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1 챔피언이 꿈이래, 그것도 한국 출신이 >
[lap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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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1:43:063
“43초?!”
조준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노에선 본 적 없는 랩타임. 서준하의 카트 엔진 성능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저딴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자신이 눈으로 본 걸 믿지 못하는 조준원. 평소 차분한 성품의 그가 격분하며 벤치를 발로 찼다.
카트에 달린 엔진은 하얀색 로탁스 엔진이 분명했다. 리스트럭터와 같이 엔진 성능을 제한할 수 있는 부품은 있어도, 그 반대는 없었다.
“준원이보다 0.5초나 빨라.”
“...!”
게다가 자신의 기록을 훨씬 앞선 랩 타임. 서준하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레이서. 케노에 슈퍼 루키가 등장했다.
“쟤가 만약 입단하면 어디 클래스로 들어오는 거지?”
“테스트를 로탁스로 하니까, 아마 로탁스겠지...”
“하... X발.”
정태훈과 김종겸이 한숨을 쉬었다. 또 한명의 경쟁자가 나타난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완주한 것도 대단한데, 페스티스트 랩?!. 선배님, 쟤 카트 경력이 얼마나 됩니까?”
“경력? 지난주에 카트 처음 타 봤대.”
“네에?! 그게 말이 됩니까?”
놀란 입을 다 물지 못하는 박기태 코치.
“로탁스 탔으면 최대 3G까지 받았을 텐데...”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의 중력 가속도는 2G다. 그 정도 압력만으로 비명을 내지르게 되는 마당에 3G는 엄청난 압박감일터.
“내가 더 놀라는 건 저 녀석의 집중력이야. 보통 카트에 오르면 평균 심장박동수가 엄청 뛰잖아.”
“그렇죠. 뭐 한 3배 가까이는 뛰죠.”
“빠른 속도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이 어마어마할 거란 말이지. 그걸 다 견뎌내고, 페스티스트 랩까지 만들어 냈어.”
“이게 말이 됩니까?”
잠깐이지만 이는 마치 전투기 조종사가 음속 비행 중 받는 스트레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반 성인도 쉽게 정신을 잃는 마당에 완주도 모자라 10바퀴만에 페스티트스트 랩을 달성한 서준하.
“저 녀석 정체가 뭘까요?”
“뭐, 천재, 신동?”
“...”
“아니면 죽은 세나의 환생? 하하하.”
F1 월드 챔피언 세나. 그도 어릴적부터 카트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주현우의 입에서 환생이란 말까지 나오고 말았다.
***
“헉헉... 한 바퀴 더 탔다간 죽을 뻔 했네.”
마지막 랩을 마치고, 속도가 줄어든 서준하의 카트가 준형과 윤호가 근처에 섰다.
“윽.”
옆구리에서 강력한 통증을 느낀 서준하. 약간의 두통과 함께 어지러움을 밀려왔다.
“와, 준하야 여기!”
“준형이 형 봤지, 준하 카트 천재라니까!”
“정말! 안 무섭냐 준하야?”
카트 천재라는 처음 들었을 땐 그냥 웃고 넘어갔던 준형. 눈앞에서 150km/h 속도로 운전하는 동생을 보니 그 말을 안 믿을 수 없었다.
“무섭긴, 이 재밌는 걸.”
속도가 빠르긴 해도 무서울 건 없다. 게다가 혼자서 트랙 위를 달리면 누군가와 부딪힐 일도 없었으니까. 서준하가 두 사람을 향해 웃어 보였다.
“이따 봐.”
준형과 윤호를 향해 쿨하게 손을 흔들고 피트를 향해 들어가는 서준하.
‘실수가 좀 나왔는데, 랩타임 괜찮으려나. 이번에도 몸이 못 버텨주네. 어우.’
새로운 카트와 체력적 부담이 밀려와 최상의 컨디션으로 랩을 돌진 못했다. 아마 좋은 기록이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두두두두둥.
위잉.
서준하가 피트로 들어서자 안혁수 정비과장과 미카닉 이상준이 보였다.
“스돕, 스돕. 여기 딱 서시고.”
