간 사업자 선정 위원회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김연호가 공손히 복명했다.

"예. 회장님."

***

성북동 고급 주택에 삼송중공업의 김연호 본부장이 나타났다.

그는 정윤수 회장이 있는 본관 2층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연호는 육중한 책상에 앉아 있는 정윤수 회장에게 긴급 보고를 올렸다.

"원자력발전소의 민간 사업자 선정은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자 정 회장이 불만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문대로 대영중공업이 원자력발전소의 민간 사업자로 내정됐다는 말인가?"

"예. 회장님."

순간 정윤수의 입에서 거친 어조가 흘러나왔다.

"개자식들이 짜고치는 고스톱을 치는구나!"

김연호가 은근한 얼굴로 물었다.

"여론전을 시작할까요?"

"그건 나중에 생각해볼 문제고, 대영그룹의 김한빈 부회장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해봐."

"그자를 만나서 담판을 지을 생각입니까?"

정 회장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상지원에서 휴식을 취할 무렵, 하동균 비서팀장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보고를 올렸다.

"삼송중공업의 정윤수 회장이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나를 만나려는 이유가 뭐죠?"

"원자력발전소 문제로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삼송중공업은 현도중공업에 버금가는 중화학 전문 대기업 집단이었다.

당연히 그들 역시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운영능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일단 정 회장을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쓸데없이 평지풍파를 일으키면 다된 밥에 재를 쏟을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었다.

다음날.

서울 모처에서 삼송중공업의 정윤수 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홍차를 음미하며 비지니스에 대해서 논의했다.

예상대로 그의 입에서 가시돋힌 언사가 흘러나왔다.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운영권을 이미 확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더군요."

"그건 근거없는 유언비어에 불과합니다. 정 회장님."

"물론 부회장님 입장에서는 그리 변명하시겠지만, 총리실 주변에서는 이미 대영중공업이 원자력발전소의 민간사업자로 선정됐다는 후문이 돌더라고요."

정 회장은 뭔가 승부수를 띄우려는 태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내심 우려하는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앞으로 저희 삼송중공업은 치열한 여론전을 펼칠 계획입니다. '대영그룹 회장 출신인 오종덕 국무총리가 사적인 인연을 빌미로 대영중공업에 어마어마한 특혜를 주려 한다'라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설파할 예정입니다.."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를 말아올리며 그에게 냉랭하게 대꾸했다.

"판을 엎으실 생각입니까?"

"내가 먹지 못할 감이라면, 남도 먹지 못하게 만들어야 공평한거 아닙니까? 내 말이 틀렸습니까?"

"뭐,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후후..."

그리 말하며 담배 꽁초를 유리 재떨이에 툭 내던졌다.

직후, 재차 입을 열었다.

"저는 비지니스는 비지니스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마음에 두고 계신 거래 조건을 솔직히 말씀해 보십시오."

그제야 정 회장이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보였다.

"이영박 정부는 전국에 총 12개 남짓한 원자력발전소를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중에서 저희 삼송중공업에 최소 2개 이상의 원자력발전소를 허용해 주십시오. 그게 내가 원하는 겁니다."

"삼송중공업에 원자력발전소를 허용하면 현도중공업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리 말하자 정 회장이 머리를 저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현도중공업은 원자력발전소 사업에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들은 사내유보금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금융권에 17조원이 넘는 막대한 융자금이 깔려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한 만한 자금 여력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에는 수조원대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자본력이 딸리는 기업은 애당초 진입조차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정윤수는 그룹의 자금 여력에 걸맞는 파이를 원하고 있었다.

12개 중에서 2개 정도만 원한 게 그 증거였다.

나는 소리소문 없이 원자력발전소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었다.

삼송중공업이 언론을 동원해서 여론전을 펼치면 만사불성이었다.

결국 그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윤수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 회장님의 제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역시 소문대로 상황판단이 빠르시군요. 하하하..."

정윤수의 입에서 흡족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아담 페런 상원의원이 한국을 극비리에 방문했다.

