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32화 (132/175)

132화 창공을 꿰뚫는 가공할 불새

2010년의 새 해가 밝아왔다.

나는 희망찬 신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방 모처에서 본격적인 가동에 돌입한 대영중공업의 제 1호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했다.

이 곳에서 발전된 전기는 주로 수도권에 공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주요 관심은 사용후 핵연료가 저장되는 습식 저장소에 모아졌다.

그런 탓으로 원전 지하 깊숙이 설치된 습식 저장소를 제일 먼저 시찰했다.

지하 300미터 깊이에 들어선 습식 저장소에는 이미 사용후 핵연료봉이 빼곡히 저장된 상태였다.

핵연료봉을 유심히 살핀 후 장성용 발전소장에게 엄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사용후 핵연료봉 관리에 만전을 기해 주십시오."

"예. 부회장님."

그의 믿음직한 대답을 뒤로한 채 지상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후, 원전 근처에 들어선 종합병원을 방문했다.

이 곳은 대영병원의 지방 분원이었다.

인근 주민들의 복리후생 차원에서 400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투입한 병원이었다.

당연히 진료비의 대다수를 대영중공업이 부담했다.

그런 탓인지 병원에는 진료를 받으려는 지역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원자력발전소의 순기능이었다.

원자력발전소와 병원 시찰을 두루 끝마친 후 대구 근교에 위치한 골프장으로 직행했다.

***

골프장에 들어서자 이태강이 나를 반겼다.

우리는 곧바로 라운딩에 나섰다.

18홀을 여유로이 도는 한편 태강과 속깊은 대화를 교환했다.

그가 앓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영박이 마음이 변한 건 아니겠지?"

태강은 다음달에 검찰 총장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이영박 측에서 뭔가 언질이 올 겁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니까. 그러니 김 회장이 그 양반을 만나서 담판을 지어주면 안될까?"

그는 국무총리직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차기 대권으로 직행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한번 만나볼테니 조바심 내지 말고 골프나 칩시다."

그리 말하며 하얀 골프공을 힘차게 강타했다.

딱!

내가 날린 골프공이 푸른 하늘을 쏜살같이 가르며 정확히 홀인원을 기록했다.

그러자 태강이 감탄한 얼굴로 '나이샷!'을 연발하며 나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상지원 접견실에 차경수가 나타났다.

그가 애절한 얼굴로 읍소했다.

"낙원재팬 측이 한국 법원에 낙원그룹의 경영권 무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래서요?"

"이게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닙니다. 법원에서 낙원재팬의 소송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 재판에 들어가면 제가 패소할 확률이 거의 8할이 넘을 거라고 변호사들이 그러더라고요."

그의 예상대로 낙원재팬이 승소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들이 보유한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의 지분이 차경수보다 확연히 많았기 때문이다.

"제발 법원에 힘을 써 주십시오. 회장님.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녀석이 이길 방법은, 낙원재팬이 낙원그룹을 상대로 제기한 경영권 무효소송 자체를 법원이 기각하는 것이었다.

낙원그룹을 무대로 펼쳐지는 경영권 분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그럴 듯한 묘안이 뇌리를 스쳤다.

동시에 쓸만한 그림이 절로 그려졌다.

경수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이 문제는 이영박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게 상책이에요. 그러자면 거액의 뇌물이 필요한데..."

말끝을 흐리자 녀석이 앓는 듯한 얼굴로 하소연을 해왔다.

"아시다시피 대주주들이 하도 견제하는 바람에 비자금을 제대로 조성하지 못했습니다."

"가용 자금이 어느 정도죠?"

"모두 끌어모아봤자 5백억 남짓입니다."

"이영박의 마음을 얻기에는 많이 부족하군요."

"그래서 회장님에게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거 아니겠습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쓸만한 대안을 제시했다.

"낙원호텔 지분 20% 안팎을 이영박에게 넘깁시다."

낙원호텔의 시장가치는 거의 1조5천억에 육박하고 있었다.

경수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3천억을 배팅하자는 말씀입니까?"

"그 정도는 돼야 이영박이 우리 뜻대로 움직일 겁니다."

녀석이 어금니를 피가 나도록 앙다문 채 내 제안을 심사숙고했다.

대략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의 입에서 결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회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영박을 만나서 담판을 지어볼테니 자택에서 대기하고 계십시오."

경수를 돌려보낸 뒤 이영박 측에 한통의 전화를 걸었다.

***

늦은 밤.

이영박은 청와대 관저의 서재를 거닐며 차기 국무총리 인선에 골몰하고 있었다.

원래 그는 약속대로 이태강을 국무총리로 낙점할 생각이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마음은 자연스럽게 변색됐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총리로 기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돈도 챙길만큼 챙긴 상황이었다.

조단위가 넘는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축적한 것이다.

영박은 오래전부터 두터운 교분을 나눈 재계 인사를 차기 국무총리로 낙점하기로 내심 결정했다.

그 무렵, 김한빈이 독대를 나누고 싶다는 의중을 전해왔다.

그와의 만남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영박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빈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비공식적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탓에 뒷문을 이용해서 관저로 들어갔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탓이다.

관저의 서재로 들어서자 이영박이 나를 반겼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흡연을 즐기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차기 국무총리로 이태강 검찰 총장을 낙점해 주십시오."

영박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미 차기 총리로 내정한 인물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구죠?"

"최영민 자동차 협회장입니다."

최영민은 이영박의 오랜 친구였다.

그는 결국 나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릴 생각이었다.

따끔한 충고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작심발언을 내뱉었다.

"이태강을 국무총리로 낙점하는 건, 오래된 약속입니다. 대통령님!"

