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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171화 (171/175)

171화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다

차창 밖에 하얼빈 시가지의 아름다운 전경이 드러났다.

하얼빈은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핵폭격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거의 모든 게 멀쩡했다. 고색창연한 러시아풍의 그림같은 건축물 역시 그대로 보존된 상태였다.

미국은 흑룡강성 하얼빈을 만주국의 수도로 낙점했다.

중국과 멀리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만주의 한가운데 위치한 탓이었다.

나 역시 하얼빈이 마음에 들었다. 도시 전체에 러시아풍의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지천으로 널린 까닭이다. 뭔가 애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지역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칠 찰나, 나를 태운 방탄리무진이 미국 총영사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스트븐슨 총영사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회장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영사님. 하하하..."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려보내며 그와 악수를 교환했다.

우리는 본관 1층에 위치한 접견실로 자리를 이동한 뒤 본격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스티븐슨이 말했다.

"하얼빈 근교에 금나라 황실의 후손들인 김씨 집성촌이 있습니다. 그 곳을 방문하셔서 그들과 사적인 교분을 나누시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김씨 집성촌에 몇사람이나 살고 있죠?"

그가 즉답했다.

"모두 2천명 정도 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촌장도 있나요?"

"당연히 있습니다."

"그럼 촌장을 지금 당장 총영사관으로 호출해 주십시오. 그에게 사적으로 부탁할 일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스티븐슨은 그리 화답하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끊은 뒤 친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 별관 숙소로 자리를 옮기시죠. 촌장이 도착하면 회장님의 거처로 올려보내겠습니다."

"그럽시다."

그리 화답하자 스티븐슨이 직접 별관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건물로 나를 안내했다.

당분간, 내가 주로 거처할 장소였다.

별관 건물은 3층 규모였고 1층은 접견실, 2층은 서재와 휴게실, 3층에는 침실과 욕실 등이 있었다.

내 발걸음은 3층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욕조에 온몸을 푹 담구고 싶었다.

여행의 노독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커다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은 뒤 그 안으로 들어갔다.

욕조 안에서 안락한 휴식을 취할 무렵, 핸드폰에 문자가 전송됐다.

스티븐슨이 보내온 문자였다.

김씨 집성촌의 촌장이 벌써 총영사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평상복으로 환복한 뒤 1층 접견실로 천천히 내려갔다.

접견실에는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북경어(광동어와 만주어가 믹스된 언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김씨 집성촌의 촌장을 맡고 있는 김강술이라고 합니다. 회장님을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나 역시 유창한 북경어로 화답했다.

"저 또한 금나라 황실의 후손입니다. 한마디로 촌장님과 혈연을 나눈 관계라는 뜻이죠. 앞으로 한집안 식구처럼 잘 지내봅시다."

그리 화답하자 김강술이 감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말 회장님도 금나라 황실의 후손이십니까?"

"네. 금나라 태조인 아골타가 저희 집안 직계 조상입니다."

서류 가방 안에서 한자로 작성된 가짜 족보를 꺼내들었다.

"저희 집안 족보를 살펴보시면, 아골타의 본명인 김애신(金愛新)이 기재된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 말하며 가짜 족보를 그에게 내밀었다.

김강술은 내가 건넨 족보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그 안에 기재된 김애신의 이름과 그가 만주로 이주한 사연 등을 자세히 살폈다.

그런 탓일까. 그의 두눈에 그렁그렁한 눈물방울이 맺혔다.

"저희 조상님이신 아골타에게 이런 슬픈 사연이 있는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아골타는 통일신라가 패망한 뒤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과 함께 만주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 후, 만주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고, 종국에는 북중국마저 손에 넣는 대제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한다. 입지전적인 인물었다.

이제 돈질을 할 시점이었다.

김씨 집성촌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준비해온 금일봉을 그에게 전달했다.

"봉투 안에 미화 5천만불(600억)짜리 수표가 들어있습니다. 하얼빈에 소재한 체이스 맨하탄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니까, 언제든지 현금화가 가능합니다."

그리 말하자 김강술의 얼굴 가득 감격한 표정이 그득해졌다.

"김씨 집성촌을 위해서 사용해 주십시오."

"정말 너무 감사한 심경입니다. 회장님."

"됐습니다. 같은 집안 식구끼리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성의니까 부담 없이 받아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김강술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김씨 집성촌을 방문했다.

김강술 덕분에 촌민 대다수가 나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들의 환대를 받으며 만주 지역에서 공식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그날 밤.

총영사관의 별관 접견실에 만주 지역의 유력 방송사와 신문사의 오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내에 배석한 그들 각자에게 거액의 돈봉투를 돌렸다.

당연히 그들 모두 내 돈을 거부하지 않았다.

"봉투 안에는 미화 1천만불(120억)짜리 수표가 들어있습니다. 제가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의미죠."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제가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이 될 경우, 추가로 1천만불을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저에 대한 호의적인 기사와 뉴스를 쉴 새 없이 내보내 주십시오."

그리 말하자, 좌중이 돈독이 잔뜩 우러난 얼굴로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거렸다.

돈에 환장한 모양새였다.

