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나를 배신한 대가
아침 일찍 나무엔터의 논현동 사옥으로 출근했다.
그 후, 조간신문과 TV, 인터넷 연예뉴스에 차례로 이목을 집중했다.
<인기 여배우 성해솔! 굴지의 재벌그룹 회장과 염문설!>
<여배우 성해솔! 재벌회장과 한류스타 사이에서 방황!>
<한류스타와 재벌회장을 동시에 사귄 성해솔! 팬들의 비난 쇄도!>
<성해솔 소속사 언론에 유포된 재벌 회장과의 염문설 전면부인!>
조중동을 필두로 스포츠 연예 기사의 메인은 온통 나와 해솔의 스캔들로 떠들썩했다.
물론 내 사진은 일체 드러나지 않았으며, 이름 역시 영어 이니셜로 표기됐다.
반면 그녀는 한류스타와 재벌그룹 회장에게 양다리를 걸친 조신하지 못한 여배우로 낙인 찍혔다.
당연히 인터넷과 SNS는 그녀를 욕하는 글로 넘쳐났다.
그런 탓일까. 아침 10시가 되기 전에, 해솔이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왔다.
-언론에 뉴스를 뿌린게 당신이지? 나를 엿먹일려고 그런거야?
"잘 알면서 뭘 물어?"
-남자가 쪼잔하게 여자 앞길을 이런식으로 막으니까 좋니?
"나를 배신한 대가라고 생각해."
-드라마에 주연으로 꽂아줬다고 생색을 내고 싶은거니?
"더 이상 너랑 할 말이 없으니까, 앞으로 절대 나에게 연락하지마라. 각자의 갈길로 가자고."
그 말을 끝으로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
대표실로 정종선 매니지 1팀장을 불러들였다.
정종선은 나무엔터의 실무를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실질적인 2인자라고 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 나타난 정종선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속엣말을 꺼냈다.
"여배우를 육성하는 문제를 재고해 주십시오."
"여배우 영입을 반대하시는 건가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유가 뭐죠?"
"여배우는 스폰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이돌은 우리가 관리할 수 있지만 여배우는 당최 감당이 안됩니다."
그는 엔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나름 아는 바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종선은 내가 대한민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영그룹 회장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배우 케어는 내가 알아서 전담할 생각이니까."
그러자 녀석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여배우를 관리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름대로 복안이 있어서 그런거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십시오."
똑 부러지게 말한 뒤,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자 아이돌 오디션을 준비하세요. 오디션에 합격하면 1년 안에 데뷔시켜준다는 부가조항도 확실히 고지하십시오."
종선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연습생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실 생각입니까?"
"네. 뭐가 잘못됐습니까?"
"타 기획사에 비교해서 너무 빠른 시일에 데뷔시키는 게 아닌지, 걱정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연습생을 희망고문하는 이 바닥의 몹쓸 관행을 밑바닥부터 뜯어고칠 계획입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하십시오."
그제야 녀석이 알아먹은 얼굴로 넙죽 허리를 숙였다.
***
중국 국가주석인 사진평은 샨사댐을 시찰하는 중이었다.
그는 거대한 규모의 샨사댐을 둘러본 뒤 성도시내의 공관으로 친형인 사진붕을 불러들였다.
진평의 불만그득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그자가 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왜, 파악하지 않는 겁니까?"
"김 회장은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얌전히 지켜보자고."
"형님은 사람이 너무 물러서 탈이에요. 지금 당장 그놈이 어디에 돈을 사용하는지 확실히 알아보세요!"
진평이 격한 목소리를 내뱉자, 진붕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는 친동생인 진평을 두려워했다. 중국인들의 생사여탈권을 한손에 움켜쥔 절대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친형이라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진붕은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사진붕이 상지원에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접견실에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가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코이카 계좌에서 한화로 3조원 가량이 인출됐는데,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한 겁니까?"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송도 카지노 개발부지 매입비용으로 전용했습니다. 원하신다면 계약서류를 보여드리죠."
"한국 사정에 밝은 변호사에게 서류 검증을 부탁할 예정이니 매매계약서를 준비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 2시에 상지원으로 오십시오."
"그럼 내일 봅시다."
사진붕은 그리 말하며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곧바로 진대현 본부장을 상지원으로 호출했다.
접견실에 나타난 그의 손에는 송도 부지매입 계약서류가 들려있었다.
등기부등본은 토지 매각가를 수십배 이상 부풀린 업계약서였다.
또한 맹지라는 항목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제는 사진붕이 동원하는 변호사였다.
토지매매 계약서의 헛점을 한눈에 파악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사진붕의 한국측 고문 변호사를 구워삶는 게 급선무였다.
대현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진붕의 한국 측 고문변호사를 아무도 몰래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를 내보내자마자 이수경 경리팀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현찰로 20억을 상지원으로 갖고오세요."
"오늘 말인가요?"
"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1시간 안에 상지원으로 돈을 가져다 드릴께요."
"수고 좀 해주세요."
"예. 회장님."
***
1시간 후.
이수경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돈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접견실에서 조신하게 사라졌다.
회사로 되돌아가는 수경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지켜볼 무렵, 상지원 정문에 세단차량이 도착했다.
예상대로 진대현 본부장과 사진붕의 한국 측 고문 변호사가 차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진대현이 변호사를 데리고 접견실에 나타났다.
대현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보낸 뒤 변호사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은 채 통성명을 나눴다.
그 후, 본론에 들어갔다.
"사진붕 회장이 토지매매 계약서의 이상유무를 의뢰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그런 말씀은 왜 하시는지...?"
