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57화 (157/175)

157화 무링요와 라비에게 선수영입 전권을 일임하다

늦은 밤.

사보이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오늘 저녁에 펼쳐졌던 토트넘과 바이에른 뮌헨 경기를 차분히 복기했다.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첫경기에서 뮌헨에게 1대 7로 참패했다.

홈에서 치룬 경기에서 6골차로 패배한 것이다.

그런 탓일까. 토트넘 공홈에는 엉망진창인 수비력을 과시한 센터백 라인을 비난하는 글들이 넘쳐났다.

더불어 수비진을 보강하지 않는 라비와 파체티노 감독을 성토하는 글 역시 무수히 빗발쳤다.

팀이 와해 될 위기였다.

이피엘에서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기록한 토트넘은 전년도와 판이하게 다른 초중반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노쇠한 수비진을 제때 세대교체하지 못한 탓이다.

그 중심에는 자기 입맛에만 맞는 선수를 보강하려는 파체티노와 구두쇠처럼 소심한 스타일의 라비가 있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때, 호제 무링요의 이름이 뇌리에 저절로 떠올랐다.

토트넘의 팀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명장이 필요했다.

선수들이 믿고 따를 만한 지명도가 있는 감독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호제 무링요는 그럼 점에서 최고의 선택이었다.

일단 호제 무링요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속마음을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

다음날 저녁.

트라팔카 광장 인근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호제 무링요와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대충 끝마친 뒤 본격적인 담론에 돌입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토트넘 감독직을 수락할 의향이 있습니까?”

그가 말했다.

“제가 원하는 스쿼드를 보장하신다면 얼마든지 감독직을 수락할 용의가 있습니다.”

“원하시는 연봉을 말씀해 주십시오.”

무링요가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4년 총액 연봉으로 미화 1억 불(1천2백억)을 약속해 주십시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공격진과 수비진을 영입해 주십시오.”

“감독님의 연봉에는 이견이 없지만 선수 영입 문제는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은 계속됐다.

“아시다시피 모든 구단은 배정된 예산 안에서 선수들을 영입합니다. 그 점을 감안해 주십시오.”

무링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0억 불(1조2천억) 한도 내에서 선수들을 자유로이 영입할 수 있는 권한을 저에게 일임해 주십시오.”

“죄송하지만 그 문제는 라비 구단주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재차 말을 이었다.

“그럼 라비 구단주와 저에게 선수영입에 대한 공동전권을 주십시오.”

“감독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뒤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레스토랑을 빠져나오자마자 북런던에 위치한 토트넘 구장으로 직행했다.

토트넘 구장의 구단주실로 들어서자 라비가 나를 맞이했다.

우리는 소파에서 얼굴을 맞댄 채 진솔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에게 무링요의 말을 전했다.

라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링요는 자존심이 강한 감독이라 선수영입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싶어합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와 공동전권을 행사할 의향이 있습니다.”

라비의 통 큰 양보였다.

“좋습니다. 그럼 파체티노를 해임하는 문제에 집중합시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파체티노 해임은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구단주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BBC의 수잔 헤이워드는 토트넘 담당 기자였다.

그런 탓인지 파체티노 해임과 호제 무링요 선임이라는 소식을 발 빠르게 접했다.

구단 프런트 직원들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한 덕분이었다.

그녀의 관심은 토트넘의 실질적인 구단주인 대영전자의 김한빈 회장에게 모아졌다.

막대한 자산가로 알려진 그와의 인터뷰를 손꼽아 기다린 것이다.

허나, 한빈은 영국과 유럽 현지 기자들의 취재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는 참으로 끈질겼다.

한빈의 인터뷰를 따내기로 단단히 작심한 모양새였다.

결국 수잔은 한빈이 체류 중인 사보이 호텔로 무작정 찾아갔다.

그와의 인터뷰를 성공시키기 위함이었다.

***

사보이 호텔에 도착할 즈음, 미모의 백인 여기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BBC 방송국의 신분증을 꺼내보이며 세련된 목소리로 인터뷰를 제안했다.

