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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156화 (156/175)

156화 호제 무링요

워싱턴 DC 근교에 위치한 에바의 자택을 방문했다.

그녀의 애끓는 사부곡을 모른 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바는 그렁그렁한 눈물방울을 내비치며 내 품에 격하게 안겨들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니? 왜 이제서야 나타난거야?”

“그동안 일이 바빴다. 그러니까 그만 울라고. 하하······.”

그녀를 안은 채 침실로 들어갔다.

다음날.

에바가 차려낸 에그 샌드위치와 진한 커피로 아침을 해결한 뒤 금일봉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뭐야?”

“후원회에 내 명의로, 그 돈을 등록해. 미화로 3억 불(3천6백억)이다.”

“오마이갓!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주는 거야?”

“그냥. 어차피 돈이 필요할 거 아니냐?”

그녀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중의 한 명인, 트램퍼의 러닝 메이트로 나설 계획이었다.

“그래도 너무 많은 돈이라고.”

그리 말하며 내 품에 포근히 안겨들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받아둬.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제야 에바가 못 이기는 척 금일봉을 받아들었다.

***

에바는 의사당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수행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늘 밤에 열리는 개인 후원회에 김한빈 회장 명의로 3억 불을 등록해.”

그리 말하며 3억 불짜리 수표가 들어있는 금일봉을 수행비서에게 내밀었다.

비서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대체 김한빈 회장이 누굽니까?”

“대영 전자 오너.”

그제야 비서가 김한빈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챈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와 김 회장 관계가 언론에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해.”

“알겠습니다. 의원님.”

그녀는 마냥 행복했다.

사랑하는 남자가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인지 세상을 전부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탓일까. 그녀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행복에 도취된 듯한 표정을 만면 가득 떠올렸다.

***

플로리다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아름다운 율리아와 오붓한 시간을 즐겼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출신답게 나를 극진하게 대했다.

그런 까닭으로 플로리다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에게 수억 원에 상당하는 보석을 선물했다.

저녁 무렵.

플로리다 교외에 위치한 대저택으로 들어서자 아담 상원의원이 나를 반겼다.

그는 일년 열두달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플로리다에서 장기 휴가를 즐기는 중이었다.

아담 역시 홀몸이라 그런지 그의 저택에는 아름다운 도우미들이 한가득이었다.

나와 비슷한 과였다.

아담과 저택의 정원을 거닐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클라크는 국제 에너지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네. 이번 기회에 그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라는 말일세.”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자네는 군산복합체에 큰 공을 세웠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하게.”

“의원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클라크는 엑손모빌과 로열더치쉘, BP, 쉐브론의 최대주주일세. 미국과 유럽의 에너지 업체를 쥐락펴락하는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지.”

“저 중에서 가장 돈이 될만한 주식을 알려주십시오.”

그가 즉답했다.

“해마다 막대한 영업이익을 경신하는 로열더치쉘의 주식을 요구하게. 자네는 그 정도 자격이 충분하니까.”

“의원님의 말씀을 뼛속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밤.

클라크에게 전화상으로 내 요구를 단도직입적으로 전달했다.

이제 나머지 일은 그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토트넘 훗스퍼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토트넘은 지난 10년 동안 EPL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기록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셀링클럽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팀의 주축 선수들을 레바뮌과 맨유, 맨시, 리버풀 등의 빅클럽에 끊임없이 매각한 탓이다.

특히 토트넘 훗스퍼의 간판스타였던 바일과 마드리치를 레알 마드리드에 연달아 매각한 일은 충성스런 홈팬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허나, 팀의 실질적인 수장인 라비는 신축구장을 지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스타 선수들을 꾸준히 판매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토트넘은 시즌이 중반에 접어든 현재 심각한 내홍에 휩싸인 상태였다.

라비와 파체티노 감독이 선수영입을 둘러싸고 의견충돌을 빚은 까닭이다.

라비는 그답지 않게, 큰돈을 들여서라도 팀의 수비진을 재정비하고 싶어 했다.

반면 파체티노는 자신이 총애하는 수비진을 당최 교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탓일까, 전년도 챔피스언리그 준우승에 빛나는 토트넘은 시증 중반에 돌입한 현재 리그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었다.

고질적인 수비불안이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나는 파체티노 감독을 만나기로 결정했다.

그의 솔직한 의중을 듣고 싶었다.

그는 토트넘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으로 이끈 실력파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나름 그를 존중하는 의미였다.

***

나를 태운 전용기가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북런던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파체티노 감독이 보였다.

그에게 다가가자 사무적인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우리는 악수를 교환한 뒤 이런저런 대화를 늘어놓으며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맛좋은 스테이크와 포도주로 배를 채운 뒤 본격적인 담론에 접어들었다.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실력 좋은 수비진을 영입할 생각이 없으십니까?”

그가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즉답했다.

“저는 우리 팀의 센터백 라인에 만족합니다. 지금은 약간의 슬럼프에 빠진 상황이지만, 시즌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파체티노는 수비라인을 교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도리어 공격 라인의 문제점에 대해서 말했다.

“손형민과 카인의 백업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적을 희망하는 요릭센을 하루빨리 타팀으로 보내 주십시오.”

