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광폭행보
뉴욕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고급 저택에서 군산복합체의 정기 회의가 열렸다.
클라크 부의장이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사진평 주석이 실각한 강조민 전 주석의 최측근인 보시양 중경시 당서기를 부패혐의로 전격적으로 체포했습니다. 그들의 발표에 의하면 보시양은 미화 2천억 불(240조 원)을 횡령했으며 유명 여배우들과 환각파티를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영국 스파이로 의심되는 미모의 여성과도 불륜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군산복합체에 신규멤버로 참여한 공화당 원로 버클리가 입을 열었다.
“보시양의 부정부패 혐의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사진평이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정적인 강조민과 그의 수족들을 모조리 처단할 경우, 대중국 압박 정책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강조민은 미국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입니다.”
아담 의원도 버클리와 같은 생각이었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로 좌중을 향해 내 입장을 밝혔다.
“강조민을 부추겨서 중국에 내전이 발발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사진평의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그 길이 최선입니다. 또한 신강 위구르 자치주의 분리 독립과 티벳, 운남 묘족의 분리독립 역시 대대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클라크가 심유한 눈빛을 내비치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신강과 티벳, 운남 묘족의 독립운동을 지원할 복안을 갖고 계십니까?”
그에게 즉답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이용해 신강 위구르에 포진한 중국군을 일거에 궤멸시키는 게 최상책입니다. 그리고 티벳과 운남 역시 유효적절한 테러를 이용해서 중국군을 타격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발언이 끝나자, 좌중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하는 뜻을 표명했다.
클라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공화당 출신의 신규 멤버가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 회장의 말씀대로 테러리스트를 동원해 중국군을 전방위적으로 타격해야 합니다!”
클라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내렸다.
“김 회장의 방안을 심도 있게 고민해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회의를 종료했다.
회의가 끝나자 클라크가 나를 손짓했다.
“김 회장과 따로 할 말이 있으니까 내일 저녁에 맨해튼의 단골 레스토랑으로 오게.”
“알겠습니다. 부의장님.”
그에게 깍듯이 인사한 뒤 회의실을 재빨리 빠져나왔다.
***
다음날 저녁.
맨해튼의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지배인이 나를 맞이했다.
“예약을 하셨습니까?”
“클라크 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가 반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창가 쪽 테이블로 안내했다.
클라크의 테이블에는 맛좋은 스테이크와 포도주가 세팅되어 있었다.
그에게 목례를 취한 뒤 맞은편에 앉았다.
그 후, 묵묵히 저녁식사에 집중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뒤 그에게 물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중국의 유력인사들을 포섭하는 일에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CIA를 동원하시죠?”
“중국인들은 서양인을 몹시 경계하지. 그런 탓인지 CIA도 별 소용이 없더군.”
그의 말은 계속됐다.
“중국은 미모의 여배우를 동원해 미국 정가의 실력자를 포섭하고 있네. 반면 우리는 제대로 된 포섭 공작조차 펼치지 못하는 게 현실일세.”
“그래서 저에게 하려는 말씀이 뭡니까?”
“역시 자네는 성미가 너무 급해. 허허······.”
그가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저는 말을 돌리는 걸 싫어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원하시는 바를 확실히 말씀해 주십시오.”
클라크가 머리를 끄덕이며 그제야 속엣말을 내뱉었다.
“중국인들이 한국 미녀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한국 여성들의 백옥 같은 피부와 고운 이목구비를 많이 좋아하죠.”
“그래서 말인데, 한국 미녀를 동원해서 중국의 거물들을 포섭하는 공작을 하고 싶은데······.”
“그 일을 제가 맡으라는 말씀입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런 일을 실행에 옮길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네밖에 없네. 더구나 김 회장은 중국어도 곧잘 하지 않는가?”
그의 말대로 나는 수년간 중국어 공부에 매진한 덕분에 중국인들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물론 영어가 더 편했지만.
“한국의 여배우를 동원해서 놈들의 약점을 잡게. 그게 내가 원하는 걸세.”
클라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다면,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실행에 옮기도록 하겠네.”
대영전자의 가장 큰 고심은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 진입이었다.
놈들은 미국과 대만에서 탈취한 기술을 바탕으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전국가적으로 육성하는 중이었다.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십시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확답했다.
“나는 입 밖에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일세.”
“좋습니다. 그럼 부의장님 말씀대로 제가 총대를 매겠습니다.”
***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상지원으로 직행했다.
상지원의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태산그룹에 대해 차분히 생각했다.
나는 원래 태산그룹의 지주사 지분을 외국계 자본에 매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외 매각 작업은 생각 외로 순탄치 않았다.
인수대상자로 떠오른 외국 자본들은 하나같이 태산그룹 계열사의 미래가치가 불투명하다며 지주사의 지분을 헐값에 매각하라고 나를 강도 높게 압박했다.
그런 이유로 여러 차례 협상이 결렬됐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들은 태산그룹을 날로 먹으려 했다.
씨알도 안 먹히는 개짓거리였다.
태산그룹은 태산조선과 태산푸드 태산 CGV 태산 유통(할인마트, 편의점)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힘입어 수년 동안 견실한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돈 안 되는 계열사를 적시에 매각한 결과였다.
그 덕분에 태산그룹은 10조 원에 육박하는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내유보금 규모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경우, 거의 10대 그룹에 포함될 정도였다.
그런 탓인지, 최근 들어 태산그룹 지주사를 매각하겠다는 생각이 씻은 듯이 자취를 감췄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당분간 태산그룹을 더 끌고 가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이 상책이었다.
***
접견실에 들어서자 태산 CGV의 최명국 사장이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그를 지나쳐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했다.
