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39화 (139/175)

139화 용문(龍門)에 들어서다

상지원 접견실에 한국당의 김장호 대표와 조정혁 사무총장 이상필 상임 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한국당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세력이었다.

이태강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적 그룹이었다.

육중한 책상에 앉은 채 면전에 서 있는 그들과 차례로 악수를 교환했다.

김장호가 일행을 대표해 인사말을 전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그는 절도있게 허리를 숙인 뒤 조정혁과 이상필을 차례로 소개했다.

그들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말을 빙빙 돌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 탓으로 내 본심을 솔직과감하게 드러내 보였다.

"저는 이태강 국무총리를 차기 대권주자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이태강을 후원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아는 눈치였다.

"당연히 여러분들에게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할 생각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비서실에 콜을 넣었다.

하동균 팀장과 비서실 직원들이 돈가방 6개를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돈가방을 소파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김장호와 조정혁, 이상필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돈에 환장한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가방 한개당 20억이 들어있습니다. 당연히 모두 현찰이니까 마음 편히 받아주십시오."

그리 말하자 김장호가 일행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정치자금을 드릴테니까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물론 여러분들이 우리 이태강 총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전제하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조정혁과 이상필이 탐욕에 절은 얼굴로 차례로 입을 열었다.

"계파 의원들을 관리하려면 연간 수백억에 달하는 정치자금이 필요합니다. 회장님."

"저 또한 십수명의 계보 의원들을 관리하는 탓에 정치자금이 많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그들의 말을 묵묵히 경청한 뒤 통 큰 언사를 내뱉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치자금은 원하는만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 총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각서를 지금 이자리에서 써 주십시오."

당연히 그들은 내 요구를 흔쾌한 수용했다.

***

조정혁과 이상필을 돌려보낸 뒤 김장호 대표와 진지한 담소를 이어갔다.

살짝 미소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저는 차차기 대선주자로 김 대표님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가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의 가녀린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며 재차 확언했다.

"저는 한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총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장호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저는 김 대표님을 철석같이 믿고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 잘해봅시다. 하하...!"

"거듭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가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

상암동 켄싱턴 빌딩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장동현 법무실장을 호출했다.

내 앞에 나타난 장동현이 긴급 보고를 올렸다.

"김도철이 지병을 핑계로 의무사동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의무사동이 뭐죠?"

"교도소내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무병동입니다."

"특혜를 받았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교소도장이 편의를 봐준 것 같습니다."

7년형을 선고 받은 김도철은 교도소에서 특혜대우를 받으며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 교도소장을 내 앞으로 데리고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를 내보낸 뒤 이수경 경리팀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사무실에 나타난 이수경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티은행에서 현찰로 600억을 찾아오세요."

"예. 회장님."

그날 오후.

이영조 교도소 소장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는 5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에게 날 선 언사를 내뱉었다.

"당신 멋대로 죄수에게 특혜를 베풀어도 되는 건가요?"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별 것도 아닌 꾀병으로, 의무사동에 들어간 김도철을 말하는 겁니다."

이영조가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신 모가지 정도는 하루 아침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국가 공무원입니다. 회장님이 저를 이런식으로 대하시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멋대로 교도소를 운영한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큰 소리를 치시는 겁니까?"

이영조가 격한 어조로 반발했다.

"거듭 말하지만, 회장님은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는 찬바람을 풀풀 날리며 사무실에서 사라졌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하는 양반이었다.

곧바로 이태강에게 전화를 돌렸다.

***

평일 오후.

법무부 교정국장이 동남 교도소에 나타났다.

그의 발걸음은 의무사동으로 향했다.

교정국장은 병실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김도철을 유심히 관찰한 뒤, 의무과장을 대동한 채 교도소장 사무실로 직행했다.

교정국장은 육중한 책상에 좌정한 채 면전에 서있는 이영조 교도소장과 의무과장을 매서운 시선으로 살폈다.

그러기를 얼마 뒤, 교정국장의 입에서 날 선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고작 허리 디스크 따위로, 중범죄자인 김도철을 의무사동에 들여보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영조와 의무과장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자 교정국장이 재차 그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대체 누구한테 부탁을 받고 김도철을 의무사동으로 배치한 거요? 사실대로 말을 안하시면, 내 직권으로 동남교도소를 대상으로 특별감찰을 진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의무과장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그저 소장님이 시키는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국장님!"

결국 교도소장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사실대로 답변했다.

"고등학교 후배인 김도철의 편의를 봐줄 생각에... 정말 죄송합니다."

교정국장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부로 이영조 소장님에게 근신처분을 내리겠습니다. 당분간 집에서 자숙하고 계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상지원 접견실에서 흡연에 열중할 무렵 이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담배 연기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손을 휘저으며 불만스런 목소리를 토해냈다.

"김 회장아, 담배 좀 작작 피라구. 건강을 생각해야지."

"식후연초는 불로장생이란 동서고금의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설마, 그런 헛소리를 믿는 건 아니겠지?"

"그냥 해본 말입니다. 하하..."