그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돈질을 할 시점이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진붕에게 토지매매 계약서가 정상이라는 확인을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현찰 20억을 사례금으로 지급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테이블 위에 놓여진 돈가방을 그에게 내밀었다.
변호사의 탐욕스런 시선이 돈 가방 위에 머물렀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변호사님을 대영그룹의 법무팀으로 영입하겠습니다."
결정타였다.
대영그룹 법무팀 변호사는 기본 연봉이 수십억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그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내가 원하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회장님이 원하시는대로 하겠습니다. 대신 저와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십시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한입으로 두말하는 성미가 아니니까. 하하하...!"
환한 웃음을 내비치며 악수를 청하자, 허리를 넙죽 숙이며 내 손을 두손으로 공손히 마주잡았다.
"앞으로 회장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였다.
***
북경 중남해 주석관저에 사진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사진평을 만나는 자리에서 큰 소리를 떵떵쳤다.
"송도 카지노 개발부지의 토지를 매입하느라 계좌에서 돈을 뺀거니까 동생은 더 이상 걱정안해도 될거다."
"확인해 본거야?"
"믿을 만한 현지 변호사를 고용해서 알아본거니까 쓸데없이 의심 좀 하지말라고."
그제야 사진평이 한숨 돌린 얼굴로 재차 입을 열었다.
"한국 국회에서 송도 카지노 개발건을 언제 통과시킬 예정이지?"
"김 회장이 한달 안에 국토위 통과를 장담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좋아. 그럼 말이 나온 김에 그자한테 송도 카지노 개발부지를 불도저처럼 매입하라고 말을 전해. 돈은 내가 얼마든지 줄테니까."
"OK. 그럼 나중에 보자."
며칠 후, 사진붕은 코이카 계좌에 한화로 10조원 상당의 자금을 전격적으로 이체했다. 송도 카지노 부지 매입자금으로 사용할 돈이었다.
***
진대현은 송도 전역을 분주하게 누비며 쓸모없는 맹지를 무차별적으로 매입하고 있었다.
매매계약서는 업계약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계약서 상에는 맹지라는 언급도 전무했다. 전형적인 사기행각이었다.
허나, 그의 뒤에는 무소불위한 김한빈이 있었다.
그런 탓인지 오늘 역시 송도를 이잡듯이 누비며, 맹지를 미친 듯이 매입하는데 전심전력했다.
***
논현동 나무엔터로 향하는 차 안에서 사진평의 돈을 효과적으로 빨아먹는 방안에 대해서 나름 심사숙고했다.
녀석의 비자금을 제대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국토교통위의 송도 카지노 개발건을 무조건 통과시켜야 할거 같았다. 그래야 나머지 26조원을 추가로 뽑아먹을 수 있었다.
물론 내 최종목표는 송도 카지노 개발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문제는 믿음직한 시민사회단체에 일임하기로 마음먹었다.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다하는 그들을 이용해서, 송도 카지노 개발을 무산시킬 속셈이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나름 속편하게 결론을 내린 뒤 국토교통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피같은 돈을 50억이나 받아먹어서 그런지, 그는 시종일관 예스맨의 행보를 드러내 보였다.
"다음주 안으로 송도 카지노 개발안을 통과시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미 국토위 의원들 모두 스탠바이 상태니까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그럼 위원장님만 믿겠습니다."
***
나무엔터에 도착하자 30명 가량의 여자들이 사옥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은 모두 여아이돌 지망생이었다.
그녀들을 지나쳐 사옥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사옥 안에도 여아이돌 지망생 수십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들 역시 자신의 오디션 차례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지하 2층 오디션장으로 내려가자 정종선 매니지 1팀장과 성지혁 2팀장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들에게 제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보낸 뒤 그들 사이에 놓여진 의자에 착석했다. 그 후, 면전에 서 있는 4명의 여아이돌 지망생을 유심히 살폈다.
아쉽게도 그녀들 중에서 내 스타일은 한명도 없었다.
나는 건강미 넘치는 늘씬한 몸매와 귀여운 마스크를 원하고 있었다.
반면 그녀들은 하나같이 너무 날씬하고 정형화된 얼굴이었다.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그녀들의 이름 옆에 불합격이란 단어를 기입한 뒤 다음 오디션 참가자를 호명했다.
다시 4명의 여자가 장내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역시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 때문인지 그녀들의 노래와 춤이 전혀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후로도 오디션은 길게 이어졌다.
마지막 오디션 참가자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내 시선은 맨 오른쪽에 위치한 그녀에게 집중됐다.
그녀는 170cm 안팎의 늘씬한 키와 탄력적인 몸매, 그리고 베이비 페이스로 똘똘뭉친 캐릭터였다. 흔히 말하는 베이글 스타일이었다.
오늘 발견한 유일한 내 취향이었다.
그녀의 노래와 안무를 흐뭇한 시선으로 감상한 뒤 모든 오디션을 종료했다.
정종선과 성지혁에게 지시를 내렸다.
"맨 마지막에 오디션을 봤던 박아라와 내일 당장 전속계약을 체결하세요."
그러자 종선과 지혁이 차례로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대표님. 박아라는 아이돌에 걸맞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여리여리한 여자 아이돌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주얼입니다."
그들은 아라의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부답스럽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물론 내 알 바 아니었다.
"당신들은 그저 내가 시킨대로 움직이면 그만이에요. 그러니 내말대로 그녀와 계약을 체결하세요."
그제야 녀석들이 체념한 얼굴로 대답했다.
"대표님 말씀대로 박아라와 계약을 체결하겠습니다."
***
다음날.
나무엔터와 계약을 체결한 박아라를 대표실로 불러들였다.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