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사진평의 비자금 관리인을 접대하다
송도 카지노 개발 사업의 첫걸음은 국회의 법안 발의와 통과에 있었다.
그걸 담당하는 곳은 국토교통위원회였다.
그런 탓인지 카지노 개발 사업의 중국 측 전주들이 자기들 멋대로 국토위원들과 접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당과 야당에 심어놓은 우리 측 의원들이 알려온 정보였다.
곧바로 박종태 실장에게 사실관계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
박종태가 상지원 접견실에 나타났다.
그가 긴급 보고를 올렸다.
“국토교통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 측 전주들에게 억 단위의 뒷돈을 받아먹은 거 같습니다.”
황당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부패한 중국 공산당의 돈줄을 빨아먹으려는 심산으로 송도 카지노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척,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른 눈치였다.
놈들은 송도에 라스베가스에 맞먹는 카지노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으로 그득했다.
송도 카지노개발 사업의 주체는 코이카 인베스트먼트였다.
나는 코이카의 지분을 51%가량 보유하고 있었고, 중국 측 전주들은 49% 내외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녀석들은 이미 코이카의 공식 계좌에 한화로 4조 원 안팎의 자금을 입금한 상태였다. 총사업비의 8%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나 역시 코이카 계좌에 1조 원가량을 입금했다. 그들과 표면적으로 보조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허나, 그들이 이렇게 발 빠르게 나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 무렵, 상해시 당서기의 전화가 걸려왔다.
국토교통위원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로비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
송도 국제도시의 너른 벌판을 거닐며 이곳에 카지노 제국을 건설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한참 동안 고민했다.
원래는 카지노 타운을 조성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기호지세의 입장이었다.
내 예상외로 카지노 개발 사업이 국토위를 통과할 가능성이 조금씩 엿보이고 있었다.
전 세계 최고의 환락도시인 라스베가스는 카지노 제국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나 역시 라스베가스에서 수차례 카지노를 즐긴 경험이 있었다.
허나, 그곳에는 카지노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위락시설이 즐비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카지노와 레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그런 탓으로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지금 이 순간에도 자석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차피 내친 걸음이었다.
처음에는 거짓이었더라도, 그럴듯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보이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중국 공산당 놈들이었다.
그들에게 줄 과실 따위는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놈들의 국토위 로비를 무산시키는데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4조 원에 달하는 사업추진비를 엄한 곳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내 멋대로 자금을 유용하기로 작심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놈들이 사업투자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그 후, 내 독자적인 자금으로 송도 카지노 개발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수가 최선이었다.
마음을 정리하자마자 나를 수행하는 하동균에게 지시를 내렸다.
“국토위원회 의원들을 모두 상지원으로 불러들이세요.”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평일 밤.
국토위 소속 의원들이 상지원 접견실에 나타났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한 뒤 곧바로 돈가방을 돌렸다.
녀석들은 내 돈을 거부하지 않았다.
“가방 안에 각각 3억씩 현찰이 들어있습니다. 깨끗한 돈이니까 편하게 받아주십시오.”
이기호 위원장이 일행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회장님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를 필두로 장내에 도열한 의원들이 나를 향해 깍듯이 허리를 접었다.
그들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한 뒤 넌지시 말했다.
“중국 재벌들이 송도 카지노 개발 사업에 대해서, 국토위원 여러분들에 연일 로비전을 펼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들에게 재차 말했다.
“그들의 로비를 모르쇠로 일관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시면 섭섭치 않게 사례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녀석들이 반색하는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때, 정성영 부위원장이 공손한 어조로 화답했다.
“그래주시면, 저희야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들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한껏 내보인 후, 곧바로 강남 인근의 고급 룸살롱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
쌍칼은 소문난 칼잡이였다.
그는 두 자리의 단검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인물이었다.
그 덕분에 실전에서 단 한 차례도 져본 역사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쌍칼에게 김성국의 오더가 떨어졌다.
대영그룹의 김한빈 회장을 담그라는 살벌한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허나, 쌍칼은 칼 솜씨 만큼이나 시세에 밝은 인물이었다.
그는 김성국의 재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영그룹의 오너를 건드린 대가였다.
