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레너드 의장
상암동 켄싱턴 빌딩.
129층 사무실에서 TV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북미 핵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측 관계자는 미국이 먼저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협상에 응할수 있다며 불합리한 전제조건을 내건 미국을 격렬히 비난했습니다.
-반면 미국측 관계자는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포기해야 협상을 할수 있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중략...
북한은 이미 30개 정도의 플루토늄 핵무기를 개발완료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미국의 핵포기 요구를 수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북한은 쇼를 하고 있었으며 미국은 그 장단에 춤을 추고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을 대상으로 선제타격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북한 뒤에 도사린 중국과 러시아의 극렬한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세계 3차대전이 무서워서 우왕좌왕하는 형국이었다.
군산복합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핵전쟁을 두려워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허나, 중국과 북한을 핵으로 응징하려는 내 결심은 확고부동했다.
한국을 위협하는 개자식들에겐 핵폭격이 정답이었다.
그런 점에서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뇌리를 차례로 스칠 무렵, 사무실에 하동균 비서팀장이 나타났다.
"채윤정을 섭외했습니다."
채윤정 역시 잘나가는 여배우였다.
"상지원으로 데리고 오세요."
하동균이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죠?"
"채윤정이 소속사 대표인 배기환을 횡령혐의로 고소한 모양입니다."
"그래서요?"
"그걸 좀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그 문제만 해결되면 회장님을 최선을 다해 수발들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박종태 감사 실장에게 일을 맡기세요. 일이 마무리되는 즉시 채윤정을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예. 회장님."
***
박종태는 김한빈의 굳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수십억에 달하는 고액 연봉과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받았다.
그런 이유로 한빈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다.
그가 끓는 물속에 들어가라고 명령해도 곧이곧대로 수행할 정도였다.
그런 종태에게 한빈의 지엄한 오더가 떨어졌다.
그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전직 특수부대원들로 구성된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강남 모처의 연예기획사를 급습한 것이다.
종태는 기획사 대표인 배기환을 경기도 모처의 창고로 데리고 갔다.
그 후, 본격적인 매타작을 시작했다.
경호원들의 억센 손길과 발길이 배기환의 온몸에 우박처럼 떨어져내렸다.
그런 탓일까. 기환의 비명소리가 장내에 처연하게 울려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결국 기환은 자신이 지은 죄를 소상히 자백했다.
자업자득이었다.
***
상지원의 육상트랙에서 조깅을 즐길 무렵, 박종태 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핏물로 얼룩진 각서 한장이 들려있었다.
각서를 살핀 뒤 종태에게 되돌려주었다.
"알아서 보관하고 계십시오."
"예. 회장님."
"배기환이 딴마음을 먹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주변에서 살펴보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종태를 돌려보낸 뒤 본관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채윤정이 상지원에 나타났다.
그녀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잘어울리는 패션이었다.
윤정과 밤늦도록 오붓한 시간을 함께 한 뒤 새벽 즈음에 자택으로 돌려보냈다.
***
대영항공의 비밀 기지를 방문했다.
지하 300미터 지점에 도달하자 전현수 미사일 팀장 일행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핵무기 개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 벙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벙커 안에 들어서자 저명한 핵물리학자인 서도형 박사가 핵개발을 진두지휘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 나를 발견한 서도형이 내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내 앞에 나타난 서 박사와 악수를 교환한 뒤 핵개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수소폭탄 개발이 언제쯤 끝날까요?"
그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확답했다.
"3달 안에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사료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겁니까?"
서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 돌입했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핵무기 원재료인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 239를 추출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 239를 추출하면 곧바로 핵무기에 적용이 가능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상상 이상으로 핵무기 개발은 단순했다.
특히 한국처럼 원자력기술이 앞선 나라는 누워서 식은죽 먹기나 매한가지였다.
서 박사가 조금 걱정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IAEA와 미국의 핵사찰입니다. 언제 어디서 핵사찰을 감행할지 알수 없기 때문이죠."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책임지고 커버를 칠 생각이니까."
그러자 서 박사가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한껏 우러러 보았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 과정이 한창인 핵융합로에 시선을 던졌다.
가로세로 10미터 크기의 핵융합로는 막강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 239 분리 추출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대한민국을 수호할 핵무기의 귀한 밀알이 자라나고 있었다.
핵융합로를 1시간 가까이 지켜본 뒤 지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머지는 서 박사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라이스 국가안보수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고화질 사진을 아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아바마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 사진이 뭡니까?"
라이스가 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영중공업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는 증거 사진입니다."
아바마가 눈을 빛내며 사진에 시선을 모았다.
사진 속에는 대형 트레일러에 실리는 사용후 핵연료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대영중공업이 운영하는 원전에서 사용후 핵연료봉을 빼돌린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이동 장소를 확실히 아십니까?"
아바마의 물음에 라이스가 즉답했다.
"대영항공의 비밀 시설로 이송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라이스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증거가 이리 명백하니 지금 당장 IAEA의 조사단을 한국에 급파해야 합니다. 대통령 각하!"
하지만 아바마는 별다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침묵만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런 모습에 라이스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대체 뭘 망설이시는 겁니까? 한국이 핵무장의 길로 들어서면 일본과 대만까지 연쇄적인 핵무장의 길에 나서게 될 겁니다. 대통령 각하!"
라이스가 목소리를 높이며 강하게 압박했음에도 아바마는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으로 일관했다.
