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26화 (126/175)

126화 이영박 정권의 핵심 요직에 내 사람을 심어놓다

이영박 정권의 신임 검찰총장 인선이 목전에 당도했을 무렵, 이태강을 필두로 검찰의 주요 간부급 인사들이 상지원을 내방했다.

그들은 모두 이태강 라인에 소속된 검사였다.

그런 탓인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겄만 나에게 깍듯이 허리를 접었다.

그들과 차분히 악수를 교환한 뒤 준비해온 금일봉을 각자에게 차례로 돌렸다.

당연히 그들은 내 돈을 거부하지 않았다.

태강이 흡족한 얼굴로 휘하 검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10억이 들어 있으니까 요긴한 곳에 사용하도록."

그러자 검사들의 입에서 일사불란한 복명이 흘러나왔다.

"네. 총장님!"

그들은 아직 지검장 신분에 불과한 태강을 총장으로 높여 부르고 있었다.

그가 이영박 정부의 초대 검찰 총장으로 낙점된 사실을 잘 아는 탓이었다.

검사들을 돌려보낸 뒤 태강에게 슬며시 물었다.

"차재성 회장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그가 즉답했다.

"법원에 보석 신청을 한 모양이더군. 그런데 법원 분위기가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이상하죠?"

"보석 신청을 허가해줄 움직임을 보이더라고. 말이 안되는 일이지."

"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네. 모릅니다."

"허... 거참! 갑자기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 듣는 거야? 김 회장 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영박이 법원에 압력을 넣었어요. 그런 이유로 차재성의 보석 허가는 받아들여질 겁니다."

태강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영박이 말을 갈아탄 건가?"

"그건 아니고, 피치못할 속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형님은 모르는 척 하고 계십시오."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한거지?"

"그건 나중에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십시오."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태강이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김태구 경호팀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클럽에서 회포를 풀 생각이니까 경호원들을 대기시키세요."

"네. 부회장님."

***

상암동 켄싱텅 빌딩 129층.

사무실의 육중한 책상에 좌정한 채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에 이목을 고정했다.

-법원은 차재성 회장이 신청한 보석신청을 허가했습니다. 이로서 차 회장은 서울 동부 구치소에 수감된지 10일 만에 출소하게 됐습니다.

-반면 검찰은 법원의 처사를 존중한다며, 이의항소를 제기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중략...

TV를 끈 뒤 조웅래 신임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밤.

국정원장으로 영전한 조웅래가 상지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내 강력한 천거로 국정원장이 되었다.

그런 탓일까. 나에 대한 충성심이 보통이 아니었다.

조웅래는 나를 향해 공손히 인사한 뒤 007 가방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후, 주사기에 주입된 용액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길게 나열했다.

"이 독극물은 제1급 화학무기 물질인 VX 신경작용제로서, 증거 없는 암살에 최적화된 물건입니다. VX 신경작용제는 인간의 소변과 땀, 혈액, 분비물 등에 섞인 채, 체내에 주입된지 12시간 안에 자연적으로 체외로 배출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사체부검 시점을 사망한지 12시간 이후로 늦춘다면, 독극물의 증거물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인가요?"

"이를테면 그렇습니다. 회장님."

조웅래 역시 나를 회장님으로 호칭했다.

내 신분이 범상치 않음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이제 한가지 문제만이 남았다.

차재성의 몸에 VX 신경작용제를 주입할 타겟맨이 필요했다.

그런 때문일까. 차경수의 야비한 얼굴이 뇌리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조웅래를 내보낸 뒤 이태강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다음날.

밤 11시 무렵, 차경수가 상지원 접견실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허리를 깍듯이 접은 뒤 면전에 조심스럽게 시립했다.

VX 신경작용제가 들어 있는 007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자, 녀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정보기관에서 주로 사용하는 독극물 주사기의 일종입니다. 이 물건을 차 회장의 몸속에 주입하면 30초 이내에 심장이 멈출 겁니다."

"설마...? 저더러 아버지의 몸에 저 주사기를...?"

경수가 경악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떠억 벌렸다.