피식 웃으며 유리 재떨이에 담배 꽁초를 비벼 껐다.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주시하던 태강이 노란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그가 건넨 서류를 살피자 여러명의 신상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동남 교도소를 총괄하는 신임 교도소장의 인사파일이었다.

내 시선은 험상궂게 생긴 중년 남자에게 모아졌다.

김도철을 적당히 괴롭혀줄 적임자같았다.

태강에게 넌지시 말했다.

"인상이 험악한 유종선을 신임 교도소장으로 낙점하세요."

"그자가 마음에 드나?"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김도철이 일반 죄수처럼 징역을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반 범죄자들이 있는 방으로 그놈을 보내세요."

"전직 검사와 일반 죄수를 한방에 섞어놓으면, 사단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그건 내 알 바 아닙니다. 그러니까 법무부장관에게 내가 원하는대로 조치하라고 말을 전하세요."

태강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

의무사동 병실에서 온갖 특혜를 누리던 김도철은, 하루 아침에 일반 죄수들이 수용된 방으로 이동됐다.

그날 밤, 도철은 감빵장의 재량하에 치열한 신고식을 치뤘다.

동료 죄수들의 험악한 손길과 발길질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퍽퍽퍽퍽퍽퍽...!

"끄악...! 제발...! 그만...! 아아악...!"

도철의 구슬픈 비명이 감방안에 처연하게 울려퍼졌다.

허나, 동료 죄수들은 눈썹하나 까딱 안한 채 더욱 강하게 치도곤을 이어갔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날, 도철은 인생 밑바닥들의 참교육을 온몸으로 영접하며 새사람으로 거듭났다.

***

나를 태운 전용기가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서자 리무진 차량이 내 옆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리무진의 뒷좌석에 올라타자 운전기사가 친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착지점까지 회장님을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두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30분 후.

약속장소인 뉴욕 모처에 도착했다.

아담 의원의 개인 사무실로 들어서자 그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우리는 다과를 즐기며 본론에 돌입했다.

"자네를 군산복합체의 정식 멤버로 추천하는 안건을, 오늘 모임에 상정할 계획이네."

"너무 빠른거 아닙니까?"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생각은 하지말게. 대중 온건파가 득세하는 이때야 말로, 자네가 정식 멤버로 추인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대중 강경파의 세가 부족한 편인가요?"

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중 온건파의 수가 과반수를 넘어선 겁니까?"

"자네의 짐작대로 우리 강경파는 숫적 열세에 시달리고 있지."

그에게 재차 물었다.

"군산복합체의 정식멤버가 총 몇명입니까?"

아담이 즉답했다.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서 총 12명이네. 그 중에서 대중 강경파는 나를 포함해서 겨우 5명에 불과하다네. 자네를 기를 쓰고 정식 멤버로 영입하려는 이유일세."

그의 노고가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저 때문에 공연히..."

말 끝을 흐리며 그의 노고를 치하하자, 아담이 고개를 저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어차피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관계일세. 그건 그렇고, 자네가 필히 유념해야 하는 인사들이 있네."

"그들이 누굽니까?"

"대중 온건파의 수장인 레너드 의장과 강경파 리더인 클라크 부의장일세."

그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레너드는 월가를 쥐락펴락하는 초거물이네. 전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JP 모건의 숨겨진 최대 주주지. 물론 세인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겠지만."

"강경파 리더인 클라크 부의장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아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클라크 부의장은 군부를 대표하는 인물이지. 그런 이유로 대중 강경파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네."

"그럼 아바마의 역할은 뭡니까?"

"그자는 대중 온건파가 배출해낸 대통령인 탓에,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정책을 추친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네."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미국 대통령과 군산복합체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아담이 친근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미국 대통령은 대기업 CEO나 마찬가지 신분일세. 자신의 임기 동안 군산복합체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지만, 임기 후에는 자동적으로 군산복합체의 참가자격이 박탈되지."

"대중 강경파와 온건파 나름대로 대통령 후보를 선정하는 겁니까?"

"군산복합체는 대선 시즌이 다가오면, 차기 대통령을 낙점하는 문제로 시끌벅적하지."

"강경파 혹은 온건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을 백악관에 들여보내기 위해선가요?"

아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만 일어나지.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된거 같으니까."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우리는 빌딩을 나서자마자 뉴저지 근교의 대저택으로 향했다.

오늘 회합은 아담의 자택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아담과 함께 고풍스런 서재로 들어서자 커다란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은 11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내 시선은 좌측 편에 앉아 있는 아바마 대통령에게 절로 모아졌다.

그에게 목례를 취하자, 아바마의 얼굴에 친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들은 미국을 암중에서 이끄는 군산복합체의 거두(巨頭)였다.

아담이 나를 손짓하며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김한빈 회장을 우리 모임의 정식 멤버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거수로 가부를 결정해 주십시오."

그의 모두발언이 끝나자마자 장내가 시끌벅적해졌다.

군산복합체 멤버들은 저마다 내 이름을 들먹이며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수군거렸다.

나를 주제로 치열한 논쟁을 펼치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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