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연신대학 재단이사장
사진평 중국 국가주석은 자원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콩고를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다.
하지만 그는 콩고 수반과의 정상회담 직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상해 별장에서 가택 연금 중이던 강조민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비서실장은 그리 말하며 태블릿 피시를 사진평에게 내밀었다.
태블릿 피시에는 전신에 방탄 타이즈를 걸친 정체불명의 괴한이 수백 명의 무장 병력을 일거에 격살하는 장면이 생생히 드러나 있었다.
사진평은 전율했다.
슈퍼맨에 버금가는 초인이 중국에 출현한 탓이다.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에는 극대노했지만 그런 감정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것보다는 강조민을 별장에서 빼달린 초인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컸다.
“자네가 보기에 이 자의 정체가 뭐라고 생각하나?”
진평의 물음에 비서실장이 은근한 어조로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 미국이 유전자 조작으로 개발한 슈퍼솔져 같습니다.”
비서실장의 그 같은 답변에 진평 역시 동의했다.
그것 외에는 괴한의 막강한 신위를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사용한 무기가 무엇인지 파악했나?”
“쇠구슬의 일종으로 밝혀졌습니다.”
“고작 쇠구슬 따위로 3백명이 넘는 군병력을 눈 깜짝할 새에 처치했다는 말인가?”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주석 각하.”
진평은 다시 한번 미국의 무서움을 뼛속 깊이 절감했다.
말도 안 되는 슈퍼솔져를 개발한 탓이다.
그의 지레짐작이 불을 뿜을 즈음, 강조민을 태운 미군의 군용기가 LA 인근의 미군 전용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다.
***
LA에 도착한 강조민은 CIA의 비밀 안가로 직행했다.
비슷한 시각, 짐 토마스 CIA 국장 역시 안가에 도착했다.
그는 안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고위급 인사의 심문을 전담하는 아놀드 요원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국장님.”
토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굵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강조민이 쥐고 있는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자백유도제를 사용하라는 말씀입니까?”
“필요하다면.”
“그렇지만 강조민은 자발적인 망명인사 신분입니다. 그런 자에게 함부로 약물을 사용한다면 극렬하게 반발할 우려가 있습니다.”
토마스는 아놀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름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런 탓인지 아놀드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네가 책임지고 강조민에게서 중국 최고위층 인사들의 비밀을 전부 뽑아내게.”
“명심하겠습니다. 국장님.”
그날 이후, 아놀드는 강조민을 전담 취조하며 미국에 득이 되는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
일주일 만에 상암동 켄싱턴 빌딩으로 출근했다.
밀려 있는 결재서류에 회장 직인을 날인하기 위함이었다.
129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결재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시급을 요하는 서류들이었다.
여비서가 가져온 모닝 커피를 음미하며 결재서류를 일사천리로 처리해갔다.
기계적으로 회장 직인을 날인한 것이다.
서류를 검토할 시간적인 여유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재서류에 회장 직인을 무차별적으로 남발할 무렵, 마음에 걸리는 글귀가 시야에 포착됐다.
<중국의 사천성은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물류 거점으로 제격입니다. 특히 자동차 생산라인을 그 지역에 건설할 경우, 중국 내륙의 자동차 판매를 재고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마음에 안드는 내용이었다.
내가 엄금한 중국 투자를 요청하는 결재서류였기 때문이다.
서류작성자의 직급과 이름을 확인한 뒤 비서실에 콜을 넣었다.
“대영자동차의 민성훈 판매 이사를 지금 당장 사무실로 호출하세요.”
-네. 회장님.
30분 후.
50대의 중년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가 민성훈이었다.
긴장한 낯빛이 역력한 민성훈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하등의 쓸모 없는 결재서류를 올리신 이유가 뭐죠? 중국에는 단돈 일원한 푼 투자 안 하겠다고 내가 누누이 말했는데, 그새 까먹으신 겁니까?”
녀석의 얼굴이 금세 잿빛으로 물들었다.
직후 사무실 바닥에 넢죽 무릎을 꿇은 채 울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시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용서해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곧바로 비서실에 콜을 넣었다.
“민성훈 이사를 지금 당장 사무실에서 내쫒으세요.”
-네. 회장님.
그러자 녀석의 만면 가득 사색이 그득해졌다.
허나, 그는 이미 내 인내심의 한계를 까마득히 초과한 상태였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결국 민성훈은 사무실에서 짐짝처럼 끌려 나갔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
대영자동차의 민성훈이 하루아침에 해임조치 됐다는 소식이 대영그룹 전체에 파다하게 나돌았다.
그런 탓일까. 대영그룹의 임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민성훈을 안주삼아 이야기꽃을 피우기 일쑤였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민성훈이 해임된 이유를 쉴 새 없이 남발했다.
“중국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자는 결재서류를 올린 게 결정적인 해임 사유라고 하더군요.”
“저도 비서실에서 그런 말을 들었어요.”
“민성훈은 바보 같은 작자에요. 김 회장이 중국 대륙에 투자하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간뎅이가 부은 거죠. 회장이 말끝마다 ‘중국 투자는 내 사전에 없다’라고 허구한 날 밝혔는데, 그런 엿 같은 결재서류를 올리니까 김 회장이 빡돈거죠.”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김 회장의 불같은 성미를 잘 아는 인간이 왜 그런 실수를 저지른건지, 당최 이해가 안 되요.”
“원래 민성훈 그자는 친중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 김 회장이 우습게 보였나 봅니다. 그거 외에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에요.”
그들이 민성훈의 해임 사유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뜨겁게 밝힐 무렵, 회사에 비보가 전해졌다.
대영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던 장동현이 급성 간암으로 사망했다는 부고가 전해진 것이다.
