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44화 (144/175)

144화 호신강기의 발현

어느날 문득 내 온몸을 포근히 감싸는 희뿌연 강기막을 은연 중에 감지했다.

무협 소설에서 흔히 말하는 호신강기였다.

특히 본격적인 운기행공에 돌입할수록 강기막의 농도는 더욱 진해졌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운공에 돌입하자마자 전신을 부드럽게 에워싸는 호신강막이 느껴졌다.

두눈에 안력을 집중하자 농도짙은 우윳빛깔의 강기막이 시야에 포착됐다.

물론 일반인들의 육안으로는 분간하기 힘든 기운이었다.

행공을 끝낸 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상지원의 육상 트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서 내리는 촉촉한 봄비가 내 전신을 부드럽게 두들겼다.

그런 탓일까. 강렬한 스파크가 내 몸을 중심으로 불꽃처럼 번져갔다.

파직! 파지직! 파지지직...!

호신강기의 강도를 시험하고 싶은 불같은 욕구에 절로 휩싸였다.

그런 욕망이 내면에서 불쑥 고개를 쳐들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본관 식당으로 부리나케 내달렸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쪽으로 걸어갔다.

주방에서 찾은 식칼을 오른손에 든 채 호신강기가 둘러쳐진 왼손바닥을 인정사정없이 그어버렸다.

서-걱!

예상대로 식칼은 내 손바닥에 털끝만한 생채기조자 남기지 못했다.

그런 사실을 깨닫자 하늘에 오를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내 육체에 진정으로 만족한 탓이다.

하지만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총기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해볼 참이었다.

내 예상으로는 권총의 탄환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을거 같았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

서재로 들어서자마자 책상 서랍에서 글록 권총을 꺼냈다.

아담이 선물해준 녀석이었다.

곧바로 상지원 지하에 조성된 실내 사격장으로 내려갔다.

이 곳은 경호원들이 사격 연습을 하는 장소였다.

내 경호원들은 청와대 경호처 소속으로 위장한 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국내에서 총기 사용을 허가 받았다.

모두 내 덕분이었다.

지하 사격장에 들어서자 김태구 경호팀장이 나를 반겼다.

그는 때마침 이 곳에서 사격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에게 엄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지상으로 올라가십시오."

그가 공손히 복명했다.

"예. 회장님."

이제 실내 사격장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본격적으로 호신강기의 강도를 테스트할 시점이었다.

글록의 총구를 왼손바닥에 조준한 채 권총의 방아쇠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탕!

귀를 찢을 듯한 총성이 울려퍼짐과 동시에 파괴적인 힘이 왼손바닥을 무자비하게 들이쳤다.

하지만 내 왼손은 여전히 멀쩡했다.

붉은 혈흔이 고작이었다.

물론 왼손바닥에서 전해지는 고통은 보통이 아니었다.

거의 왼팔이 마비될 정도로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호신강기의 위대한 방탄 성능에 진심으로 만족한 까닭이다.

***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하동균 비서팀장에게 넌지시 말했다.

"지난 수년 동안 앞만보고 달려온 탓인지 제대로 된 휴가를 즐겨본 적이 없어요."

동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회장님."

"그래서 말인데, 쓸만한 휴가지를 팀장님이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그가 가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프랑스 지중해에 위치한 니스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떨런지요?"

"니스 해변이라...?"

말끝을 흐리자 동균이 재차 입을 놀렸다.

"대영전자 소유의 별장이 니스 해변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가요?"

"네. 대영전자 유럽지사에서 클라이언트를 접대할 요량으로 마련한 별장입니다."

"그럼 요트도 있는 겁니까?"

"예. 회사 소유의 고급 요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상첨화였다.

프랑스 니스 해변은 유럽 미녀들이 믾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휴가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대영전자 유럽지사에 연락해서 별장을 비워두라고 전하세요."

"예. 회장님."

***

나를 태운 전용기가 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벗어나자 하동균 팀장이 앞장섰다.

별장의 위치를 나름 잘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대영전자의 유럽지사장인 오동철이 눈 앞에 나타난 까닭이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리무진으로 안내했다.

