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29화 (129/175)

129화 그림자 정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목전에 당도했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을 감당 못한 대형투자은행들의 연쇄적인 파산이 예견되는 시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석달만기 풋옵션에 거액을 투입하기로 작심했다.

허나, 그런 내 계획은 초장부터 대차게 틀어졌다.

눈치빠른 국제 투기자본들이 풋옵션을 미친듯이 매집한 까닭이다.

그런 탓으로 5억불(6천억) 내외의 풋옵션을 매집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물론 그 정도 수량만으로도 수조원대의 시세차익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

이영박 정부는 부동산 투기붐을 종식시키기 위해 서울에 대규모 뉴타운을 조성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서울과 수도권을 필두로 전국의 아파트 가격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정세에 돌입했다.

서울과 수도권에 신규 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하자 자연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향안정화된 것이다.

확실히 이영박의 부동산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그는 규제보다는 대규모 공급을 통한 부동산 정책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효과가 지대했다.

부패한 인물이지만 부동산 정책 만큼은 나름 능력이 있는 양반이었다.

그 무렵, 상지원에 이영박의 핵심 참모가 나타났다.

그는 영박의 돈 관리를 전담하는 인물이었다.

접견실에 나타난 그에게 한화로 6천억 상당의 CD를 건넸다.

그가 흡족한 얼굴로 영박의 말을 대신 전했다.

"원하시는대로 낙원그룹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예. 회장님.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말을 끝으로 접견실에서 조심스럽게 사라졌다.

***

낙원그룹이 보유한 서울과 수도권 인근의 부동산을 두루 시찰했다.

나중에 큰 돈이 될 만한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시찰을 끝마친 뒤 서울 근교의 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 후, 상암동 켄싱턴 빌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29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진대현 본부장이 보였다.

뭔가 급한 사안이 있는 모양이었다.

책상에 좌정한 채 면전에 서 있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가 즉답했다.

"대영항공의 핵심 기술진과 그 가족들을 켄싱턴 빌딩으로 이주시키는 작업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이유가 뭐죠?"

"기존에 가계약했다가 입주를 포기한 고객들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다시 입주하겠다고 연일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몇가구나 그런 거죠?"

"총 여섯가구가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가계약을 포기했다면서요?"

"그건 그런데, 서류적으로 완전히 작업이 끝난게 아니라서..."

그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가게약이 유효하다는 말인가요?"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그럼 할 수 없군요. 웃돈을 얹어주고 가게약을 포기하게 만드세요."

"이미 그런 제안을 했는데, 너무 큰 금액을 요구하는지라..."

"얼마나 요구하길래 그러는 겁니까?"

"거의 억대의 금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달라는 대로 돈을 주세요. 기술진들이 입주할 주택이 시급한 상태니까."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그리고 낙원그룹의 차경수 회장에게 서울과 수도권 요지의 부동산 매각 문제를 이사회에 상정하라고 전하십시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낙원그룹 본사 빌딩에 진대현 본부장이 나타났다.

그는 곧바로 회장실로 쳐들어갔다.

한빈의 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함이었다.

대현은 회장실의 푹신한 소파에 착석하자마자 차경수에게 오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서울과 수도권 요지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사안에 대해서, 왜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거죠. 우리 회장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기시는 겁니까?"

경수가 겁먹은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절대 그런건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번주 안으로 우리 회장님의 명령을 이행해 주십시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차경수씨!"

대현은 점령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탓일까. 차경수를 자신의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허나, 경수는 감히 대현에게 반발할 수 없었다.

그의 뒤에 김한빈이 있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나서는 대현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내걸렸다.

그는 이 맛에 본부장 노릇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가호위의 전형이었다.

목요일 오후.

낙원그룹 본사 빌딩 대회의실에 그룹 이사진들이 모여들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을 신속하게 매각하는 안건이 이사회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이런 소식은 한빈의 귀에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

대영항공의 평택 공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하동균 비서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올림푸스 사모펀드 명의로 낙원그룹의 부동산을 시세의 10분1 가격으로 전량 매입하세요. 그리고 켄싱턴 필드에 입주하는 대영항공 기술진과 가족들의 편의에 각별히 신경을 써주십시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내 지시는 계속 이어졌다.

"이수경 경리팀장에게 50억 내외의 금일봉을 준비하라고 전하세요."