“염두에 두신 공격수가 있으십니까?”

그가 기다렸다는 듯 답변했다.

“아인트호벤의 베르호인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베르호인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십시오.”

“손형민에 버금가는 순간 스피드와 골 결정력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왼쪽 윙어죠.”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유벤투스의 중앙 공격수인 디빌라를 영입해 주십시오. 몸값은 비싸지만 카인에 버금가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디빌라는 호날두에 버금가는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였다.

그의 이적료는 한화로 최소 1500억 원 이상이었다.

파체티노는 수비진보다는 공격진 보강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와 저녁식사를 끝마친 뒤 라비 회장을 사보이 호텔 펜트하우스로 호출했다.

펜트하우스의 서재에서 태블릿 피시를 이용해 토트넘 선수단의 면면을 확인할 무렵, 라비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악수를 교환한 뒤 소파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에게 파체티노의 말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그러자 탐탁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파체티노는 아집이 너무 강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토트넘의 공격진은 EPL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격수 영입보다는 수비진의 보강이 시급하다는 말입니다.”

나 역시 라비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파체티노는 지난 7년 동안 토트넘의 전력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이유로 그의 말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공을 인정한 까닭이다.

라비가 나를 은근히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파체티노를 경질하는 게 어떻습니까?”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파체티노는 말이 안 통하는 감독입니다. 그보다는 팀을 일신시킬 수 있는 스타 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비는 파체티노를 경질하고 싶어 했다.

“호제 무링요가 토트넘 감독직에 수차례 관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호제 무링요는 전 세계 최고의 스타 감독이었다.

FC 포르투를 시작으로 AC밀란, 레알 마드리드, 첼시, 맨유 등지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역대 원탑급 감독이었다.

“정말 호제 무링요가 토트넘에 관심이 있는 겁니까?”

“예. 사적으로 저에게 감독직에 관심이 있다는 의중을 여러 차례 전해왔습니다.”

“흐으음······.”

내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무링요는 슈퍼스타였다.

당연히 그에 걸맞은 연봉이 필요했다.

그의 연평균 연봉은 한화로 300억 원을 전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그는 두꺼운 스쿼트를 구축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대대적인 선수 보강을 요청할 것이 불 보듯 훤하다는 의미였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차례로 스칠 무렵, 라비의 목소리가 장내에 재차 울려 퍼졌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바이에른 뮌헨과 홈에서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을 가질 예정입니다. 만약 그 경기에서 토트넘이 졸전을 펼칠 경우, 경질을 심각하게 고려해 주십시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

런던의 활기찬 길거리를 거닐며 주변을 오가는 여성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런던에는 건강 미녀들이 많았다.

얼굴은 물론이고 몸매마저 끝내주는 그녀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런던 여성 특유의 도도함으로 중무장한 채 곁을 지나치는 남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런던에서 보기 드문 동양계 훈남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보내왔다.

동시에 나를 향해 “하이”라는 인삿말을 전해왔다.

나 역시 그녀에게 목례를 취하며 훈남 특유의 세련된 미소를 선사했다.

주변의 미녀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찰나, 하동균의 폰에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전화통화를 끝마친 뒤 나에게 구두로 보고했다.

“에바 페런 의원이 런던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공항으로 사람을 보내세요.”

“예. 회장님.”

우리는 곧장 호텔로 되돌아갔다.

***

사바나 호텔 펜트하우스에 에바가 나타났다.

그녀는 내 품에 소녀처럼 왈칵 뛰어들었다.

“자기가 너무 보고 싶었다구. 사랑해!”

쪽!

우리는 애틋한 키스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침실로 이동했다.

짜릿한 시간을 만끽한 뒤 그녀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공화당의 트램퍼 대통령 후보가 나를 여성 부통령 후보로 낙점했어.”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라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트램퍼의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이거든.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 될 거라고. 호호호······.”

그녀의 목표는 당연히 대통령이었다.

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에바의 늘씬한 몸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줄게. 그러니까 나만 믿으라고. 하하하!”

“이래서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니까. 꺌꺌꺌······.”

그녀는 소녀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흘려보내며 내 입술에 진한 키스를 선사했다.

우리는 또다시 화려하게 불타올랐다.

***

공항에서 워싱턴으로 떠나는 에바를 환송한 뒤 북런던에 위치한 토트넘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구장은 입추의 여지 없는 만원관중을 기록했다.

7만6천석이 꽉 들어찬 것이다.

더구나 오늘은 빅클럽의 대명사인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스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그런 탓인지 그 어느 때보다 팬들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독일놈들을 때려죽이자!”

“거지발싸개 같은 독일놈들을 밟아죽여라!”

“돼지족발에 환장한 독일놈들을 박살 내자!”

“독일놈들에게 영국인의 위대함을 뼛속 깊이 각인시키자!”

“독일놈들은 어디에 있든 돼지족발을 먹지!

영국인들은 독일이란 나라에 엄청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토트넘 팬들 역시 독일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했다.

***

드디어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동시에 바이에른 뮌헨의 파상공세가 시작됐다.

경기 초부터 토트넘을 무차별적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토트넘은 초반부터 원사이드하게 밀리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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