“딱 10분만 내주시죠. 회장님.”

하동균 비서팀장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런식으로 무례하게 나오시면 호텔 보안요원을 부르겠습니다.”

동균이 냉정한 언사를 내뱉자, 그녀가 애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전형적인 영국미녀였다.

그래서 내심 호감이 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미녀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게 나을성 싶었다.

어차피 토트넘의 오너가 된 마당에 언제까지 인터뷰를 사양할 수만은 없었다.

동균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보낸 뒤 그녀를 향해 말했다.

“펜트하우스로 따라오세요.”

순간 그녀가 활짝 미소지으며 나를 향해 동양식으로 허리를 숙였다.

마음에 드는 여기자였다.

우리는 펜트하우스에 딸린 개인서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녀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토트넘 훗스퍼를 인수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그녀에게 솔직히 말했다.

“원래부터 이피엘 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상위 빅클럽을 인수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시장에 토트넘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인수한 거죠.”

그녀가 재차 물었다.

“앞으로 토트넘에 대대적인 투자를 집행하실 건가요? 맨시티의 만수르 구단주처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만수르처럼 무조건적인 투자는 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대신 합리적인 투자라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자금을 집행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요즘 파체티노 감독의 해임설과 호제 무링요 감독의 부임설이 구단 안팎에서 들려오던데, 실제로도 그런 건가요?”

그녀에게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 사안에 대해서는 오프더 레코드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기사로 쓰지 말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리 약속해 주신다면 사실대로 말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녀는 내 제안을 잠시 고민한 뒤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프더 레코드로 말씀해 주세요. 약속대로 기사로 내보내지 않을 테니까.”

그녀에게 말했다.

“파체티노 감독은 해임될 겁니다. 그리고 곧바로 호제 무링요가 토트넘 훗스퍼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끝마쳤다.

그녀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식당에 저녁식사가 마련되어 있으니 저와 함께 식사하시죠.”

그녀는 내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회장님.”

수잔과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이어나갔다.

우리의 저녁식사는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다.

그 후, 오붓한 시간을 밤늦도록 함께했다.

수잔은 미모의 여기자였다.

내 여자가 될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

호제 무링요는 자택의 정원을 거닐며, 토트넘의 향후 발전계획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불명예스럽게 강제퇴진 당했다.

선수단의 조직적인 항명사태 덕분이었다.

맨유의 에드워드 회장은 선수단과 무링요 가운데 선수단의 입장을 지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후, 무링요에게 무자비한 해임을 통고했다.

무링요는 맨유에서 내쫒기듯 강제퇴진 당했다.

그런 탓일까.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절치부심했다.

그리고 오늘 토트넘 훗스퍼의 감독으로 정식 선임됐다.

무링요는 오래전부터 토트넘을 눈여겨봤다.

해리케인과 손형민을 필두로한 뛰어난 공격진과 미드필더진을 보유한 탓이다.

더불어 감독의 명령에 순종하는 팀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무링요는 오래전부터 라비와 물밑에서 수차례 교감을 나누며 토트넘 감독에 선임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무링요는 토트넘의 팀을 재정비 하기 위해서는 센터백 라인 영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팀의 무너진 수비 조직력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의 심중에 덴마크 출신의 중앙 수비수인 호비에르의 믿음직한 영상이 짙게 드리워졌다.

그는 사우스 햄튼의 센터백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무링요는 마음을 결정하자마자, 토트넘의 오너인 한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

런던 모처에서 사우스 햄튼의 중국인 오너인 고지생과 만남을 가졌다.

그는 중국의 부동산 재벌로 유명한 남자였다.

그에게 유창한 영어로 내 의중을 밝혔다.

“호비에르를 영입하고 싶습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호비에르는 우리 팀의 핵심 수비수에요. 함부로 이적시킬 수 없는 선수라는 뜻입니다.”