"예. 부회장님."

얼마 후, 차창 밖에 대영항공의 거대한 전경이 짙게 드리워졌다.

차에서 내린 뒤 대영항공의 지하 연구실로 직행했다.

지하 연구실에 들어서자 4각형 구조의 핵벙커가 시야에 들어왔다.

1천평 남짓한 규모였다.

핵벙커는 5미터 굵기의 초고강판을 이용해 사면을 철통같이 둘러싼 구조였다.

말 그대로 핵전쟁이 발발해도 끄덕없는 수준이었다.

핵벙커 안으로 들어가자 락히드마틴의 수석 엔지니어들과 대영항공의 핵심 기술진들이 머리를 맞댄 채 차세대 전투기와 미사일 등을 공동 연구개발하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한 뒤 1시간 가량 연구시설을 두루 살폈다.

공장 시찰을 끝마친 뒤 주변에 위치한 밥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곰탕으로 배를 채운 후 맞은편에 앉아있는 하동균에게 넌지시 말했다.

"모두편한 아파트의 전속 배우로 활약 중인 김태란을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모두편한 아파트는 대영물산의 아파트 브랜드였다.

동균이 은근한 얼굴로 물었다.

"그녀가 마음에 드십니까?"

"베이글 스타일이라 조금 눈길이 가더군요. 그러니 하팀장님이 책임지고 내 앞으로 데리고 오십시오."

"예. 부회장님."

***

김태란은 드라마의 여왕이라는 평판을 들을 정도로 시청률 보증수표였다.

화려한 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탓이다.

그런 이유로 굵직굵직한 광고에 메인 모델로 기용되고 있었다.

모두편한 아파트는 그 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2년 전속 계약을 체결하는 대가로 총 16억원에 달하는 광고비를 지급받았다.

연간 8억원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그런 탓일까. 대기업 광고주의 저녁 식사 초대를 감히 거부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 밖에 날 경우 광고 계약 체결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저녁식사만 할 요량으로 광고주의 초대에 응했다.

며칠 후, 태란은 한남동에 위치한 고급 주택에서 광고주와 저녁식사를 가장한 미팅을 가졌다.

놀랍게도 그녀는 광고주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형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남성미 넘치는 마스크와 190cm에 달하는 훤칠한 키, 근육질의 바디를 두루 겸비한 까닭이었다.

더구나 그 남자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대영그룹의 실질적인 오너로 군림하고 있었다.

태란은 진정으로 놀라버렸다.

백마탄 왕자님의 현신을 눈 앞에서 생생히 목도한 탓이었다.

허나, 남자는 그날 이후 단 한차례도 연락이 없었다.

그런 때문일까. 태란은 날마다 그의 연락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결국 태란은 자신이 먼저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보기보다 저돌적인 면이 있었다.

***

상지원의 피트니스 룸에서 헬스 3대 운동과 샌드백 치기를 끝마친 뒤 침실로 들어갔다.

그 후, 침상 위에서 운기행공에 매진했다.

단전에 깃든 내공을 가일층 북돋우기 위해서였다.

전신 대소 혈맥으로 내공을 불철주야 운기할 즈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똑똑똑!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부회장님."

행공을 중단한 뒤 문 밖으로 걸어나가자 김태구가 송구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김태란씨가 찾아왔습니다."

"상지원에 왔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우리는 그저 원나잇을 함께한 사이에 불과했다.

당연히 그녀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사모하는 그녀를 매정하게 내치는 건 사내대장부의 도리가 아니었다.

"접견실로 안내하세요."

"예. 부회장님."

대충 옷을 차려입은 뒤 접견실로 발걸음을 이동했다.

접견실에 들어서자 섹시한 미니드레스 차림의 김태란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내 품에 뜨겁게 안겨왔다.

"보고싶었어요. 회장님."

그리 말하며 내 입술에 진한 키스를 선사했다.

그녀는 나에게 한눈에 반한 케이스였다.

결국 그녀와 다시 한번 오붓한 시간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

다음날.

그녀와 함께 압구정 명품거리를 쇼핑했다.

나름 그럴듯한 선물을 사주기 위함이었다.

억대의 쥬얼리를 선물한 뒤 태란의 집으로 차를 몰아갔다.

