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전방위적인 빌드업
5만원권 현금 다발이 가득 들어찬 벤 차량이 분당 쇼핑몰 주변에 등장했다.
하지만 벤차량 곁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나와 박종태는 쇼핑몰의 옥상에서 망원경을 이용해 그런 광경을 요주의 살피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등산 모자를 뒤집어쓴 초로의 노인이 벤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일단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잠시 뒤, 초로인이 올라탄 벤 차량이 경부 고속도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종태가 무전기를 입가에 가져갔다.
"지금 당장 검은색 벤차량을 미행해!"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벤차량 뒤편으로 세단차량들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바로 그때, 박종태의 핸드폰에 김태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종태가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김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지금 상지원에 있습니다. 회장님이 아끼시는 박아라와 김성희를 인질로 잡고 있죠. 그러니까 지금 당장 벤 차량 추격조를 뒤로 물려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제 요구를 거부하시면 박아라씨와 김성희씨를 두번 다시 보지 못할 겁니다. 회장님."
그리 말하며 그녀들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태구는 그녀들의 목에 날이 시퍼런 대검을 겨누고 있었다.
녀석은 보기보다 머리가 좋았다.
성동격서의 전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물론 나에게도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김태구의 폰으로 처와 딸의 영상을 전송했다.
잠시 후.
녀석의 절박한 목소리가 폰에서 울려퍼졌다.
"제발! 그녀들을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회장님!"
그에게 즉답했다.
"그녀들을 살리시고 싶으시면 지금 당장 스스로 자결하세요. 그렇게 하시면 팀장님 가족들이 잘 먹고 잘 살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죠."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만약 저의 제안을 거부하시면 팀장님의 와이프와 딸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가 홧김에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태구가 비분강개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회장님이 원하시는대로 하겠습니다. 대신 저와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십시오!"
"당연히 그래야지요. 대검으로 목을 그으세요. 지금 당장!"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태구가 손에 든 대검으로 자신의 목을 시원하게 그어버렸다.
녀석의 목줄기에서 붉은 선혈이 폭포수처럼 솟구쳤다.
동시에 자기가 쏟아낸 피바다 위에 허물어지듯 무너져내렸다.
자업자득이었다.
박종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박아라와 김성희가 많이 놀랐으니까, 대영병원에 입원시키세요."
"예. 회장님."
그가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국정원의 조웅래 2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필리핀에 있는 김태구의 처와 딸을 지금 당장 한국으로 데리고 오십시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회장님.
그날 밤.
대영병원 VIP 병실로 들어서자 아라와 성희가 어린 소녀들처럼 내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그녀들은 두려움에 떠는 어린 양이었다.
결국 아라와 성희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들을 포근히 안아주었다.
***
다음날, 상지원.
아침 식사를 끝마친 뒤 서재로 올라갔다.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TV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저저하기 위해, 3단계에 달하는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중략...
한국의 시민 경제 자체가 마비되는 순간이었다.
악마같은 중국 공산당 개놈들 때문에 애꿎은 한국인들만 피해를 보고 있었다.
맹렬한 적개심에 휩싸인 채 상지원을 나섰다.
한남동의 길거리는 을시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고, 곁을 스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세기말의 풍경이었다.
그런 광경을 목격하자, 중국 공산당 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은 격렬한 살심에 젖어들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였다.
***
나를 태운 전용기가 팔라크 섬에 조성된 임시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다.
전용기에서 내리자 대영중공업 관계자들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거대한 규모의 간척지로 발걸음을 이동했다.
팔라크 섬의 지하 미사일 기지와 대규모 간척 사업은 막바지에 다다른 형국이었다.
공사 관계자에게 물었다.
"공사 완료 시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즉답했다.
"한달 안에 모든 공사를 완료할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공사를 마무리 하십시오."
"예. 회장님."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 뒤 전용기가 있는 임시 활주로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
팔라크 섬을 이륙하자마자 율리아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끼나와 방향으로 기수를 돌리라고, 기장에게 전해."
"예. 회장님."
잠시 후, 나를 태운 전용기가 오끼나와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율리아를 데리고 2층 침실로 올라갔다.
그녀의 풍요로운 품에서 심신의 노고를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율리아는 나를 좋아하는 탓에, 내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었다.
그 덕분에, 오끼나와로 향하는 내내 짜릿한 시간을 오롯이 만끽했다.
***
오끼나와 국제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끝마치자마자 시내의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클라크 의장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는 오끼나와에 배치된 핵무기를 시찰할 예정이었다.
오끼나와 시내에 위치한 호텔로 들어서자 검은 양복 차림의 경호원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그들은 백악관 경호국에서 파견나온 요원들이었다.
"무슨 용무로 호텔을 방문하셨습니까?"
"클라크 의장님과 약속이 있습니다."
"성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김한빈입니다."
"잠시만 대기하십시오."
그리 말하며 어딘가로 무전을 날렸다.
몇분 뒤, 클라크의 수행비서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호텔 안으로 안내했다.
탑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로 들어서자 클라크가 티타임을 즐기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네도 홍차를 하겠는가?"
