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68화 (168/175)

168화 목숨을 건 도박

클라크 의장의 뉴저지 대저택을 방문했다.

우리는 저택의 잘 조성된 정원을 거닐며 만주국 경영에 대해 심도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그가 말했다.

"만주 전역의 유전과 가스전, 철광석, 니켈 등의 자원을 베이스로한, 만주자원개발회사를 설립하는게 어떻겠나?"

"뉴욕증시 상장을 염두에 두신 발언입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뉴욕증시에 상장할 경우, 최소 2조불(2,400조원) 이상의 시총을 약속하겠네. 대신, 만주자원개발회사의 지분을 군산복합체와 미국 정부에 각각 33%, 총 66%를 배정해주게."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물론 나머지 34%에 달하는 지분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클라크와 미국 정부는 만주의 거대한 이권에 빨대를 깊숙이 꽂을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브앤 테이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제 보유 지분에 대해서 200% 내외의 차등의결권을 부여해 주십시오."

내 요구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만중(滿中) 접경지역과 만러 국경지역에 대규모 미군을 배치해 주십시오. 물론 주둔비용은 미국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조건입니다."

"거래를 제안하려는 건가?"

"그렇습니다. 의장님."

"흐으으음..."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기를 얼마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가 원하는대로 하지. 대신 내 요구를 한가지 더 수용해주게."

"그게 뭡니까?"

"만주국의 부통령직과 국무장관(국무총리)직의 인선을 나에게 일임해주게."

만주국은 미국의 정치제도를 베이스로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는 없는 부통령직과 국무장관직을 신설할 계획이었다.

"좋습니다. 그들의 인선을 의장님에게 맡기겠습니다."

"고맙군. 우하하하하하하하...!"

그의 입에서 화통한 웃음소리가 길게 흘러나왔다.

어치피 부통령과 국무장관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내 상대가 아니었다.

클라크는 나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예상외로 허술한 인물이었다.

***

해가 어두어둑해질 무렵, 센트럴파크의 그레이트론 잔디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벤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벤치에는 장년의 노신사가 외롭게 앉은 채 비둘기에게 저녁 모이를 주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벤치에 앉자 그가 비둘기 모이를 나에게 내밀었다.

고개를 젓자 노신사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그려졌다.

그는 비둘기 모이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를 이 곳으로 청한 이유가 뭡니까?"

그는 클라크 의장의 노집사인 리마인드였다.

준비해온 CD 한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스위스 UPS 은행에서 발행한 액면가 100만불(12억) 짜리 양도성 예금증섭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런 큰 돈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클라크 의장의 동정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보고를 해주십시오."

"저더러 스파이 노릇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것보다는 정보를 저에게 판매하는 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흐으으음..."

리마인드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내 돈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다 다를까, 리마인드는 내가 건넨 백만불 상당의 CD를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 조심스럽게 수납한 뒤 장내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다음날.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상지원으로 직행했다.

그 후, 박아라와 김성희가 출연한 드라마에 이목을 집중했다.

아쉽게도 그녀들은 연기력이 많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런 때문일까, 인터넷과 SNS에는 그녀들의 부족한 연기력을 질타하는 댓글이 주를 잇고 있었다. 역효과가 난 모양새였다.

***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무렵, 나무엔터를 방문했다.

대표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종섭 매니지 1팀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실력파 연기선생을 섭외해서 아라와 성희에게 맹훈련을 시키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돈은 달라는대로 줄테니까 애들의 연기력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반드시 향상시키셔야 합니다."

정종선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연기 발성과 화면장악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탓에... 본인들의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요. 하여튼 네티즌들에게 연기 못한다고 쌍욕을 먹지 않는 수준으로 그녀들의 연기력을 끌어올리세요. 아시겠습니까?"

그러자 녀석이 자신없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알았으니까 이만 나가보세요."

"예. 대표님."

그를 내보낸 뒤 아라와 성희에게 차례로 전화를 돌렸다.

그녀들은 드라마 세트장에서 촬영에 한창이었다.

아라와 성희에게 촬영이 끝나면 상지원으로 오라는 말을 전한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뉴욕 모처.

군산복합체의 클라크 의장은 미국에 망명한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을 면담하고 있었다. 특히 만주족 출신 인사들에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금나라 황족 후손인 김신강과 청황실 후손인 해달풍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그는 면전에 나란히 서 있는 김신강과 해달풍에게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6개월 뒤면 중국은 10개국 이상의 나라로 분열될 뿐만 아니라, 만주 지역에는 미국을 빼다박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설 겁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두분은 6개월 후에 출범할 예정인 만주국의 초대 부통령과 국무장관직을 맡아주십시오."

그러자 김신강과 해달풍의 얼굴에 감개무량한 표정이 그득해졌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운동을 전개한 대가로 중국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물론 기적적으로 미국 망명에 성공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중국 공산당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림자정부의 수장인 클라크의 확언은 그들에게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왔다.

김신강이 감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의장님의 하늘같은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해달풍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장님에게 앞으로도 절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클라크의 만면 가득 흡족한 표정이 그려졌다.

그는 김신강과 해달풍을 이용해 한빈을 견제할 속셈이었다.

만주지역의 막대한 이권때문이었다.