담배 연기를 자욱이 말아 올리며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최 사장에게 넌지시 말했다.
“상납에 프리한 마인드를 지닌, 미모의 여배우를 섭외하세요.”
그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들이 필요하니까 묻지 마시고, 적당한 여배우를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최 사장이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말씀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돈은 달라는 대로 준다고 전하세요.”
“예. 회장님.”
그를 내보낸 뒤 하동균 비서팀장을 불러들였다.
눈앞에 나타난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영그룹 인사 중에 중국 고위층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 누구죠?”
그가 즉답했다.
“대영화장품의 임철호 대표가 중국 쪽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정평이 자자합니다. 중국 청화대 출신이라 고위 관료들과도 친분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철호 사장을 지금 당장 호출하세요.”
“네. 회장님.”
1시간 후.
대영화장품의 임철호가 접견실에 나타났다.
그는 50대 중반의 혈색 좋은 남자였다.
면전에 서 있는 그에게 물었다.
“중국 유력인사들과 친분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의 입이 귓가에 내걸렸다.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새였다.
“과찬이십니다. 회장님. 하하······.”
임철호는 가식적인 겸양지례를 과시하며 내 앞에서 실 없는 웃음을 흘려보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클라크 부의장이 보내온 이메일을 살폈다.
이메일에는 내가 포섭해야 하는 중국 유력인사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혹시 상해시 당서기인 조자웅을 개인적으로 아십니까?”
그가 반색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저와 청화대학 동문입니다. 저보다 2년 선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사적으로도 아시는 건가요?”
“청화대 동문회에서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사장님께서 조자웅 당서기와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상해에 볼일이 있으십니까?”
“상해는 됐고, 그분을 제주도로 초청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그럼 임 사장님만 믿겠습니다.”
그가 기합이 바짝 든 얼굴로 화답했다.
“예. 회장님!”
***
상해시 청사 건물에 임철호가 나타났다.
그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공안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당서기실로 직행했다.
임철호가 당서기실에 들어서자 조자웅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반겼다.
“이게 얼마만이지? 2년 만에 보는 건가?”
“아마 그럴 겁니다. 선배님. 하하······.”
그들은 친근한 포옹을 나눈 뒤 철관음을 음미하며 그동안 못다 한 얘기를 친근하게 주고받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철호가 은근한 어조로 본론을 꺼냈다.
“대영그룹의 김한빈 회장님이 투자 문제로 선배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자 조자웅이 반색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참말인가?”
“예. 그래서 말인데, 시간이 되시면 제주도에서 바람도 쐬시면서 저희 회장님과 만남을 가지시는 게 어떨런지요?”
“김 회장이 나를 제주도로 초청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선배님.”
조자웅은 중국 권력 서열 5위권에 포진한 거물이었다.
당연히 김한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특히 그의 막대한 재력에 대해서 평소부터 관심이 많았다.
“선배님에게 섭섭지 않게 꽌시가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제주도로 오십시오.”
“혹시 제주도에 카지노가 있나?”
“당연히 있습니다. 왜, 카지노를 하시고 싶으십니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카지노에서 여흥을 즐기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우하하하하!”
조자웅은 노골적인 언사를 내뱉음과 동시에 호탕한 웃음을 토해냈다.
그런 모습에 철호는 쓴읏음을 지으며 속으로 그를 욕했다.
‘돈에 환장한 돼지 같은 놈이구나.’
하지만 겉으로는 시종일관 가식적인 미소를 드러낸 채 조자웅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음날.
한국에 도착한 임철호는 곧바로 상지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제주도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에는 내 개인 호텔이나 마찬가지인 낙원호텔이 있었다.
그리고 낙원호텔의 지하에는 국제 카지노장이 있었다.
상해 최고 권력자인 조자웅을 초대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낙원호텔로 직행했다.
호텔에 들어서자 점장이 나를 반겼다.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펜트하우스를 일주일 동안 사용할 예정이니까 주변에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철저히 하십시오.”
“예. 회장님.”
펜트하우스에 올라가자마자 김태구 경호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몰카 장비를 설치하세요.”
“예. 회장님.”
김태구와 경호팀은 능숙한 손길로 고화질 몰카와 도감청 장비를 설치완료했다.
“조자웅의 수행원들이 몰카 탐지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몰카에 전원을 넣지 마십시오.”
“그럼 언제 몰카 장비를 작동할 계획이십니까?”
“내일 밤에 작동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날 오후.
낙원호텔 펜트하우스에 인기 여배우인 정세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백옥 같은 피부와 사랑스러운 얼굴,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중국 부호들이 환장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도도한 태도로 나에게 딜을 제시했다.
“저는 몸값이 비싸요. 아무리 못해도 8억은 받아야 겠어요.”
“좋아. 돈은 원하는 대로 주지. 대신 입단속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래 봬도 입이 엄청 무거운 여자니까.”
“네가 상대하는 사람은 중국 권력 서열 5위에 랭크된 거물이니까, 알아서 접대해.”
“염려 마시라구요.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날대로 났으니까.”
정세아는 아찔한 뒷태와 우아한 걸음걸이를 과시하며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나름 매혹적인 여배우였다.
***
제주도 국제공항 활주로에 상해시 당서기인 조자웅의 전용기가 착륙했다.
조자웅은 한빈이 제공한 리무진에 올라탄 채 차장을 스치는 제주도의 미려한 풍광을 물끄러미 감상했다.
그때, 옆에 동승한 수행비서가 간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김한빈의 개인 재산이 미화로 6천억 불(72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조자웅의 입에서 탐욕에 절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이 사실인가?”
“국가안전국이 파악한 자료니까 거의 틀림없을 겁니다.”
자웅의 얼굴 가득 흡족한 표정이 만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