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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140화 (140/175)

140화 사용후 핵연료봉

내 시선은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는 장년 남자에게 절로 모아졌다.

그는 새하얀 백발과 무성한 구렛나루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바로 레너드 의장이었다.

그는 왼쪽편에 자리 잡은 인사들과 논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반면 우측에 앉은 사람들은 레너드 의장 측 인사들을 도외시한 채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척봐도 두편으로 확연히 갈린 모양새였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찰나, 굴강한 체격을 자랑하는 남자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군산복합체에 가입하려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의 질문과 동시에 옆에 서 있던 아담이 귓속말을 전해왔다.

"저자가 바로 클라크 부의장일세."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평소 생각해온 소신을 과감하게 내뱉었다.

"저는 전 세계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는 중국 공산당을 지구상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담 상원의원님의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 발언이 마음에 들었음인지, 클라크 부의장을 필두로 우측편 사람들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반면 레너드 의장과 좌측에 자리잡은 인사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한 시선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내 과감무쌍한 발언이 마음에 안드는 눈치였다.

물론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소신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저는 중국 공산당을 궤멸시키는데, 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계획입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군산복합체의 정식 멤버로 받아 주십시오."

내 발언이 끝나자마자 클라크 의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 역시 김 회장과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소."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재차 입을 열었다.

"중국 공산당 개자식들을 지구상에서 몰아낼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클라크 부의장님."

호기롭게 대꾸하자, 대중 강경파 인사들의 얼굴에 일제히 밝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 대중 온건파의 수장인 레너드 의장이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카롭게 쏘아부쳤다.

"세계 3차 대전이라도 벌일 생각입니까? 중국에는 핵무기가 있습니다.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왜 그렇게 앞뒤 못가리고 함부로 발언하시는 겁니까?"

그의 발언은 계속됐다.

"그리고 당신이 제출한 유태계 혈통 인증서도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은 외관상 전형적인 동아시아 혈통이기 때문이오!"

레너드는 목소리를 높이며 나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자 클라크 부의장이 눈을 치뜨며 레너드를 향해 거칠게 소리쳤다.

"김 회장이 우리 조직에 가입하기 위해 서류조작을 했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의장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셔야 하는거 아니오!"

클라크가 삿대질을 하며 나를 편들자, 레너드 의장 왼쪽에 앉아 있던 뿔테 안경의 남자가 날카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단 모사드를 동원해서 김 회장의 혈통을 재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가 유태계 혈통이 맞다면, 정식 멤버로 승인하면 될 일 아닙니까?"

그러자 클라크가 나와 아담을 번갈아 쳐다본 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레너드 의장이 최종결론을 내렸다.

"일단 김 회장의 가입을 유보하겠소. 대신 그의 유태계 혈통이 인정된다면 그 즉시 우리 조직의 정식 멤버로 승인하는 절차를 밟도록 하겠소."

그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보안 요원들이 나를 밖으로 안내했다.

오늘 내가 할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다음날.

뉴저지 대저택에서 일박한 뒤 뉴욕행 헬기에 몸을 실었다.

뉴욕으로 향하는 헬기 안에서 옆에 동승한 아담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스라엘 이민국에서 발행한 혈통 인증서가 가짜로 판명난다면, 의원님은 어찌되는 겁니까?"

그가 태연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네."

"모사드를 동원해서 정밀 조사를 하면, 제 유태계 혈통이 가짜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은거 아닌가요?"

아담이 고개를 저었다.

"모사드와 클라크 부의장은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하고 있지. 하하..."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그럼 의원님만 믿겠습니다."

그가 흡족한 얼굴로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

텍사스주 오스틴 근교의 대목장에 모사드의 총책자임 벤구리온 의장이 나타났다.

그는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영국풍의 고성을 연상시키는 대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클라크는 면전에 나타난 벤구리온에게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레너드가 김한빈의 유태계 혈통 인증서를 의심하고 있네."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일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불여우같은 놈이니까, 절대 빈틈을 보이지말게."

"예. 부의장님."

벤구리온은 서재를 빠져나오자마자 헬기 계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후, 벤구리온을 태운 헬기가 애틀란타를 목표로 쾌속하게 날아갔다.

그날 밤.

애틀란타 교외의 대저택 옥상에 헬기 한대가 부드럽게 착륙했다.

벤구리온은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레너드 의장은 서재에 나타난 벤구리온을 매섭게 살핀 뒤 사무적인 어조를 흘려보냈다.

"서류를 가져 오셨습니까?"

"네. 의장님."

벤구리온은 그리 말하며 노란 봉투를 그에게 내밀었다.

레너드는 봉투 안에서 김한빈과 관련된 서류를 꺼낸 뒤 한참 동안 살펴봤다.

그러기를 얼마 후,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고개를 완강하게 저었다.

"정말 이 서류가 사실이오?"

"모사드 조직을 총동원한 결과니까, 믿으셔도 좋습니다."

"허허..."

레너드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벤구리온이 건넨 자료는, 김한빈의 유태계 혈통을 재입증하는 서류였다.

그런 탓인지 레너드의 얼굴 가득 불유쾌한 표정이 잔뜩 떠올랐다.

그가 손을 내저으며 축객령을 내뱉었다.

"피곤하니까 이만 가보세요."

그러자 벤구리온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의장님."

그 말을 끝으로 서재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또 다시 아담 의원의 뉴저지 저택을 방문했다.