고지생은 겉으로는 이적불가를 천명했지만, 적당한 이적료를 지불하면 언제든지 OK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화로 3천만 불(360억)을 지급할 용의가 있습니다. 물론 그 이상은 무리고.”

그가 노회한 눈빛을 내비치며 나를 살폈다.

그러기를 얼마 뒤, 긍정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회장님의 제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다음날.

사보이 호텔 펜트하우스에 호비에르의 부친이 나타났다.

그는 호비에르의 에이전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은 평소부터 빅클럽인 토트넘에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적정한 주급을 보장해 주신다면 구단 측에 공식적으로 토트넘 이적을 요청할 방침입니다.”

그의 말이 재차 이어졌다.

“미화로 20만 불(2억4천만 원)을 보장해 주십시오.”

연봉으로 환산할 경우 거의 1천만 불(120억)에 달하는 액수였다.

호비에르는 사우스 햄튼에서 10만 불 전후의 주급을 받고 있었다.

그는 토트넘으로 이적함과 동시에 두 배 이상의 연봉을 받을 계획이었다.

“검토한 뒤에 확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회장님의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를 내보내자마자 라비를 펜트하우스로 호출했다.

호비에르 부친이 요구한 주급 액수를 말하자, 라비가 신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호비에르는 검증된 센터백 자원입니다. 그 정도 주급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가 요구하는 주급을 보장하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라비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가 서재에서 사라지자마자 하동균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링요 에이전트의 공식 계좌로 1년치 연봉을 입금하세요.”

내 지시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무링요를 찾아가서 원하는 선수들의 명단을 받아오세요.”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라비와 무링요에게 선수영입을 일임한 뒤 한국으로 복귀했다.

상지원의 풀장에서 수영을 즐기며 여행의 노독을 해소할 무렵, 하동균 빅서팀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청우 고등학교에서 학내 폭력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문제로 학폭위가 열릴 예정입니다.”

청우고는 대영문화재단 산하에 위치한 학교재단이었다.

당연히 대한민국 최고의 귀족학교로 자타의 공인을 받고 있었다.

“송구하게도 회장님이 재단 이사장으로 등재된 상태라, 회의에 참석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내 입가에 절로 씁쓸한 고소가 내걸렸다.

“학내 폭력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셨나요?”

“그룹 법무실의 조사결과 재벌가 로열패밀리 간의 자존심 싸움이 발단이 된거 같습니다.”

“서로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으스댄 모양이군요.”

“대충 그런 거 같습니다.”

어느 정도 판단이 섰다.

“양측 학생과 학부모를 모두 상지원으로 데리고 오세요. 지금 당장.”

“예. 회장님.”

그날 밤.

얼굴에 피멍이 가득한 두 명의 남학생과 잘난체가 하늘을 찌르는 2쌍의 재벌 회장 부부가 상지원 접견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의 면면을 자세히 관찰한 뒤 하동균에게 지시를 내렸다.

“애들을 밖으로 내보내세요.”

“네. 회장님.”

하동균이 학생들을 밖으로 내보내자마자 두쌍의 재벌 부부를 향해 단호한 어조를 내뱉었다.

“지금 당장 학폭위 소집 요구를 해제하십시오. 나는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꼴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순간 재벌 아줌마들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저희가 피해자라구요!”

“웃기시네! 우리 애가 당신 애한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그녀들이 말싸움을 시작하자 남편들도 참전했다.

“당신네 아들놈은 척봐도 양아치 깡패나 마찬가지야!”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야! 댁들 아들이야말로 얌전한 우리 애를 개패듯 후드려 팼다고!”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들을 향해 격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당신들 모두 횡령 배임과, 조세포탈, 외화 밀반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신고할 계획입니다!”

거칠게 으르렁거리자 그들이 꿀 먹은 벙어리로 급전직하했다.

“내 말 한마디면, 댁들을 교도소로 보내는 건 일도 아니라고.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제발 말귀를 알아들으세요. 이 한심한 양반들아!”

그들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나에 대해서 얼추 아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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