"이 문제는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 본 뒤에 결론을 내립시다. 이만 나가보세요."
아바마는 그리 말하며 두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 라이스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
토요일 밤.
상지원에서 휴식을 취할 무렵 비서실 소속의 조용일 비서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주말 근무를 전담하는 수행비서였다.
조용일이 놀란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백악관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살지원에는 백악관과 핫라인이 연결된 상태였다.
인공위성의 전용통신 시스템으로 운용되는 방식이었다.
조비서가 들고온 위성전화기를 귓가에 가져가자 아바마 대통령의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영중공업이 운영하는 원전에서 사용후 핵연료봉이 반출된 정황을 확보했습니다.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핵무기를 개발할 생각입니다."
-대영그룹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뭐가 잘못 됐습니까?"
그리 반문하자 수화기에서 아바마의 경악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런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진다면 커다란 파장을 불러올 겁니다. 그러니 제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허황된 계획을 지금 당장 중단해 주십시오.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저희 대한민국은 중국과 북한이라는 핵위협국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핵무장을 하는 것 뿐입니다."
-한국은 핵무장을 안하더라도 우리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음을 모르시는 겁니까?
"저는 미국의 핵우산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거요?
"이스라엘과 파키스탄, 인도처럼 한국의 핵무장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대통령 각하."
-회장님은 지금 선을 넘고 있어요. 핵개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십시오.
아바마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물론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내 결심은 확고부동했다.
한국이 살 길은 핵무장이 유일했다.
며칠 후, 아담 의원에게서 군산복합체의 긴급 회담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왔다.
***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하자 맥도니스 비서실장이 나를 맞이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넓다란 서재로 들어섰다.
서재 안에는 이미 12명에 달하는 군산복합체 멤버들이 도착한 상황이었다.
아담과 클라크 부의장을 필두로 강경파 인사들과 두루 악수를 교환한 뒤 우측 편에 자리를 잡았다.
직후, 레너드 의장의 날 선 발언이 장내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우리 허락도 받지 않고, 김 회장 멋대로 핵무기를 개발 중에 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너드와 친중파 인사들이 분노한 얼굴로 나를 맹렬히 노려봤다.
반면 강경파 인사들은 저마다 머리를 끄덕이며 나를 십분 이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때, 레너드의 성난 목소리가 서재에 재차 울려퍼졌다.
"우리 미국은 한국의 핵개발을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만약 김 회장 멋대로 핵개발을 한다면, 한국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경제제재에 나설 수 밖에 없소이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장내에 배석한 군산복합체 멤버들에게 내 의중을 당당히 밝혔다.
"한국은 중국과 북한이라는 악의 집단에 포위당한 형국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핵무기로 한국을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습니다."
내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한국은 별다른 반격수단이 전무한 형편입니다. 북한과 중국의 핵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당한 상황이죠. 그래서 저는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중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중국과 북한의 핵위협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과 파키스탄, 인도처럼 한국의 핵무장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자리에 앉자, 레너드가 분노한 얼굴로 나를 삿대질하며 격한 언성을 토해냈다.
"한국이 핵으로 무장할 경우, 일본과 대만의 연쇄적인 핵무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겁니까? 그리되면 우리 미국은 동북아에서 모든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는 거요!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레너드의 말에 강하게 반박했다.
"한국의 핵무장은 미국의 국익에 오히려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의장님의 말씀은 근시안적인 단견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레너드가 진노한 얼굴로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바로 그때, 클라크 부의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와 레너드를 향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일단 진정하시고 두분 모두 제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이 사안은 성급히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결국 클라크 부의장의 중재로 우리는 휴전 모드에 돌입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클라크 부의장이 나와 아담을 손짓했다.
"할 말이 있으니까 두분 모두 내 헬기에 동승하시죠."
아담이 화답했다.
"좋습니다. 부의장님."
잠시 후, 우리 일행을 태운 헬기가 뉴욕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클라크가 뉴욕으로 향하는 헬기 안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레너드 의장이 고혈압과 당뇨병이 심하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여전히 의장직에 연연하는 걸 보면, 사람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허허..."
그리 말하며 나와 아담을 슬쩍 쳐다봤다.
그 후, 재차 노골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레너드가 사라진다면, 대중 강경파의 입지가 한결 넓어질텐데... 쯧쯧쯧..."
그가 혀를 끌끌 차며 나를 은근히 쳐다봤다.
"한국의 핵무장을 인정받으려면 강경파의 입지가 중요할 겁니다. 그러니 뭔가 방법을 찾아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클라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레너드가 사망한다면 당분간 12인 체제로 군산복합체가 운영되는 겁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분간 12인 체제를 고수할 수 밖에 없겠죠. 그리되면 친중파와 강경파의 비율이 6대 6이니까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레너드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전제 조건이 먼저겠지만."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아바마는 말이 통하는 인물이니, 한국의 핵무장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 역시 클라크와 같은 생각이었다.
***
뉴욕에 도착한 뒤 아담과 센트럴파크의 산책로를 거닐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레너드를 제거할 생각입니다."
그가 흠칫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한국의 핵무장을 완성하려면 레너드를 제거하는 게 최선책입니다."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도리어 자네 생명이 위태로워질걸세."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레너드와 관련된 자료를 준비해 주십시오."
아담이 우려하는 얼굴로 말했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그를 처리할 자신이 있는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센트럴파크를 유유히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