안 과장이 피트로 들어오는 서준하의 카트를 세웠다. 서준하가 시동을 끄고 카트에서 내렸다.
“으악!”
비명과 함께 휘청거리며 차에서 내리는 서준하. 다시 한번 옆구리에서 강력한 통증을 느껴졌다.
“괜찮아?!”
“과장님, 얘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카트를 타면 항상 있는 일이다. 병원엔 안 가도 된다.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그냥 근육통일 거다.
“정말 괜찮아요.”
여러번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았다. 서준하가 헬멧을 벗고 두 사람을 향해 웃어 보였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헤헤.”
“어, 어 그래.”
로탁스를 처음 타고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그와중에 고맙다는 인사까지. 안혁수는 서준하가 평범한 아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야 뭐, 잠깐 쉬면 괜찮아져.’
서준하가 옆구리에 손을 언고 발검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애가 된 후로 점점 내가 하는 짓도 어려지는 것 같네. 헤헤? 이러고 말이야’
12살 꼬맹이로 환생한 지 꽤 지났다. 서준하는 점점 자신이 정말로 어린애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벤치 쪽으로 다가서자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랑은 분위기가 다른데.’
서준하의 눈엔 주현우와 다른 코치가 심각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면 서준하를 발견하고 조용해진 다른 선수들.
‘테스트 통과 못 할 정도로 랩타임이 형편 없는 거 아닌가?’
약간 긴장한 서준하. 걸음을 옮겨 주 코치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서니 더 잘 보이는 선수들의 표정.
‘표정들이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어?’
경계심에 가득찬 얼굴로 서준하를 바라 보는 선수들. 마침 주현우가 서준하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준하야, 우리 팀 식구가 된 걸 환영한다. 입단 테스트 통과야.”
통과라는 말에 주니어부 선수들 그리고 장윤호와 서준형이 환호했다.
“베스트 랩이 1분 43초 063. 마지막 랩에서 엄청 빨랐어.”
1위가 44초대였으니 43초면 괜찮은 기록이었다.
전생에 카트 경력만 7년인데, 고작 유소년 팀의 에이스 기록을 못 깼으면 창피할 뻔했다.
“비공식이지만, 스피디 파크에서 43초대 기록을 낸 선수는 아무도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
자신의 랩타임을 듣고서야 알게 됐다. 왜 다들 저렇게 똥씹은 표정인지를. 서준하는 케노 선수들의 기분이 이해됐다.
‘작고 어린 데다가 최고 기록이니까, 자존심이 상하겠지.’
주현우가 서준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신 칭찬해댔다.
‘어?’
그런데 갑자기 다리가 무거워지는 걸 느낌이 몰려왔다. 그리고, 서준하가 휘청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준하야!”
***
눈을 뜨니 새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또 환생한 거 아니겠지?’
이제는 하얀 천장만 보면 가슴이 철렁한다.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는 서준하.
‘바뀌진 않았네. 그나저나 또 정신을 잃은 거야?’
침상 옆에 놓인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작은 두 손도 여전했고, 바뀐 건 없었다.
‘벌써 두 번째 쓰러졌네.’
카트만 타고 나면 정신을 잃는다. 역시 체력은 중요하다.
다시 누워 휴식을 취하던 그때, 누군가 서준하가 있는 휴게실로 오고 있었다.
“준하가 로탁스 클래스로 들어오는 겁니까, 선배님?”
“응. 그렇지.”
“그러면 로탁스 선수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5명이 되는 거니까, 아마 경쟁이 더 치열해지겠지?”
주 코치의 목소리였다. 다시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서준하. 왠지 모르게 이럴 땐 자는 척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3명은 가을 시즌에 못 나가겠네요.”
“팀에서 2명 출전인데. 왜 3명이야?”
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코리아 카트 챔피언쉽. 유소년 로탁스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는 선수는 팀 당 2명. 주현우가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준범이...”
“준범이? 준범이 왜?”
“이번에도 내보내야 하지 않습니까?”
지난 시즌 케노는 조준원과 양준범을 대회에 내보냈다. 실력이 뒤진 양준범의 출전은 기업 필광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
“이번에는 그냥 내보내줄 순 없을 것 같은데?”
“네?”
