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45화 (145/175)

145화 피를 봐야 할때는, 앞뒤 재지 말고 반드시 피를 봐야 한다!

나를 태운 전용기가 루마니아의 부다페스트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CIA 요원인 버나드와 함께 헬기에 몸을 실었다.

대략 2시간 뒤, 해안가에 인접한 콘스탄자에 도착했다.

콘스탄자 시내에서 곧바로 방탄 리무진 차량으로 갈아탔다.

그 후, 해변에 맞닿은 구릉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구릉지에 도착하자 건너편 언덕가에 위치한 투박한 건물이 보였다.

버나드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건물에, 수십명에 달하는 여자들이 갇혀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현지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면 안될까요?"

그러자 버나드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현지 경찰도 한통속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CIA의 타격부대를 동원해 주십시오."

"죄송하지만, 저희 CIA는 타국에서 함부로 무력 작전을 펼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곳은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테러 거점이 아닌 관계로..."

그리 말하며 내 요구를 완곡히 거부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올리비아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심 그런 결심을 할 찰나, 버나드가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돈으로 해결하는 겁니다."

"알바니아 마피아와 몸값을 협상하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가 언덕에 위치한 납치 거점을 손으로 가리키며 재차 말했다.

"중화기로 무장한 알바니아 마피아들이 철통같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몸값 협상 외에는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습니다."

그의 말대로 올리비아가 구금된 건물 내외부에는 총기로 무장한 마피아 단원들이 삼엄한 경계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물론 놈들을 얼마든지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다수의 피를 보게 된다.

나는 가급적 피를 보지 않고 올리비아를 구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버나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좋습니다. 저들에게 협상을 제안해 보십시오."

"그럼 시내에 위치한 힐튼 호텔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를 떠났다.

나머지는 버나드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

그날 밤.

호텔방에서 운기행공에 전념할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문을 열자 버나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안으로 들이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협상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가 즉답했다.

"몸값으로 60만불을 요구하더군요."

"60만불을 주면 그녀를 풀어주겠다는 확답을 받으셨나요?"

"확답은 받지 못했지만, 60만불을 건네면 올리비아를 풀어줄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버나드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일단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60만불을 전달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지 않습니까?"

"60만불과 올리비아를 맞교환하자는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음날.

60만불이 가득 들어찬 돈가방을 들고 콘스탄자 인근의 해변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올리비아와 돈을 맞교환하기 위함이었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 총기로 무장한 알바니아 마피아들과 벤차량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를 수행하는 버나드에게 말했다.

"올리비아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전달하세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피아들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 후, 그들과 뭐라뭐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잠시 뒤, 마피아들이 벤의 옆문을 오픈했다.

벤 안에는 깊은 잠에 취한 올리비아가 있었다.

그녀는 약물에 취한 듯한 모습이었다.

내 앞으로 다가온 버나드에게 돈가방을 전달했다.

그는 돈가방을 건네받자마자 구렛나루가 무성한 마피아 쪽으로 걸어갔다.

직후, 그들이 내 앞으로 올리비아를 데리고 왔다.

그녀는 기식이 엄엄한 상태였다.

곧바로 그녀를 내가 타고온 차에 실었다.

그 후, 인근의 병원으로 전속력으로 차를 몰아갔다.

***

새벽 무렵.

병원 응급실을 서성일 무렵, 담당의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가 나름 유창한 영어로 입을 열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봤지만, 약물 중독이 너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됐다.

"환자는 약물중독으로 인한 급성 쇼크사로 사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최악의 결과였다.

올리비아를 돈으로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이 모든 책임은 그녀를 납치한 알바니아 마피아 개자식들에게 있었다.

무자비한 복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뒤 버나드에게 부탁을 전했다.

"올리비아의 장례를 책임져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지갑에서 1만불짜리 수표 3장을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제가 책임지고 그녀의 장례를 무사히 끝마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병원을 바람처럼 빠져나왔다.

