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35화 (135/175)

135화 막후거래

한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TV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청와대는 차기 국무총리로 최영돈 교수를 사실상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략...

곧바로 청와대에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이영박은 싱가포르 G20 정상회담 참가를 핑계로, 내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절실했다.

그때, 아담 의원의 믿음직한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상책이었다.

아담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뒤 전화 통화를 끝마쳤다.

***

싱가포르 만다린 호텔 프레지던셜 스위트룸에 민영세 국가안보 수석이 나타났다.

그는 스위트룸의 개인 서재로 들어갔다.

영박은 서재의 육중한 책상에 좌정한 채 정상회담 의제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민영세를 슬쩍 쳐다본 뒤, 넌지시 물었다.

"미국 쪽에서 아무런 말이 없는가?"

"김 회장이 미국 쪽 인맥을 활용한 탓인지, 아직까지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김한빈의 미국 인맥이 그 정도란 말인가?"

"미국 정가의 실력자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형성한 모양입니다."

"흐으음..."

영박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한빈의 미국내 영향력이 그의 상상을 한참이나 초월한 까닭이었다.

"오늘 오후 4시에 아바마 대통령의 숙소인 오리엔탈 호텔 프레지던셜 스위트룸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주요 의제를 말해봐."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주요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사드(THAAD) 미사일 배치 문제에 대해서 협조를 요청할 우려가 있습니다."

"대체 사드 미사일이 뭐길래 미국이 저 난리를 치는건가?"

"사드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일종으로서, 중국을 견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영박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미국이 원하는대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할 경우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 불보듯 훤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연간 수백억불에 달하는 흑자를 보고 있네. 만약 한국 영토에 사드를 배치할 경우, 중국이 경제적인 제재를 가할 우려가 높아."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대통령님."

영박은 중국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내 임기는 2년 남짓이네. 그러니까 사드 배치 문제는 차기 정권으로 넘기는 게 내 입장에서 좋은거야."

"저도 그리 생각하지만, 미국이 과연 우리 뜻대로 사드 배치를 기다려줄런지..."

"일단 질질 끄는 게 상책이니까 변명거리를 만들어봐."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

오후 2시경.

나를 태운 전용기가 싱가포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오리엔탈 호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맥도니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나를 맞이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프레지던셜 스위트룸과 직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프레지던셜 스위트룸에 딸린 개인 서재로 들어서자 아바마 대통령의 냉정한 얼굴이 보였다.

그와 악수를 나눈 뒤 유창한 영어로 내 의중을 밝혔다.

"한국의 차기 총리로 이태강을 지목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태강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미주의잡니다. 대통령 각하 입장에서도 메우 쓸모가 많은 인물일 겁니다."

"죄송하지만, 내가 왜, 김 회장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어차피 대통령 각하와 저는 한배를 탄 사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게 무슨 뜻이죠?"

"당신 역시 군산복합체의 멤버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조만간 군산복합체의 정식 회원으로 가입할 예정이고."

"흐으음..."

아바마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에게 재차 말했다.

"이번 한번만 저를 도와주시면, 대통령 각하의 노후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스위스 은행에서 발행한 3천만불(360억) 상당의 CD를 그에게 내밀었다.

아바마의 만면 가득 극심한 갈등이 그려졌다.

평소 청렴결백한 이미지를 언론을 통해 구축해온 탓인지, 내심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허나, 그 역시 돈 앞에서는 한낱 평범한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뒷탈 없는 돈이니까 부담갖지 말고 받아주십시오."

거듭 권유하자, 아바마가 못이기는 척 CD를 책상 서랍에 수납했다.

"그럼 대통령 각하만 믿겠습니다."

그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서재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그 후, 싱가포르 국제공항으로 직행했다.

***

오후 4시.

아바마 대통령이 체류 중인 오리엔탈 호텔에 이영박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박은 프레지던셜룸의 개인 서재에서 아바마와 한미 정상회담에 돌입했다.

아바마는 회담 시작부터 영박을 강하게 압박했다.

"금년 안으로 주한 미군 기지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미사일 포대를 전격적으로 배치할 계획이니까, 한국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영박이 울듯한 얼굴로 읍소했다.

"한국땅에 사드 부대를 배치한다면, 중국이 한국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경제제재에 나설 겁니다. 그리 되면 저희 한국 경제는 심각한 재앙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건 한국이 알아서 할 문제니까, 더 이상 친중적인 행보를 보이지 마십시오."

아바마가 단호한 어조로 못을 박자, 영박이 재차 읍소했다.

"사드 미사일 배치를 2년 후로 미뤄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대통령 각하."

"그럼 2년 후에는 사드 미사일 포대 배치를 허용하겠다는 말씀입니까?"

"네. 대통령 각하.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아바마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직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내 요구를 수용해 주신다면, 당신이 원하는대로 사드 배치 문제를 2년 후에 다시 논의할 의향이 있습니다."

"저희 한국에 바라시는 점이 있으십니까?"

영박이 반색하는 얼굴로 아바마를 올려다봤다.

"한국의 차기 총리로 이태강 현 검찰 총장을 낙점해 주십시오. 그게 내가 원하는 일입니다."