자기 손으로 부친을 암살하라는 내 지시에 많이 놀란 눈치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흔한 돌연사의 일종으로 보일 겁니다. 그러니 마음 푹 놓고 차 회장의 숨통을 끊어놓으세요. 어차피 살만큼 산 양반 아닙니까?"

그러자 녀석이 발작적으로 머리를 미친 듯이 저었다.

살부지심이 아직 부족한 모양이었다.

뭔가 놈의 주의를 환기시켜줄 그럴 듯한 충고가 필요했다.

그래서 녀석에게 솔직히 말했다.

"일본 피가 섞인 차현수가 그룹의 대통을 잇는다면, 경수씨는 수중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낙원그룹에서 하루아침에 축출될 겁니다. 거의 알거지나 마찬가지 신세로 전락하겠죠."

"차현수가 낙원그룹의 차기 회장이 된다면, 한국의 국부를 일본으로 유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경제적인 손실 또한 엄청나게 발생하겠죠."

내 그럴듯한 충고가 먹혀든 탓일까. 녀석이 눈빛을 번뜩이며 내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에게 재차 진솔한 목소리로 속 깊은 충고를 길게 전달했다.

"지금 경수씨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게임을 하고 있는 거에요. 차 회장이 살아서 후계자를 지명할 경우, 일본피가 섞인 차현수를 차기 회장으로 낙점할 겁니다."

"물론 경수씨에겐 수백억대의 부동산과 주식 정도가 유산으로 남겨지겠죠. 그마저도 국세청에 세금으로 납부하면..."

말꼬리를 흐리며 녀석의 눈을 조롱하듯 주시했다.

경수는 몸서리쳐지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초라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내 말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차 회장은 이미 70대 후반이에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겁니다. 더구나 VX 신경작용제는 편안한 죽음을 안겨주는 독극물로 유명하죠."

"경수씨도 아시다시피 차 회장은 반민족적인 매국행위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것도 나름 효도라고 생각하시고 내 제안을 받아들이세요. 그 길이 경수씨나 차 회장 모두에게 이로울 겁니다."

내 진솔한 조언은 계속 이어졌다.

"후대의 역사는 차경수씨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친일 매국노인 부친을 과감하게 처단한 구국의 열사로 기억할 겁니다."

녀석이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후세의 역사서에 그리 기록될까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경수의 입에서 조심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에게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주십시오."

그가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좋습니다. 48 시간 안에, 결론을 내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차경수는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부친인 차재성 회장의 매정한 얼굴을 의식적으로 떠올렸다.

차 회장은 경수에게 건설사의 술상무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술이 약한 임원들을 대신해 거래처 간부들을 접대하는 보직이었다.

말그대로 보잘것 없는 직책이었다.

그런 이유로 경수는 차 회장에게 그럴 듯한 직함을 달라고 날마다 졸랐다.

그럴 때마다 차 회장은, 더 이상 회사 경영에 관여할 생각을 일체 하지 말라는 냉정한 답변만을 앵무새처럼 무한반복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차 회장이 그에게 변변한 부동산이나 주식 등을 증여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 살고 있는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한채와 여러대의 슈퍼카, 그리고 다달이 입금되는 1억원 상당의 돈이 전부였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자, 경수는 자신의 처지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나 진배없음을 절로 깨닫게 되었다.

차 회장은 수년 안에 그룹의 경영권을 큰아들인 차현수에게 넘겨주겠다고 여러차례 호언장담한 상태였다.

그가 자신의 호언장담을 실행에 옮길 경우, 경수는 그룹에서 설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그런 냉엄한 현실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된 탓일까.

경수는 한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

이영박 정부의 초대 검찰 총장으로 취임한 이태강은 자신을 추종하는 직계 라인을 대검과 중앙지검에 대거 포진시켰다.

그는 의도적으로 직계 라인을 정치인과 재벌 회장,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두루 수사할 수 있는 핵심 부서에 배치했다.

그들의 약점을 대대적으로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그 즈음, 태강이 사적으로 이용하는 대포폰에 차경수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 밤.

강남 모처의 고급 호텔 프레지던셜 스위트룸에 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미리와서 대기 중이던 차경수와 악수를 교환한 뒤 본격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를 청한 이유가 뭔가?"

차경수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답했다.

"저의 뒤를 봐주십시오."