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상지원을 방문한 아담의 입에서 뜻 밖의 언사가 흘런나왔다.

"대영중공업이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할 계획이란 소문이 사실인가?"

"그걸 어찌 아십니까?"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미국은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계획 현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지."

"흐으음..."

내 입에서 절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미국의 반대에 직면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원자력발전소를 굳이 민간기업인 대영중공업이 운영하려는 이유가 뭔가? 솔직하게 답변해주면 고맙겠군."

"당연히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원자력발전소 운영사업에 참가하려는 겁니다."

"정말 다른 뜻은 없는 건가?"

아담이 의구심이 깃든 눈빛으로 나를 주시했다.

"제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려는 이유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저를 못믿으시는 겁니까?"

"김 회장을 못믿는게 아니라, 자네의 야망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지."

아담은 그답지 않게 말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저의 어떤 점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즉답했다.

"김 회장이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려는 근본 목적이 핵무기 개발에 있다고 생각하네. 내 짐작이 틀렸는가?"

아담의 통렬한 일침이었다.

그의 말대로 내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려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핵무기 개발이었다.

한국을 좀먹는 친중파와 친일파, 친북파를 모두 쓸어버리는 것은 물론 중국과 일본, 북한에 대해서 핵으로 맞대응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속내를 아담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어차피 핵무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아담의 도움이 절실한 형편이었다.

그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의원님의 예상대로 제 목표는 한국의 핵무장입니다. 한국을 핍박하는 중국과 북한을 대상으로 핵억제력을 확보하기 위함이죠."

"으으음..."

아담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그의 굳게 닫혔던 입이 슬며시 열렸다.

"정말 핵무기 개발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생각인가?"

그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반드시 핵무기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미국이 반대해도 변함이 없는 건가?"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의원님."

아담의 입에서 장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게 쉽지 않을 걸세."

"그러니 의원님이 저를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내 도움을 바라는 모양이군."

"예. 의원님."

"그런 사람이 사전에 나에게 일언반구 언급조차 하지 않은 건가?"

"그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나중에 내가 다시 연락함세."

아담은 그 말을 끝으로 상지원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

서울 하얏트 호텔 프레지던셜 스위트룸에 아담 상원의원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수행원들을 모두 물린 뒤, 창 밖에 드리워진 서울의 야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아담은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서 관대한 입장이었다.

한국을 위협하는 북한과 중국 모두 핵으로 무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은 미국의 맹방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의 핵무장을 극력 반대하고 있었다.

일본과 대만마저 핵으로 무장할 빌미를 주는 탓이었다.

허나, 그는 미국 정부의 반대를 무릎쓰는 한이 있더라도 한빈을 도와주고 싶었다.

아담은 오래전부터 한빈을 눈여겨봤다.

그 결과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초거물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그는 에바의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도맡고 있었다.

아담은 에바를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주기적으로 헌금하는 후원자가 필수였다.

바로 그 인물이 한빈이었다.

한마디로 그들 세 사람은 뗄레야 뗄수 없는 공동운명체였다.

아담과 에바, 한빈 모두 그런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한빈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그러자면 에바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드는 게 급선무였다.

***

용인 CC 골프장으로 아담 상원 의원을 초청했다.

우리는 캐디를 모두 물린 뒤, 단 둘이 라운딩을 즐기는 한편 한국의 핵무장에 관해 심도깊은 협의를 논의했다.

"에바를 미국 대통령으로 옹립하는 게 최선일세. 그 후,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정책을 취하면 만사 OK지."

머리를 끄덕거리며 나름 염두를 굴렸다.

에바는 2020년 경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될 운명이었다.

그 말인즉 한국의 핵무장 시점을 2020년 전후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순서겠군요?"

"그렇겠지. 언제 시간이 되면 워싱턴을 방문해주게."

"알겠습니다. 의원님."

"그리고 에바가 말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정치자금 헌금을 부탁하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원님."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우하하하...!"

그의 입에서 흡족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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