순간 영박은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거센 충격을 받았다.

아바마의 뒤에 김한빈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탓이다.

그날밤.

영박은 만다린 호텔의 프레지던셜 스위트룸을 서성이며 아바마 대통령의 제안을 심사숙고했다.

아바마는 사드 배치 논의를 2년 후로 미루는 대가로, 이태강을 차기 총리로 내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영박의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드를 배치할 경우 중국 의존적인 한국 경제에 지대한 충격파가 발생할 것이 불을 보듯 훤했다.

그리 될 경우, 남은 대통령 임기 동안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릴 것이 명약관화했다.

그는 최악을 모면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그 길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박은 한빈의 막강한 영향력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미국 대통령마저 수족처럼 부린 까닭이다.

다음날.

영박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이태강 검찰 총장을 차기 국무총리로 내정했음을 각 언론사에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

상암동 켄싱턴 빌딩.

130층 펜트하우스에서 체력단련에 열중하는 한편, TV 뉴스에 이목을 고정했다.

-차기 국무총리로 내정된 이태강 검찰 총장이 대검 프레스룸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태강 차기 총리 내정자는 국회 청문회를 차분히 준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국무총리직 수행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중략...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내 입가에 절로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옥상에 설치된 야외 수영장으로 올라갔다.

서울 시내의 야경을 감상하며 오롯이 수영을 즐길 무렵, 아리따운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클럽에서 만난 생기발랄한 여대생이었다.

우리는 그날밤, 오붓한 시간을 만끽했다.

다음날.

그녀를 대동한 채 낙원그룹의 강남 본점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근사한 선물을 사주기 위함이었다.

백화점에 도착하자 나이 지긋한 점장이 공손한 자세로 나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VVIP 라운지로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럽시다."

잠시 후, 우리는 탑층에 위치한 라운지에 도착했다.

라운지에는 여점원과 패션모델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곧바로 즉석 패션쇼가 열렸다.

그녀는 만면 가득 황홀한 표정을 지은 채 내 품에 포근히 안겨왔다.

내 엄청난 사회적인 지위에 홀딱 반한 눈치였다.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그녀에게 수억원 상당의 의류와 쥬얼리를 선물했다.

이제 그녀를 다시 볼 일은 내 사전에 없었다.

***

이선아는 그날의 아찔한 명품 쇼핑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잘생긴 재벌 회장님이 선사한 젖과 꿀이 흐르는 달콤쌈싸름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날 이후, 훈남 재벌님은 그녀를 결코 찾지 않았다.

그런 탓일까. 선아는 메이크업과 패션에 잔뜩 힘을 준 뒤 상암동 켄싱턴 빌딩을 향해 우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허나, 비서실 직원들은 그녀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

결국 그녀는 울듯한 얼굴로 자택으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그후로도 여러차례 회장님을 만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했으나, 그때마다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회장님과의 짜릿한 경험을 한여름 밤의 찬란한 꿈 정도로 치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편이 마음이 편한 탓이었다.

***

상지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하동균 비서팀장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회장님이 미국에 체류했을 당시, 이선아 씨가 거의 날마다 회사로 찾아오셨습니다."

그에게 물었다.

"이선아가 누구죠?"

하동균이 공손히 즉답했다.

"회장님이 억타곤 클럽에서 간택한 여대생입니다."

그제야 이선아가 누군지 기억났다.

"요즘도 찾아오나요?"

"지금은 포기했는지 며칠 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더 이상 그 여자애한테 신경쓰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차창을 스치는 밤 풍경에 시선을 모으며 하동균에게 넌지시 말했다.

"쿨한 여자 연예인 위주로 파트너를 물색해 보세요."

"하긴, 제 생각에도 일반 여성보다는 뒷끝 없는 여자 연예인이 회장님에게 더 적합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반인보다는 지명도 있는 여자연예인을 주로 상대하는 게 속이 편할거 같아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회장님."

***

금요일 밤.

상지원 접견실로 이태강을 호출했다.

면전에 나타난 그에게 슬며시 운을 뗐다.

"사드에 대해서 아십니까?"

그가 머리를 끄덕이며 즉답했다.

"미국이 개발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아닌가?"

"잘 아시는군요. 그럼 미국이 한국에 사드 미사일 포대를 배치하려는 계획도 아십니까?"

"뉴스에서 여러차례 본 기억이 있군."

태강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는 이유를 아십니까?"

"당연히 중국을 견제하려고 그러는 것이겠지?"

"맞습니다. 미국은 유사시에 중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포대를 한국에 배치하고 싶어합니다."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사드 포대는 방어용 아닌가?"

"그건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거죠. 사드 미사일을 선제타격용으로 운용하면 공격용 미사일이 되는 겁니다."

그제야 태강이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방어용 미사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접견실 창가 쪽으로 다가간 뒤 창 밖에 드리워진 둥근 만월에 시선을 모았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태강이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로군."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 단호한 어조를 내뱉었다.

"형님은 18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미국의 사드 포대를 한국 땅에 전격적으로 배치하는 정책을 실행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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