리무진의 뒷자리에 올라타자 오동철이 곧바로 운전석에 자리를 잡았다.

"별장으로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회장님."

"알아서 하십시오."

그리 말하며 차창 밖에 드러난 니스의 아름다운 풍광에 시선을 집중했다.

1시간 후.

니스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별장에 도착했다.

별장은 3층 규모였고 아담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오동철의 안내를 받으며 별장 안으로 들어서자 현지에서 채용한 가사도우미와 정원사 등이 우리 일행을 반겼다.

그들과 악수를 교환한 뒤 푹신한 가죽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오동철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아가씨들을 요트에 초대해서 흥겹게 놀 생각이니까, 오늘 저녁 7시까지 그녀들을 요트로 데리고 오십시오."

순간 동철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그는 40대 중반의 연배라 그런지, 현지 미녀들을 섭외하는 스킬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철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책무를 타인에게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작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보였다.

"죄송하지만, 그 일은 젊은 직원들에게..."

녀석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주변머리가 없는 스타일 같았다.

현지 미녀들을 꼬시는 게 뭐가 어렵다고 이리 까탈을 부린단 말인가.

당최 이해못할 처신이었다.

그에게 따끔한 어조로 일갈했다.

"이런 간단한 일도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클라이언트의 까다로운 요구를 그동안 어떻게 해결하신 겁니까?"

녀석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 탓인지 만면 가득 송구한 낯빛을 드러낸 채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탐탁지 않은 작자였다.

하늘 같은 내 앞에서 책임을 회피한 탓이다.

하지만 오늘은 휴가 첫날이었다.

그런 이유로 오동철을 봐주기로 결정했다.

나름 커다란 은혜를 베푼 것이다.

그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아가씨 섭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요트나 준비하세요. 그리고 고급 샴페인과 포도주, 캐비어 등을 구비해 놓으십시오."

그제야 녀석이 죽다 살아난 얼굴로 씩씩하게 복명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다음날.

반바지와 원색의 남방으로 환복한 뒤 니스 해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녀들을 선상 파티에 초대하기 위함이었다.

니스 해변에 도착하자 일광욕을 즐기는 비키니 그녀들이 시야에 그득해졌다.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들이었다.

나를 수행하는 동균을 뒤로 물린 채 미녀들에게 접근했다.

그 후, 자신만만한 영어로 그녀들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오늘 저녁에 요트에서 파티를 할 생각이거든. 맛좋은 샴페인과 포도주, 캐비어 등을 준비해 놓았으니까 관심 있으면 너희들도 와라."

내 당당한 언사가 마음에 들었음인가. 그녀들의 입에서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시간되면 파티에 갈게."

"나도 갈게. 호호..."

그녀들에게 친근한 미소를 내비치며 요트 이름를 알려줬다.

그후로도 쉴 새 없이 미녀들을 요트 파티에 초대했다.

그날 저녁.

내 요트에 수십명의 그녀들이 몰려왔다.

예상대로였다.

그녀들은 값비싼 공짜 샴페인과 포도주, 캐비어를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더구나 내 외모는 서구권에서 먹히는 스타일이었다.

남성미 넘치는 마스크와 굴강한 근육질의 바디는 그녀들을 열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들이 요트에 올라타자마자 현지에서 섭외한 조종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요트를 출항하십시오."

그가 공손히 답했다.

"네. 회장님."

***

일주일 간의 휴가를 끝마친 뒤 니스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거의 도착할 무렵, 익숙한 그녀가 차창 밖에 드러났다.

그녀는 요트 파티에서 나와 오붓한 시간을 같이한 올리비아였다.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울 것을 명령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올리비아가 있는 길가의 상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검은색의 벤차량이 그녀 곁에 멈춰서자마자 험상궂은 남자들이 차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놈들은 내가 손 쓸 새도 없이 올리비아를 벤에 강제로 밀어넣었다.

그 후, 장내에서 쏜살같이 사라졌다.

누가봐도 백주대낮에 펼쳐진 납치극이었다.

저 멀리 사라지는 벤의 번호판에 시선을 집중했다.

