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풀소유의 삶
박아라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조신하게 주저앉았다.
그녀에게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라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어. 그래서 너와 연습생이 아닌 정식 계약을 체결할 생각이야."
그녀가 반색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 말씀이 정말인가요?"
"정식 아티스트로 계약하면 매달 교통비와 식대,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200만원을 고정적으로 지급 받을 수 있을거야."
아라는 내 말에 진심으로 감사한 표정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커다란 혜택임을 잘알기 때문이다.
내 말은 길게 이어졌다.
"이런 파격적인 조건은 4대 아이돌 기획사에도 없는거야. 그렇지만 나는 아이돌에게도 정당한 대가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어. 그래서 이런 어마어마한 혜택을 너에게 제공하는거야."
아라가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후, 나를 향해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예의가 바른 그녀였다.
아라의 갸날픈 두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정식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까, 다음주 수요일에 부모님을 모시고 와."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내일 당장 부모님을 데리고 올게요."
"계약서도 준비해야 하니까, 다음주 수요일이 적당할거 같아."
그녀가 납득한 얼굴로 조신하게 대답했다.
"예. 대표님."
아라는 아찔한 뒷태와 건강미 넘치는 발걸음을 과시하며 장내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
논현동 인근의 술집에 나무엔터의 매니지 1팀장인 정종선과 2팀장인 성지혁이 나타났다.
그들은 곱창을 안주삼아 소주를 물처럼 들이키는 한편, 새 대표인 김한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김대표의 돈 씀씀이가 보통이 아니더라. 타고 다니는 차도 롤스로이스 팬텀이고, 개인 수행비서까지 있더라니까."
종선이 그리 운을 떼자, 성지혁이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회식비로 천만원에 달하는 거금을 쾌척한 걸 보면, 태산 CGV의 고위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겁니다."
"하긴, 그럴 가능성이 높겠구만."
"틀림없을 겁니다."
그들은 한빈이 90%에 달하는 지분을 소유한 태산 CGV의 실세라고 확신했다.
그 말 외에는 그의 헤픈 돈 씀씀이를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이 뭐하러 엔터 업체 대표 노릇을 하는 걸까?"
종선이 그리 말하자, 지혁이 단언하듯 대답했다.
"제가 보기엔 반반한 여자애들과 그렇고 그런 관계를 즐기려고, 일부러 엔터 회사에 온거 같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재벌 2.3세들 중에 엔터업체에 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은근히 많지 않습니까? 김한빈도 그런 케이스일 확률이 높습니다."
종선 역시 지혁의 말에 공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그럴 듯 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박아라에게 정식 아이돌 계약을 체결할 거라고 하더라. 게다가 매달 200만원에 달하는 품위유지비까지 지급할거래. 돈지랄이 따로 없다니까."
지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돈이 썩어나서 그런거니까 형님은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래. 네 말이 맞다."
종선은 그리 말하며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
간만에 홍대 클럽가로 마실을 나왔다.
내 마음에 드는 그녀를 스카웃하기 위함이었다.
클럽에 들어가자마자 주변을 매의 눈으로 살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잡아끄는 그녀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결국 다른 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도 허탕을 쳤다.
그후로도 열군데 이상의 클럽을 드나들었지만 내 눈에 차는 그녀가 당최 나타나지 않았다.
뭔가 방법이 잘못된 것 같았다.
그때, 나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하동균 비서팀장이 쓸만한 의견을 제시했다.
"원래 여자들의 미모를 정확히 확인하려면 밝은 대낮이 안성맞춤입니다. 지금 시간대는 현란한 조명과 화장 때문에 여자들의 진면목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시간대죠. 그리고 장소도 마땅치 않고."
구구절절하게 옳은 말이었다.
결국 밝은 대낮에 그녀들을 스카웃 하기로 작전을 변경했다.
***
다음날.
중천의 태양이 작열하는 시간대인 오후 1시경에 홍대의 길거리를 찾았다.
그녀들의 진솔한 면모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클럽가를 드나드는 여자들보다 훨씬 괜찮은 여자들이 여럿 보였다.
