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65화 (165/175)

165화 모스크바의 여명

상지원 접견실.

군산복합체에서 클라크 의장에 버금가는 발언권을 지닌 아바마 대통령이 나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다.

-김 회장과 긴히 나눌 말이 있으니 백악관을 방문해 주십시오.

클라크에게 언질을 받은 눈치였다.

"내일 비행기로 워싱턴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그때 합시다.

"예. 대통령 각하."

통화를 끊자마자 하동균 비서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일 오전 비행기로 백악관을 방문할 예정이니 전용기를 준비하세요."

"예. 회장님."

***

17시간의 비행 끝에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끝마치자마자 백악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백악관에 들어서자 아바마 대통령이 서쪽(웨스트윙)에 위치한 오벌오피스로(집무실)로 나를 이끌었다.

우리는 오벌오피스의 고풍스러운 소파에 나란히 착석한 채 본격적인 담론에 돌입했다.

아바마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김 회장의 계획은 세계 3차 대전을 촉발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계획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다만 러시아의 방관 혹은 묵인을 확약받을 경우에 한해서, 김 회장의 계획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그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살포한 중국을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보다 세계 3차 대전을 더욱 우려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묵인 혹은 방관을 확약받을 경우에 한해서, 제 계획을 용인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암초에 맞부딛힌 형국이었다.

허나,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었다.

"내가 만약 러시아의 중립을 이끌어낸다면, 제 계획에 찬성표를 던져주셔야 합니다."

아바마가 나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러시아의 푸탄 대통령과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원하신다면 제가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그 길로 백악관을 나섰다.

***

클라크 의장의 뉴저지 저택에 도착했다.

정문 입구에서 노집사가 나를 반겼다.

그를 뒤로한 채 2층 서재로 올라갔다.

서재에 들어서자 클라크가 소파를 손짓했다.

그에게 목례를 취한 뒤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클라크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서류철이 들려있었다.

"이걸 한번 보게."

그리 말하며 내 손에 서류철을 내밀었다.

서류는 중국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티벳과 신강 위구르 자치주, 내몽고 자치주, 운남성의 묘족 등을 분리 독립시키는 건 물론이고, 만주와 하북성, 섬서성, 광동성, 광서성, 호북성, 호남성, 청해성, 감숙성, 사천성 등을 모조리 독립시키는 내용이었다.

클라크는 중국을 5호 16국 시대로 환원시킬 복안이었다.

서류를 그에게 되돌려주며 넌지시 물었다.

"중국의 저력을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그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아.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최소 10억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살아남을 걸세."

나는 중국의 핵시설과 생화학시설에만 핵무기를 발사할 계획이었다. 최대 피해규모는 3억명 내외였다. 3억명이 사망하더라도 여전히 12억명 이상의 중국인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방사능과 핵낙진 후유증으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래봤자, 1억명이 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중국을 10개 이상의 나라로 쪼개 놓을 생각입니까?"

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심유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속 깊은 내용이 흘러나왔다.

"아바마 대통령이 뭐라 하던가?"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러시아의 묵인 혹은 방관을 확약받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네는 어쩔 생각인가?"

"당연히 러시아의 중립을 이끌어낼 계획입니다."

"자신이 있나?"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닙니까. 일단 푸탄 대통령을 만나서 논의를 해볼 생각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만주의 분리독립 방식을 설명해 주십시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했다.

"만주국을 건립한 뒤, 만주 태생의 친미 인사를 종신 대통령으로 옹립할 계획이네."

"무조건 만주 태생의 인물만 대통령이 가능한 겁니까?"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직에 관심이 있는 건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냥 대통령도 아니고 종신 대통령인데."

"뭔가 꿍꿍이 속이 있는 눈치로군."

머리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러시아의 중립을 이끌어낼 경우, 저에게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직을 보장해 주십시오."

노회한 클라크는 이미 내 생각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자네가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이 된다면, 군산복합체와 미국에 어떤 선물을 줄 생각인가?"

"그건 나중에 따로 논의를 해봅시다. 지금 중요한 건 러시아의 철저한 중립이니까."

"러시아의 중립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면, 자네에게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직을 보장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걸, 현실화 하는 일만 남았다.

***

한국에 귀국한 뒤 이영박에게 만남을 청했다.

사드 미사일 배치 문제를 매듭짓기 위함이었다.

늦은 밤.

극비리에 청와대를 방문했다.

내 손에는 이영박에게 줄 선물이 들려있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영박이 노회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소파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에게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사드 미사일 포대 반입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한화로 1200억 상당의 CD를 대통령님에게 보답으로 건네드리겠습니다."

그의 얼굴 가득 탐욕이 들끓었다.

그에게 재차 말했다.

"어차피 6개월 뒤면 퇴임인데,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그저 대통령님은 제 돈을 받으시고, 미국 좋은 일을 눈 딱감고 한번만 해주시면 되는 겁니다."