병원을 나서자마자 호텔방으로 되돌아갔다.

***

외교행낭을 어깨에 걸친 뒤 호텔방을 나섰다.

그 후, 알바니아 마피아들의 납치 거점으로 차를 몰아갔다.

구릉지 한켠에 차를 세운 뒤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암석으로 올라갔다.

언덕가에 위치한 마피아들의 거점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더할 나위 없는 타격 장소였다.

외교행낭에서 쇠구슬 20개를 모조리 꺼냈다.

그 뒤, 총기로 무장한 놈들의 관자놀이를 목표로 쇠구슬을 벼락같이 내던졌다.

순간 공기를 가르를 파공성이 귓전을 스침과 동시에 마피아들의 안면이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펑! 퍼엉! 퍼어엉...!

스무명에 달하는 마피아들이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르지 못한 채 두개골이 처참히 박살났다.

일격필살이었다.

그런 탓일까. 극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이런 간단한 방법을 놔두고 마피아들과 쓸데없이 협상을 벌인 탓이다.

그 덕분에 애꿎은 올리비아의 목숨만 희생되었다.

놈들은 애시당초 올리비아를 살려두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런 이유로 과다한 약물을 그녀에게 주입했다.

올리비아를 향한 죄스러움을 뒤로한 채 납치 거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허연 뇌수와 비릿한 핏물을 한가득 내쏟은 녀석들의 초라한 몰골이 시야에 포착됐다.

놈들의 시체를 거칠게 즈려밟으며 건물 안을 샅샅이 수색했다.

지하실에서 쇠창살 안에 갇힌 그녀들의 가련한 모습을 발견했다.

곧바로 쇠창살의 자물쇠를 성난 주먹으로 내리쳤다.

컹!

자물쇠는 내 한주먹에 허무하게 박살났다.

문을 열자 그녀들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 역시 마피아들과 한패거리로 의심하는 눈치였다.

곧바로 버나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바니아 마피아들의 납치 거점을 장악했으니까, 지금 당장 이 곳으로 오십시오."

수화기에서 버나드의 경악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사실이니까 어서 빨리 이 곳으로 사람을 데리고 오십시오. 지금 당장!"

전화통화를 끊은 뒤 그녀들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여러분들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올 겁니다. 그러니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제야 그녀들이 다소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차례로 쇠창살 밖으로 걸어나왔다.

***

버나드 일행이 알바니아 마피아의 납치 거점에 도착했다.

그들은 현장을 목격한 뒤 일제히 경악했다.

20명에 달하는 마피아들의 두개골이, 하나같이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간 까닭이다.

그들을 자세히 살핀 버나드는 또 다시 놀라버렸다.

총기 사용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 탓이다.

그는 한빈이 무슨 방법으로 마피아들을 처리했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허나, 그의 의문은 끝내 해소되지 못했다.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한빈이 종적을 감춘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

전용기의 창 밖으로 태평양의 광활한 쪽빛 바다가 드러났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올리비아가 목숨을 잃은 탓이다.

피를 보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나약함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럴 때는 아름다운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함께하는 게 최선이었다.

곧바로 여승무원을 면전에 호출했다.

그녀는 미녀가 많기로 소문난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율리아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가 눈부신 미모를 과시하며 고혹적인 눈웃음을 내비쳤다.

"저를 호출하셨나요?"

고개를 끄덕이며 양팔을 벌리자, 율리아가 조건 반사적으로 내 품에 안겨왔다.

***

한국 재계의 큰별인 임낙철 회장이 수년 간의 투병 끝에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전자산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나름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런 이유로 임 회장의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그 후, 유족들에게 나름 심심한 조의를 표명했다.

장례식장을 빠져나올 무렵, 때마침 현장에 도착한 이태강과 마주쳤다.

"오늘 밤에 상지원으로 오십시오. 드릴 물건이 있으니까."