특히 굴곡진 몸매를 과시하는 듯한 타이즈 차림의 그녀들이 시야에 자주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탄력적인 애플힙과 꿀벅지, 고운 얼굴이 매력적인 그녀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곧바로 그녀에게 직진했다.
그녀의 앞에 다가가자마자 나무엔터의 대표이사 명함을 곧바로 전달했다.
그녀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내 위아래를 자세히 살폈다.
그녀의 시선은 내 오른손목에 매달린 리처드밀 시계에 집중됐다.
시가 60억원을 호가하는 명품이었다.
그녀는 내 시계의 가치를 어렴풋이 아는 눈치였다.
그런 탓이었을까. 그녀의 경계심이 약간 누그러진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입에서 호기심에 그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에게 명함을 주신 이유가 뭐죠?"
그녀에게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너를 여배우로 키우고 싶어서 그래."
그러자 그녀가 앙칼지게 대꾸했다.
"초면부터 왜, 저에게 반말을 하시는 거죠?"
그녀에게 지지않고 맞대응했다.
"너를 스타로 키워줄 사람이니까."
순간 그녀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네에...? 푸풉..."
그녀는 터져나려오는 헛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종종걸음으로 저 멀리 사라져갔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
김성희는 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운동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엔터업체 관계자에게 명함 한장을 받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 검색창에 나무엔터를 입력했다.
모니터 화면에 나무엔터와 관련된 내용이 빼곡히 드러났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내용은 당최 보이지 않았다.
나무엔터는 아이돌 전문 기획사였다.
그런 탓인지 내심 실망스러웠다.
대표라는 남자의 말이 거짓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성희는 대표의 오른팔에 매달린 리처드밀이 수십억을 호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업으로 성공한 학교 선배가, 술자리에서 리처드밀 시계를 자랑한 걸 수차례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재력이 대단해 보이는 그 남자의 말에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고 여겨졌다. 일말의 희망이었다.
성희는 당최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명함에 적혀진 연락처로 조심스런 문자 한통을 전송했다.
***
논현동 나무엔터 사옥에 김성희가 나타났다.
허나, 한빈은 회사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회사의 실질적인 2인자인 정종선이 그녀를 면담했다.
"대표님한테 스카웃 제안을 받으셨다고요?"
"네. 저를 여배우로 키워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회사로 찾아오라고 문자도 주셨고요,"
성희는 그리 말하며 한빈과 나눈 문자내용을 종선에게 보여주었다.
"알겠습니다. 대표실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대표님에게 연락을 넣겠습니다."
종선은 그리 말하며 성희를 대표실로 안내했다.
***
강남 인근의 밥집에서 육개장으로 배를 채우는 한편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대현 본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코이카 계좌의 자금을 빼서 키나발루 사모펀드 계좌로 전액 이체하세요. 그리고 사진붕에게 초고층 호텔 건설과 위락시설 유치 명목으로 추가 자금을 요청하십시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럼 저 먼저 회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세요."
대현을 내보낸 뒤, 나 역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후, 논현동 나무엔터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무엔터로 들어서자 정종선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대표실에 여배우 지망생이 와 있습니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 정팀장은 하던 일이나 보세요."
"예. 대표님."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대표실에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인사는 됐으니까 차나 한잔 하면서 대화나 나누자고."
"예."
그녀는 어제와 다르게 고분고분한 태도였다.
내가 엔터회사 대표라는 사실을 확인해서 그런거 같았다.
우리는 커피를 음미하며 속 깊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녀에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너를 배우와 가수로 동시에 키울 생각이야. 가수를 병행하면서 배우로 육성할 계획을 갖고 있지."
"그 말이 정말이세요?"
"그래. 4인조 걸그룹을 지금 기획 중이거든. 너도 그 중의 한명으로 참가하면 좋을거 같은데. 물론 여배우로 키워준다는 약속은 확실히 보장할게."
그리 말하며 태산 CGV의 전무 이사 명함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우리 회사는 태산 CGV의 계열사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내 진짜 정체는 태산 CGV의 전무 이사지."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너도 태산 CGV가 영화와 드라마를 연간 수십편이나 제작하는 걸 잘 알거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괜찮은 드라마와 영화에 너를 얼마든지 꽂아줄 수 있다는 뜻이지."