예상대로 그는 돈욕심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왕 이리된 거, 좋습니다. 김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그리 말하며 내가 건넨 CD를 재빨리 나꿔챘다.

돈에 환장한 인물다웠다.

***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

아바마 대통령은 이영박과 핫라인으로 전화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드 미사일 포대 반입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최단 시일 안에 사드 포대를 한국에 배치시켜 주십시오.

"올바른 판단을 하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 하는 바입니다. 사드 미사일 포대는 한국의 방어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재차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각하. 대신 중국이 한국에 경제적으로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 점에 대해서 미국이 도움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미국은 중국이 자유시장체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바마는 그 말을 끝으로 핫라인을 종료했다.

그는 이영박을 움직인게 한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그에게 내심 감사한 심경이었다.

아바마가 마음 속으로 한빈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무렵, 장내에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모스크바의 미국 총영사가 핫라인을 요청했습니다."

아바마는 책상 위에 놓여진 12번이란 숫자가 쓰여진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그는 모스크바 주재 미국 총영사와 전화통화를 끝마치자마자 한국에 있는 한빈에게 곧바로 연락을 취했다.

***

생전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크렘린 궁에서 푸탄과 담판을 짓기 위함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전용기를 이용했을테지만, 중국 국가안전부의 눈을 속이기 위해 독일에서 러시아 국적 여객기로 환승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CIA의 조언 때문이었다. 물론 위조여권도 그들이 마련해 주었다.

이번 여행은 오로지 나 혼자만 움직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진 탓에 하동균을 대동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당연히 나는 미국 외교관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코로나 정국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나홀로 상지원을 나섰다.

미국 외교관 여권과 외교행낭이 전부였다.

곧바로 성남 비행장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독일로 출발하는 미군 수송기에 탑승할 계획이었다.

아침 7시경, 성남 미군 비행장에 도착했다.

예정대로 미군 관계자가 나를 맞이했다.

그를 따라서 독일행 미군 수송기가 있는 활주로에 발을 들였다.

***

나를 태운 미군 수송기가 독일 베를린 근교의 미군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수송기에서 내리자 CIA 관계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모스크바로 떠나는 비행기가 한시간 후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베를린 국제 공항으로 가셔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보조를 맞췄다.

30분 후. 베를린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나를 수행한 CIA 요원이 나직한 목소리로 주의사항을 고지했다.

"모스크바의 모든 호텔에는 도청과 몰카 시설이 있습니다. 그러니 약점 잡힐 일을 절대 하지 마십시오."

그의 신신당부는 계속 이어졌다.

"특히 호텔에 드나다는 콜걸 대다수는 러시아 국가방첩국의 끄나풀이나 마찬가집니다. 그 점을 명심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저 멀리 사라져갔다.

***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미국 대사관으로 직행했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 총영사인 제리하우스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제리하우스는 나와 푸탄의 민남을 주선한 인물이었다.

1시간 후.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서자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나를 반겼다.

그가 바로 제리하우스 총영사였다.

우리는 곧바로 접견실로 자리를 이동했다.

대사관 측에서 제공한 다과를 음미하며 제리하우스에게 넌지시 물었다.

"푸탄 대통령을 언제쯤 만날 수 있는 겁니까?"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드러내 보이며 차분히 말했다.

"크렘린 궁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 호텔에서 얌전히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답답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호텔에서 얌전히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모스크바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 펜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CIA가 제공한 도감청 방지 장비를 작동시키자 요란한 경보음이 쉴 새 없이 울려퍼졌다.

삐익! 삐익! 삐익! 삐익! 삐이익...!

응접실, 방, 거실, 서재, 욕실 할거 없이 사방천지에서 경보음이 발동됐다.

CIA 요원 말대로 모스크바의 모든 호텔에는 도청과 몰카 시설이 완비된 모양이었다.

그런 탓인지 어디선가 나를 주시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러시아 방첩국에서 실시간으로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시선을 마냥 의식하는 것도 바보같은 일이었다.

결국 내 할 일에 오롯이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녁 식사를 대충 해결한 뒤 침대 위에서 가부좌를 튼 채 운기행공에 전념했다.

그 것 외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

크렘린궁의 대통령 집무실에 러시아 국가방첩국(FSB)의 드미트리 국장이 나타났다. 그는 푸탄 대통령에게 경례를 취한 뒤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김한빈 회장이 모스크바에 도착했습니다."

푸탄의 입에서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자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호텔방에서 명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명상?"

"예. 대통령 각하."

드미트리가 아이패드를 푸탄에게 내밀었다.

아아패드에는 침대 위에서 운기행공에 열중하는 한빈의 모습이 생생히 드러나 있었다.

푸탄이 눈쌀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쓸만한 콜걸을 섭외해서 저자의 약점을 잡아!"

드미트리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복명했다.

"예. 대통령 각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