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청와대 오찬
상지원 접견실에 들어서자 재벌 회장님들이 나를 반겼다.
그들은 모두 연신대 음대와 미대에 손주와 아들딸 등을 입학시킨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부정 입학 연루자였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그들에게 말을 전했다.
“검찰에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각자 알아서 검찰 수사에 대비하십시오.”
그러자 나이 지긋한 정 회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저희가 대체 어찌하면 되는 겁니까?”
좌중을 휘 둘러본 뒤 대충 말했다.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책임을 지십시오. 그것이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그들은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도리어 반발하기까지 했다.
금테안경을 착용한 박 회장이 그런 케이스였다.
“우리는 교수들이 돈을 달라고 해서 밥값이라도 하시라고 돈을 건넸을 뿐입니다. 왜, 그 같은 점을 몰라주시는 겁니까?”
조 회장도 말을 거들었다.
“저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고생하시는 교수님들에게 보약이라도 지어먹으라는 의미로 돈을 건넸을 뿐입니다.”
유 회장 역시 입을 놀렸다.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저 교수님들에게 수고하신다는 명목으로 촌지를 건넨 건데 그게 무슨 죄가 된다고 그러십니까?”
이 회장도 입을 열었다.
“이 사안은 연신대학 이사장이신 김 회장님이 책임지고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그들은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있었다.
뻔뻔함의 극치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공동운명체였다.
나는 연신대학의 명예가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꼴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내 소유의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 그들에게 말했다.
“교수들에게 전달한 돈을 회수하신 후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기부하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회장님들에게 일체 피해가 없도록 조치를 취해드리겠습니다.”
정 회장이 은근한 얼굴로 물었다.
“제 손주 녀석의 합격도 그대로 유지되는 건가요?”
그에게 즉답했다.
“당연히 그럴 계획입니다. 그러니 여러 회장님들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마시고 내 말대로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그제야 회장님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
서부지검.
김지용 서부지검장은 면전에 서 있는 연진수 부장검사를 강한 어조로 질책했다.
“연신대학 입시 비리 건을 언론사에 흘린 이유가 뭐지? 왜, 일을 그따위로 처리하는 거냐고! 연신대학의 이사장인 대영그룹의 김한빈 회장이 어떤 인물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죄송합니다. 지검장님.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하겠습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소리소문없이 일을 매듭지어!”
“수사를 덮으라는 말씀입니까?”
“교수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으라고! 쓸데없이 로열패밀리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할 생각일랑 절대 하지 마라!”
연진수는 강골 검사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런 탓인지 김지용 지검장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이 사건은 제가 담당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지검장님은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감히 나에게 항명을 하겠다는 거냐?”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럼 이만.”
연진수는 그리 말하며 지검장실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김지용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는 면전에서 대놓고 자신을 무시한 연진수를 용납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이태강에게 연 검사의 항명에 대해 발 빠르게 전달했다.
***
상지원의 육상트랙에서 조깅을 즐길 무렵, 하동균 비서팀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이태강 국무총리의 전화 연락입니다.”
그리 말하며 핸드폰을 내 손에 건네주었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태강의 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당 검사인 연진수가 말을 듣지 않는군.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형님은 더 이상 이번 건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마십시오.”
-너무 심하게 대하지는 마라. 그래도 같은 검찰 식구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전화를 끊은 뒤 하동균에게 지시를 내렸다.
“서부지검의 연진수 부장검사를 상지원으로 초대하세요.”
“예. 회장님.”
그날 밤.
상지원 접견실에 연진수 검사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묵례를 취한 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건방진 태도였다.
녀석이 유들유들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저를 청한 이유를 알고 싶군요.”
“별거 없습니다. 그냥 댁을 따끔하게 손 볼 생각으로 불렀으니까.”
그 말과 동시에 경호원들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연진수의 전신에 매서운 주먹과 발길질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부었다.
그런 탓일까. 연 검사의 입에서 돼지 멱따는 비명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크악! 제발! 그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
눈탱이가 밤탱이로 변한 녀석이 내 앞에 납작 엎드렸다.
