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만주국의 초석을 다지다
하얼빈 샹그릴라 호텔의 지하 벙커에서 만주국의 첫 국무회의를 개최했다.
장내에 배석한 만주국의 장관들에게 내 의중을 확실히 밝혔다.
"저는 최우선적으로 만주국의 독립적인 경제체제를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만주국 전용 화폐를 발행할 계획입니다. 화폐의 가치는 한국의 원화와 대등한 수준으로 정할 생각입니다."
내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또한 화폐의 단위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원화(元貨)를 사용할 계획이니 국무위원 여러분들은 저의 결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좌중은 별다른 의견표명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만주국의 장관으로 임명된 탓인지 여전히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눈치였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 편이 나았다.
내 발언은 여전히 계속됐다.
"만주 중앙은행을 설립한 뒤 만주국의 통화와 금리 등을 총괄시키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오니 국무위원 여러분들은 한분도 빠짐없이 찬성표를 던져주시기 바랍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앉아 있던 김신강 부통령이 입을 열었다.
"저 역시 대통령 각하와 마찬가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만주국의 정정은 매우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녀석은 그리 말하며 전면에 설치된 화이트 스크린을 가리켰다.
순간 스크린에서 CNN 국제뉴스가 여과없이 흘러나왔다.
-장춘의 도심 지역에서 대규모 폭발테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수천명에 달하는 사상자들이 발생했으며, 물적 피해도 수억불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리포터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쑥대밭으로 변한 장춘 시내의 오피스 타운이 화면에 생생히 드러났다. 9.11테러 버금가는 대형 폭탄테러였다.
리포터의 말은 다시 이어졌다.
-한편 극렬 공산주의 테러집단으로 알려진 만주의 붉은 별이, 유튜브를 통해 이번 장춘시 폭발테러 사건을 자신들이 자행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략...
오늘 새벽 4시경에 발생한 폭탄테러였다.
하지만 나는 만주 전역의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런 이유로 만주의 TV와 신문, 인터넷에는 이런 사건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시민들이 알아봤자,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신강은 나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런 탓인지 내 면전에서 격한 어조로 대언론 통제정책을 성토했다.
"만주국은 자유민주체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주국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언론통제를 대체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해달풍 국무부장관도 김신강 부통령을 거들고 나섰다.
"저 역시 부통령 각하와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시민들에게 테러의 심각성을 솔직하게 알리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국무위원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김신강과 해달풍의 노골적인 항명이 원인이었다.
녀석들은 감히 첫 국무회의부터 나에게 빅엿을 먹였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격한 어조를 내뱉었다.
"나는 만주국의 종신 대통령입니다. 감히 내 통치행위에 딴지를 건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국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임을 명백히 밝히는 바입니다!"
김신강과 해달풍을 맹렬한 시선으로 쏘아보자, 내 시선을 회피하며 딴청을 피워댔다. 자신들의 뒷배인 미국을 잔뜩 믿는 눈치였다.
기분이 잡치는 순간이었다.
"오늘 국무회의는 이쯤에서 종료합시다. 그리고 부통령과 국무부장관은 내 집무실로 따라오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지하 벙커를 재빨리 벗어났다.
지하벙커 옆에 위치한 집무실로 들어갔다.
책상에 자리를 잡은 뒤, 면전에 나타난 김신강과 해달풍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편한 자세로 소파에 착석했다.
그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만주의 붉은 별을 전담하는 특수무력부대를 창설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김신강이 뜨악한 얼굴로 되물었다.
"미국의 허락은 받으신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해달풍이 딴지를 걸어왔다.
"설마 한국인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창설하실 생각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저는 결사코 반대하겠습니다."
녀석의 헛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만주국은 만주인의 손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한국인들이 만주국의 내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걸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주제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따끔한 어조로 녀석들을 꾸짖었다.
"뭔가 오해를 하시나본데, 특수무력부대 창설은 만주국 대통령의 고유 권한입니다. 당신들은 내 결정에 감놔라 배놔라 할 권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노골적인 언사를 내뱉은 탓인지, 녀석들이 분노한 얼굴로 온몸을 부들거리며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허나, 그들은 보잘 것 없는 부통령과 국무부장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때문인지 별다른 말 없이, 집무실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대표시였다.
녀석들이 장내에서 사라지지마자 하동균 비서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대통령 각하."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영정밀에서 개발한 무장 드론을 대대적으로 반입할 계획이니까, 차질 없이 일을 시행 하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일을 완수하겠습니다."
"그럼 실장님만 믿겠습니다."
"예. 대통령 각하."
***
하동균은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한국에 있는 대영정밀의 조일국 사장에게 핫라인을 연결했다.
그는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개발이 완료된 무장드론 2백만개를 만주국의 대련항으로 신속하게 이송해 주십시오."
-대련항으로 이송하기 위해서는 황해를 관통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미해군의 협조가 절대적입니다.
황해는 미 해군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그 곳에 출입할 수 없었다.
"그 문제는 미군과 제가 협의할테니 사장님은 대련항으로 무장드론을 이송할 준비에 만전을 기하십시오."
-그럼 미해군과 협의가 끝나는대로 연락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나중에 봅시다."