대놓고 따지자, 영박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최영민을 총리로 기용하는 게 여러모로 나을거 같아서 그런 겁니다."

"죄송하지만 대통령님의 임기는 2년 10개월 남짓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저와 한 약속을 반드시 실행에 옮겨주십시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말을 귀담아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준비해온 꽃놀이패를 그에게 제시할 차례였다.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약속대로 이태강을 차기 총리로 낙점해 주신다면, 낙원호텔의 지분 20%를 대통령님에게 넘겨드리겠습니다. 시가로 3천억에 상당하는 액수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영박이 탐욕에 절은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정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소?"

"지금 이 자리에 낙원그룹의 차경수 회장을 호출해서, 확인해보면 될 일 아닙니까?"

그리 말하자, 영박이 돈독이 잔뜩 오른 얼굴로 청와대 비서관을 호출했다.

그는 눈앞에 나타난 비서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차경수 회장을 섭외해서 지금 당장 관저로 모시고 와!"

"네. 대통령님."

1시간 후.

차경수가 서재에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얼떨떨한 얼굴로 이영박과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대통령님에게 낙원호텔 지분 20%를 양도하세요. 그렇게 하시면 낙원재팬 측이 한국 법원에 제기한 경영권 무효 소송을 기각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오른쪽 눈을 찡긋하자 영박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그의 입에서 경수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믿음직한 확언이 흘러나왔다.

"낙원호텔 지분 20%를 나에게 양도해 주신다면, 차 회장이 원하는대로 일을 처리해 드리겠소."

대통령이 면전에서 대놓고 그리 말하자, 경수가 반색하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낙원호텔의 지분 20%를 대통령님에게 약속하면, 법원에 힘을 써 주시는 겁니까?"

"나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성미가 아니에요. 차 회장."

영박이 거듭 확언하자, 경수가 결심한 얼굴로 화답했다.

"대통령님이 약속대로 낙원재팬의 소송을 기각해 주시면, 보답으로 낙원호텔의 지분 20%를 건네드리겠습니다."

순간 영박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 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우하하하하하하하...!"

***

동경 근교의 고급 주택.

차현수는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낙원재팬이 제기한 경영권 무효소송을 한국 법원에서 단칼에 기각한 탓이다.

그는 고이스케 수상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작심했다.

그 길 외에는 낙원그룹을 되찾아올 방법이 전무한 탓이었다.

금요일 밤.

현수는 수상 관저를 방문했다.

그 후, 고이스케 총리에게 저간의 사정을 솔직히 밝혔다.

고이스케는 그의 속사정을 참을성있게 경청한 뒤 애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도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차 회장의 신분은 한국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해요."

현수는 형집행정지 기간 중에 밀항을 이용해 일본으로 도피한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로 고이스케는 현수를 도와줄 방법이 별로 없었다.

"차 회장 한명을 위해서 한국 정부와 각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미안하지만 이 사안은 다른 경로로 해결하시는 게 좋아 보입니다."

결국 현수는 축처진 어깨를 뒤로한 채 수상 관저를 쓸쓸히 나설 수 밖에 없었다.

***

호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아담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톰 쉐도우의 시험 발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수화기에서 아담의 담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험 발사가 성공하기를 기원하겠네.

"감사합니다. 의원님."

-미국 정부 측에는 락히드 마틴의 미사일을 시험발사 하는 것이라고 말해 뒀으니까, 너무 심려치 말게.

"거듭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한배를 탄 사이 아닌가. 그러니 너무 겸양치 마시게.

"알겠습니다. 조만간 의원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보세.

2시간 후.

우리 일행을 태운 전용기가 퀸즐랜드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퀸즐랜드 해안가에 위치한 아틀라스 항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틀라스 항공은 상업위성을 대리 발사해주는 업체였다.

당연히 그들은 뛰어난 로켓 미사일 기술을 구축하고 있었다.

스톰 쉐도우 미사일의 시험 발사에 안성맞춤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한국 대영항공의 지하 연구소에는 대략 200개에 달하는 스톰 쉐도우 미사일이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락히드 마틴 측이 제공한 기술로 제작한 미사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미사일을 시험발사 할 수 없었다.

지켜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기술진을 아틀라스 항공에 파견해서 스톰 쉐도우 미사일을 비밀리에 제작완료했다.

시험발사를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아틀라스 항공의 지하 시설에 들어서자 한국측 기술진들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의 뒤편에는 웅장한 크기의 스톰 쉐도우 미사일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전현수 미사일 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험발사가 언제죠?"

"오늘 자정 00시에 발사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스톰 쉐도우의 예상 발사 속도를 말씀해 보십시오."

"최소 마하 20(시속 2만2천킬로의 속도)의 스피드로 대기권을 돌파할 예정입니다."

"미사일에 탑재할 인공위성의 성능은 어느 정도죠?"

"고도 3천킬로 상공에서 중국과 북한, 일본 열도의 구조물을 육안으로 구분할 정도의 초고해상도의 렌즈를 탑재하고 있으며, 한국 대영항공 본부에서 실시간으로 위성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자정에 미사일과 인공위성의 성공적인 발사를 기원합시다."

"예. 부회장님."

그날 자정 무렵.

미사일 발사대 근처에 도착하자 전현수를 비롯한 한국 기술진이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한 뒤 눈을 보호하는 고글을 얼굴에 착용했다.

잠시 후.

첩보위성을 탑재한 스톰 쉐도우가 야밤의 창공을 꿰뚫으며 쾌속하게 치솟았다.

동시에 대기를 찢어발길 듯한 굉음이 사위를 온통 장악했다.

우르르릉쾅쾅쾅쾅쾅쾅쾅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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