매질에 약한 스타일이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맨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의 부친이 수십억대의 분양대행 사기를 친 사건이 유야무야 종결됐더군요. 댁이 뒤에서 힘을 썼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녀석이 울부짖듯 입을 열었다.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회장님!”
“당신이 그리 말하니까 한 번 정도는 믿어줄게요.”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당신과 관련된 추문이 이것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 강남 텐프로 룸빵에서 아가씨를 잔인하게 폭행하고 무전취식을 일삼았다는 추잡한 얘기가 들리던데, 설마 이것도 거짓인가요?”
이번에도 녀석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남발했다.
“저는 그런 짓을 행한 일이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회장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요.”
내 말과 동시에 납작 엎드린 연진수의 등판에 경호원들의 억센 발길질이 쉴 새 없이 틀어박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녀석은 한 줄기 비명을 길게 내지른 뒤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매에 약한 놈이었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연진수는, 자신이 그동안 행한 각종 범법행위에 대해서 진솔한 자술서를 작성했다.
마음에 드는 놈이었다.
녀석을 병원으로 이송한 뒤 이태강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연신대학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서부지검의 연진수 부장검사가 부친의 분양대행 사기를 무마한 혐으로 대검에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연진수 검사는 수십 차례에 걸쳐 강남 고급 룸살롱에서 무전취식을 일삼았으며, 접대부를 대상으로 잔혹한 폭행을 행사했다는 혐의마저 받고 있습니다.
-대검찰청 감찰 위원회는 한 점의 의혹이 없도록 철저한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중략······.
당연한 귀결이었다.
뒤가 구린 놈들이 함부로 설치면 연진수 꼴이 난다.
동서고금의 진리다.
곧바로 서부지검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내 의중을 밝혔다.
“음대와 미대 교수 2명 정도를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으세요.”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회장님.
“인편으로 돈을 보내드릴 테니까 이번 건이 끝나면 가족끼리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십시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회장님. 헤헤헤······.
수화기에서 서부지검장의 간사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수행원들을 대학 휴게실에 남겨둔 채 나 홀로 총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총창실에 들어서자 이명학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그를 지나쳐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했다.
그 후, 내 의중을 그에게 전달했다.
“연신대학에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디자인에 특화된 엑설런트한 커리큘럼을 개설할 생각입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명신대학 출신들의 취업률을 제고하려는 나름의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명학이 반색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희 학교 학생들의 대영그룹 취업률이 급상승 하겠군요.”
“저는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디자인 커리큘럼의 문호를 기존 재학생들에게 모두 개방할 계획입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 말씀이 무슨 뜻이신지······?”
“대영반도체와 자동차에 근무하는 현직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대거 초빙해서 재학생들에게 효과적인 특화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는 뜻입니다.”
내 말은 계속됐다.
“저는 소수의 학생들만 혜택을 보는 학과를 개설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대신 기존 재학생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현장 지도형 커리큘럼을 만들 계획입니다.”
명학이 감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정말 대단하신 생각입니다. 회장님의 놀라운 혜안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헤헤헤······.”
그의 아부를 귓등으로 흘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반도체와 자동차, 산안디자이너 관계자를 학교에 보낼 테니 그들과 논의해서 효과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 보세요.”
명학이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복명했다.
“예. 회장님!”
***
파키스탄 모처에 CIA 특수작전 교관인 해리스 중령이 나타났다.
그는 델타포스 출신으로서 수많은 특수작전을 성공시킨 역전의 용사였다.
해리스 중령은 위구르족 전사들의 모의 전투 훈련을 한참 동안 관찰한 뒤 막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막사 안에서 커피를 음미하며 신강 위구르 자치주의 군사지도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도에는 중국군 주둔지가 상세히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조만간 위구르족 전사들을 중국군 주둔지에 대거 급파할 계획이었다.
이미 만반의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다.
위구르족 전사들은 휴대용 미사일과 중화기 등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경지에 올라섰다.
테러범으로 써먹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막사에 오마르 대위가 나타났다.
그는 위구르족 출신이었다.
그런 이유로 위구르족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중령님.”
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가리켰다.