"심각한 얼굴로 쓸데없이 분위기를 잡는군."

태강이 냉랭히 대꾸하자, 경수가 손사래를 치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정말 심각한 일이 있습니다. 그 문제로 총장님을 뵙자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 일이 뭐길래 이 난리를 치는 거냐고?"

"먼저 총장님이 저의 뒤를 봐주신다는 약속을 해주십시오."

"무슨 얘긴지 일단 들어본 후에, 약속을 하든 말든 할거 아닌가?"

그제야 경수의 입에서 작심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저는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기 위해 혈안이 된, 차재성 회장을 내 손으로 직접 죽일 계획입니다. 이미 독극물도 입수한 상태죠. 그래서 총장님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겁니다. 우리는 한팀이니까."

태강은 한빈이 자신을 도외시한 채, 경수에게 직접 오더를 내렸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런 때문일까. 그는 한빈에게 적잖이 섭섭한 심경이었다.

이런 중요한 일을 자신에게 일언반구 언급조차 하지 않은 탓이다.

태강이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찰나, 경수의 심각한 목소리가 장내에 재차 울려퍼졌다.

"총장님이 저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확실히 해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을거 아닙니까?"

태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차 상무의 안전은 내가 보장할테니, 눈치 보지말고 계획한 일을 실행하게."

그 말을 끝으로 스위트룸을 재빨리 빠져나왔다.

***

상지원의 서재에서 경제서적을 차분히 탐독할 무렵, 김태구 경호팀장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태강 총장님께서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서재로 들여보내세요."

"예. 부회장님."

잠시 후, 태강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는 심통이 잔뜩 난 얼굴로 불만을 터트렸다.

"차경수에게 부친을 살해하라는 오더를 내렸다면서?"

"네. 그런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그런 중요한 일을 왜, 나에게는 언급을 안한거지?"

"나중에 하려고 했습니다."

"김 회장! 나는 대한민국의 검찰 총장일세! 그런 나를 김 회장은 대놓고 무시하고 있는 거라고!"

태강은 나에게 무시당했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그런 탓인지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그에게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형님은 차기 대통령이 되실 분입니다. 그런 귀하신 분이, 이런 협잡질에 깊숙이 개입해봤자 좋을 일이 없다고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태강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갸우뚱했다.

내 말의 진의를 되새기는 눈치였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가 다소 화가 풀린 얼굴로 물었다.

"그 말이 참말인가?"

"진심입니다. 형님은 이런 일 자체를 모르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언급을 안한 겁니다. 이제 내 속마음을 어렴풋이 아시겠습니까?"

그제야 태강이 겸연쩍은 얼굴로 변명조의 언사를 길게 늘어놓았다.

"진작 그리 말해주면 될 일을, 왜 이리 힘들게 말하는거야!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김 회장을 공연히 오해했지 않은가. 그러니까 미리미리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나누자고. 이 사람아. 허허...!"

그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서재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자정 무렵.

차재성 회장의 자택에 차경수가 나타났다.

그는 부친이 있는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재로 들어선 경수는 문을 등지고 앉은 채, 고풍스런 책상에서 독서에 여념이 없는 차 회장을 발견했다.

그는 차 회장에게 조심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에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차 회장이 책에 시선을 고정한 자세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쓸데없이 야밤에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경수는 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는 부친에게 불같은 적개심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눈에 비친 차 회장은 친일매국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경수의 손이 점퍼 주머니 속으로 본능적으로 들어갔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VX 신경작용제가 가득 담긴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그 후, 부친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차 회장은 여전히 독서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다.

바로 그때, 경수의 손에 들린 주사기가 그의 뒷 목덜미에 힘차게 틀어박혔다.

푸욱!

경수는 부친의 목숨을 갈구하는 한마리 들짐승으로 돌변한 채 주사기의 용액을 차 회장의 목덜미 속으로 세차게 주입했다.

차 회장의 고개가 모로 꺽여졌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허연 개거품이 일어났다.

경수는 부친이 죽었음을 확인하자 주사기를 재빨리 점퍼 주머니 속으로 회수했다.

그 뒤, 저택의 집사에게 부친의 죽음을 목놓아 부르짖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죽었다고요! 지금 당장 119를 부르세요!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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