***
대영병원 영안실에 들어서자 장동현의 부인과 자녀들, 일가친척들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에게 준비해온 거액의 조의금을 전달한 뒤 장동현을 조문했다.
그 후, 영안실 뒤편의 식당에서 육개장을 안주 삼아 소주를 물처럼 들이켜며, 박종태와 두런두런 담소를 이어갔다.
“사람 목숨이 참 허망한 거 같아요. 건강해 보이던 장변이 이런 식으로 세상을 떠나다니.”
그리 말하자 종태 역시 고기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회장님 말씀대로 사람의 명줄은 장담을 못하는 거 같습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한방에 훅 가는걸 보면.”
“그래서 평소에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하는 거죠. 실장님도 알아서 건강을 챙기세요.”
종태가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에게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실장님은 이곳에서 유족들을 위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영안실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
상지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하동균 비서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영그룹의 임원들에게 장변을 조문하라고 말을 전하세요.”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비서실 직원들을 영안실에 대기시키세요.”
“예. 회장님.”
지시를 내린 뒤 두 눈을 감았다.
장동현의 건강하던 생전 모습이 뇌리에 쉼 없이 떠올랐다.
그는 향년 57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의학이 발달한 요즘 시대에 너무 빨리 이승을 하직한 것이다.
안타까운 심경이었다.
그 즈음, 차창 밖으로 상지원의 그림 같은 전경이 스며들었다.
차에서 내린 뒤 상지원 별관에 위치한 접견실로 들어갔다.
접견실에서 커피를 차분히 음미할 무렵, 진대현 본부장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본론을 꺼냈다.
“마르셀 쿠퍼 회장과 15억 불에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런던에서 인수계약 일정을 조율하세요.”
“말씀대로 인수 작업을 진행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장변에게 조문을 하셨나요?”
“공항에서 방금 전에 도착한 탓에 아직 조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영안실로 가보세요.”
“네. 회장님.”
대현은 하직인사를 올리자마자 접견실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
접견실의 육중한 책상에 좌정한 채 인터넷 뉴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서울 서부지검, 연신대 음대와 미대에서 다수의 입시비리 정황 포착!>
골이 지끈지끈 아파오는 순간이었다.
연신대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사학이었다.
더불어 대영문화재단 산하에 위치한 학교법인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연신대의 재단 이사장직을 겸임하고 있었다.
불 같이 화가 났다.
음대와 미대 교수들이 특정 학생들에게 실기 시험을 몰아주는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탓이다.
곧바로 하동균을 호출했다.
면전에 나타난 그에게 엄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연신대의 이명학 총장을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동균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복명했다.
“예. 회장님!”
***
자정 무렵.
접견실에 연신대의 이명학 총장이 나타났다.
그는 육순의 연배였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전혀 기를 펴지 못했다.
그의 고용주였기 때문이다.
“당신이 하는 일이 대체 뭡니까? 음대와 미대 교수들이 입시 부정을 저지를 동안 대체 뭘 했냐고요!”
거칠게 다그치자 그가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신도 음대와 미대 교수들에게 뒷돈을 받아 먹으신 겁니까?”
그러자 이명학이 천부당 만부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양팔을 맹렬히 내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회장님! 저는 정말 결백합니다!”
명학은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음대와 미대 교수들이 대놓고 입시 비리를 저지르기 위해서는 총장의 방관 혹은 묵인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만 가보세요. 당신과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까.”
싸늘한 어조로 축객령을 내리자, 그가 울듯한 얼굴로 허리를 숙인 뒤 접견실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이명학을 내보내자마자 서부지검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는 이태강의 직계 라인이었다.
그런 탓에 내 돈을 수십억이나 받아먹었다.
내 말이라면 껌벅 죽는 위인이었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내 요구를 밝혔다.
“연신대 음대와 미대의 입시부정 수사를 조용히 처리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희도 언론에 기사가 나간걸 방금 전에 확인했습니다.
“수사는 알아서 하시되, 우리 연신대의 명예가 추락하는 일 만큼은 결단코 막아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조용히 사건을 매듭짓겠습니다.
“그럼 지검장님만 믿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
다음날.
아침 일찍 상지원을 나섰다.
연신대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연신대학에 도착한 뒤 김태구 경호팀장에게 명을 내렸다.
“나 혼자 학교를 방문할 생각이니까 팀장님과 경호원들은 학교 휴게실에서 대기하고 계세요.”
“예. 회장님.”
김태구와 경호원들을 뒤로한 채 총장실로 직행했다.
총장실에 들어서자 이명학이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에게 목례를 취한 뒤 총장실의 고풍스러운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면전에 부동자세로 시립한 명학에게 지시를 내렸다.
“음대와 미대 학장을 사무실로 불러들이세요.”
“예. 회장님.”
잠시 후, 음대와 미대 학장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들 역시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향해 90도 각도로 허리를 접었다.
눈앞에 나란히 서 있는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음대와 미대 교수들을 대상으로 검찰 수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수사 여하에 따라서 당신들도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알아서 대비책을 마련하세요.”
그들이 겁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교수와 학부형에게 받아먹은 뒷돈을 모두 학교발전기금으로 내놓으세요. 그래야 검찰이 사정을 참작할 겁니다.”
그제야 녀석들이 말귀를 알아먹은 얼굴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음대와 미대 교수들에게도 내 말을 고스란히 전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녀석들을 내보낸 뒤 명학에게 넌지시 물었다.
“음대와 미대의 학부모 중에서 가장 끗발이 쎈 사람들이 누구죠?”
그가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재벌그룹 오너 일가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과 면담을 가질 생각이니까 총장님이 자리를 마련하세요.”
“네.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