***

상지원에서 박아라, 김성희 등과 즐거운 시간을 구가할 무렵, 클라크 의장의 대저택을 관리하는 노집사 리마인드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클라크 의장의 신변에 대해서 전해드릴 말이 있습니다.

"아시는 바를 소상히 말씀해 주십시오."

-클라크가 만주족 출신의 중국 반체제 인사들과 자택에서 비밀회동을 가졌습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네. 회장님.

"그들을 만난 이유도 아시나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만난 이유를 좀 알아봐 주십시오."

-힘들겠지만, 저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그래주시면 저야 고마울 따름이죠. 쓸만한 정보를 전해주시면 그에 합당한 추가 보너스를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클라크는 나를 견제할 만주족 출신 인사들과 연쇄적인 접촉을 갖고 있었다. 여우같은 작자였다.

***

상암동 켄싱턴 빌딩.

129층 사무실에서 대영그룹과 태산그룹에서 올린 결재서류에 기계적으로 회장 직인을 날인할 즈음, 박종태 감사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회장님에게 보고할 사안이 있습니다."

결재서류를 한켠에 밀어놓으며 그에게 물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김태구 경호팀장이 10억원에 달하는 공금을 횡령했습니다."

"네에...? 그 말이 정말인가요?"

"사실입니다. 경호팀에서 구입하기로 한, 미국제 방검복과 총기류를 전혀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김 팀장 와이프의 계좌를 조사한 결과 출처불명의 자금이 수차례 입금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총액 10억원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경호팀의 공금은 김태구 팀장이 관리하고 있었다.

"공금을 회수함과 동시에 김 팀장을 직위해제 하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녀석에게 콩밥을 먹이고 싶었지만, 수년 동안 나를 경호한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공금 회수와 직위를 해제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짓기로 결론내렸다.

"그렇게 하세요. 소문나서 좋을 게 없으니까 조용하게 처리하세요."

"예. 회장님."

다음날부터 김태구 경호팀장의 모습이 내 주변에서 쌋은 듯이 사라졌다.

***

김태구는 거액의 회사공금을 횡령한 죄로 보직해임 당했다. 그런 탓일까. 그는 자신을 해임한 박종태 감사실장과 김한빈 회장에게 원한을 품었다.

태구는 김한빈을 수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경호한 덕분에 여러가지 사건을 눈 앞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그는 김한빈과 박종태가 사람을 죽인 뒤 인천 앞바다에 유기하는 현장에 같이 있었다. 더구나 태구는 그들 몰래 스마트폰으로 유기장면을 촬영까지 해둔 상태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태구는 스마트폰의 영상을 이용해 큰 돈을 벌기로 작심했다.

물론 그 역시 한빈과 박종태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탓으로 처와 자식들을 필리핀 세부로 신속하게 도피시켰다.

목숨을 건 도박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함이었다.

***

주말의 어느날.

상지원 풀장에서 일광욕을 즐길 무렵, 아라와 성희가 장내에 나타났다.

그녀들은 화려한 비키니 차림이었다.

그녀들은 내 양옆에 자리를 잡은 채 유혹하듯 말했다.

"썬크림 좀 발라줘."

아라가 운을 떼자, 그에 질세라 성희가 말을 이었다.

"나도. 어서 발라줘. 오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들의 보드라운 등허리에 썬크림을 듬뿍 발랐다.

그 즈음, 박종태 실장이 풀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귓속말을 전했다.

"김태구 팀장이 저와 회장님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박종태가 아라와 성희를 눈짓하며 말했다.

"접견실에서 자세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접견실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접견실에 들어서자 종태가 보고를 올렸다.

"저와 회장님이 사체를 유기한 현장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모양입니다. 그걸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중입니다."

저간의 사정을 단박에 파악했다.

천려일실이었다.

"놈이 원하는 조건을 말해보세요."

"현금으로 500억을 원하고 있습니다."

"500억을 건네주면 동영상의 원본을 확보할 수 있는 건가요?"

"돈을 건네더라도 영상을 확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거 같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게 최선 같습니다."

"놈의 가족을 인질로 잡으세요."

"이미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주 작정한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니에요. 어차피 한번 쯤은 벌어질 일이었어요."

그리 말하며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창 밖에 드리워진 아름드리 소나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녀석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허나, 이렇다할 방법이 당최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돈거래 현장에서 놈을 잡기로 마음먹었다.

"500억을 준다고 전하세요."

"돈 가방 안에 초소형 위치발신기를 집어넣겠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제일 중요한 건 현장에서 놈을 잡는거에요."

"명심하겠습니다."

박종태를 내보낸 뒤 이태강에게 전화를 돌렸다.

다음날 아침.

이태강의 수행비서가 상지원 접견실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노란 봉투를 건넸다.

봉투 속에는 김태구 가족의 사진과 출국 기록이 들어있었다.

녀석의 처자식들은 필리핀 세부로 도피한 상태였다.

수행비서를 내보낸 뒤 국정원의 조웅래 1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필리핀 세부에 위치한 허름한 호텔에 무장괴한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호텔에서 한국인 모녀를 납치한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날 밤.

세부 모처에 국정원 요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국인 모녀를 마닐라에 소재한 국정원 안가로 신속하게 이송조치했다.

그 후, 한국에 있는 조웅래 1차장에게 긴급 보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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