주현우의 말에 얼어버린 박기태.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냐는 표정.
“준범이가 팀에서 자기 실력을 보여줘야 대회에 내보낸다고. 이번 시즌은 실력순이야.”
실력대로라면 양준범은 5명 중 가장 꼴찌. 이건 양준범을 대회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과도 같았다.
“실력순이면? 레이스를 해서 내보내실 건가요?”
“응, 준범이가 2위 안에 들면 출전하겠지?”
“만약 못 나가게 되면... 아마 필광 쪽에서 난리가 날 건데요, 선배.”
필광은 양준범의 부모가 운영하는 기업으로 케노의 비공식적 스폰서였다. 양준범이 팀에 오고부터 필광은 케노에 많은 지원을 했다.
“그럼 다른 스폰서를 찾아 봐야겠지?”
“필광처럼 지원해 줄 기업도 딱히 없지 않습니까?”
“왜 없어. 내년에 영암에 F1 서킷 세워지면 관심 가질 기업도 많아질 거라니까?”
“...”
“게다가 지난번에 준원이 우승한 뒤로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었잖아.”
2010년엔 한국에서도 F1 그랑프리가 열린다. F1 경기가 열리면 모터스포츠 산업이 발전하고, 하위 스포츠격인 카트 종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 주현우는 자신의 말에 확신했다.
“서킷 하나 만든다고, 갑자기 모토스포츠 산업이 확 뛴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건 모르는 거야. 갑자기 대현 자동차 같은 곳에서 F1 하겠다고 해봐. 사람들 관심이 얼마나 많아지겠어?”
박기태의 말을 자르고 주현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혹시나 재정 지원이 끊기게 되면...”
박기태는 걱정스러웠다. 스폰서가 사라지면 자신의 월급을 주는 사람도 사라지는 것이었으니까. 필광 말고 다른 스폰서가 나탈날지 불투명한 상황에 주현우는 너무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폰서가 필광이었구나?'
눈을 감은 채 귀만 쫑긋 세워 대화를 엿듣던 서준하.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들었다.
“기태야, 너 오늘 쟤 랩타임 봤지?”
심각한 표정의 박기태를 두고, 갑자기 주현우가 침상에 누운 서준하를 가리켰다.
“쟤, 12살이야. F1 챔피언이 꿈이래. 그것도 한국 출신이.”
“...”
“말도 안되는 것 같지? 근데 난 왜 그 말이 터무니없이 안 들리냐. 우린 저런 애들한테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해.”
“...”
“쟤내들 키우는 게 우리 할 일이야. 애들이 잘되면 기업도, 사람들도 다 관심 갖게 되있어. 그러니까 크게 걱정하지마.”
“...”
“아무튼 내가 감독님 출장 복귀하시면 말씀드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침상 위 서준하가 몸을 움직였다.
“어, 깼구나. 몸은 좀 괜찮아?”
“네, 괜찮아요. 헤헤”
눈을 비비며 해맑은 웃음을 보이는 서준하.
“준하야, 오늘 정말 잘타더라. 너희 부모님껜 내가 통화로 오늘 일 전부 말씀드렸다. 음, 그래서 말인데...”
오늘의 주행을 칭찬하며, 주현우가 잠시 뜸을 들였다.
“너 가을에 열리는 카트 대회에 나가보지 않을래?”
“카트 대회요?”
사실 서준하는 대회에 나가고 싶어서 케노에 왔다. 게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레이스였고, 잘하면 상도 주는 게 대회였다.
“코리아 카트 챔피언쉽이라고, 가을에 한국에서 열리는 카트 대회가 있거든.”
F1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선 어린 시절부터 카트 대회에 나가야 한다. 뛰어난 F1 레이서들도 그랬고, 전생의 서준하도 그랬다. 게다가 이런 공식 대회는 다른 좋은 기회를 만들 새로운 창구. 서준하가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대신 우리 팀에서 2위 안에 들어야 나갈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서준하가 해맑게 웃었다.
‘1위도 아니고? 2위? 난 1위 말고는 해 본 적 없는 사람인데?’
< F1 챔피언이 꿈이래, 그것도 한국 출신이 > 끝