도리어 쌍칼은 이번 기회를 빌미로 한빈에게 붙을 생각을 하였다.
잘만 하면 큰돈을 만질 뿐만 아니라, 초거물의 그늘에서 출세할 가능성도 염두에 둔 탓이다.
초여름의 어느 날.
쌍칼이 상암동 켄싱턴 빌딩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안요원들에게 용건을 밝혔다.
“회장님의 신변에 대해서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보안요원들은 곧바로 박종태 감사실장에게 그를 안내했다.
박종태의 사무실에 쌍칼이 나타났다.
쌍칼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저는 김성국 회장의 칼잡이로 알려진 쌍칼입니다.”
박종태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라, 별로 놀랍지 않았다.
단지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순순히 밝힌 점이 궁금할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는 이유가 뭡니까?”
“일종의 귀순이라고 합시다.”
“좀 더 솔직히 말해 주십시오.”
쌍칼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대영그룹 회장님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볼장 다 본 김성국 회장에겐 미련이 없다는 말입니다.”
종태는 그의 말을 십분 이해했다.
김한빈에 비하면 김성국은 피래미에 지나지 않았다.
***
상지원 접견실에 박종태 실장과 눈매가 길게 찢어진 남자가 모습들 드러냈다.
박종태가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소개했다.
“은명그룹 김성국 회장의 심복인 쌍칼입니다. 칼솜씨가 대단하다고 정평이 자자한 친굽니다.”
쌍칼이 나를 향해 넙죽 큰절을 올렸다.
“저를 거두어 주신다면, 회장님에게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물론 그의 가식적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쓸모가 많아 보였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성국이 나를 처리하라고 오더를 내린 건가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몸을 의탁하려는 겁니까?”
“저는 오래전부터 회장님의 명성을 흠모해 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김성국의 개 같은 협잡질을 회장님에게 전한 겁니다. 그러니 저를 제발 믿어주십시오. 회장님!”
그의 피 끓는 충정이었다.
“좋아요. 그럼 내 마음에 들게 일을 처리해 보세요.”
녀석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김성국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작업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내가 뒤를 봐줄 테니까 검찰과 경찰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신다면 성공 사례금으로 10억을 드리죠. 그리고 앞으로 당신을 중히 쓰겠습니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한 모험 아닌가요?”
쌍칼은 나름 야망이 있는 친구였다.
나는 한눈에 그런 점을 꿰뚫어 봤다.
그는 내 제안을 결코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입에서 내가 원하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회장님을 위해 김성국을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군요. 자택에서 대기하고 계세요. 때가 되면 우리 쪽에서 연락을 할 거니까.”
“예. 회장님.”
박종태와 쌍칼을 내보낸 뒤 이태강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명훈 검찰 총장은 곤혹스러운 심경이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김성국을 형집행정지로 풀어주라는 오더가 내려온 탓이다.
오더를 내린 장본인은 차기 대권이 유력한 이태강 국무총리였다.
더구나 그는 태강의 추천으로 검찰 총장이 된 인물이었다.
이명훈은 그의 요구를 모른체 할 수 없었다.
결국 명훈은 검찰 총장 직권으로, 김성국에 대해서 형집행정지 처분을 내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
김성국은 뜻밖의 행운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형집행정지로 하루아침에 자유의 몸이 된 탓이다.
그는 구치소에서 출소하자마자 삼성동 자택으로 직행했다.
자택에서 칩거하며 향후 대책을 강구하기 위함이었다.
김성국이 자택에 도착할 무렵, 쌍칼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차에서 내리는 성국에게 인사하는 척하며, 갑자기 날카로운 단검 두 개를 그의 목줄기에 벼락같이 박아 넣었다.
순간 성국의 목에서 선홍빛 핏물이 폭포수처럼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맨 바닥에 허물어지듯 무너졌다.
일격필살이었다.
쌍칼은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자마자 장내에서 쏜살같이 사라졌다.
수행비서와 경호원들은 그런 쌍칼을 허망한 시선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은 감히 쌍칼과 대적할 자신이 없었다.
그의 무시무시한 칼솜씨를 잘 아는 탓이다.