“내일 밤 00시를 기해, 위구르족 전사들을 대거 신강으로 들여보내도록.”
“예. 중령님.”
“미군의 수송기가 준비되어 있으니까 그 안에 휴대용 미사일과 각종 중화기를 가득 싣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건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티벳에 주둔 중인 중국군 진지도 이번 기회에 타격하는 게 어떻습니까?”
“양동작전을 펼치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신강에 타격을 집중하면 중국군의 화력이 신강에만 집중될 겁니다. 그럴 바에는 티벳의 중국군 부대도 동시에 타격을 가하면서 중국군 수뇌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리스는 오마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탓인지 그의 제안을 순순히 수용하는 관용을 베풀었다.
“티벳의 중국군 주둔부대도 동시에 타격할 준비를 하게.”
“감사합니다. 중령님.”
모월 모일 모시.
신강과 티벳에 주둔 중인 중국군 부대에 수십 수백 발의 휴대용 미사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그 같은 사실은 CNN과 BBC 방송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
강남 클럽에서 광란의 춤사위를 만끽할 무렵, 내 곁에 익숙한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재벌가 금지옥엽인 성해솔이었다.
“오빠. 오랜만이야. 이런 곳에서 다 만나네. 호호······.”
해솔은 화사한 눈웃음을 내비치며 나를 유혹하는 몸짓을 쉴 새 없이 펼쳤다.
그녀와 한참 동안 부비부비를 즐긴 뒤 클럽을 빠져나왔다.
당연히 해솔은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녀와 강남의 밤거리를 거닐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늘어놓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해솔이 농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 갖고 싶지? 솔직히 말해봐. 나 정도 비주얼이면 여배우들 찜쪄먹는 수준이잖아. 내 말이 틀렸니?”
사실 그녀 말이 맞았다.
해솔은 팔등신 베이글 미녀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는 스타일이었다.
근래에 만난 여자들 중에 최고로 아름다웠다.
“오빠가 원하면 하룻밤 정도는 내가 양보해줄게.”
“하룻밤이라······?”
“그래. 내가 인심 쓰는 거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두라고.”
해솔은 그리 말하며 인근의 호텔로 나를 이끌었다.
씩씩한 그녀다웠다.
***
해솔과 즐거운 하룻밤을 같이 한 뒤 상지원으로 귀가했다.
식당에 들어가자 북엇국이 세팅되어 있었다.
북엇국으로 속을 푸는 한편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에 이목을 집중했다.
-위구르 전사단으로 알려진 무장독립 세력이 신강과 티벳에 주둔 중인 중국군 부대에, 휴대용 미사일을 무차별적으로 발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국 정부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 관계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수천 명에 달하는 중국 군인이 이번 피격 사태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티벳과 신강 위구르 자치주의 분리독립 운동이 유혈 투쟁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중략······.
속이 후련해지는 뉴스였다.
중국은 타국인 티벳과 신강을 무단 점거한 상태였다.
당연히 티벳인과 위구르족의 분리독립 투쟁은 정당한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티벳과 신강이 독립하기를 내심 기원했다.
내 TV 시청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TV에서 익숙한 그녀가 나타났다.
해솔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주중 미니리시즈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는 중이었다.
재벌가 그녀가 뭐가 아쉽다고 여배우 노릇을 하는 걸까?
자신의 꿈을 위해 순진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건가?
하지만 여배우 판은 상납이 판을 치는 세계였다.
해솔 같은 로열패밀리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감독, 작가, 제작자 등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로비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해솔이 집안의 돈을 이용해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과연 해솔의 부친이나 집안 어른이 그걸 허락해 줄까?
내 생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벌가 로열패밀리는 집안 여자들이 연예인 생활을 하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 바닥의 더러운 떼가 낄까 저어한 탓이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온통 장악할 찰나, 하동균 비서팀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이영박 대통령이 청와대 오찬에 회장님을 초대하셨습니다.”
“그 양반이 갑자기 왜 그러는 거죠?”
“회장님에게 긴히 할 말이 있는 눈치 같았습니다.”
“돈 달라고 지랄할게 눈에 선하네요.”
동균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