그녀는 서초동의 고급 빌라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태란은 집에 도착하자 사랑스러운 키스를 남발했다.

한참 동안 키스를 즐긴 뒤, 그녀를 뒤로 한 채 상암동 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한 여자에게 두번 이상 정을 주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물론 에바 페런은 예외였다.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상암동 켄싱턴 빌딩에 도착하자 김태구 경호팀장이 차 문을 열어줬다.

그에게 목례를 취한 뒤 129층 사무실과 직퉁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129층에 도착하자 비서진들이 나를 향해 90도 각도로 허리를 깍듯이 숙였다.

그 중의 반은 미모의 여비서였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내 여자로 만들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비서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없다.

공과 사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회사의 기강은 엉망이 된다.

안봐도 비디오였다.

여비서들의 상큼한 비쥬얼을 유심히 관찰한 뒤 사무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상 위에는 결재서류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대영그룹과 태산그룹 각 계열사에서 올린 시급을 요하는 서류들이었다.

책상에 앉자마자 결재서류에 부회장 직인을 기계적으로 날인했다.

서류를 자세히 살필 시간적인 여유가 전무한 탓이었다.

대략 2시간 동안 밀린 결재서류를 처리한 뒤 비서실에 콜을 넣었다.

"쟁반짜장과 군만두, 짬뽕을 배달시키세요."

-네. 부회장님.

20분 뒤, 중화요리가 사무실 안에 배달됐다.

중식으로 배를 채운 뒤 다시 결재서류에 부회장 직인을 차례로 날인했다.

결재서류 처리는 오후 4시 무렵에서야 끝이났다.

시원섭섭한 심경이었다.

그런 때문일까. 갑자기 흡연이 급땡겼다.

결국 입가에 담배를 문 채 나 홀로 줄담배를 만끽했다.

사무실에 담배 연기가 자욱이 퍼질 무렵, 하동균 비서팀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오르세 미술관의 이서연 관장이 찾아오셨습니다."

뜻 밖이었다.

그녀가 먼저 나를 찾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들여보내세요."

"네. 부회장님."

잠시 후, 정장룩 차림의 이서연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한국 여자 중에 제일 미녀였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녀의 기품있는 미모는 완전히 내 취향이었다.

내 앞에서 다소곳이 차를 즐기는 그녀를 차분히 주시하며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뭐죠?"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부회장님 마음에 들 만한 미술작품이 소더비 경매장에 출품될 예정이에요."

서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부회장님을 찾아뵌거죠."

그리 말하며 고혹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망울을 그윽하게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안그래도 뉴욕으로 출장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저와 뉴욕으로 같이 동행하시죠."

"그래도 될까요?"

"부담갖지 마십시오. 관장님."

"좋아요. 그럼 부회장님 일정에 맞춰서 스케쥴을 짜볼게요."

"그리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은데 가능하신지요?"

그녀가 잠시 뭔가를 생각한 뒤 조신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시면, 제가 고맙죠."

"감사합니다. 하하..."

내 입에서 절로 흐뭇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날 밤.

우리는 강남 인근의 호텔방에서 처음으로 만리장성을 쌓았다.

***

뉴욕에 도착한 뒤 아담 상원의원의 맨해튼 사무실을 방문했다.

우리는 다과를 즐기며 이런저런 서론을 길게 늘어놓았다.

그러기를 얼마 후, 준비해온 CD를 그에게 전달했다.

아담은 10억불(1조2천억) 상당의 CD를 확인한 뒤 책상 서랍 깊숙이 수납했다.

그 뒤, 환한 얼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네. 약속을 지켜줘서."

"당연히 약속을 지켜야지요. 의원님에게 신세진 게 한둘이 아닌데."

그가 심유한 눈빛을 내비치며 뜻 밖의 말을 꺼냈다.

"이번주 금요일에 텍사스에서 미국을 움직이는 실세들과 미팅을 가질 예정일세."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김 회장을 그들에게 소개시킬 생각인데, 금요일에 시간이 있나?"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모임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할 기회를 주는 걸세."

"옵저버 자격이 뭡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간략하게 설명했다.

"음모론자들이 흔히 말하는, 미국을 암중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의 옵저버 자격을 자네에게 부여하겠다는 뜻일세."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내 추천을 받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하하하...!"

아담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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