그날 이후, 만주 지역의 방송사와 신문사는 나에 대한 온갖 용비어천가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그 덕분에 내 인지도와 호감도는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가파르게 상승했다.

***

영사관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대충 때운 뒤 하얼빈 시내에 위치한 만주공화당의 당사를 방문했다.

오늘은 만주공화당의 대선후보가 선출되는 날이었다.

그들은 나를 만주공화당의 종신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후보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에 절대충성을 받치는 친미인사였다.

그런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만주공화당의 종신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다.

당사 안에는 수천명의 당원들이 운집한 채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당사 1층에 마련된 컨퍼런스홀로 들어서자 당원들이 열광적인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와! 김한빈 만세! 만세!"

"김한빈을 종신 대통령으로!"

"김한빈을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으로!"

"김한빈 이야말로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 자격이 충분하다!"

그들의 환호성을 뒤로한 채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위해 연단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당원들을 향해 당당한 목소리로 내 소신을 밝혔다.

"저 김한빈은 만주국을 미국을 능가하는 부강한 국가로 만들 계획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사업으로 억만금을 벌어들인 전력이 있습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 사업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만주국의 경제를 단시일 안에 미국 수준으로 올려놓겠습니다. 만주국을 번영시킬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만주국 시민들과 당원 여러분들은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십시오!"

짤막한 수락연설이었음에도 장내는 열광의 도가니로 삽시간에 변질됐다.

"와와와! 김한빈 만세!"

"김한빈 대통령 만세! 만만세!"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 김한빈!"

"김한빈 종신 대통령 각하에게 축복이 있으라...!"

그들의 열띤 환호성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당사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러자 수천명에 달하는 국내외 취재진들이 나를 향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으로 내가 가장 유력한 까닭이었다.

그들의 취재에 일일이 응한 뒤 장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총영사관의 별관 건물로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이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나와 비밀 결혼식을 올린 만주족 출신의 풍설란이었다.

설란은 나를 보자마자 내 품에 뜨겁게 안겨들었다.

"보고싶었어요. 회장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 후, 3층 침실로 올라갔다.

우리는 격정적인 사랑놀음을 만끼한 뒤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풍설란에게 말했다.

"만주 복지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니까, 당신이 재단 이사장을 맡아. 자본금은 미화 100억불 수준으로 조성할 계획이니까, 돈을 펑펑 쓰라고."

그녀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내비치며 내 품에 바짝 밀착했다.

"그럼 저도 본격적으로 영부인 행보에 나서야 하는 건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일부터 만주 지역의 고아원과 양로원 등을 돌아다니면서 따스한 영부인의 이미지를 구축해."

"좋아요. 당신이 원하는대로 할게요."

"유력 언론사의 기자들과 카메라맨을 붙여줄테니까 그럴 듯한 홍보용 사진을 많이 찍어두라고."

그녀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내 품에 고운 얼굴을 깊숙이 파묻었다.

***

만주 지역의 대통령 유세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제일 먼저 만주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요녕성의 성도, 심양에서 대선일정을 본격화했다.

심양시의 오피스타운 일대에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내 대선유세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만주인이었다.

그들에게 큰 목소리로 내 의중을 밝혔다.

"저는 만주를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대국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물론 저에게는 그만한 역량이 충분합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 만주에는 석유와 가스, 철광석 니켈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전세계에서 알아주는 대규모 경작지마저 보유 중입니다. 거기에 수천만명에 달하는 숙련된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순간 장내에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김한빈을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으로!"

"김한빈 대통령 만세!"

"우리 만주는 김한빈을 필요로한다!"

"와와와와와! 김한빈 만세! 만만세!"

***

심양에서의 선거 일정을 끝마치지마자 길림성의 성도인 장춘으로 직행했다.

장춘의 미국 영사관에 숙소를 마련한 뒤 하동균 비서팀장과 늦은 저녁을 함께했다.

저녁식사를 대충 해결한 뒤 하동균에게 넌지시 물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나요?"

그가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갤럽의 대선 여론조사 결과 회장님이 80%에 달하는 지지도를 기록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다른 여론기관의 조사도 대동소이한 수준입니다."

만주인들은 진정으로 나를 좋아했다.

그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연설과 공약으로 중무장한 탓이다.

선거조작 따위가 불필요한 수준이었다.

하동균을 내보낸 뒤 현지 TV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앞으로 10일 뒤, 사상 최초로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 선거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20세 이상의 만주국 시민들은 대통령 선거에 빠짐없이 투표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의 기본적인 소양입니다.

아나운서는 자유선거가 생소한 만주시민들에게 대선투표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대선에 나설 후보들의 면면을 차례로 내보냈다.

맨처음부터 내 사진과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

-만주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기호 1번 김한빈 후보입니다.

-김한빈 후보는 만주 흑룡강성 출신으로서, 어린나이에 미국으로 이민간 뒤 천문학적인 부를 성취해 냈습니다.

-또한 만주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수백억불 규모의 복지재단마저 설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한빈 후보는 성씨에서도 알수 있듯이, 금나라 시조인 아골타의 직계 후손으로서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이 될 만한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한빈 후보의 대선지지율은 8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략...

대놓고 나를 지지하는 방송이었다.

그런 탓일까. 내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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