그제야 성희가 내 말귀를 알아들었다.
"정말 저를 스타로 키워줄 생각인가요?"
"그래. 그러니까 마음이 있으면 나무엔터와 계약을 체결하자고. 정식 계약을 체결하면 품위유지비 조로 매달 200만원씩 지급해줄게."
그녀 역시 감격한 얼굴로 나를 한참 동안 우러러 보았다.
쌀이 익어 밥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
상지원 접견실로 들어서자 클라크 의장이 나를 반겼다.
그는 공석으로 비어있던 군산복합체의 정식 의장으로 선출된 상태였다.
우리는 홍차를 음미하며 본론에 접어들었다.
"김 회장이 원한다면 로얄더치쉘의 지분을 저렴한 가격에 양도할 의향이 있네."
"일종의 성과급인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유심히 살폈다.
클라크에게 내 의중을 당당히 밝혔다.
"로열 더치쉘의 지분을 저에게 20% 안팎 양도해 주십시오. 시가의 30% 수준으로."
"흐으음..."
그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내 요구가 과하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욕심이 지나치군."
"저는 그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조민을 미국으로 도피시킨 장본인이 바로 접니다."
"그건 나도 알지만, 너무 심한 요구일세. 아무리 못해도 50% 이상의 가격은 보장해줘야지."
"그건 제가 거부하겠습니다. 무조건 시가의 30% 가격으로 지분을 양도해 주십시오."
"생각할 시간을 주게."
"군산복합체의 의장님답게 통크게 확답해 주십시오."
나는 그에게 이 정도 요구를 할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만약 그가 내 요청을 거부할 경우, 군산복합체 내에서 속좁은 남자라는 평판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지하는 가장 큰 세력인 나와 아담 의원을 잃게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내가 원하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할수없군. 김 회장이 원하는대로 지분을 넘기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내일 오전에 지분양도계약을 체결하시죠."
"성미도 급하구만. 허허허..."
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물론 내 알 바 아니었다.
***
논현동 나무엔터로 출근하자마자 박아라와 김성희를 지하 2층 연습실로 호출했다.
그녀들은 검은색 타이즈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아라와 성희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희들이 자신 있어하는 발라드를 불러봐라."
내 명령이 떨어지자 아라를 시작으로 성희가 애틋한 발라드 곡을 쉴 새 없이 불러제꼈다.
그녀들은 보컬 실력이 좋았다.
물론 오랜 시간 보컬 레슨을 받은 아라가 발군이었지만, 성희 역시 나름 가수 레벨의 보컬 실력을 뽐냈다.
그녀들은 준비된 가수였다.
3시간 동안 이어진 보컬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안무연습에 돌입했다.
안무는 인근 무용학원에서 고용한 이정미 선생에게 일임했다.
이정미는 내가 부탁한대로 아라와 성희를 상대로 혹독한 댄스훈련을 시켰다.
그날 밤.
보컬과 안무연습을 끝마친 그녀들을 사옥 인근의 고깃집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숯불갈비로 배를 채우는 한편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이어나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아라가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생맥주 집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어요."
그러자 성희 역시 맞장구를 치며 나를 유혹했다.
"저도 너무 생맥주가 땡겨요. 그러니까 대표님이 좀 사주세요."
못 이기는 척 그녀들을 주변의 생맥주집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밤늦도록 생맥과 치킨을 즐긴 뒤 자연스럽게 나무엔터 사옥으로 되돌아왔다.
그 후, 6층 숙소에서 그밤이 지새도록 오붓한 시간을 함께 했다.
다음날.
아라와 성희를 대동한 채 낙원호텔 강남 지점의 펜트하우스를 찾았다.
그녀들과 뜻 깊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건강미 넘치는 그녀들과 하루종일 즐거운 시간을 만끽한 뒤 나 먼저 호텔을 빠져나왔다.
사진붕이 상지원을 방문한 탓이었다.
그 자식은 상지원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예의가 없는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