올리비아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곧바로 주변의 경찰서를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하지만 프랑스 경찰은 심드렁한 태도로 사건을 접수한 뒤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조사해 볼테니까 이만 귀가하십시오."

"경관님. 이건 납치가 확실한 사건입니다. 지금 당장 벤 차량을 수배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프랑스 경찰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부쳤다.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당신은 이만 돌아가!"

소문대로 말귀가 안통하는 프랑스 놈이었다.

결국 내 스스로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럴만한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경찰서를 빠져나오자마자 아담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잘아는 여자가 니스에서 납치를 당한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의원님이 도움을 주십시오."

-지금 한국인가?

"아닙니다. 프랑스 니스에 휴가차 온 상황입니다."

-현지에 있는 CIA 요원에게 말을 해놓을테니까,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게.

"감사합니다. 의원님."

-우리 사이에 별 말을 다하는군. 그럼 나중에 보세.

아담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

니스 시내에 위치한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음미할 무렵,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한빈 회장님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김한빈입니다."

-저는 CIA의 버나드 요원입니다. 지금 계신 곳이 어디십니까?

"니스 시내에 있는 에디뜨 노천 카페에 있습니다."

-제가 그 곳으로 갈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3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편한 옷차림의 백인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버나드 요원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곧바로 용건을 밝혔다.

"올리비아라는 아가씨가 괴한에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이건 그녀를 납치한 놈들이 이용한 벤차량의 번호판입니다."

그리 말하며 차량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그에게 전달했다.

버나드는 번호판을 살핀 뒤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올리비아의 나이와 생김새를 알려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했다.

"나이는 20살 정도고 전형적인 푸른 눈의 금발 미녀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키는 170cm 안팎이고..."

"국적도 말씀해 주십시오."

"스웨덴으로 알고 있습니다."

버나드는 올리비아와 관련된 정보를 수첩에 빼곡히 적은 뒤 냉정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호텔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뭔가 알게 되면 곧바로 연락을 드리죠."

"요원님만 믿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1만불 짜리 수표 5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수고비로 생각하십시오."

그제야 버나드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회장님."

그는 수표를 챙기자마자 카페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그날 밤.

시내 호텔에서 버나드의 연락을 기다릴 무렵, 호텔방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하동균에게 말했다.

"누군지 알아보세요."

"예. 회장님."

방문객을 확인한 동균이 보고를 올렸다.

"버나드라는 미국인이 찾아왔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문을 열어주세요."

"네. 회장님."

잠시 후, 버나드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소파에 앉자마자 저간의 사정을 소상히 보고했다.

"벤의 차량번호를 조회한 결과 알바니아 마피아들이 주로 이용하는 차량으로 밝혀졌습니다."

"알바니아 마피아가 뭐죠?"

"프랑스와 이탈리아, 동유럽에서 기승을 부리는 범죄단체죠. 이탈리아와 러시아 마피아를 능가할 정도로 잔인한 조직입니다."

그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놈들은 마약 유통과 인신매매, 신체장기밀매 비니지스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올리비아를 납치한 이유가 인신매매를 위해서라는 말씀입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랍 부호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올리비아를 납치한 것 같습니다."

버나드는 CIA 요원이었다.

허투루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올리비아가 있을 만한 곳을 짐작하십니까?"

그가 즉답했다.

"루마니아의 해안도시인 콘스탄자로 데리고 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곳에서 며칠 정도 머문 뒤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로 옮겨질 겁니다."

"두바이에서 최종 판매가 실행된다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회장님."

올리비아를 구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꿈많은 여대생이었다.

그녀의 인생이 망가지는 걸,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나름의 측은지심이었다.

"콘스탄자로 가는 항공편을 알아봐 주십시오."

버나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콘스탄자는 알바니아 마피아들의 핵심 거점입니다. 그런 곳으로 회장님을 안내할 수 없습니다."

"내 목숨은 내가 알아서 지키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호하게 말한 뒤 지갑에서 10만불 짜리 수표를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콘스탄자에 있는 놈들의 거점 시설로 안내해 주십시오."

버나드는 돈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런 때문인지, 언제 그랬냐는 듯 친절한 태도로 화답했다.

"좋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콘스탄자로 회장님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