군산복합체의 정식 멤버로 추인받기 위함이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아담을 필두로 11명의 멤버들이 나를 맞이했다.

레너드 의장에게 목례를 취한 뒤 오른편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대중 강경파 멤버들의 구역이었다.

그런 탓일까. 좌측편에 앉은 온건파들이 일제히 못마땅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나마 아바마 대통령이 덜한 편이었다.

그때, 클라크 부의장이 나를 향해 살짝 미소 지으며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군산복합체의 정식 멤버가 되신 김한빈 회장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기립박수를 칩시다!"

그의 발언이 떨어지자마자 강경파 인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남과 동시에 나를 향해 힘찬 박수세례를 퍼부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반면 온건파 의원들은 제자리에 앉은 채 박수치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강경파 인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달한 뒤 제자리에 착석했다.

곧이어 본격적인 회담이 시작됐다.

레너드 의장이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큰 틀에서 중국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대중 압박 정책은 역효과를 불러올 뿐이에요."

그의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우리 미국에게 큰 이익을 줄수 있습니다. 특히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수천억불에 달하는 이권을 쟁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레너드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클라크 부의장이 격한 어조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건 장밋빛 환상에 불과한 겁니다. 중국놈들은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게 현실이란 말입니다!"

그러자 온건파 인사들이 차례로 재반박하는 언사를 이어갔다.

"당신네 강경파는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서 환장한거요?"

"중국도 나름 핵강국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십시오!"

"중국을 무력으로 제압하려면 핵전쟁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란 말입니다!"

그들의 재반박이 끝나자마자 클라크의 날 선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퍼졌다.

"중국 공산당 놈들에게 뒷돈이라도 받아먹으신 겁니까!"

클라크가 역공을 취하자 강경파 인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차례로 입을 열었다.

"우리 미국이 보유한 최첨단 무기를 동원한다면, 중국 공산당을 쥐도새도 모르게 궤멸시킬 수 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온건파 여러분들은 너무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옳습니다. 우리 미국의 막강한 첨단 무기를 중국은 결코 당해내지 못할 겁니다!"

그후로도 논쟁은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군산복합체 역시 친중파와 반중파로 갈린 채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타임스퀘어 인근의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서연과 저녁식사를 같이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소더비 경매장에서 고가의 미술품을 구매 예정이었다.

내가 부탁한 일이었다.

우리는 맛좋은 스테이크와 달달한 포도주를 같이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이어나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서연의 입에서 조심스러운 질문이 흘러나왔다.

"미술품을 누구한테 주실 건가요?"

그녀에게 솔직하게 답변했다.

"국내외 유력인사들에게 선물할 예정입니다."

서연이 놀란 얼굴로 재차 물었다.

"그 비싼 미술품들을 정말 그들에게 주실 건가요?"

"원래 그런 목적으로 구입한 거니까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그리 말하며 서연의 손을 보드랍게 감쌌다.

그녀가 살포시 미소지으며 고혹적인 눈웃음을 드러내 보였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이서연이었다.

***

서연을 한국으로 먼저 보낸 뒤 백악관을 남몰래 방문했다.

아바마 대통령에게 소더비 경매장에서 구입한 고가의 미술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아바마는 내 선물에 진정으로 감사한 표정이었다.

"이런 귀한 미술품을 정말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오래전부터 대통령 각하에게 쓸만한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부담갖지 말고 받아주십시오."

그러자 아바마가 감격한 얼굴로 내 손을 두손으로 정겹게 마주잡았다.

"언제든지 부탁할 일이 있으시면, 어려워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힘 닿는 데까지 도와드릴테니까."

"말씀만으로도 감사한 심경입니다. 하하하하...!"

내 입에서 흡족한 웃음이 길게 흘러나왔다.

그날 밤.

아담 의원의 뉴욕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와 긴밀히 논의해야 하는 긴급 현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사용후 핵연로봉을 이용해서 수소폭탄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아담이 우려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무 빠른거 아닌가?"

"어차피 IAEA(국제원자력기구)도 의원님이 장악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야 그렇지만, 아바마가 걱정되는군. 친중파가 낙점한 인물이라..."

그에게 자신만만한 어조를 내뱉었다.

"아바마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미 손을 쓴지 오래니까."

그제야 아담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핵무기 개발시설을 구축했나?"

"대영항공의 지하 핵벙커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핵개발을 할 계획입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정도로 핵무기 테스트가 가능한 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워낙 발전해서, 에전처럼 핵폭발 테스트를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긴, 요즘은 컴퓨터만 있으면 못하는 게 없는 시대지. 허허..."

아담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루가 다르게, 눈부시게 발전하는 디지털 문명이 마음에 안드는 눈치였다.

***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지방에서 가동중인 대영중공업의 원자력발전소를 방문했다.

원전에 들어서자 대영항공의 기술진과 발전소 직원들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한 뒤 사용후 핵연료봉을 저장한 지하 시설로 곧장 내려갔다.

지하 200미터 지점으로 내려가자 물속에 가득 잠긴 사용후 핵연료봉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원하는 건 수소폭탄이었다.

파괴력이 뒤떨어지는 풀루토늄 핵무기는 관심 밖이었다.

최소 1천개 이상의 수소폭탄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에 비공식적으로 핵보유를 인정받을 계획이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필두로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비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있었다. 한국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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