하동균은 핫라인을 종료하자마자 황해를 관리하는 미해군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
황해와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미 7함대의 머스틴 해군 중장이 하얼빈의 샹그릴라 호텔에 나타났다. 그는 지하 벙커에 위치한 하동균 비서실장의 사무실로 직행했다.
하동균과 머스틴 중장은 악수를 교환한 뒤 곧바로 본론에 접어들었다.
"한국에서 무장 드론 2백만개를 반입할 예정입니다. 그러자면 황해를 관통해서 대련항으로 와야 하는데, 그 곳은 미해군의 7함대가 관할하는 지역이라, 저희 마음대로 출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니 사령관님이 편의를 봐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머스틴 중장이 사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미정부의 공식적인 협조공문이 오기 전에는 황해를 개방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머스틴은 그말을 끝으로 사무실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결국 하동균은 저간의 사정을 한빈에게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
샹그릴라 호텔 집무실에 조웅래가 나타났다.
그는 국정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만주국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은 채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테러세력을 전담하는 특수무력부대를 창설할 계획입니다."
조웅래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커피 한모금을 입안으로 들이켰다.
그에게 재차 말했다.
"특무대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만주의 붉은 별입니다. 공산주의 사상에 매몰된 만주의 쓰레기들을 삭근제초하는 게 특무대의 주요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웅래가 조심스런 태도로 입을 열었다.
"특무대원들의 권한을 어디까지 설정하실 생각입니까?"
"공산주의 테러분자들을 언제 어디서나 즉결 처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할 계획입니다."
웅래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살인면허를 발급할 생각이십니까?"
"필요하다면 그럴 계획입니다. CNN 뉴스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장춘에서 발생한 공산주의자들의 테러사건으로 무려 6천명에 달하는 사상자들이 발생했습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놈들을 뿌리뽑지 못한다면 만주국은 제대로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쓸쓸히 낙화할 것이 분명합니다."
"저 역시 대통령 각하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니 조웅래씨가 특무대의 대장직을 맡아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미화로 연간 1천만불(120억원)에 달하는 고액 연봉을 약속하겠습니다."
그는 내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대통령 각하를 보필하겠습니다."
그리 화답하며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
샹그릴라 호텔의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하동균 비서실장의 보고에 귀를 기울였다.
"미국 정부의 허락 없이는 황해 바다길을 열수 없을 것 같습니다."
"7함대 총사령관이 우리 부탁을 거부한 건가요?"
"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공문서를 요구하더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백악관으로 핫라인을 연결하세요."
"예. 대통령 각하."
하동균이 핫라인 전용 폰을 나에게 내밀었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아바마 대통령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게 안부인사를 전한 뒤 내 용건을 가감없이 밝혔다.
그러자 폰에서 아바마의 친근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정도 편의는 당연히 제공해 드려야지요. 대신 럼스팰 육군대장을 더 이상 보이콧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그 양반이 무장드론 사용을 불허하는 탓에 만주 전역에서 피해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럼스팰 대장에게 무장드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앞으로는 많은 점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더 이상 럼스팰 대장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핫라인을 종료했다.
***
지하 벙커의 집무실에서 만주국의 치안을 책임질 인사를 선발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책상 위에는 총 12명에 달하는 만주국 경찰총장 후보들이 있었다.
만주국의 경찰총장은 경찰권과 검찰권을 한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상태였다.
만주국의 경찰청은 한국처럼 경찰 따로 검찰 따로가 아니라, 경찰 수사와 검찰의 기소 유지를 동시에 책임지는 기관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절대충성을 맹세한 인사를 기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보에 이름을 올린 12명의 남자들은 모두 나와 생면부지였다.
그저 친미인사라는 사실 외에는 이렇다할 특색이 전무했다.
결국 한국에 있는 박종태 감사실장을 만주국의 경찰총장으로 낙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길이 최선이었다.
며칠 후.
박종태가 샹그릴라 호텔 지하 벙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게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만주국의 경찰총장직을 맡아주세요."
그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제가 그런 과분한 직책을 맡아도 될까요?"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하세요."
그는 내 명령에 언제나 절대충성하는 남자였다.
"앞으로도 회장님을 진충보국하는 자세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박종태의 믿음직한 모습이었다.
***
한달 후.
나를 태운 방탄리무진이 하얼빈 시내를 가로지르자 연도에 늘어선 수백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만주국기를 흔들며 열광적인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
그들 대다수는 초.중.고 학생들과 대학생들이었다.
모두 강제로 동원된 친구들이었다.
만주국 경찰총장으로 영전한 박종태의 과잉충성이었다.
그는 내 덕분에 하루아침에 벼락출세를 한 케이스였다.
그런 탓인지 하얼빈 관내의 초중고와 대학교를 분주하게 누비며 그들을 동원하는데 필사의 노력을 경주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학생들과 시민들의 따스한 환대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하얼빈 시내 정중앙에 건설된 대통령궁으로 시선을 모았다.
만주국의 대통령궁은 백악관을 쌍둥이처럼 빼다 박은 흰색의 석조건물이었다.
당연히 내부구조마저 백악관과 거의 흡사했다.
태산건설의 기술진에게 그렇게 요구한 탓이었다.
대통령궁으로 들어서자 수천명에 달하는 중무장한 미군들이 일제히 나를 경호했다. 아직 만주국에는 정식 군대가 없었다. 그런 탓으로 미군들에게 내 신변 경호를 맡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