"됐습니다."
그리 말하며 엔틱크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후, 내 용건을 단도직입적으로 밝혔다.
"평택 미군기지에 수소폭탄 200개 안팎을 배치해 주십시오."
그가 노회한 눈빛을 내비치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를 말해보게."
그에게 즉답했다.
"중국 전역을 동시다발적으로 융단폭격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인접한 평택 미군기지와 오끼나와 미군기지의 핵미사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미국의 공식적인 참전을 원하는건가?"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중국의 핵반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선 천개 안팎의 수소폭탄이 필요합니다."
"팔라크 섬에도 수소폭탄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겨우 600개 남짓입니다. 그 정도로는 중국의 핵반격을 막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끼나와에 있는 수폭 200개와 평택의 수폭 200개, 팔라크 섬의 수폭 600개, 총 1000개로 중국 대륙을 박살내자는 말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담배연기를 자욱이 말아올리며 재차 말했다.
"이영박 대통령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그러니 최단 시간 내에 평택 미군기지에 수소폭탄 200개를 배치해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호텔을 박차고 나왔다.
***
클라크는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평택 미군기지에 수소폭탄을 배치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는 한빈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군산복합체의 거두들은 중국을 핵으로 괴멸시키자는 한빈의 제안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만약 한빈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군산복합체에서 자신의 입지가 위험해질 가능성마저 있었다. 그 정도로 미국 정가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용해, 미국과 전세계에 천인공노할 생화학 테러를 자행한 중국 공산당을 향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결국 그는 한빈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
백악관 오벌오피스.
클라크 의장과 아바마 대통령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바마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중국과 인접한 평택 미군기지와 오끼나와도,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핵타격에 가담하라는 말씀입니까?"
클라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한국 정부에서 OK 사인이 떨어지면 평택 미군기지에 수소폭탄 200개를 신속하게 배치하시오."
"알겠습니다. 의장님."
아바마 역시 중국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한빈과 보조를 맞출 생각이었다.
***
청와대를 비공식적으로 방문했다.
나와 이영박은 청와대의 아름다운 경내를 거닐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평택 미군기지에 핵무기를 반입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 말아 주십시오."
"미국의 요구를 김 회장이 대신 전하는거요?"
그는 나와 미국 정가의 끈끈한 커넥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제 입장도 반영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는 일을 앞장서서 하시는 이유가 뭐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 대통령님은 모르는 척 눈감아 주십시오."
"내가 반대한다면 어쩔거요?"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퇴임 후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겠습니다."
순간 그가 움찔한 얼굴로 내 시선을 회피했다.
영박은 퇴임 후의 안전을 우려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지 마십시오."
***
아바마의 핫라인이 청와대에 연결됐다.
이영박이 긴장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입니다. 대통령 각하."
그러자 수화기에서 아바마의 진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평택 미군기지에 핵무기를 반입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미국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해 주십시오.
영박은 이미 한빈에게 언질을 받은 상태라, 아바마의 요구를 순순히 수락했다.
"대통령 각하의 제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대신 한국 철강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덤핑 규제에 대해서 선처를 베풀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상무부장관에게 제가 따로 말을 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영박은 핫라인을 종료하자마자 국정원장을 청와대로 호출했다.
그 후, 미국의 핵무기 반입에 대해서 저간의 사정을 간력하게 설명한 뒤 기밀을 준수할 것을 명령했다.
***
상암 켄싱턴 빌딩 사무실에서 회사 업무에 매진할 무렵, 클라크 의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국의 핵무기와 생화학 시설 위치를 이메일로 전송했으니, 지금 즉시 확인하시게.
"확실한 정보가 맞습니까?"
-우리 미국의 정보력은 전 세계 으뜸이네. 믿어도 좋다는 말이지.
"알겠습니다. 의장님."
전화를 끊자마자 지메일 임시계정에 접속했다.
그 후, 임시 계정에 도착한 메일을 살폈다.
중국의 핵과 생화학 시설의 위치정보가 가득 담긴 자료였다.
곧바로 USB에 자료를 저장했다. 그 뒤 지메일 계정을 모조리 삭제했다.
그날 저녁.
상지원 서재로 들어서자마자 벽면 깊숙이 숨어있는 금고를 개봉했다.
금고 안에는 핵가방이 들어있었다.
핵가방을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핵가방을 오픈하자 메인 컨트롤 판넬이 보였다.
컨트롤 판넬에 중국의 핵무기 저장소와 생화학무기 시설 위치를 쉴 새 없이 입력했다. 거의 400개 남짓이었다.
모두 미국 정보기관에서 파악한 자료였다.
틀림없는 정보였다. 이제 발사개시만 남았다.
마음같아서는 지금 당장 발사 스위치를 누르고 싶었지만,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입장이었다.
팔라크 섬의 극초음속 핵미사일과 평택 미군기지, 오끼나와에 배치된 핵무기 역시 동시에 발사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일시에 천여개 이상의 수소폭탄을 중국 전역에 쏟아부을 계획이었다. 중국의 핵반격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