그는 내 말의 속뜻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런 탓인지 만면가득 탐욕에 절은 미소를 드러내 보이며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조문을 끝마치자마자 상지원으로 갈테니까 물건이나 제대로 챙겨두라고. 하하..."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 말하며 장례식장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날 밤.

상지원 접견실에 태강이 나타났다.

그에게 준비한 물건을 전달했다.

"300억입니다. 그 돈으로 한국당의 유력 인사들을 포섭하세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 화답하며 스위스 은행에서 발행한 CD를 서류가방에 재빨리 수납했다.

그 뒤, 나를 향해 은근한 어조로 넌지시 말했다.

"임낙철 회장의 가신들이 거액의 재산을 빼돌렸다는 소문이 돌더라고."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임 회장이 생전에 엄청난 규모의 해외 광산과 주식 등을 가신들의 명의로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걸 모조리 빼돌린 모양이야."

태강이 그리 말할 정도면 거의 사실이라는 말이었다.

나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아랫사람들 명의로 자산을 은닉할 경우,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특히 본인이 병상에 눕거나 지병으로 사망할 경우, 그 모든 재산은 믿었던 수하들의 몫이 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것이다.

임낙철 회장도 그런 케이스였다.

철석같이 믿었던 수하들이 그가 병상에 눕자마자 자신 명의로 된 재산을 현금화한 탓이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찰나, 태강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장내에 재차 울려퍼졌다.

"임 회장 가신들이 빼돌린 돈이 거의 10조원에 달한다고 하더군.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조차 못할 천문학적인 거액이지!"

문득 임낙철의 평소 돈 씀씀이가 궁금해졌다.

"임 회장이 가신들에게 연봉을 짜게 준 적이 있었나요?"

태강이 고개를 완강히 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아니지. 재계에서 최고로 많은 고액 연봉을 챙겨준 양반이 임 회장이라고!"

나는 오늘, 본의아니게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

아랫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잘해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더불어 그들을 효율적으로 부리기 위해서는, 연봉을 업계 평균 수준으로 책정하는 게 최선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다음날.

상지원 서재로 진대현 본부장을 호출했다.

면전에 나타난 그에게 거두절미하고 지시를 내렸다.

"대영과 태산그룹 등기 임원들의 연봉과 판공비를 파악해서 오늘 중으로 보고서로 제출하십시오."

내 명령은 게속 이어졌다.

"그리고 10대 그룹 등기임원들의 연봉과 판공비도 철저히 파악해서 보고서로 올리세요."

진본이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안으로 보고서를 갖고 오십시오."

"예. 회장님."

그를 내보내자마자 하동균 비서팀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눈 앞에 나타난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10대 그룹 등기임원들의 연봉과 판공비를 파악해서 오늘 오후 4시까지 보고서로 제출하십시오. 그리고 대영과 태산그룹 등기임원들의 연봉과 판공비도 서류로 제출하십시오."

동균 역시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복명했다.

"예. 회장님!"

***

상지원을 빠져나온 진대현은 대영과 태산그룹 등기임원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삭풍이 휘몰아칠 예정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런 탓일까. 대현의 등줄기에 오싹한 한기가 스쳐지나갔다.

그 역시 등기임원이었기 때문이다.

대영과 태산그룹의 등기임원들은 업계 최고 대우를 받고 있었다.

타사보다 평균 2배 이상의 연봉과 판공비를 지급받은 것이다.

대현은 제발 자신의 예감이 틀리기만을 손꼽아 기원하며 회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슷한 시각.

하동균은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빈이 갑자기 타사 등기 임원들의 연봉과 판공비를 파악하라고 지시한 탓이다.

동균의 입장에서는 가슴철렁한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대규모 임금 삭감을 예감한 탓이다.

그런 때문일까. 절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심경이었다.

그렇다고 자기 멋대로 보고서를 조작할 수도 없었다.

한빈은 같은 명령을 수시로 여러명에게 수행시켰다.

보고서의 오류를 교차검증하기 위함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