***
이동호 강력팀장이 삼성동 고급 주택에 나타났다.
그는 집 앞에서 피격을 당한 김성국 회장의 사체를 유심히 살핀 뒤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근처에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와 CCTV 영상을 전부 수거해!”
“예. 팀장님.”
이동호는 사건 현장에서 수거한 CCTV와 블랙박스의 영상을 전부 폐기처분했다.
그 후, 사건을 눈앞에서 목격한 비서와 경호원들을 모처로 압송했다.
어두컴컴한 콘테이너 박스에 정우철 부장 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닥에 무릎 꿇은 김 회장의 수행원과 경호원들을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네놈들은 사건 현장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범인이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렸고, 밤 늦은 시간대라 그런 거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그들은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사실을 재빨리 눈치챘다.
결국 김 회장의 비서와 경호원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힘주어 대답했다.
“저희는 범인의 얼굴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검사님!”
정우철 검사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말을 이었다.
“검찰에서도 그렇게 증언해야 한다. 만에 하나 검찰에서 주딩이를 함부로 나불거리면, 네놈들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휑하니 사라졌다.
***
송도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하동균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혹시 모르니까 쌍칼을 필리핀으로 도피시키세요. 그리고 약속대로 10억 원을 그놈에게 전달하세요.”
“예. 회장님.”
“그리고 이번 사건에 도움을 준 검사와 경찰에게 합당한 사례금을 전하세요.”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1시간 후.
나를 태운 롤스로이스 팬텀이 송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인근의 부동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쓸모없는 토지를 헐값에 매입하기 위함이었다.
“맹지를 소개해 주십시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떡방 사장이 친절한 얼굴로 화답했다.
“때마침 쓸 만한 맹지가 매물로 나왔는데, 한번 보러 가시겠습니까?”
“규모가 어느 정도죠?”
“거의 10만 평에 달하는 면적입니다.”
“땅 주인이 원하는 가격도 말씀해 주십시오.”
“평당 6만 원 정도를 원하고 있습니다.”
“토지매매서류에는 맹지라는 항목이 없어야 합니다.”
떡방 사장은 내 말을 단박에 이해했다.
“그 좀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장님.”
“좋습니다. 지금 당장 땅을 보러 갑시다.”
“예. 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
떡방 주인과 송도 변두리에 위치한 맹지를 답사한 뒤 그날 바로, 키나발루 사모펀드 명의로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나는 그날, 코이카 계좌에서 6천억을 인출한 뒤 키나발루 사모펀드가 사들인 맹지를 평당 600만원에 매입했다.
6천억을 날로 먹는 순간이었다.
***
사진평 국가주석의 친형인 사진붕이 한국을 극비리에 방문했다.
그는 별다른 직책 없이 유유자적하는 인물로 대내외에 알려졌다.
허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사진붕은 동생인 사진평의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관리하는 핵심 인사였다.
그리고 코이카 인베스트먼트에 납입된 자금 대다수가 그의 돈이었다.
상해시 당서기는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사진붕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상지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함께한 뒤 본론에 접어들었다.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김 회장을 믿고 거액의 자금을 입금했는데, 왜 이리 일이 지지부진한 겁니까?”
그의 말은 계속됐다.
“국토위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로비를 해주십사 청을 드렸지 않습니까?”
“저 나름대로 국토위원들을 상대로 로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허나,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탓에, 일이 쉽사리 진행되지 않는 겁니다.”
“김 회장은 잘못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단호하게 대꾸하자 그가 불만그득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매섭게 쳐다봤다.
내 말이 핑계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코이카 계좌에서 인출한 미화 5억 불(6천억)을 어디에 사용한 겁니까?”
“송도 카지노 예정부지의 토지를 매입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원하신다면 현장으로 안내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자 사진붕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김 회장을 의심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복잡한 사업 얘기는 그만하고 아가씨들과 즐겁게 놀아봅시다.”
그리 말하며 하동균 비서팀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잠시 뒤, 미니 드레스 차림의 그녀들이 장내에 나타났다.
그런 탓인지 사진붕의 만면 가득 흡족한 표정이 가득해졌다.
소문대로 여자라면 환장하는 족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